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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상에도 반전 있어요-1 > (33/245)

< 관상에도 반전 있어요-1 >

일주일 후의 수요일 아침, 읍 센터 주차장은 관광버스로 가득했다. 무려 7대가 포진했다. 45인승 버스에 몇 자리 모자란 만석이었으니 300여 명의 신청이었다.

아직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인 오전 7시, 소위 할줌마들과 어르신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센터를 출발하는 버스는 네 포인트에서 참가자를 탑승 시킨다. 경도는 민지와 함께 나와 기탁 받은 물품들을 실어주고 인사를 나누었다.

할줌마들과 어르신들은 색동옷에 물들었다. 나이를 먹으면 강렬한 색을 좋아한다.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갖춰쓰니 제대로 관광 기분이었다.

“오 주임, 배 주임.”

차가 떠나기 전에 엄 팀장이 도착했다.

“나오셨어요?”

민지가 먼저 팀장을 맞았다.

“가만, 지문부터 찍고...”

엄 팀장은 젯밥도 잊지 않는다. 아침 7시에 찍으면 시간 외 수당이 붙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많이들 오셨네?”

엄 팀장 입이 벌어진다. 팀원의 공은 오롯이 팀장에게 넘어간다. 팀원이 잘 하면 팀장은 숟가락을 얹어도 되는 게 공직사회의 룰이었다.

“어르신들, 달리는 버스에서는 음주가무 하시면 안 됩니다. 편안하게 온천 즐기고 오세요.”

1호 차에 오른 엄 팀장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어르신이라니? 거기가 올해 몇 학년 몇 반이야?”

입담 좋은 어르신들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저 5학년인데요.”

“그럼 나랑 동무네. 나도 5학년 7반이야.”

“예끼, 7학년 5반 아니고?”

뒷좌석의 진짜 어르신이 끼어든다.

“아따, 기분 좀 내면 안 됩니까? 이만하면 5학년으로 보이는구만.”

엄 팀장에게 묻던 어르신이 포즈를 취하며 넉살을 떤다.

“기사님,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가이드에 이어 기사들에게도 당부를 전했다. 1호차가 움직이자 다른 버스들도 일제히 시동을 걸었다. 줄줄이 나가는 버스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모두 몇 분이야?”

엄 팀장이 경도에게 다가왔다.

“오늘만 306명이래요.”

민지도 싱글벙글이다.

“2차도 있다지?”

“어제까지 추가 신청한 분이 220명이라고 합니다. 모레 출발하는 일정으로 잡았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과장님하고 읍장님께는 보고했나?”

“과장님께만 보고했습니다.”

“읍장님 오시면 같이 올라가세. 아, 이런 건 읍장님도 좀 아셔야해.”

“그보다 아침 출장 좀 올려 놨는데요 인사 좀 다녀오겠습니다.”

“인사? 누구에게?”

“이장님들 하고 부녀회장님들요.”

“그걸 직접 간다고?”

“그럼 전화로 하라고요?”

엄 팀장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니 똑 같은 표정으로 응수했다.

“전화면 되는 거 아니야?”

“오늘 한 번만 협조 받고 말거면 전화로 되겠죠.”

“......?”

“특별하게 도와주셨으니 특별하게 인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팀장님도 같이 가시든지 아니면 강장음료 협찬이라도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음료수?”

“팀장님이 주신 거라고 하면 더 좋을 거 같아서요. 저야 9급이니 령이 안서잖아요.”

“강도가 따로 없군.”

엄 팀장, 눈살을 찌푸리더니 5만원권 두 장을 꺼내주었다. 경도의 손은 거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왜?”

“저기 약국 박카스가 보통 5천원인데 이장님들 열여섯에 부녀회장님이 열 넷이니...”

“알았어, 알았어.”

엄 팀장이 5만원을 더 꺼내놓았다.

“공덕이라고 생각하세요. 팀장님이 보낸 거라는 말은 잊지 않겠습니다.”

“현금영수증이나 내 번호로 찍어.”

“알겠습니다. 지역사회보장협의회 회의 전까지는 오겠습니다.”

경도가 차에 올랐다. 약국으로 달려가 박카스를 구입했다. 현금영수증은 엄 팀장 앞으로 돌렸다. 연말정산 때문이다. 팀장 쯤 되면 무조건 오바이트다. 대개 50만원 정도 토하면 선방이고 심하면 200만원을 토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무원이 정부를 욕하는 아이러니의 계절이 바로 그때였다.

