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맥 좀 만들려고요-2 >
일요일 낮, 형을 만나 식사를 했다. 황 할아버지 사건 이후로 처음이었다. 경도 형 경규는 1인 출판사 대표다. 벌써 몇 년 째 고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직업을 바꾸지 않는다. 그 소원은 흥행으로 베스트셀러 대박을 내는 게 아니라 작품성으로 오래 기억될 종이책을 내는 것이다.
“센터 일은 괜찮고?”
탕수육에 소스를 들이부으며 묻는다.
<부먹이냐, 찍먹이냐?>
어릴 때 형과 종종 다투던 주제였다. 형은 부먹파였고 경도는 찍먹파였다. 하지만 형은 닥치고 소스를 부어버렸다. 때로는 소스가 묻지 않은 일부를 구출하느라 피똥을 싼 적도 있었다.
오늘만은 탓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이틀이나 경도 간호를 해준 까닭이었다.
서른 여섯의 형은 아직 여자가 없었다. 모태 솔로 교주를 믿는 건 아니었고 첫사랑에게 질린 탓이었다. 형은 중3 때 여친이 있었다. 엄마만 몰랐다. 그 여친은 고2 때 형 친구와 붙어버렸다. 일찌감치 좌절을 맛본 형은 여자보다 책에 빠져 살았다. 출판사에 꽂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왜 묻는데?”
소스가 흘러내리는 한 점을 집어들며 태연하게 물었다.
“그냥...”
“솔직히 말해. 형 얼굴에 다 쓰여 있으니까.”
“관상 공부하냐?”
형이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거기 싸목도감과 함께 여러 관상책들이 펼쳐져 있었다. 며칠 동안 관상책을 주문해 묻혀 산 경도였다.
“재미로.”
“그럴 시간에 케미 좀 신경 써라. 너 공직 왕따지?”
“왜?”
“그때 병원 분위기 영 아니라서...”
“봤어?”
“너네 직장 사람들 나가는 거 봤다. 뒷담화 죽이더라.”
“에이, 그게 언젯적 얘긴데...”
“얼마 안 됐거든?”
“아몰랑. 그 얘기하러 온 거야?”
“신간 나왔다.”
형이 책 한 권을 꺼내놓았다. 요즘 뜨는 웹툰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룬 내용이었다.
“대박 날 거 같지 않냐?”
“언제는 작품성이라며?”
“이제 작품성 앤드 흥행이다.”
“대박이네.”
“진짜?”
“형 마인드 체인지 말이야.”
“짜식이...”
“고개나 들어봐. 내가 관상 좀 봐줄게.”
“어디서 같잖은 책 몇 줄 읽은 걸로 형을 후리려고.”
“엊그제 기부했지?”
“응?”
때리는 시늉을 하던 형이 동작을 멈췄다.
“몇 푼 수금되니까 다 털어준 모양이네?”
“넘겨짚기?”
“아니거든.”
“운 좋게 대량납품 건이 하나 성사됐다. 어차피 수익금의 1%를 다운증후군 재단에 기부하기로 한 책이었고.”
“문제는 그보다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지. 가끔은 눈 감아도 될 일을 말이야.”
“책하고 약속한 건데 지켜야지.”
“그러니까 은행 빚만 늘어나지.”
“됐거든.”
“다음 책은 언제 나와?”
“지금 편집 시작했으니까 두 달 후?”
“부탁 하나 해도 돼?”
“썰부터 풀어봐라. 뭔지는 알아야지.”
“그 책 네 달 후에 출간해.”
“이유는?”
“그때가 우리 시 인사 시즌이거든. 뇌물은 돌리면 걸리지만 책은 괜찮아. 형이 만든 거라고 하면서 쫙 돌리면 나 윗분드에게 눈도장 좀 찍을 수 있을 거야.”
“진짜냐?”
“맹세코.”
“그럼 접수한다. 내 동생 승진하겠다는데 그거 못 맞춰줄 이유 없지.”
“MOU 작성할까?”
“됐고, 그거 부탁하려고 부먹 만들 때 조용했구나?”
“으음, 편집에 마케팅까지 혼자 쳐내더니 눈치 고렙인데?”
경도가 웃어넘겼다.
