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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이제 찌질 말단이 아니거든요-3 > (24/245)

< 제가 이제 찌질 말단이 아니거든요-3 >

“공익 어디 있어?”

쌍도끼 눈의 그녀가 목청을 높였다.

“지금 업무 중입니다.”

“업무?”

“다리는 조금 불편하시다지만 팔은 괜찮지 않습니까? 혼자 미는 게 힘드시면 제가 입구까지 밀어드리겠습니다만.”

“필요 없어.”

나순애가 경도 팔을 후려쳤다. 돌아보니 창 안에 탐색자들이 많았다. 모두의 바람은 한 결 같았다. 나순애가 빨리 돌아가는 것. 오직 그것이었다.

민원실로 먼저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민지와 은빛, 현 주임의 시선이 경도에게 쏠린다. 엄 팀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순애가 센터에 들어섰다. 찬바람이 쌩쌩 몰아친다.

“이게 나라야? 가난한 사람은 휠체어 탈 권리도 없어? 엉?”

경도에게 다가오는 동안에도 그녀는 직원들 보란 듯이 짜증을 날린다.

“뭘 도와드릴까요?”

그녀가 도착하자 경도가 물었다.

“이 사람이 지금 누구 놀려? 병 주고 약주는 거야?”

“잠시 후에 현장확인이 예약되어 있거든요. 아니면 다음에 와주시겠어요?”

경도가 기선제압에 나섰다.

“......?”

나순애의 눈빛에 여러 계산이 스쳐갔다. 분위기가 다른 것이다. 전에는 자신이 출동하면 모두가 벌벌 기었다. 특히 경도가 그랬다. 그녀는 사회복지 전반을 꿰뚫고 있다. 

두어 번은 경도가 출장을 나가는 바람에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걸 못 참고 경도에게 전화해 빨리 돌아오라고 닦달까지 했던 나순애였다.

“가스비가 세 달치나 밀렸어요. 긴급구조자금 혜택 좀 주세요.”

가스를 끊겠다는 계고장이 떨어진다. 그 위로 다른 독촉장들이 쌓인다. 이놈의 레파토리는 변하지도 않는다. 

고의로 미납해 긴급구조 요건을 갖추는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긴급구조자금을 1회 지원할 수 있다. 부득이 1회 더 지원하려면 시청의 위원회를 개최해 심의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복잡하다. 그러니 추가 지원이 필요하면 무한돌봄 시스템을 연계해 6개월간 지원을 한다. 그래도 일시적인 곤란이 생계를 위협한다고 하면 사회공동기금을 연결한다. 긴급구조는 말 그대로 긴급한 사안에 대해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기 때문이었다.

기록에서 보이듯 나순애는 벌써 6년 째 루틴으로 긴급구조자금을 따먹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불법이다. 지금까지 묵인이 되고 있는 건 이 여자의 악명과 집요함 때문이었다. 위로 복지부는 물론 도청과 시청의 희망복지과 담당자들도 이 여자라면 혀를 내두른다. 그렇기에 묵시적인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경도 선에서 짜르면 팀장에게 으름장을 놓은 후에 과장과 읍장실을 돌며 일장 설교를 늘어놓고, 그래도 안 되면 시청과 복지부에 전화를 때릴 게 분명했다.

[노순애]

관리자 로그인을 했다. 문화누리카드 사용처를 보면 여자의 행적을 일부 알 수 있다. 남편은 여전히 행방불명. 이번에도 지방 두 곳을 다녀왔다. 모두 유명 관광지 쪽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마웠다. 노순애의 문화누리카드는 매년 100% 사용률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톡!

화면을 닫았다. 그런 다음 고개를 들었다. 노순애의 눈길은 경도의 얼굴에 있었다. 눈빛 강도를 보니 열 번은 뚫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순간만은 노순애도 침묵한다. 

그녀는 정당한 긴급구조 대상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칼자루는 사실 경도 손에 있었다. 긴급구조지원금은 시청의 희망복지과에서 입출금을 담당하지만 경도가 신청을 받아줘야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신청 받아드리죠.”

경도가 말했다.

노순애의 눈가에 경박한 만족감이 스쳐갔다. 반면 엄 팀장은 실망이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를 줄 알았건만 결국 무리수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진짜요?”

노순애가 앙칼지게 물었다. 물렁한 9급이지만 이렇게 쉽게 통과된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오 주임...”