엄 팀장의 협찬을 받은 건 애착을 갖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누구든 자기 돈 아깝다. 피 같은 돈이 들어갔으니 이 사업에 더 협조적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장단 등에 대한 인사는 이 과장의 코칭이었다.

어제였다.

문화누리카드 실적을 위한 관광버스 전자결재를 올렸더니 전화가 왔다. 업무협조에 다른 직원들 이름을 더 넣으라는 지시였다. 더 많은 사람을 참가시킴으로써 더 많은 협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물품후원자들도 마찬가지야.”

돌아서 나가는 경도 뒤통수에 던져준 힌트였다. 

고마웠다. 마음 갈피를 살짝 열어준 것이다.

책상으로 돌아와 곰곰 생각하니 이 과장의 말이 맞았다. 그동안은 후원자들에게 의례적인 전화만 했었다. 그런 후원자들의 후원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어쩌다 안면을 트고 유대를 맺은 후원자들은 더 오래 물품지원을 해주었다. 

후원자들은 부처님이 아니다. 자신의 공을 챙겨주지 않으면 흥미를 잃는다. 장기 후원자를 유지하려면 담당자의 투자가 필요했다.

온천관광의 성공은 이장단과 부녀회장들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전 같으면 전화 한 통으로 때웠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마르고 닳도록 협조를 받으려면 마르고 닳도록 투자하는 수 밖에 없었다. 

**

“오 주임.”

용포천변 주차장에 내리자 안선주가 두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집은 이 근처였다. 관광버스는 막 출발한 후였다.

“덕분에 한 시름 덜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최대한 정중히, 인사부터 챙겼다.

“그 말하려고 온 거예요?”

“사람이라면 은혜를 알아야죠.”

“은혜씩이나? 아유, 젊은 사람이 반듯도 하지.”

안선주가 반색을 한다. 작은 인사의 보람이 두 배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혹시 시간 좀 돼요?”

안선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요?”

“왜는? 내가 예비후원자 한 분 소개하려고 그러죠.”

“후원자요?”

“저 위에 집 보이죠?”

그녀가 가리킨 곳은 오래 전에 지은 별장이었다. 세월을 먹은 별장은 새로 들어선 별장에 비하면 존재감도 없을 정도였다.

“서울에서 내려온 할머니가 사시는데 외모는 추레한 게 볼품 없어도 집안도 좋고 재력도 빵빵한 눈치예요.”

“예...”

“나하고 안면이 조금 있는데 간간히 부녀회 후원금도 내주시거든. 이번에 알고 보니 점 좋아하시는 모양이더라고요”

“점이오?”

“저쪽 쌍봉리에 유명한 점집 있는 거 알죠?”

안선주가 산 너머를 가리켰다. 과연 용포읍의 마당발다웠다. 호박신녀는 30대 중반의 점쟁이다. 나름 유명세가 있어 서울과 지방에서도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가정부 말 들으니 거기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점에 관심 있다는 얘긴데 호박신년가 뭔가 우리 오 주임 관상만 하겠어요?”

“......”

“내가 다리 놔줄 테니까 인사를 빙자해서 맛배기 좀 보여줘 봐요. 혹시 알아요? 기탁금 좀 두둑하게 내줄지.”“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합니다.”

“아유, 내가 미리 약 쳐놨지. 오 주임님은 아무 걱정말고 관상만 보세요.”

“알겟습니다.”

“가요.”

안선주가 경도를 앞세웠다.

낮은 언덕 위의 별장은 야생화와 담쟁이넝쿨 천지였다. 마당에는 오래 묵은 등나무도 보인다. 초기 별장의 원형을 갖춘 집이었다. 대문도 없는 마당에 들어서니 야생화에 물을 주는 가정부가 보였다. 생긴 상처럼 무뚝뚝하고 불친절했다.

‘신경 꺼요. 유유상종이라고 가정부나 주인이나 얼굴은 볼 거 없어요.’

안선주가 속삭였다.

“여사님, 부녀회장님 오셨어요.”

가정부가 안에다 기척을 전했다.

“모셔.”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 여사님.”

안선주가 거실로 들어섰다. 경도는 그 뒤를 따랐다.

“......!”

현관부터 시선을 끌었다. 고풍스럽다. 그러나 오래 묵어 고풍스러운 곳이 아니라 고품격으로 오래 된 가구와 장식물들이었다.

“저번에 제가 관상 기막히게 보는 공무원이 있다고 했었죠? 오늘 마침 왔길래 모시고 왔어요.”

