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괘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1 >
사진 속의 인물들이 베일을 벗었다.
-선대열 현직 안전총괄과장
-장두환 현직 경제문화국장
-최병렬 전직 부시장
사진 옆에 직급이 붙어있다. 경도에게는 셋 다 낯설었다. 시청의 사무관만 50여 명이다. 사업소와 읍면동까지 합치면 70여 명에 달한다. 시청에 잠깐 근무했던 경도가 알 리 없었다.
전임 부시장은 더욱 그랬다. 그는 경도가 임용되던 해에 정년을 맞았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혹 흠모하던 상사가 이런 일에 관련되어 있다면 그만한 실망도 없을 일이었다.
세 사람의 상은 대조를 이루었다.
경도가 적용한 것은 현인오법이었다. 현인오법은 관인팔법처럼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 얼굴상이었다.
선대열-소개지상笑開之相
장두환-폭악지상暴惡之相
최병렬-한고지상寒孤之相
소개지상은 늘 웃는 얼굴이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폭악지상 역시 어감과 같다. 얼굴이 악독해 보이니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고지상은 쓸쓸한 상이다.
이것만으로 보면 범인은 폭악지상의 장두환이 가까웠다. 당시 그는 이 과장이 속한 국의 국장이었다. 승진한 지 2년차였다.
그러나 노련한 관상가는 눈에 보이는 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관상의 아버지 마의선생의 뜻도 그랬다.
-얼굴 생김새를 보기 전에 마음의 생김새를 살펴라. 마음은 형체에 앞서고 형상은 마음 다음에 머무는 것이다.
그 교훈은 싸목싸목 할아버지에게도 있었다.
心相.
그 뜻이었다. 이는 사주팔자에서도 궤를 같이 한다.
사무관, 서기관, 부이사관.
9급 행정서기보에게는 다 하느님 같은 직급들이다. 그렇기에 관운부터 눈길이 갔다.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이다.
관운만 꼽자면 단연코 장 국장이었다. 그의 관록운은 부시장보다 좋았다. 그런데 왜 그는 서기관으로 끝나고 부시장은 부이사관이 된 걸까? 퇴임 시의 직급만 적용하면 곤란했다.
부시장은 행정고시 출신이니 5급으로 임용되었다. 행시 출신으로 2계급 승진했으니 관운이 트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했다는 게 옳았다. 그러나 국장은 임시직으로 들어와 9급이 되었고 이후 8-7-6-5-4급의 승진과정을 거쳤다. 9급 행정서기보의 입장에서 보면 국장이 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이분은 막차로 사무관이 되었군요. 이 해에 물 먹었으면 5급 대우로 퇴직할 뻔 했습니다.”
선대열에 대한 스캔부터 시작했다.
“이 분은 43살에 과장 달고 48세 경에 국장...”
장두환의 사진에 이어 부시장까지 훑고 지나갔다.
“......”
이 과장은 말이 없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이 과장은 왜, 이 셋을 용의선상에 올려놓은 걸까?
투신사건 당시 이창교는 공원기획과장 보임이었다. 부임하기 전부터 이 과는 뒤숭숭했다. 공원예정부지 입찰에서 특혜 시비가 일었다. 그 부서의 팀장이 투신한 정경주 조경주사였다.
이 과장을 뜨거운 부서로 보낸 건 장두환 국장이었다. 당시 시장의 복심이었던 장 국장이 말 많은 공원기획과를 바로 잡을 인물로 이 과장을 천거한 것이다.
이 과장은 내키지 않았다. 화약고 속으로 뛰어들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임감이 강했으니 그 짐을 지고 말았다.
하지만 공원기획과의 터줏대감들은 행정직이 아니었다. 천하의 이 과장이라 해도 업무파악에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행정의 달인 이 과장은 달랐다. 우선협상대상자가 적어낸 공사비가 상식을 뛰어넘었으니 입찰 당시의 탈락업체 대표를 만나 문제점을 알아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죠. 500억이면 떡을 치고도 남을 공사비로 2200억을 적어냈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불손한 의도가 있는 거 아닙니까?”
핵심은 공원이 아니라 고밀도 아파트였다. 공원조성비를 많이 투입한 업체는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결국 공원조성으로 사업권을 따낸 후에 고층, 고밀도 아파트를 건설해 본전을 뽑겠다는 속셈이었다.
담당자 정 팀장의 의견은 완전히 달랐다.
“업체가 거금을 들여 저 좋은 공원을 조성해준다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최고가 입찰에서 최고가를 써낸 업체를 배제하는 것도 불법 아닙니까?”
