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괘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4 >
“오 주임님.”
커피점으로 계 경위가 들어왔다.
“인희야, 우리 경위님 얼음 왕창 넣은 아아 한 잔, 나는 그냥 따아로 한 잔.”
“옙.”
인희가 오더를 접수한다. 아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아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되시겠다. 센터로 들어가던 중, 경도가 계 경위를 호출한 것이다.
“바쁘시죠?”
경도가 먼저 물었다. 동시에 상괘를 위한 시선이 출발했다. 일이 일이니만치 사람이 중요했다. 신뢰 체크는 머리카락과 눈썹부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맑고 눈썹이 수려하니 흉금을 터놓을만 하다. 인중까지 선명하고 깊은 편이라 플러스 1이다. 인중의 길이가 턱의 절반이니 나름 이상적. 관상학적 신뢰도는 검증이 되었다.
“조금요, 그나마 요즘은 주취자들이 줄어서 할만합니다.”
“경위님은 이동 없나요?”
“하핫, 찍힌 놈이 본서나 도경 들어가기 쉽겠습니까?”
일상다반사를 주제로 삼을 때 커피가 나왔다.
“뭐 도와드릴 일 있습니까?”
커피를 집어든 계 경위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좀 어려운 일이라서...”
“음, 기왕이면 쉬운 게 좋은데.”
“본청이나 광역수사대 쪽에 아는 분 많으시죠?”
“그야 물론이죠.”
“혹시 점 같은 거 믿으십니까?”
“점이요? 어디 사이비 무속인 신고라도 들어왔습니까?”
“사이비 무속인?”
“저쪽 천둥산 쪽 말입니다. 거기 암자에 사는 보살인지 뭔지가 순진한 아줌마들을 몇 후린 모양이던데...”
“......”
“아, 죄송합니다.”
“아무튼 잘 안 믿으시죠?”
“그야...”
“그럼 관상은요?”
“오십 보 백 보 아닙니까?”
“국사 배우다 보면 그런 얘기 나오죠? 도선 국사가 왕건의 관상을 보고 국왕이 될 것을 예언했고 무학 대사와 혜증도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을 관상으로 알았다고.”
“그야 왕조에 신화를 입히기 위해...”
“제가 흉내 한 번 내봐도 되겠습니까?”
“오 주임님 관상 배웠어요?”
“혹 실례가 되어도 이해해주시는 겁니다.”
“좋습니다. 점괘 줘보세요.”
계 경위가 어깨를 바로 세웠다.
“제가 혼자 썰을 풀면 재미가 없을 거 같고요, 경위님이 짚어보세요. 예를 들면 13살, 혹은 스무살, 하는 식으로요.”
“그것도 가능합니까?”
“어느 지점을 맞춰볼까요?”
“음... 그럼 중3?”
계 경위가 구간을 찍었다.
<16세>
소년기이니 이마의 상정이다. 그 이전의 시기는 귀에서 읽는다. 그러나 14살 이후의 운은 이마에서 시작한다. 열여섯이니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는 바로 아래의 천중(天中)이었다. 이마 자체는 약간 빈약하고 좁은 편에 속했다.
그 전에 먼저 전체 관상을 통찰한다. 얼굴색의 최고는 역시 우윳빛이다. 그냥 희다고 좋은 게 아니라 화사한 생기가 돌아야한다. 계 경위의 얼굴은 검은 빛이 도는 구릿빛이다. 나쁘지 않다. 구릿빛 역시 생기에 속했다.
남자는 눈, 여자는 입.
눈을 빼놓고는 관상을 논할 수 없다. 이제 보니 계 경위의 눈도 보통은 아니었다. 샘물처럼 맑고 아늑해 보였다.
‘어디 보자.’
이제 천중의 분해로 들어갔다. 열여섯의 한 해는 풍파가 심했다. 하필이면 이마의 굴곡도 천중 부위였다. 그 굴곡이 이마의 오른쪽 일각 부분으로 기울었다. 이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눈썹 꼬리가 올라간 형태니 직업은 잘 택했다. 이런 사람은 군인이나 경찰, 운동선수가 되면 좋다. 그러나 그 끝이 조금 오버하는 편이니 역경을 헤치며 살 운명이다. 잘 나가던 경찰대생이 술 실수로 기가 꺾인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망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마를 절반으로 나눴을 때 아랫부분에 서광이 깃들었다.
이 서광은 어디에서 왔을까?