부탁을 빙자한 건 관상 때문이었다. 똑 같은 형 얼굴이건만 관상으로 뜯어보니 완전 다르게 보였다. 눈이 크고 입도 컸다. 코 역시 마늘 모양의 산비인데다 콧구멍도 컸다. 이런 사람은 외길을 간다. 시작은 초라하나 끝이 창대하다. 혈연에 대한 집착도 크다. 그래서 경도와 어머니에게 살가웠던 것이다.
다행인 건 큰 눈이지만 고양이처럼 동그란 형태는 아니라는 거였다. 동그란 눈은 의지박약이다. 속된 말로 작심삼일이니 일을 벌이기만 하고 때려치울 상이다.
“낮술 마셨어?”
“아니. 코로나 때 안 하던 거 몰아서 하는지 음주운전 단속에 때와 장소가 없다는 거 모르냐?”
형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대박.’
경도 혼자 반색을 했다. 음주를 물은 건 미간에 맺힌 발그레한 서광 때문이었다. 얼굴색 리딩은 집중에 집중이 필요하니 다른 요인을 체크한 것이다.
긍정의 등불이 켜진 곳은 서른 여섯 살의 운을 보는 콧대 옆 눈꺼풀이다. 이 부분의 명칭은 태음이다. 서광이 그곳까지 번지고 있으니 어려운 시작이 풀릴 징조다. 올해부터 금전운이 조금씩 따를 것 같았다.
형은 사주팔자니 관상 같은 걸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승진’을 팔아 날짜를 맞춰준 것이다.
“대신 그 책 대박나면 나 때문인 줄 알아.”
형은 짐작도 못할 으름장을 풀어놓았다.
“짜식, 너네 시에 돌리면 시에서 지정 도서로 구매해서 한 권씩 돌리기라도 한다냐?”
“그럴 지도 모르지.”
“야, 아직 9급 주제에... 그런 말은 과장 쯤 된 다음에 해라, 응?”
형의 손바닥이 결국 스파이크를 날렸다.
“언제 엄마한테 가면 연락해라. 나도 시간 맞춰볼게.”
탕수육을 비운 형이 일어섰다.
서비스로 딸려온 군만두는 그냥 남았다. 간장을 묻히지 않고 한 입을 물었다. 그런 다음 싸목도감에 그려진 유년운기부위도를 바라보았다. 붓으로 그려진 남자 얼굴이 보인다. 처음에는 그냥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이 얼굴이 가장 이상적인 관상이라는 거.
얼굴.
형태를 가지고 운명을 읽어내는 일은 블랙박스 분속보다 어렵다. 제대로 뜯어보지 않으면 까딱 실수를 해버린다. 얼굴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점 하나, 굴곡 하나, 잔주름 하나까지. 각 포인트에 맺힌 색은 더욱 어렵다. 유년운기부위의 색은 더더욱.
황 할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마스터했을까?
촤르르.
한 줌 쌀을 흰 종이 위에 부어놓았다. 할아버지의 유품인 쌀알이었다. 조심했건만 몇 알이 접시 밖으로 튀었다. 할아버지는 이 쌀로 뭘 한 걸까? 생식을 한 걸까? 아니면 관상의 시조들에게 젯밥으로 올렸던 걸까?
‘버려야겠지?’
황 할아버지의 것이라고 뭐든 간직할 수는 없었다.
‘쌀이 음식물이야 쓰레기야?’
밥이 아니니 살짝 혼동이 되었다. 단단하니까 음식물쓰레기에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여자들은 모르겠지만 혼자 사는 남자에게 음식물쓰레기는 골칫덩이다. 어디선가 향긋(?)한 향이 난다싶으면 음식물쓰레기다. 그걸 처리하려면 방독면이 필요할 정도다.
더러는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기도 한다. 변기가 막혀 개고생을 하기도 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하지 하면서도 반복하는 게 혼남들의 일상이었다.
쓰레기봉투를 찾고 보니 햇살이 쌀알 위에 쏟아지고 있었다.
“......!”
경도 머리에도 햇살이 들어왔다. 햇살을 받을 쌀알들. 투명도가 다르게 보였다.
‘이것...’
