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괘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3 >
“선 과장.”
오 국장이 경도를 지나갔다. 선대열이 일어나 오 국장을 맞았다. K시의 편제는 7국 3 담당관 체제였다. 최근 복지와 안전, 경제 등이 뜨고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자치행정국이 원톱이다. 그렇기에 K시의 안내도에도 자치행정국이 1타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 수장이 바로 오남일 국장이었다.
“왜?”
추병승이 다가와 경도를 건드렸다. 너무 넋을 놓은 모양이었다.
“오 국장님 처음 보냐?”
“이렇게 가까이서는...”
“하긴 나도 처음에는 많이 쫄았다. 카리스마 죽이시지?”
“응...”
“4급 서기관... 으아.”
추병승이 몸서리를 친다. 9급이나 8급에게는 대통령보다 우러러보이는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대통령은 멀고 국장은 가까웠다.
“저 분 눈에 들면 시청 입성이 쉬울 텐데...”
“지금 익히면 되지 뭐.”
경도의 시선은 이미 차분하게 변했다. 초점의 목표는 선대열과 만나는 오남일이었다. K시 일인지상만인천하 국장. 직원 조회 등에서 한두 번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으니 감히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얼굴을 정면으로 보게 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과연...’
K시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국장다웠다. 눈 언덕으로 불리는 미릉골이 처마처럼 돌출된 것이다. 만약 기색을 살피는데 약했다면 미릉골의 위세에 취해 헤롱거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도는 미릉골의 기색까지도 뜯어볼 수 있었다.
폭발적인 관운에 비해 아쉽다.
어느새 늦가을이다. 풍성한 추수에 이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 국장의 관운이 여기까지라는 뜻이었다.
지자체 공무원으로 국장 정도면 더 바랄 게 없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건 결코 아니다. 전국 지자체장 선거를 살펴보면 국장출신 후보들이 많았다. 다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시정에 밝다는 것이 장점이었으니 시장이나 군수로 약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걸 기반으로 국회입성을 달성한 사람도 많았다. 오 국장이라고 그런 야망이 없을 리 없었다.
미릉골에 취한 눈을 거두고 전체 분석에 돌입했다. 오 국장의 얼굴은 시시각각 각도를 바꾼다. 관상 봐달라고 대주는 얼굴이 아니니 순발력에 스피드까지 필요했다.
이마는 넓었다. 눈도 한없이 검다. 코도 제대로 섰다.
‘검봉비.’
경도의 시선이 오 국장의 코에서 멈췄다. 붉은 기운이 서린 준두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 국장의 코는 드물게도 매운 맛의 검봉비였다.
관상에서 코를 판단하는 상법은 20여 가지를 넘는다. 주로 동물이나 물건의 특징에 비유해 해석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용비, 호비, 성낭비, 현담비, 응취비 등을 들 수 있다.
용비는 어감에서 알 수 있듯이 용의 형상이다. 죽는 날까지 명성이 아름답다. 준두 윗부분이 가지런하고 곧게 솟은 산근도 품격이 있다. 콧대까지 단정하고 치우침이 없으면 명망 높은 가문으로 보면 된다.
다음에 꼽히는 호비 역시 이름을 날린다. 산근이 크고 부귀하며 양 콧날인 난대와 정위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호방한 사람 중에 이런 코가 많다.
성낭비는 주머니처럼 생긴 코를 가리킨다. 역시 부귀하며 중년에 영화가 더해진다.
이에 비해 원숭이 코로 불리는 후비는 가난하고 의심이 많아 인색한 사람 쪽이다. 응취비 역시 인성이 모질고 간사하다.
고봉비는 재물창고로 불리는 양쪽 콧날, 즉 난대와 정위가 열려 있고 코만 웅장한 형태다. 재물을 쌓을 수 없으니 고독하고 가련한 삶을 살 수 있다.
오 국장의 코는 ‘검’봉비.
여기서 검은 칼을 뜻한다. 입신출세를 위해서라면 상대의 간도 도려낼 강심장이 바로 검봉비였다. 준두의 살이 적고 난대와 정위가 열린 형상이다. 교묘하게 남을 속이는 것도 좋아한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결국 저홀로 외로운 상이 검봉비였다.
경도는 떨고 있었다. 척추에 맹렬한 경련이 일었다. 이를 물고 경련을 달랬다. 아직 남은 상이 있었다.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더듬는다.