이 사이에 탈락업체들이 지방검찰청과 방송국에 탄원을 넣었다. 정 팀장이 거액의 사례를 받았다는 말이 돌았다.
“한 푼도 안 먹었습니다.”
정 팀장의 항변이었다.
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카더라 통신 역시 그 방향으로 튀었다.
-이창교도 한 통속.
-비리 정리하라고 발령냈더니 뇌물 받은 거 쪼개먹었다더라.
-돈 앞에 장사 없다.
황당했다.
그래도 이 과장은 뚝심으로 전모 파악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장은 결국 정 팀장의 보직 이동을 요청했다. 자신이 신뢰하던 행정직 선대열 팀장을 주무 팀장에 보임하여 업무 전반을 인수한 후에 정밀조사를 할 참이었다.
그러나 6급 이상의 보직배정은 과장의 소관이 아니었다. 그걸 반대한 사람이 바로 장두환 국장과 최병렬 부시장이었다. 담당 팀장을 이동 시키면 사건해결이 더 복잡해진다, 즉 강을 건널 때는 사공을 바꾸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선대열이 돌아선 것도 그 즈음이었다.
“저는 그만 빠지겠습니다.”
술자리에서 그가 한 말이었다. 괜한 악역을 자처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국 수도권 방송국의 취재가 시작되고 검찰의 출두요청이 나오자 정 팀장은 장기 병가를 냈다. 그런 다음 수일 만에 투신 사체로 발견이 된 것이다.
경찰의 조사결과 외력은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자살로 판명했으니 부검은 하지 않았다.
다음 해의 인사이동에서 선대열이 극적으로 사무관 승진을 따냈다. 퇴직인 코앞인 그였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선대열이 리스트에 추가된 이유였다.
이 과장의 의심은 퇴직한 부시장에게서 출발했다. 부시장은 문제가 된 업체 대표와 안면이 있었다. 그가 도청에 근무할 때 인연이 있었던 것. 결국 부시장이 장 국장을 통해 정경주를 감싸고 나아가 선대열을 포섭해 이 과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다음에 발을 뺐다고 본 것이다.
-시정에 누가 되자 죄책감에 못 이겨 투신을 했다.
투신에 대한 부시장과 장 국장의 견해는 공통되었다. 어느 쪽이든 상처 받은 사람은 이 과장 뿐이었다.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 쓴 것이다.
이후 사건은 흐지부지되었고 입찰업체는 공원조경공사를 마쳤다. 아파트 공사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경도가 사진을 밀어주었다.
“끝난 건가?”
“일단 이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도 손이 부시장을 짚었다.
“최 부시장은 아니다?”
“아랫턱과 아랫입술이 돌출형이라 시기심이 많습니다. 부하를 쪼거나 공을 폄하하는 일이 많았겠죠. 표정이 차가운 편이지만 귀가 말랑하니 마음이 독하지 못합니다. 과장님 얼굴에 맺힌 살괘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
“남은 건 두 분인데 포샵된 사진이라 실물의 눈을 좀 봐야할 것 같습니다.”
“눈?”
“며칠 걸릴 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돌려주고 복도로 나왔다. 이 과장은 조심스럽다. 지금에 와서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또 한 번 웃음거리가 될 판이었다. 그렇기에 사진을 놓고 나오며 안심을 시킨 경도였다. 사람을 알았으니 실물을 확인하는 건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선대열은 입술이 마음에 걸렸다. 도톰한 입술에 웃는 상이니 인정이 많고 미식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사진 각도 때문에 입술 라인이 보이지 않았다. 입술이 두툼해도 입끝과 선이 선명하지 않으면 변덕이 심할 수 있었다.
관상학적으로는 장두환에 대한 의심이 가장 컸다. 그의 눈은 세모형이었다. 살모사의 머리를 닮은 눈은 남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빛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실물 확인이 필요했다.
민원실로 내려오니 부녀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행자까지 있었다.
“오 주임님.”
부녀회장이 손을 흔들었다.
“오셨어요?”
“이거 신청자 명단.”
회의실로 모시자 부녀회장이 보란 듯이 종이를 꺼내놓았다.
“우왓.”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짧은 시간인 데도 무려 260명의 신청을 받아온 것이다.
“내가 부녀회장들 좀 쪼았어. 우리 오 주임 꼴찌에서 구제 좀 해보자고.”
“고맙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만 눌러앉았던 시간이 길잖아? 어르신들도 엉덩이가 들썩거리던 참이었나봐.”
“예...”
“아직 끝난 거 아니야. 계속 독려하고 홍보하는 중이니까 더 늘어날 거야.”