안선주가 경도를 소개했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을 읽던 문 여사가 고개를 들었다.

“......”

경도의 오감이 그 자리에서 스톱되었다. 자연광을 비스듬히 등진 문 여사의 첫인상은 정말 추했다. 부녀회장 말처럼 가정부와 거의 복사판이었다. 그럼에도 경도의 반응은 조금 전과는 완전하게 다르게 나왔다.

‘오로(五露)...’

경도의 본능이 짜릿하게 튀었다.

눈은 솟고 콧구멍은 드러났으며 귀는 젖혀진데다 입술은 걷히고 목뼈가 솟은 것이다.

‘으억.’

신음이 절로 나왔다.

관상에서 첫손에 꼽는 귀격은 여덟 가지가 큼직한 팔대(八大)였다.

1> 눈이 크고 안광이 있는 상

2> 코가 크고 콧대가 높은 상

3> 입이 크고 입술 끝 모서리가 위로 향하는 상

4> 귀가 크고 윤곽이 또렷한 상

5> 머리가 크고 이마의 뼈가 솟은 상

6> 소리가 크고 맑고 윤택한 상

7> 얼굴이 크고 라인이 분명한 상

8> 몸이 크고 얼굴의 상중하정이 균형을 이룬 상

위의 여덟 가지 상을 갖춘 사람은 부귀를 누린다.

오로 역시 길흉상의 족보에 올라있다. 신체의 다섯 군데가 솟구치거나 노출된 상이다. 관상용어로는 안철, 비앙, 이반, 순흔, 후결이라고 하는데 빈천하거나 복이 없는 상괘들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이들 하나하나를 따로 보자면 흉상이 틀림없지만 한 몸에 새겨진 경우에는 얘기가 달랐다. 이를 일러 전화위복의 관상으로 해석하니 어릴 때는 풍상을 겪지만 중년부터 운이 트이며 복록을 누리는 대박 귀격이 되는 것이다. 

다만 다섯 가지에서 한두 가지가 빠지는 삼로(三露)나 사로(四露)의 경우는 여전히 흉상의 운에 속한다.

“회장님.”

경도, 선 채로 묵직한 소리를 냈다.

“예?”

“죄송하지만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어? 그래요.”

눈치 빠른 안선주가 정원으로 나갔다.

문 여사의 시선은 경도에게 꽂혀있다. 늙은 눈동자가 그렇게 투명할 수가 없었다. 경도, 그제야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절이라도 하고 싶은 관상이었다. 귀격 관상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왜 그러시는가?”

문 여사가 물었다. 젖혀진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라 카랑하지만 따갑지 않았다.

“제가 관상을 본 후로 처음 보는 귀격이십니다.”

“내가?”

“이를 오로라 하니 젊은 날의 풍상을 넘어선 거목의 위엄을 보는 것 같습니다.”

“관상을 누구에게 배웠나?”

“전생 관상가였던 어르신께서 입적하시면서 제게 전수하셨습니다.”

“공무원이라면서?”

“예, 그것도 말단의 행정서기보입니다.”

“옛날에는 면서기 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 없었지. 지금은 면 서기되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섰다지?”

“예...”

“안 회장 말이 족집게 관상천재라던데?”

“그 정도는 아니고 조금 맞추는 편입니다.”

“조금 맞춘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마추어와는 상대하지 않아.”

“......!”

“그럼 무엇을 원하시는 지요?”

“관상을 제대로 본다면 그쪽에서 먼저 알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 여사의 음성이 경도 귀를 차고 들어왔다. 정곡을 찔러대는 통에 아찔하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취해 있을 경도는 아니었다.

“그 상은 따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여사님이 원하는 소망은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녀의 정곡을 찔러주었다.

“내가 뭘 원하는데?”

“......”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을 보니 아직 멀었군. 나가계시게. 어려운 걸음하셨으니 부녀회장 편에 약간의 찬조는 해드릴 테니.”

“죄송하지만 제 상괘가 맞을 겁니다. 그러니 직접 확인해 보시면...”

“지금 뭐라고 하셨나?”

“기다리고 계신 게 멀고 먼 곳의 소식이 아닙니까?”

“......”

“제가 틀리면 군말없이 돌아가 드리겠습니다.”

경도는 눈빛 한 번 거두지 않았다. 그 눈빛을 받아치던 문 여사, 결국 창가 테이블의 골동품형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두 사람, 뭐야?’

애가 타는 건 창 밖에서 지켜보는 안선주 뿐이었다.

< 관상에도 반전 있어요-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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