‘아.’
경도의 의식이 휘청거린다. 검은자위가 항상 위쪽이다. 타인에게 지는 게 죽기보다 싫은 승부사 기질이다. 나아가 검은 눈동자가 두 개로 보인다. 그 안의 안핵에 흔적이 있었다. 주검과 관련된 살성이었다.
툭!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떨어졌다. 직원 하나가 지나가면서 경도를 밀었다. 그러나 마치 로봇처럼 다시 자세를 잡고 남은 관상을 꿰뚫었다.
안핵은 한 번 더 확인에 들어간다.
‘우.’
틀림없다. 지진 때 난 건물의 금처럼 살성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마지막...’
시선을 유년운기부위로 옮겼다. 오 국장은 이제 갓 오십이다. 여기서 7년 전으로 돌아가면 마흔세 살. 그 시기의 운은 눈이 시작되는 콧대 옆의 광전이었다.
‘윽.’
미친 듯이 집중하던 경도가 또 한 번 흔들렸다. 그의 광전은... 깨끗했다.
‘이럴 수가?’
경련이 뼈마디를 후려쳤다.
“오경도.”
추병승이 경도를 건드렸다.
“왜 그래 설마 코로나 19 부작용?”
“아니, 요즘 문화누리카드 실적 때문에 좀 무리를 했더니...”
“하긴 용포읍이 개빡세지?”
“좀...”
대충 둘러대며 다시 확인에 돌입했다. 이대로 끝낼 수 없는 상괘가 거듭된 것이다.
광전(光殿).
그 부위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안광으로 오국장을 얼굴을 뚫어버리는 것이다.
“......!”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관상이 주는 상괘와 언밸러스가 되는 유년운기부위였다. 얼굴에서 얻은 상괘로는 오 국장에게 살괘가 있었다. 하지만 7년 전의 유년운기부위가...
우회로를 찾는다.
얼굴은 한 인간의 인생이 담긴 블랙박스다. 그가 살아온 길은 물론, 앞으로 살아갈 방향도 나와 있다. 예외는 없다. 단지 해독이 어려울 뿐이었다.
우회로는 십이지지였다. 얼굴에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있다. 턱 아래에서 시작해 얼굴을 원 삼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머리 꼭대기가 ‘오’가 되고 다시 턱으로 돌아오면 한 회전이 끝난다. 오 국장의 나이를 기준으로 십이지지를 찾아간다.
“......”
경도의 눈동자에 파란이 인다. 이 방법으로도 일치가 되지 않았다. 오 국장의 십이지지에도 문제는 없었다.
‘대체...’
당혹스러운 마음에 그의 상정 하단과 중정 전체를 스캔한다. 눈썹 부위를 시작으로 광대뼈의 윗부분들이었다.
35-36-37...41-42...
오 국장의 유년운기부위들이 의심을 벗을 때마다 경도는 입이 말라갔다. 그러다 시선이 코에 닿았을 때였다. 코가 시작되는 부분 산근과 연상, 수상, 준두... 그것들은 각각 41세와 44세, 45세, 48세의 기세를 엿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엇!’
경도의 스캐닝에 이상신호가 들어왔다. 입술 쪽으로 뻗어내려가는 수상 부위였다. 살괘였다.
“......!”
거기에 살성의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45세에 해당한다. 즉 투신자살이 있던 7년 전이 아니라 5년 전인 것이다.
5년 전, 오 국장에게 살성이 들었단 말인가? 그러나 경도가 찾는 것은 투신한 팀장에 연관된 것이었지 오 국장의 개인사를 들추자는 게 아니었다. 그도 부모형제, 자식들이 있을 테니 다른 사고가 있을 수도 있었다.
구멍 뚫린 풍선처럼 맥이 풀리기 시작한다.
“야, 오경도.”
추병승이 팔을 잡아주었다.
“괜찮아?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다음에 올게, 형.”
겨우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왔다.
시청 건물을 나와 벽에 기댔다. 하늘을 보며 숨을 골랐다.
‘내가 미쳤지.’
자책이 깊었다. 상대는 K시를 대표하는 국장이었다. 선대열과 장두환에게 빗나간 상괘를 그 얼굴에다 맞춰보다니. 맛이 가도 한참 갔다. 똥과 된장을 구분 못한 것이다. 더구나 이 과장이 지목한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렇게 전격적으로 끌렸을까? 아닌 줄 알면서도 아쉬움이 깊었다. 오 국장이 아니라 선대열이나 장두환 국장에게서 그런 상이 나왔어야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생뚱맞은 곳에 넋을 판 것도 그렇고, 이 과장에게 할 말도 쉽지 않게 생겼다.
