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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맥 좀 만들려고요-1 > (27/245)

< 인맥 좀 만들려고요-1 >

“살괘?”

이 과장의 눈이 발작하듯 튀었다.

“예.”

“무슨 뜻인가?”

“눈과 눈 사이, 콧날이 시작되는 부분을 인당이라고 합니다. 광대뼈 위치는 보통 관골이라고 하죠. 두 부분에 오랜 적색 기운이 남았으니 누군가의 모략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모략이나 헐뜯는 거 한두 번 보나?”

“일상적인 모략이 아니고 살괘이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관상에서 살괘는 살인의 의지가 담겼음을 뜻합니다.”

“살괘라...”

이 과장의 명궁이 더 어두워진다. 착잡함 때문이다. 한때 최고의 승진가도를 달렸던 이창교였다. 관운에 더불어 실력까지 겸비하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봄날은 끝났다. 주무 팀장의 느닷없는 투신자살로 비리의 몸통으로까지 오해받게 된 이 과장이었다. 지난 날을 돌아보니 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예전의 불미스러움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네.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과장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경도가 바로 반응했다.

“오 주임.”

“죄송하지만...”

경도가 사진 몇 장을 꺼내놓았다. 엄 팀장이 구해온 문제의 투신자살 직원이었다. 나름 마당발에 속하는 엄 팀장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10여 장에 가까운 사진을 구해온 것이다

.

“가겠네.”

사진을 본 이 과장이 일어섰다.

“한 마디만 듣고 가십시오.”

“오 주임.”

“이 분, 자의로 죽은 게 아닙니다.”

“......?”

옷깃을 여미던 이 과장이 눈빛을 세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관상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오 주임.”

“이 사진이 투신 직전의 것들이라고 하더군요. 하나는 사망 3주 전,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여직원과 교육장에서 강사와 함께 찍었고 또 하나는 그로부터 3일 후에 심사위원회를 개최하면서 참석한 위원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날짜는 불과 3일 차이지만 두 사진에는 몹시 다른 관상이 엿보입니다.”

“......?”

“투신한 직원은 단명할 상이 아닙니다. 코도 길고 인중도 길거든요. 이 사람이 이 나이에 단명하려면 코와 인중이 더 짧아야합니다. 게다가 이 마지막 사진, 얼굴을 보십시오. 수려하지 않습니까? 만약 이로부터 수 주 이내에 죽을 명이었다면 이때쯤 벌써 이마의 일각을 시작으로 콧방울과 입술까지 청색 기운이 뻗쳐내려야합니다. 하지만 말쑥합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직원은 자의로 투신한 게 아닙니다.”

“무슨 뜻인가?”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그 직원이 투신자살하면서 가장 곤란해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과장님이시죠?”

“......?”

“반대로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 주임.”

“저도 멘붕 직전이었습니다. 우리 K시가 중앙의 특수 이권부서도 아닌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

“......”

“하지만 팩트는 팩트입니다. 정경주 조경주사, 이 분은 타의에 의한 투신자살입니다.”

“그래서? 그게 사실인들 이제 와서 어쩐단 말인가? 그 주검은 투신으로 종결되고 나는 이 모양이 된 것을...”

이 과장의 날숨은 길었다.

“명예회복 하셔야죠.”

“오 주임.”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자네가? 관상으로?”

“예, 관상으로.”

확답하는 경도의 목소리는 강철과도 같았다.

“허얼. 이 사람이 정말...”

“그래서 처음부터 말씀드린 겁니다. 저를 전적으로 믿어야한다고.”

“자네를 믿네. 하지만 이 건은...”

“저를 믿으면 제 관상실력도 믿으셔야합니다. 제 관상은 우연이나 요행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 번 보시지 않았습니까?”

“좋아, 믿으면? 믿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아까 말씀드렸죠. 그 일로 누가 이득을 보았을까? 그 사람들을 지목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 투신을 강제하거나 강요한 사람이 있다면 관상에 살성이 남아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오 주임 말은 지금 관상을 증거로 그 일을 심판하자는 건가? 이 사람이 제 직원을 투신하게 한 범인입니다. 오경도의 관상에 그렇게 나온다고 합니다?”

“제 말이 맞다면 살인 쪽입니다. 적어도 살인교사 내지는 방조죄는 성립되겠죠. 경찰의 재수사도 가능해 질 수 있습니다. 명예는 회복하셔야죠?”

“좋아, 다 좋다고 치세. 그런데 자네는 왜 나처럼 날개 꺾인 인간의 명예를 챙겨주려는 건가? 솔직히 자네 입장이면 내가 잘 되는 것도 원치 않을 텐데... 그동안 자네에게 차가웠던 나 아닌가?”