그제야 쌀알의 용도를 알았다. 여러 종류의 쌀알은 색깔은 저마다 다른 투명도를 나타냈으니 같은 종류끼리도 달랐고 다른 종류는 더욱 달랐다. 그 미세함... 얼굴색의 차이와 같았다.
햇빛 위에서 보니 쌀알 역시 얼굴이 있고 격이 있었다. 저마다의 색감과 형태가 그것이었다. 완전히 투명한 것, 조금 투명한 것, 탁한 것, 조금 탁한 것, 동그란 것, 길쭉한 것, 매끈한 것, 거친 것...
‘위상, 후상, 청상, 고상(孤相), 박상, 고상(古相), 악상, 속상, 부상, 귀상, 빈천상, 고고상, 수상, 요상...’
자신도 몰래 송대의 관상대가 진희이의 신상전편에 맞춰 14가지로 맞춰보니...
“......!”
아귀가 맞았다. 경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쌀의 용도를 확실하게 알았다. 할아버지는 이 쌀로 14상의 얼굴색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쌀알과 놀았다. 진리와 노는 기분이었다. 햇살 속에 황 할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고맙습니다.
신기루 같은 그 모습에 대고 아이처럼 속삭였다.
**
월요일 아침, 일대 전쟁이 시작되었다. 문화누리카드사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서전은 신규발급대상자와 카드분실자들이었다. 문자와 전화 안내에 이어 이장들의 지원이 이루어지자 민원실이 미어터지도록 몰려들었다. 경도를 좋아하는 서갑분 할머니도 보였다.
“내가 일등이야.”
여든 할머니가 틀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콧대 중앙에 세로 주름이 잡혔다. 과부상이다. 주름이 콧망울 위의 준두까지 뻗었으니 내년에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1등이시니까 선물 드릴 게요.”
엄 팀장이 지원해준 박카스 박스를 열어 한 병을 까주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까줘야 마신다. 그렇지 않으면 아끼느라 가방에 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을 보니 입금액을 전혀 쓰지 않았다. 이 금액은 유감스럽게도 세이브가 되지 않는다. 기한 내에 쓰지 않으면 ‘0’이 되는 것이다.
“이거 올해 안에 안 쓰시면 없어져요.”
“아유, 그런 게 어디 있어. 계속 더해줘야지.”
“그게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꼭 쓰세요. 그리고 비밀번호 적어주세요.”
“그거 우리 집 전화번호로 해줘.”
많은 어르신들이 이런 식으로 비번을 만든다. 게다가...
“카드에다 적어줘.”
아찔한 요청까지 나온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알게 되잖아요?”
“혼자 사는데 누가 알아? 괜찮아.”
“......”
옵션은 더욱 황당하게 이어진다.
“크게 적어줘. 눈이 침침해서 안 보여.”
어르신들에게는 흔한 경우다. 이분들, 심지어는 연금수령 통장도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네임펜으로 번호를 적어주자 같이 온 사람들에게 흔들어대며 퇴장한다.
“내가 1등이야.”
“푸헐, 비번 다 보이겠네.”
지원하던 민지가 울상을 지었다.
“아유, 오늘도 인물이 훤하네?”
서갑분 할머니 차례가 되었다. 아랫 지방에서 시집왔다는 할머니는 고구마 말림 빠는 걸 좋아했다. 올 때마다 한 줌 씩 꺼내놓다 보니 친해졌다. 어쩌면 삭막한 맞복팀에서 하나의 위로였던 할머니였다.
그러나 고달픈 노년이다. 관상이나 한 번 봐드릴까 싶었지만 밀린 줄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꺼내준 고구마 말림 하나를 물었다. 맛? 소가죽 삘이다. 그래도 빨다보면 대충 녹는다.
다음은 아이들과 함께 온 부부차례였다. 처음으로 문화누리카드 대상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애들도 다 따로 만들어야하나요?”
아빠가 묻는다.
“원하시면 가족끼리 통합카드로 만들 수 있어요.”
“그럼 이 사람 앞으로 만들어주세요.”
아내가 남편을 앞세운다. 남편을 보니 팔자주름으로 불리는 법령이 너무 짧고 희미하다. 목까지 긴 편이니 돈이 새나가는 상이다.
“어머니 앞으로 하는 게 더 나을 텐데요? 남편 분들은 바쁘시니...”