-자세히 봤더니 아니던데요?
경도가 할 말은 그 뿐이었다.
이 과장의 반응은 어떨까? 공연히 긁어부스럼 만든 꼴이었다.
‘내가 너무 오버했나?’
한숨을 쉴 때 조경철이 다가왔다.
“뭡니까? 아까는 의기탱천하더니?”
“지국장님?”
“뭐 잘못 됐습니까?”
“아뇨.”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내가 관상은 못 보지만 눈치 하나는 기막히게 때려잡거든요.”
“......”
“말해 봐요. 관상 빼고는 다 도와줄 수 있으니까.”
“그게...”
잠시 주저하다 말을 이었다. 그냥 넘기기에는 국장의 상괘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요즘 개명 많이 하잖아요? 혹시 공무원들이 나이를 고치기도 하나요?”
경도가 물었다. 언젠가 공무원들이 정년 연장을 위해 나이를 고친다는 기사가 떠오른 것이다.“오 주임님도 나이 고치게요?”
“아, 아뇨.”
“드물지만 있죠. 내가 알기로 K시에도 세 명 정도 됩니다. 내가 한 번 기사화한 적도 있고요.”
“진짜요?”
“어, 심각하시네?”
“죄송합니다. 혹시 누구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잠깐만요.”
지국장이 PDA를 꺼낸다. 그걸 켜고 기사 검색을 하더니 관련 기사를 찾아냈다.
“이진일, 권혁순, 오남일인데요.”
“누구요?”
“이진일 권혁순...”
“아니, 마지막 사람 말입니다.”
“오남일, 자치행정국장 오남일요.”
“오 국장님?”
진정되었던 경도 눈동자가 다시 경련하기 시작했다.
“오 주임님.”
“저 괜찮습니다. 아무튼 그거 정말이죠? 오 국장님이 호적 정정한 거?”
“아이고, 내가 관상천재를 속여 먹겠습니까?”
“그럼 혹시... 두 살을 줄이지 않았나요?”
“잠깐만요.”
지국장의 손이 화면을 짚어댄다. 관련 기사가 주르륵 내려가다 멈췄다.“맞아요. 주사 직급 때 출생신고가 잘못되었다고 두 살을 줄였더군요. 내가 보기엔 그냥 정년연장을 위한 꼼수 같은데 서류하고 증인을 기막히게 세웠더라고요.”
“......”
[두 살 정정]
쿵.
경도의 심장이 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오 주임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대충 얼버무린 경도, 다시 청사 안으로 뛰었다.
두 살...
줄은 거란다.
그렇다면 유년운기부위의 상괘가 틀리지 않는다. 눈이 시작되는 광전이 아니라 콧대의 수상이 오 국장의 진퉁 유년운기부위가 되는 것이다.
오 국장은 복도에 있었다. 다른 간부를 만나 뭔가를 지시 중이다. 그의 진행방향으로 앞서가 벼락처럼 시선을 돌렸다.
대화하던 오 국장이 고개를 든다. 그의 유년운기부위를 꿰뚫는다. 눈이 시작되는 광전이 아니라 45세의 운을 가리키는 콧대의 수상이었다. 부록도 보았다. 이마의 천양과 관록에 윤기의 흔적이 남았다. 임시수입이 있었다는 뜻이다. 코의 금갑이 눌릴 정도로 묵직한 수준이었다.
“......!”
엄 팀장과 통화를 마친 경도가 다시 벽에 기대섰다. 너무 아찔해서 쓰러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투신 자살사건 있을 때 오 국장이 감사팀장이었지 아마? 둘이 잘 아는 사이야. 그래서 오 국장이 소소하게 몇 건 봐주기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경도는 흐물거리는 넋을 바로 세웠다. 엄 팀장의 조언을 참고해 당시 비리와 투신에 관련된 직원 네 명의 관상도 확인했다.
‘후아,’
격렬한 심호흡 끝에 살괘의 주인공을 확정 시켰다. 이 과장에게 살괘를 날린 사람, K시의 최고위직 오 국장이었다.
서기관 오남일.
이거 만만치 않은데?
< 살괘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3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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