“솔직히 과장님은 우리 과원 거의 모두에게 차가웠죠.”

“그랬나?”

“잘 물으셨습니다. 저 솔직히 말씀드리면 과장님 명예회복 시켜드리고 개인지도 좀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개인지도? 뭘?”

“행정능력 말입니다. 선배님들이 그러더군요. 9급 때 좋은 선배 만나서 행정을 제대로 배우는 것도 복이라고. 그렇지 않고 얼렁뚱땅 7급 달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것도 관록이라고 요령만 좇게 된다고 말입니다.”

“내 명예를 회복시켜줄 테니 행정능력을 전수해달라?”

“예.”

“화하핫.”

경도 말을 들은 이 과장이 파안대소를 했다.

“더불어 그런 능력자에게 인정도 받고 싶었고요.”

“오 주임, 제대로 보게. 나 허접이야. 이제 읍면동으로 돌다가 퇴임 2-3년 전에 명예퇴직이나 종용 받을.”

“오늘 제 제의를 받아들이시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내가?”

“과장님의 명궁... 판독이 아리송한 운명색이 서려있습니다. 그게 걷히면 다시 관운이 열리는 거고 구름이 더 끼면 명예퇴직을 맞을 겁니다.”

“......”

“......”

“관상천재의 말이니 말이라도 솔깃하군.”

한참을 침묵한 이 과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거의 빈 잔을 집어들더니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마셨다. 그런 다음에야 입이 열렸다.

“좋아. 이제 와서 나한테 명예가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의 관상이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할지 궁금해지기는 하는군. 바람은 그뿐이니 몇 명 짚어주기는 하겠네. 하지만 경찰수사는 턱도 없을 일이니 확인까지만.”

이 과장이 선을 그었다.

“......”

“행정은 언제든 알려주겠네. 그런 의욕 가진 신규 본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거든.”

이 과장이 일어섰다.

대리운전으로 멀어지는 과장의 차를 보며 경도가 생각에 잠겼다.

이 과장의 반응은 상괘대로였다.

이 과장은 선비상이다. 이목구비는 반듯하고 온순한 얼굴, 눈빛도 나쁘지 않은 데다 코는 붕어에 인중은 대나무 형태다. 그렇기에 인성도 좋고 충직한 편에 속한다. 귀 역시 풍성하니 마음에 찜한 부하는 어미 닭처럼 보살피는 스타일이다. 

투신으로 인한 좌절은 인중 때문이었다. 대나무형태까지는 좋았는데 조금 짧았다. 부하의 배신을 겪을 상이다. 어쩌면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일 수도 있었다.

센터에서는 좌절감 때문에 본성이 드러나지 않지만 천성이 어디 갈 리 없다. 종합적으로 볼 때 경도의 후원자로도 제격인 사람이었다.

다만 성품이 어질어 피 튀기는 싸움을 꺼려한다. 얼굴에서 아쉬운 점은 눈이 물결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 하지만 지자체에서 서기관 정도는 무난하고도 남을 상이었다.

일단 이 과장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경찰수사에 대한 건 따로 생각이 있었다. 살인사건의 수사가 당사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행정직이지만 그 정도 상식은 경도에게도 있었다.

경도의 우려는 오히려 투신자의 사진에 있었다. 이 과장에게 말하지 못한 상괘가 있는 것이다. 그 상괘는 그저 개인적 일탈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

부녀회장 총회도 마감이 되었다. 현 회장 안순도의 유임이었다. 당연히 경도의 인맥확장 작업(?)이 들어갔으니 축하를 빙자한 면담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일단은 꽃과 커피부터 안겼다. 커피는 인희가 특별한 제법으로 만든 야심작이었다.

“맛 괜찮습니까?”

경도가 물었다.

“독특하네?”

안순도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을 위해서 특별히 조제한 거거든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겁니다.”

이제는 이런 넉살도 가능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오 주임님이 관상을 잘 본다면서요?”

먼저 관심을 보인 건 부녀회장이었다. 일이 수월하게 되었다.

<관상>

너무나 착한 스킬이다. 전 같으면 ‘뭐 애는 써볼게요.’ 하며 형식적으로 받아들일 부녀회장이었다. 그들 역시 9급 정도는 아래로 보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경도가 장단을 맞춰주었다.

“에이, 이 안선주를 어떻게 보고... 내가 집에 앉아서도 센터 다 들여다보고 있거든요.”

“예...”

“실은 내가 이번에 작은 사업 하나 해보려고 하는데 남편이 대놓고 반대를 해요. 사업 아무나 하냐고... 나 사업할 체질 아닌가요?”

안선주가 자세를 바로 잡았다.

