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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이제 찌질 말단이 아니거든요-4 > (25/245)

< 제가 이제 찌질 말단이 아니거든요-4 >

“그럼 이건 뭡니까?”

시작부터 공세였다. 거두절미하고 두 남녀의 간문을 가리킨 것이다. 둘의 간문은 거의 비슷하게 어두웠다.

“이게 뭐?”

노순애가 경도의 손을 뿌리쳤다.

“두 분이 애정을 나누신 증거.”

“애, 애정?”

“요기가 간문이라는 곳인데 찰색이 어두워진 데다 눈 아래의 와잠까지 푸석하고 거무튀튀합니다. 애정행각이 지나쳤다는 증거죠. 남편 분의 입 주름 또한 아래로 쳐졌으니 정력 고갈 현상. 시간으로 치면 2시간 전 쯤? 부부가 아니라면 어떻게 같은 집에서 나오고 같은 시각에 사랑을 나눈 표식이 남아있을까요?”

경도가 노순애의 정곡을 찔렀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무슨 성관계를 했다고?”

노순애가 펄쩍 뛰었다. 그러나 그 말 속에 이미 ‘인정’의 단서가 있었다. 낯선 남자와는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이 남자 혹은 저 사람이라고 써야 옳았다. 기선을 제압한 경도, 고삐를 바짝 당겼다.

“성관계만 한 건 아니지. 당신은 남편에게 폭행까지 일삼았으니까.”

“폭행?”

“눈썹 보면 알아. 당신처럼 눈썹이 짧고 산만하면 성질이 지랄 맞고 무대뽀지. 거슬러난 것까지 있으니 손찌검도 예사일 테고.”

경도가 남자의 상의를 걷어올렸다. 남자의 옆구리와 등에 멍 자국들이 선명했다.

“남편 아니라니까?”

노순애가 발악을 했다.

“경찰 불러서 남편 신원조사 해드릴까?”

경도가 핸드폰을 뽑았다. 계 경위 번호를 누르고 스피커를 켜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포지구대 계치훈 경위입니다.”

“......!”

노순애가 찔끔하는 게 보였다.

“남편 맞죠?”

경도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아, 씨...”

노순애가 머리를 쥐어뜯는다. 

“아, 저 읍사무소 오경도 주임인데요. 죄송하지만 여기 오셔서 신원조회 좀...”

경도가 통화를 이어가자 노순애의 악다구니가 남자에게 쏟아냈다.

“에이, 이 븅신아. 그러게 피하라고 전화했잖아?”

노순애의 가방이 남자를 후려친다.

“에이, 씨... 그러게 그 놈의 푼돈 그만 받아먹으라고 했잖아?”

남자가 가방을 당기며 항변한다.

“지랄, 꽁돈을 왜 못 먹어. 이건 남들도 다 먹는 거라고.”“다 먹는데 왜 사람을 숨어라 마라야?”

“븅신아, 한 번만 눈 감으면 몇 십만원씩 생기는데 그걸 못해?”

노순애의 가방이 남자를 난타했다. 경도는 느긋하게 관전했다. 우석이 은밀하게 동영상을 찍고 있지만 그 또한 말리지 않았다.

“븅신...”

남자를 눌러버린 나순애가 경도를 향해 돌아섰다.

“뭘 봐? 가. 긴급복지인지 뭔지 안 받으면 되잖아?”

악다구니와 함께 끈 끊어진 가방을 집어던진다. 나순애는 아까부터 제대로 걷고 있다. 걷는 것뿐만 아니라 펄펄 뛰기까지 했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경도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니면? 아, 긴급복지 안 받는다잖아?”

“대신 내가 받아야겠거든요?”

“지금 장난해?”

“절대 아니죠. 남편이 버젓이 있는데 행방불명이라며 긴급복지 상습신청... 보아하니 뻥튀기 장사하시는 모양인데 그럼 개인사업자네. 결국 수년 간 6번이나 부정수급을 받은 거고?”

“뭐야?”

“내 말인즉 여섯 번 불법수급에 대한 지원금을 게워놓으라는 겁니다. 아울러 우리 센터 직원들에게 정식 사과.”

“뭐어?”

노순애의 눈알이 터질 듯 커졌다.

“아니면 경찰에 넘겨요?”

경도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넌지시 압박을 한다. 스피커에서는 아직도 계치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 주임님, 무슨 일입니까? 출동해 드려요?”

“......!”

“증거는 여기 있습니다. 이런 거 당신 전문이니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죠?”

경도가 우석을 가리켰다. 우석이 동영상을 돌리니 부부의 고함소리가 폭발처럼 튀어나왔다.

-에이, 이 븅신아. 그러게 잠깐 피하라고 전화했잖아?

-에이, 씨... 그러게 그 놈의 푼돈 그만 받아먹으라고 했잖아?

-지랄, 꽁돈을 왜 못 먹어. 한 번만 눈 감으면 몇 십만원이 생기는데?

“......”

노순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한 마디로 멘붕이다. 허구헌 날 녹음으로 공무원들 볶아먹었던 노순애였으니 명백한 증거가 무엇을 뜻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

노순애의 눈알이 바쁘게 굴러갔다.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다. 하지만 경도는 틈을 주지 않았다.

“경찰 부를까요? 아니면 부정수급비용 환불하실까요?”

“이, 이봐요.”

그제야 목소리의 각이 무너진다.

“어차피 준 돈이잖아요? 앞으로 센터 안 가면 될 거 아니에요?”

“아니죠. 노순애님 말대로 센터는 주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자주 오십시오. 저 또한 노순애님이 긴급복지나 무한돌봄 대상자에 해당되면 마땅히 신청을 받아줄 겁니다. 주민의 권리요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부정수급 비용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입니다.”

“이, 이봐요.”