조금 더 내려가니 답이 나왔다. 턱뼈가 단단하고 둥그스름하면서도 담장이 선 듯 듬직했다. 이마는 관운의 상징이지만 조금 나쁘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관상은 어느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 계 경위 같은 경우, 하관이 발달하면서 상정의 빈약함을 상쇄하고 있었다.
이런 얼굴은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불굴의 추진력을 발휘하는 노력파이자 강철 의지의 소유자들이었다.
‘불굴의 추진력.’
경도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괘였다.
“끝났습니다.”
경도가 탐색을 끝냈다.
“어떻습니까?”
계 경위는 담담하다. 아직은 호기심 수준이었다.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 데요 혹시 중학생 이후에 치아 교정하셨습니까?”
“와우.”
계 경위의 전격 반응이 나왔다.
“하셨죠?”
“아니... 그거 일급 비밀인데... 그걸 어떻게?”
“그때까지는 매사 작심삼일이었을 겁니다. 머리는 되는데 공부는 취미가 없는...”
“헐.”
“열여섯, 경위님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네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해에 어머니를 잃었고 또 하나는 담 쌓았던 공부를 시작한 거죠. 부수적으로는 치아교정도...”
“어어엇.”
계 경위 손에서 커피잔이 미끄러졌다. 잔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커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괜찮으세요?”
인희가 행주를 들고 달려왔다.
“고마워.”
경도가 받아 계 경위에게 건네주었다.
“오 주임님.”
계 경위는 커피를 닦는둥 마는둥 하며 경도만 바라보았다.
“이건 그냥 보너스인데 그로부터 약 10여 년 후에 부친께서 재혼을 하셨군요.”
“......?”
커피를 닦던 계 경위가 얼어붙는다. 부모의 재혼 역시 그의 숙명이었다. 눈썹의 양쪽 형태가 차이가 나는 까닭이었다.
“잠깐만요. 나 세수 좀 하고 올 게요.”
계 경위가 화장실로 뛰었다. 얼굴에 튄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정신이 돌아오자 다시 경도 앞으로 돌아왔다.
“어떻습니까? 좀 맞았나요?”
“오 주임님 귀신 아니죠?”
“저 그냥 9급 공무원입니다. 제 관상... 믿을만 한가요?”
“대박, 이거 대체...”
계 경위가 앞으로 다가앉았다.
“제가 심심풀이로 관상을 좀 배웠는데 요즘 신빨 좀 받는 것 같습니다. 경위님께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 아무래도 안 믿으실 것 같아서...”
“아니, 이게 심심풀이입니까? 내가 보기엔 완전 족집게잖아요? 저 중3까지 날라리였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면서 두 가지 유언을 남겼어요. 우리 아들, 엄마가 치아교정은 해주고 가야 하는데... 우리 아들 공부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전교 1등감인데...”
“......”
“어머니 장례 끝나고 아버지가 제 손 끌고 간 곳이 치과였어요. 다짜고짜 치아교정 시키시는데 아무 말 못했어요. 치아교정비, 그거 엄마 교통사고 합의금이었는데... 엄마 목숨 판 돈을 어떻게 쓰냐고 아빠에게 덤비고 싶었는데 아빠가 먼저 우는 거예요. 우리 아빠 내 앞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거든요.”
“......”
“저도 울면서 교정기 달았습니다. 죽은 엄마에게 맹세했어요. 나 1등 먹을 테니까 지켜보라고.”
“......”
“중3 겨울방학 때 학원 여러 군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수학을 정말 잘 설명하는 강사 선생님을 만났어요. 수학에 재미가 붙으니 다른 것들도 자신이 생기더군요. 고1 때, 2학기말 고사에서 반 3등 찍었고 고2때부터는 전교 초상위권 랭크했어요.”
설명하는 계 경위가 웃었다. 그러나 그 눈에는 물빛이 보인다. 시선을 살짝 비껴 매너를 지켜주었다.
“그런데 그걸 다 찍어내다니...”
“신통력 괜찮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그럼 좀 심한 얘기 하나 해도 믿어주실까요?”
“또 관상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관상으로 알게 된 사건에 대한 수사요청입니다.”
“수사요청?”
“예.”
“일단 들어보죠.”
계 경위가 귀를 열어주었다.
<관상으로 수사하기>
조선시대라면 심문 단계인 ‘초초’에서 관상가의 자문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전자와 CCTV의 전성시대. 관상이 수사에 발 붙일 일은 없었다.
“혹시 7년 전 쯤에 일어난 우리 시청 팀장 투신사건을 아십니까?”
“글쎄요, 제가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 번 보시겠어요.”
