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괘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2 >
“출장?”
의자에서 일어서자 현 주임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예, 온천여행 신청자가 300명에 가까우니 여행사 상황 점검 좀 하려고요.”
“오 주임 다시 봐야겠다? 잘못하면 진짜 상위권 스코어 찍겠는데?”
“찍으면 한 턱 쏘시게요?”
“까짓 거 쏘지 뭐.”
“저 말고 사회복무요원들에게 쏘세요.”
“공익들?”
“우석 씨를 필두로 많이 굴렸잖습니까? 주임님 가야할 세미나나 강연에 대출, 장애인 탁구대회도 대리참석, 심지어는 감상문도 대필...”
“그건 그냥 관행이야.”
“퇴근보다 늦게 끝나는 행사도 보내고 주말에 보내기도 했어요. 우석 씨가 착해서 그렇지 다른 애들 같으면 진정냈을 걸요?”
“오 주임이 우석이 매니저야?”
“홀아비 심정 과부가 알죠.”
“앞으로 대출 시키지 마라?”
“솔직히 보기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오 주임이 목표 달성 못하면?”
“주임님이 다른 데로 이동할 때까지 모든 비상, 산불대기, 재해대기, 재택근무 다 제가 서드리죠.”
“오, 그건 콜.”
“딜 성립된 겁니다.”
“오케이, 이거 호박이 넝쿨 째 굴러오는 거 같은데?”
“나, 나는? 경도 씨?”
은빛이 끼어들었다.
“이 주임님도 그렇게 할까요?”
“나는 재택만 맡아줘. 그것만 해도 땡큐거든.”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계약효력 발효니까 이것 좀 도와주세요.”
두 사람에게 전화번호부를 안겨주며 총알처럼 말을 이었다.
“문화누리카드 2차 공략자들 명단하고 전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야, 야. 오 주임.”
현 주임의 외침을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9급도 이젠 좀 할만한데?’
안전벨트를 매며 웃었다. 말단이라고 의기소침하고 주눅들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9급부터 6급까지는 동급이다. 그렇기에 싸잡아 주무관으로 부르지 않는가?
“주임님.”
시동을 걸 때 우석이 다가왔다.
“왜?”
“고맙습니다.”
우석이 얼굴을 붉힌다.
“들었어?”
“예, 깨질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조금 전에 현 주임님이 와서 그래요. 다음부터 조심하시겠다고...”
“잘 됐네?”
“주임님 덕분이에요.”
“우석 씨도 이제 대우 받을 군번이야. 나 없는 사이에 문화누리카드 발급 받을 분 오시면 배 주임님에게 안내 좀 잘해줘.”
“네.”
우석이 거수경례를 했다. 대개 각이 나오지 않던 우석의 거수경례, 오늘은 제대로 각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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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재주 좋으시네.”
여행사 대표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런 제의가 있어요. 한 번은 응하기도 했는데 사람을 못 모아요. 결국 위약금만 받고 그만두었었지.”
“가수는요?”
앞에 앉은 경도가 물었다.
“읍에서 원하는 대로 섭외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전부인가요?”
대표가 명단을 보며 물었다.
“아뇨. 아직 멀었습니다.”
“그럼 두 파트로 나누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가수 등급을 하나 더 올릴 수 있습니다.”
“일단 추진해 주십시오. 현재 추세로 보아 500명 참가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뭐 이렇게만 해주신다면 제가 정기 편성할 수도 있습니다.”
“테마를 바꿔가면서도 가능합니까?”
“머릿수만 채워진다면 가능합니다. 건강체험, 온천체험, 문화체험, 산림욕체험... 코로나도 가셨으니 플랜 짜는 거야 어렵지 않죠.”
“그럼 여러 가지 함께 알아봐주십시오. 이번 기획이 성공하면 제가 윗분들께 결재를 받아두겠습니다.”
“언제 제가 한 번 들르죠. 인사도 할 겸.”
“그래주시겠어요?”
“주임님은 언제 시간이 되십니까? 저녁이라도 한 번 대접해야 할 텐데요.”
“저녁은 제가 대접해야죠. 어려운 일 맡아주셨는데...”
“아닙니다. 차 과장님 소개니까 까놓고 말씀드리는데 인원만 맞춰지면 손해날 거 없습니다. 언제 담당 팀장님 모시고 한 번 뵙죠.”
“그럼 죄송하지만 그 저녁 쏠 예산으로 박카스 몇 박스 사주시면 안 될까요?”
“예?”
“제가 이번 일에 목숨 걸었거든요. 고맙게 협조해주시는 어르신들께도 작은 실익이라도 드리고 싶고요.”
“하핫, 우리 차 과장님, 이제 보니 사람 볼 줄 모르시네.”