“그럴까?”
남편이 동의한다.
“그럼 합산신청서 좀 써주세요.”
필요한 서류를 받고 아내 카드로 충전금액을 몰아주었다. 4×9=36만원이니 넉넉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요긴한 돈이 될 수 있었다.
중간에 눈에 띈 건 외국인 신부였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했다. 그녀가 남편 주민등록증까지 두 개를 내밀었다. 그 팔뚝에 멍이 보였다. 얼굴과 목도 무사하지 못하다. 눈치를 차린 여자가 눈빛을 피했다.
‘매매혼인가?’
나쁜 상상이 떠올랐다. K시만 해도 외노자들이 많았다. 외국 신부들도 꽤 되었다. 일부는 나이 차이가 심하다. 일부 남편들은 주취폭력까지 있다. 남편 나이를 보니 29살이다. 여자와 3살 차이니 매매혼은 아닌 것 같았다.
“......!”
남편 사진에서 답을 찾았다. 눈동자에 붉은 기색이 서렸다. 흰자위에도 핏발이 섰다. 범죄자 아니면 패륜아의 관상이다.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하는 상에 속했다.
“남편분은요?”
경도가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부부라고 해도 위임장을 가져와야한다.
“한국말 못해요?”
“쪼끔...”
“Can you speak English?”
여자는 또 고개를 저을 뿐이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라오...”
말은 조금 알아듣는다. 라오는 라오스를 뜻하는 말이었다.
“남편분 전화번호요, 핸드폰 넘버?”
여자가 핸드폰을 열어 남편번호를 보여준다. 거기로 전화를 걸었다.
“뭐야?”
위압적인 동시에 꼬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포읍 행정민원센터인데요, 아내 되시는 분이 문화누리카드를 신청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씨발, 뭐? 니네가 오라고 문자 쳐보냈잖아?”
다짜고짜 욕설부터 나온다. 매너는 찜 쪄먹은 지 오래된 인간 같았다.
“부부지만 같이 안 오시면 위임장이 필요합니다.”
“아, 씨발, 민쯩 보냈잖아? 니들 꼴리는 대로 해. 돈 몇 푼이나 준다고...”
남편이 전화를 끊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안하무인. 여자는 난처해 어쩔 줄을 모른다.
별 수 없이 위임장을 패스하는 범법(?)을 저질렀다. 이조차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감사에 걸린다. 행정의 한계다. 공직은 인간보다 규정이 우선이었다.
‘까짓 거 자술서 한 장 쓰지 뭐.’
여자가 얻어맞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잠깐만요.”
카드를 받아들고 가려는 여자를 잠시 잡았다. 그런 다음 외국인복지센터에 전화해 라오스어가 가능한 상담원을 찾았다. 상담원에게 부탁을 넣었다.
“남편분이 술 많이 마셔 건강이 안 좋은 것 같으니 그 앞으로 작은 거라도 보험 하나 들어 놓으시라네요.”
상담원의 전화를 받은 여자가 경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보험을 권한 건 여자의 관상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꼬리 옆에 손톱 크기의 거무튀튀한 반점이 있었다. 이런 사람의 짝은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게 된다. 이 여자에게는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일까? 그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해서 부탁한 것이다.
폭풍이 몰려가자 이 과장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 약속 있나?”
드륵.
문을 열자 이 과장이 보였다. 허름한 설렁탕집의 주인 방이었다. 원래는 주인이 자는 곳이지만 낮에는 상을 펴고 단골손님을 받는다. 일부 ‘라떼’파 노장 공무원들은 여기서 고스톱을 치고도 한다.
“앉게.”
이 과장이 자리를 권했다. 그가 사진을 몇 장 꺼내놓았다. 경도가 부탁한 그 사진들이었다.
바스락.
어찌나 조용한지 사진 집는 소리까지 들렸다. 사진은 모두 세 장, 과거에 홈페이지 등재용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여기서 보고 돌려주게나.”
이 과장이 못을 박았다. 보안이 필요한 사안이니 당연한 지시였다.
꿀꺽!
긴장과 함께 경도 목젖이 출렁거렸다. 누구일까? 이창교 과장에게 치명적인 살괘의 화살을 날린 사람은.
< 인맥 좀 만들려고요-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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