“이 은혜를 어떻게...”
“은혜랄 게 뭐 있나? 그리고 이 쪽은 참가자들에게 간식거리 기부할 김 여사.”
부녀회장이 동행자를 소개했다.
“간식거리요?”
경도가 물었다.
“우리나라 여행이 먹자판 아니야? 온천도 좋고 가수도 좋지만 배가 호강을 해야지. 우리 김 여사가 능력이 좀 되거든. 내가 반강제로 우려냈어. 한과하고 한방차로 사람 숫자대로 쏘실 거야.”
“고맙습니다.”
경도가 인사를 챙겼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좋은 마음으로 임하니 실타래가 풀려가는 게 보였다. 온천여행은 시작이 중요했다. 입소문이 나려면 다녀온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아야한다. 그렇기에 찬조물품 기탁도 섭외하려 했던 경도. 이렇게 이어지니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는데...”
폭주하던 부녀회장이 슬쩍 경도 눈치를 본다. 직감으로 알았다. 관상 말고 나올 게 없었다.
“우리 김 여사가 팔자 좀 고치려고 하거든.
“안 회장.”
“가만 좀 있어봐. 이 나이에 뭐가 부끄럽다고... 우리 김 여사가 이래 뵈도 아직 처녀예요. 워낙 남자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임자 만났지 뭐예요? 너무 자상한 사람이라서 마음이 끌리는 모양이에요.”
부녀회장의 입이 쉴 새 없이 달려간다.
“아유, 그만 좀 해. 나는 그냥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말동무나 할까 싶어 그런다니까.”
팔자라는 말에 김 여사는 얼굴까지 붉혔다.
“일단 한 번 들어보라니까. 우리 오 주임이 아주 족집게야, 족집게.”
“그래도...”
“사진 가져왔지? 보여줘 봐.”“이러려고 온 건 아닌데...”
거절하는 말투와 달리 김 여사의 손은 가방 속으로 제대로 들어갔다.
“여기...”
남자 사진이 나왔다.
“옛날 어른들 말이 털 많은 남자는 호인이라길래... 그리고 이 나이에 남자 사귀자니 하도 속 다른 사람이 많아서요. 숨겨놓은 여자가 있을 수도 있고...”
말투로 보아 김 여사는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
남자 사진 보기 무섭게 경도 눈빛이 굳어버렸다. 남자는 정말 털이 많았다. 눈썹도 숯덩이를 떼어붙인 양 검었다.
보통은 다다익선이다. 그렇다면 눈썹과 털도 넘치도록 무성하고 많은 게 좋은 걸까?
관상에서 최고로 꼽는 눈썹은 궁미였다. 눈을 감싸듯 부드럽고 둥근 형태로 수려하게 뻗은 형상이다.
이런 눈썹은 예술가들에게 많은데 섬세하고 열정적이다. 배우자로 맞으면 평생 연예하듯 자상하게 애정해준다. 입술 끝까지 위로 향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눈썹이 시커먼 사람이 털까지 무성하면 독재 스타일이다. 권위를 앞세우니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것은 나쁘지 않았다. 눈과 눈썹 사이가 좁은 데다 살이 얇으니 결혼이 늦은 건 당연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찬조품이라는 착한 복채를 상납한 김 여사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기대감이 가득한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격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꿈 깨세요.
사실대로 말할까?
-좋네요.
거짓말로 때워버릴까?
고민하는 눈에 김 여사의 얼굴이 들어왔다. 거기서 경도의 고민이 풀렸다.
“이분은 초혼 맞습니다. 관상으로는 두 분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경도가 상괘를 던졌다.
“진짜요?”
부녀회장이 먼저 반응한다.
“예.”
“아유, 잘 됐다.”
부녀회장이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주차장으로 나와 두 여자를 보내고 숨을 돌린다. 찬조물품에 눈이 멀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답은 김 여사의 관상에 있었다. 이제와 천생연분이 되려는 건지 남자는 수(水)형이고 김 여사는 목(木)형이었다. 둘은 상생관계이니 남자가 김 여사에게 도움이 되는 상이었다.
부녀회에서만 260명.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에 들어온 청신호였다. 이장들까지 체크하자 300명을 훌쩍 넘었다. 그 길로 출장을 올렸다. 여행사에 들러 추진상황을 독촉할 생각이었다. 물론 점검할 게 그것만은 아니었다.
여행사 앞이 시청이었다. 시청 안에는 이 과장이 찍어둔 3인방이 있다. 경도의 진짜 노림수는 그들이었다.
< 살괘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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