대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 양반이 전화해서 물어요, 오 주임님 다녀갔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큰 기대는 말고 대충 시늉이나 내라고 하시더라고요.”
“......”
“그런데 이런 뚝심이라니... 좋습니다. 제가 모든 참가자들에게 음료 쏘겠습니다.”
대표는 흔쾌했다.
‘후우.’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했다. 입 밖으로 밀려나오는 건 뿌듯함이다. 여행사 대표에게 딜을 한다는 것, 전 같으면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부딪쳐보니 별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기획이었고, 그 기획의 실천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건널목을 건널 때였다. 시청 정문 옆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용포읍은 자폭하라. 시장도 자폭하라.”
“K시 공무원들은 밥대신 똥물을 마셔라.”
그 사람이었다. 용포읍에서 온 장기 시위자. 오늘은 집회허가를 받았는지 다른 10여 명도 합류해 있었다.
반대편에는 새로운 1인 시위자가 보였다.
<폭력공무원 물러가라>
<영업손실 보상하라>
그가 든 네모판에는 사연과 사진이 빼곡하게 붙었다.
공무집행과 시민의 이해관계.
그 첨예함은 유사 이래 지속되어 왔다. 공무가 공익을 위한다지만 일부에게는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오 주임님.”
골똘하고 있을 때 누군가 경도 어깨를 건드렸다. 돌아보니 조경철 지국장이었다.
“지국장님?”
“시위자들 관상 보러 왔습니까?”
“아닙니다. 지국장님은요?”
“인사팀장 비리소문 들었는 지 모르겠는데 이 사람들이 쉬쉬 하면서 자진사표로 끝낼 모양새예요. 슬쩍 태클 좀 걸어보려고요.”
“예...”
모른 척 추임새만 넣었다. 인사팀장의 비리는 이제 정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저는 저 앞 여행사에 공무 차 왔다가 잠깐 아는 분들 좀 보고 가려고요.”
“그럼 본 김에 나 어때요? 이번에 우리 신문사에도 인사이동이 있을 모양인데 본사 영전 가능할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대충 얼버무리고 돌아섰다. 이동이나 이사운이라면 이마 양 모서리의 천이궁이다. 이곳이 밝으면 이동이나 이사운이 있다. 하지만 조 지국장의 천이궁은 무심하도록 담담했다. 명궁을 비롯한 미릉골 역시 큰 변화가 없으니 승진 소식도 없었다. 그러기에 상괘를 주지 않는 경도였다.
“오 주임님.”
조경철이 경도를 불렀다. 경도가 돌아보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젊은 분이 속도 깊으시네. 저 제 자리 발령이군요?”
“......”
“말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기자 밥 20여 년인데 그런 눈치 없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나 K시에서 뼈를 묻나요?”
“......”
“어헛, 그런 모양이네?”
“승진이나 이동운은 그때그때 변하니까요.”
“아이고, 위로하지 않아도 됩니다. 신문사 전국부라는 게 원래 그렇거든요. 한 번 밀려나면 본사입성 힘들죠.”
“......”
“그나저나 나야 지는 해라 그렇다지만 오 주임님은 시청 입성해야죠. 내가 힘 좀 써드릴까요?”
“그 힘 용포읍에다 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용포에 뼈를 묻으려고요?”
“그건 아니지만 용포읍이 K시의 복마전 아닙니까? 작은 힘이나마 그 이미지 좀 걷어내고 싶습니다.”
“오, 읍장도 못하는 생각까지?”
“잘 부탁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앞서 걸었다.
조경철은 한동안 경도를 바라보았다. 이 말단 공무원은 기꺼운 연구대상이었다.
‘이런 친구를 왜 여태 몰랐지?’
조경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스쳐갔다.
경도는 운이 좋았다.
장두환을 복도에서 만난 것이다. 그는 식품위생과장과 함께 걸어나오고 있었다. 인사를 하는 동시에 얼굴을 뜯어냈다.
세모형 눈답게 안광이 따가웠다. 살모사의 눈이다. 경도가 시선을 가다듬는다. 그러나 그뿐이다. 머리와 턱, 하악골까지 내려가던 눈에서 힘이 빠졌다. 머리 옆이 볼록나왔다. 턱은 뾰족한 형태지만 살이 많았다. 허영심, 즉 가오 좀 잡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사리사욕보다 ‘의리’ 쪽이다.
결정적으로 투신 사건이 발생한 해, 그 해의 유년운기부위에 살성이 없었다. 장 국장에게서 읽어낸 것은 처자궁이 나쁘다는 사실. 그는 거의 이혼직전이다. 인중이 검은색이니 건강에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투신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살괘(殺卦).
관상에서 어떻게 확인이 되는 걸까?
경도가 머리 속에서 정리를 한다.