“긴급복지에 무한돌봄, 그리고 공동모금회에 의한 생계지원, 의료지원 300만원에 문화누리카드 수혜금까지 합치면 약 천만 원에 육박하겠는데요?”

“천, 천만 원?”

“계산기 띄워드려요? 워낙 따지는 거 좋아하시는 분이니 디테일하게 짚고 넘어가야죠?”

“......?”

“선택하시죠? 제가 좀 바쁘거든요.”

“오, 오 주임...”

“선택!”

경도가 쐐기를 박았다.

“아이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 테니 한 번만 봐줘요.”

악바리 노순애가 무너졌다. 그러나 경도는 무너지지 않았다.

“경찰 OR 수급비 반환?”

“......”

“아무래도 경찰에 인계하는 게?”

경도가 다시 핸드폰을 잡았다.

“아, 이 여편네야. 돈 갚는다고 그래. 너 그 성질머리에 교도소 가면 하루도 못 살아.”

까진 팔뚝의 피를 닦던 남편이 소리쳤다. 두 사람, 사는 꼴은 이렇지만 부부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매를 맞고 살면서도 이혼만은 하지 않는 부부도 있는 것이다.

그제야 노순애의 항복이 나왔다.

“갚을 게요. 갚으면 되잖아요?”

“쓰세요.”

경도가 서류를 내밀었다. 미리 준비한 자인서였다. 노순애는 비실비실 자필 사인을 마쳤다.

“이제 갑시다.”

“어딜?”

“센터에 가서 사과하셔야죠.”

“사과? 무슨 사과?”

“아, 상세 매뉴얼로 알려드려요? 일단 읍에 가시면 하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우리 팀원에게 사과, 팀장님과 민원실장에게 사과, 그런 다음 2층에 올라가 과장님과 읍장님에게 사과. 마지막으로 시청과 도청, 복지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면 됩니다. 제가 보는 앞에서.”

그 말을 끝으로 관용차량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도 민원인이니 품위는 갖춰주는 경도였다.

“그러게 내가 작작 좀 하라고 그랬잖아?”

남자가 가슴을 친다.

“가서 사과드리고 와. 내가 봐도 당신이 너무 심했어.”

노순애보다는 백 배 나은 남편이다.

“......”

“어여.”

남편이 등을 민다. 주저주저하던 노순애가 결국 발을 뗐다. 경도 차량의 조수석에 몸을 실은 것이다.

‘나이쓰.’

지켜보던 우석이 주먹을 거머쥐었다. 머리카락이 쭈뼛하도록 짜릿한 광경이었다.

**

“......?”

민원실 직원들이 일동 일어섰다. 민지와 은빛, 현 주임과 엄 팀장이 먼저였다. 다음으로 민원실장과 직원들이 고개를 든다. 경도가 노순애를 앞세워 들어선 것이다. 아까와는 반대의 분위기였다. 언제나 기세등등하던 진상의 여왕 노순애의 맥이 풀려있었다. 

게다가 휠체어 행차도 아니었다. 낯선 상황에 모두가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순간,

“죄송합니다.”

노순애가 맞복팀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어머!”

맞복팀이 자지러졌다.

“죄송합니다.”

사과가 엄 팀장에게로 이어졌다.

“......?”

엄 팀장 역시 어안이 벙벙했다.

노순애 뒤에서 경도가 찡긋 윙크를 했다.

‘관상?’

엄 팀장이 눈치로 물었다.

예.

경도가 눈으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노순애의 사과는 민원실장에게로, 읍장 등에게로 차곡차곡 쌓였다. 그때마다 센터가 뒤집어졌다. 천지개벽도 이런 개벽이 없었다. 노순애가 반성하느니 정년퇴직하는 게 빠르겠다던 소원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오 주임?”

마지막으로 이 과장 차례였다. 황당하기로는 이 과장의 표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받은 부정 수혜도 모두 환급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렇죠?”

경도가 노순애에게 일침을 놓았다.

“예...”

노순애의 목소리는 한없이 기어들어갔다.

“이제 내려가시죠.”

경도가 복도를 가리켰다.

‘뭐야?’

문이 닫히자 이창교 과장이 일어섰다.

“어떻게 된 거예요?”

팀장들이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글쎄요.”

“오 주임이 부정수급 증거를 잡은 모양인데요?”

“그냥 잡은 게 아니라 단단히 잡았나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 악다구니가...?”

“저 여자 봤지? 걸어다니잖아? 휠체어 그거 우리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타고 다닌 거라니까.”

“아유, 아무튼 저는 속이 다 시원하네요. 저 여자만 뜨면 가슴이 다 답답했다니까요.”

팀장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간부실 문을 닫아주었다.

마지막은 전화였다. 시청 희망복지과에 전화를 걸어 노순애에게 건네주었다.

-사과하세요.

독촉은 눈빛으로 했다.

“여보세요...”

노순애의 목소리가 겨우 떨어졌다. 도청에 이어 복지부까지 통화가 끝났다. 매조지는 경도의 통화였다. 시청 환수팀에 연락을 취한 것이다.

“용포리 노순애님 건요, 부정수급 자인서 받았고요, 기 수령한 돈은 환급하시기로 하셨으니 처리 좀 부탁드립니다.”

이 통화를 끝으로 노순애에 대한 정리가 ‘완전히’ 끝났다.

“우석 씨, 이 민원 분 좀 현관까지 배웅해 드려.”

우석에게 지시를 내리는 경도는 한없이 정중했다. 민원실 공무원의 기본인 친절봉사에 충실하는 것이다.

“예, 주임님.”

우석이 다가와 입구를 가리켰다. 노순애는 천근만근의 다리를 이끌고 현관으로 걸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폭포처럼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 제가 이제 찌질 말단이 아니거든요-4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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