<하세요.>

하마터면 바로 상괘를 줄 뻔 했다. 안선주의 관상이 그랬다. 그녀를 보면 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관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여자는 집안 일로 만족하기 어렵다. 나아가 이마가 넓으니 남편 위에 설수 있다. 눈까지 가늘고 긴 상이라 사업에 제격이다. 그러나 코의 금갑은 그리 크지 않았으니 푼돈이나 만질 상이었다.

“사부(師父)님께서 반대하는 게 어제 오늘도 아닌데 새삼스러우시군요.”

가벼운 상괘로 기선부터 잡아나갔다.

“어머.”

안선주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꼬리를 물고 공세를 펼쳐간다. 안선주의 유년운기부위는 이미 리딩이 끝난 상태였다.

“눈꺼풀 위의 중양 자리에 활기가 남아있으니 서른 일곱, 콧날의 수상 역시 그러니 마흔 다섯, 이번까지 합치면 세 번째 궁리로군요. 한국인은 삼세 번이라 하니 이번 기회 놓치면 사업은 어렵겠습니다. 시도하세요.”

“어머멋!”

안선주가 자지러졌다. 서른 일곱과 마흔 다섯 때문이었다. 경도 말대로 사업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시도하지 못했던 안선주였다.

“그럼 재복은 어때요? 대박나겠어요?”

“어디 보자... 이 코가 왜 이렇게 특별한 모양이냐... 어릴 때 고생하며 자란 낙을 안겨줄 모양인데...”

경도는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부녀회장에게 투자했다. 이제는 요령까지 붙었으니 상을 보기 무섭게 상괘를 던지던 것에서 진보된 방법이었다.

“복을 가득 채운 복주머니 복코상이군요. 입술까지 두툼하니 한 번 들어온 재물은 쉽게 나가지 않습니다. 다만 금갑의 크기가 작으니 많이 벌게 되는 달에는 음덕 좀 베푸시고 큰 욕심내지 않으면 아쉬울 것 없이 살겠습니다.”

과장과 긍정도 살짝 버무린다.

“어머어머...”

“그리고 눈동자의 흰자위가 다소 흐리니 폐가 좋지 않군요. 이 점만 유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나!”

상괘가 나오자 부녀회장이 손뼉을 치며 일어섰다.

“최고, 최고.”

엄지를 세워 폭력적(?)으로 들이민다.

“회장님...”

“어머, 미안해요. 내가 너무 놀라서...”

경도가 몸을 사리니 부녀회장이 손을 거두었다.

“저도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뭐든지, 말만 하세요.”

분위기를 몰아치니 안선주가 콜을 받았다.

“실은...”

경도의 요청이 나왔다.

“알았어요. 내가 60세 이상 어르신들 다 책임질 게요. 200명이 뭐예요? 500명도 문제없어요. 대신 가수는 장윤정?”

“회장님, 장윤정 씨는...”

“농담이에요. 장수호하고 윤은성이면 좋겠네요. A급은 아니지만 가창력에 팬서비스가 좋아서 할줌마하고 할머니들 사이에 인기 최고거든요.”

“그럼 잘 부탁합니다.”

부녀회장을 보내고 나니 퇴근 시간이었다. 업무가 밀렸으니 퇴근 대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오늘 재택근무는 엄 팀장이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라떼’ 갑질이 떨어진다.

-나 때는 말이야, 선배들 일직, 숙직 다 서줬거든.

술자리에서 골백번도 더 들은 발암의 근원, 라떼의 전설이었다.

“3만원 너 줄 테니까 내 재택 니가 해라.”

엄 팀장의 마인드는 그랬다.

공무원은 재택근무라는 걸 한다. 원래는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들도 당직을 섰다. 그 부담을 덜기 위해 밤 9시가 되면 전화를 핸드폰에 연결하고 퇴근을 한다. 다음 날 아침,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것으로 당직근무를 없앴으니 이게 바로 재택근무다. 재택근무 수당은 정액으로 3만원이다.

업무가 밀려 퇴근이 불가능한 날, 어차피 남아야하니 재택근무를 대신 서줄 수 있었다. 그러나 엄 팀장만은 예외였다. 자기 일을 떠맡기면서도 인심 쓰듯 하는 개싸가지 때문이었다. 그런 엄 팀장이 이제는 군소리 없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다.

경도의 일은 많았다. 문화누리카드 때문이다. 포기했을 때는 할 일이 보이지 않더니 제대로 하려고 하니 온통 일 투성이였다.

16명 이장에게 일일이 부탁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장들에게 전화 거는 것조차 부담이던 경도는 간 곳이 없다. 관상 하나가 경도를 이렇게 바꿔놓았다.

< 인맥 좀 만들려고요-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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