경도가 출력물을 건네주었다. 당시 신문기사 등을 스크랩한 복사물이었다.
“공원부지 특혜분양 의혹 중에 시청 주무부서 팀장 투신?”
“......”
“그냥 투신으로 종결되었네요? 외력이 작용한 흔적이 없으니 부검대신 사체검안으로 끝났고...”
“혹시 경대에서 그런 건 안 배웁니까? 외력 없이도 타살이 되는?”
“사실 모든 자살은 광의적 의미의 타살이라고 배워요.”
“광의적 의미의 타살요?”
“학교 왕따만 해도 그렇잖아요? 일부 학생들이 자살을 하는데 그 아이들이 그냥 자살한 게 아니잖아요? 원인이 있는데 사회적이죠. 이런 건 역시 투신 팀장이 결백했다면 주변의 눈총을 견디기 힘들었겠죠.”
“결백하지는 않았습니다.”
“결백하지 않다고요?”
경도가 반론을 내자 계 경위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두 가지 의견을 드립니다. 일단 투신한 팀장은 뇌물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많이요.”
“하지만 수사결과에 뇌물은 없었던 걸로...”
“현금을 받았다면 흔적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
“투신도 아닙니다. 누군가 외력을 행사했습니다. 그게 물리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압박이든.”
“오 주임님.”
“누군가 그날 투신한 팀장과 만났고 투신 장소에도 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 시기에 거액의 금전(金錢)수수도 한 것 같고요.”
금품수수는 굳이 금전(金錢)이라고 표현했다. 금갑이 묵직하게 흘러내렸으니 종이돈이나 통장의 숫자는 아니었다.
“......”
“그 사람을 수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경위님이 안 되면 동기나 선배들을 동원해서라도.”
“그게... 관상으로 확인하신 거다?”
“예. 당혹스럽죠?”
“......”
“관상을 믿어야하나 말아나 하나 고민하시게 될 테니 관상으로 신뢰도를 좀 더 높여보겠습니다.”
“저한테요?”
“실례가 되겠지만... 만나던 여자 분이 이번 주에 이별을 통보했죠?”
“......?”
“교제한 지는 2년 정도 되는 것 같군요.”
“......?”
“여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경위님은 중매로 결혼할 상입니다. 이번 꽃이 지고 새 꽃이 피는데 3년 정도 걸리겠습니다. 그 때 중매를 하시면 원하는 여자를 만날 겁니다.”
경도의 상괘는 간문에서 나왔다. 간문의 찰색이 저물고 있었다. 사랑이 시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이거야 원...”
계 경위의 심장이 멋대로 뛰었다. 여친의 이별통보를 받은 지 3일 차였다. 아직 믿기지 않아 절친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짚어내는 경도의 관상이었으니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저를 믿어주시겠습니까?”
“할 말이 없네요. 이건 관상이 아니라 내 방에 몰카 달아놓은 것 같잖습니까?”
“그게 관상이거든요. 사람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블랙박스이니 제대로 보면 많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설마 내가 잘 때 다 벗고 자는 것까지 아는 건 아니죠?”
“그건 몰라도 색탐여부까지는 알 수 있지요”
“허얼.”
“죄송합니다. 이런 말 누가 믿어주지도 않을 테고, 그렇다고 행정직 공무원인 제가 수사에 나설 수도 없고... 또 제 말이 적중하면 경위님에게도...”
“도움이 되겠군요. 7년 베일에 묻힌 투신사건의 범인이 따로 있다면.”
“물론 희망사항이긴 합니다만...”
“좋아요. 저한테 득이 되는 건 나중 문제고. 일단 말해보세요. 사안을 보니 우리 서보다는 본청이 나설 일이네요. 지역 경찰서가 나서면 유야무야될 소지가 있습니다. 친한 분이 본청 수사과장님으로 계시니 연결해 보겠습니다. 제가 투서나 제보를 받은 것으로 하면 오 주임님은 드러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누군가요? 그 사람.”
“투신 자살 사건의 범인은...”
계 경위에게 눈을 맞춘 경도가 천기를 누설했다.
“우리 시 자치행정국 국장입니다.”
“자치행정국이면 오남일 국장님요?”
“아십니까?”
“그럼요. 본서 과장님들과 이쪽 고교 선후배인 모양이던데?”
“그럼... 안 되는 겁니까?”
“에이, 왜 이러십니까? 제가 비록 좌천 중이지만 경대에서도 상위권 달리던 놈입니다. 그만한 일에 쫄지 않아요.”
계 경위의 투지도 만만치는 않았다.
< 살괘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4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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