살인을 하면 눈썹이 서고 핏발이 선다. 연쇄살인마 정도의 유경험자가 아닌 한 간과 담에 불이 나고 심장이 오그라든다. 그렇게 되면 정수리에 붉은 표식이 남는다. 혀가 타들어가니 단내가 진동하고 입술도 탄다.
눈에도 이상이 온다. 간이 불이 났으니 간을 비추는 눈이 그대로 있을 리 없다. 눈동자의 안핵이 겹쳐 보인다. 수 년이 지나도 흔적은 남는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관상의 대가라면 알 수 있었다.
“......”
경도 눈에서 힘이 빠진다. 살인이나 투신강제에 관련된 흔적은 없었다. 정밀 투시에도 엿보이지 않으니 그는 정경주 팀장 투신사건의 주된 인물이 아니었다.
“뭐야?”
식품위생과장이 경도를 향해 인상을 흘겼다. 장 국장을 너무 꿰뚫은 것이다.
“아, 아닙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켰다. 경도를 노려본 과장이 국장을 모시고 멀어졌다.
-장두환 국장 제외.
남은 건 선대열 과장이었다. 그는 안전총괄과에 있었다. 시청의 과는 대개 여럿 부서가 몰려있다. 직원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무대뽀로 들어가서 과장 관상을 뜯어볼 수는 없었다. 동기들 명단을 펼쳤다. 단톡방에서 강퇴를 당했지만 근무처를 아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추병승.’
경도보다 세 살 많은 동기다. 그가 그 과에 배속되어 있었다. 직원배치도를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경도?”
곁으로 다가서자 추병승이 고개를 들었다.
“웬일이냐?”
“다녀가는 길에 형 생각 나길래...”
“몸은?”
“보다시피.”
“커피 한 잔 할래?”
“아니, 됐어.”
일어서려는 그를 가볍게 눌렀다. 목적은 커피가 아니라 선대열이기 때문이었다. 선 과장은 창가의 소파에서 내방자와 환담을 하고 있었다.
“형네도 바쁘지?”
위치를 바꾸며 추병승에게 말을 걸었다.
“말도 마라. 우리 과 완전 노가다다 노가다.”
“신규는 없어?”
“있었는데 온지 얼마 안 돼서 출산휴가 들어갔다. 그런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사람을 안 주네?”
산전휴가, 출산휴가, 육아휴직. 공무원 조직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일이 되어 있었다.
“시청에 있으니 동기들 자주 보겠네?”
“지난 번 일은 유감스럽게 됐다. 나도 태술이가 그렇게까지 말 할 줄은 몰랐어.”
“괜찮아.”
“그 사고는 잘 수습되었고?”
“응? 응... 덕분에...”
대화 중에 간간히 선대열을 체크했다. 명궁은 나쁘지 않았다. 인중에도 살성의 기미는 없다. 눈을 파고드는 건 두툼한 입술. 그러나 단점이 있었으니 입끝의 라인과 선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았다.
“과장님 좋아보이네?”
슬쩍 간을 보는 경도.
“말마라. 우리 과장님 조변석개파야.”
추병승이 속삭였다. 관상에서 보이는 평이 그대로 나왔다. 그 사이에 내방객이 나갔다.
“형, 나 과장님께 인사 좀 시켜줘.”
“이번에 소폭 인사 있을 거라더니 너 우리 과 노리냐?”
“그건 아니고...”
“알았다. 이리 와라.”
자리에서 일어난 추병승이 과장 책상으로 걸었다.
“과장님, 용포읍에 근무하는 제 동기입니다. 과장님께 인사드리고 싶다는군요.”
추병승이 경도를 소개했다.
“용포읍?”
의자에 앉은 선대열이 고개를 들었다. 경도가 원하던 눈동자가 확보되는 순간이었다. 순간의 찰라에 그 눈과 유년운기부위를 꿰뚫었다.
피싯.
경도의 기대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선대열의 관상에도 살인과 연관지을 수 있는 상괘가 없는 것이다.
“......!”
경도의 머리카락이 쭈뼛 올라갔다. 낭패였다. 이렇게 되면 이 과장 볼 면목이 없었다. 이제 아물어가던 상처를 건드려 독이 오르게 한 꼴이기 때문이었다.
-관상을 너무 과신했던 건가?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 과장의 얼굴에서 본 상괘는 살괘가 틀림없었다. 두 번 세 번 확인한 바가 아닌가?
‘전임 부시장까지 찾아가봐야 하나?’
맥없이 돌아설 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선 과장.”
선대열을 부르며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덩치가 집채만 했다. 김경동 시장 체제 하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부각된 자치행정국장 오남일이다. 그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비명과 함께 휘청 흔들렸다.
‘어억.’
너무 골똘한 탓에 눈이 잘못된 걸까? 경도가 찾던 살괘의 관상이 거기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 살괘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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