민지 표정이 어두웠다. 이런 식으로 신청을 받으면 감사에 걸린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대신 현장확인이 필요합니다.”

경도가 슬쩍 옵션을 꺼내놓았다. 심정적 지원을 보내준 민지에게는 눈짓을 날려 안심 시켜주었다.

“현장확인은 무슨... 그거 옛날에도 했잖아? 어차피 형식적인 거 내가 한 걸로 해줄게.”

노순애가 인심을 쓴다. 뭐든 자기 마음대로였다.

“감사 무서운 거 아시잖아요? 형식적이지만 절차는 따라야합니다.”

경도가 현장확인서식을 챙겨들었다.

“출장 있다면서?”

“가는 길에 들르면 됩니다. 아니면 신청도 나중으로 미뤄야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아, 아니야. 나야 빠를수록 좋지.”

여자가 태도를 바꾸었다. 

“그럼 잠깐만요.”

여자를 대기시키고 메모를 적어 우석에게 찔러주었다. 메모를 본 우석이 밖으로 나갔다.

“팀장님, 출장 다녀오겠습니다.”

처리 중이던 서류를 정리하고 엄 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어, 그래...”

엄 팀장이 건성으로 답한다. 뭔가 허전한 게 가시지 않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팀장님, 다음에 또 뵈요. 우리 실장님, 주임님들, 복 많이 받으세요.”

신청이 받아들여지자 노순애는 역겨운 애교를 떨며 민원실을 한 바퀴 돌았다.

“아유, 이게 나라지, 암.”

콧노래까지 부르며 민원실을 나간다.

“저렇다니까.”

경도까지 나가자 현 주임이 혀를 찼다.

“어쩌겠어요? 오 주임도 스트레스 받기 싫은 거죠.”

민지는 경도를 이해했다. 엄 팀장의 시선은 창밖에 있었다. 경도는 출장차량 문을 열고 있다. 그러다 엄 팀장과 시선이 마주친다. 찡긋 눈짓을 날리는 것으로 경도 차량이 출발을 했다.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엄 팀장의 시선은 멀어지는 차량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노순애의 집 근처에서 신호에 걸린 경도가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계치훈 경위>

번호 하나가 반짝거렸다. 계 경위는 용포읍 지구대에 근무한다. 그래도 경찰대 출신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치명적인 사고 덕분에 좌천성 발령을 받았다.

그와 친분을 나누게 된 건 악성 민원인 때문이었다. 만취 수급자의 횡포 때문에 부득 도움을 요청했던 것. 

경찰 역시 2인 1조 출동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 초보 엘리트 역시 요령보다 사명감 쪽이었으니 파트너의 몸이 불편하자 혼자 달려왔던 것. 

미숙한 계 경위는 주취자를 제압하느라 개고생을 했으니 경도가 달려들어 그를 도왔다. 이후로 둘은 지인 관계가 되었다.

화면을 그냥 닫았다. 노순애의 죄는 형법으로 다스리기에는 사이즈가 작았다. 별 다른 처벌을 받지 않으면 더욱 기고만장할 수도 있었다.

[노순애]

질식할 것 같은 얼굴이 떠오른다. 이 여자의 생떼는 대통령이 와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특명을 내릴 지도 모른다.

“사정이 딱하군요. 지원방안을 최대한 찾아보세요.”

그 지시 하나면 끝이다. 대통령의 말은 곧 대한민국 법 체계를 이루는 <헌법-법률-명령-조례-규칙>의 ‘령’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이건 모든 기관의 불문율이었으니 규정을 벗어나더라도 ‘대통령 특별지시사항’이라는 문구를 넣으면 프리패스가 되었다.

그러나 경도의 관상은 결국, 생때 악다구니가 장착된 여자의 무대뽀를 제압할 방법을 찾아내고 말았다.

<남편은 행방불명>

이게 단서였다.

생활비 가져오는 사람은 없는데 본인은 다리가 아파 노동력이 없다. 여자가 긴급구조를 청하는 팩트였다. 다리가 아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미 치료가 되었으니 진단서를 첨부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행방불명은 거짓말이었다. 증거는 여자의 간문에 있었다.

간문은 부부궁으로 불린다. 부부금술, 남편덕, 아내덕, 이성문제 등을 알 수 있다. 눈꼬리 부분이다. 윗꺼풀과 아랫꺼풀이 딱 마주치는 곳을 어미라 하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선을 간문이라 한다.

여자의 주장처럼 남편이 행방불명 될 정도라면 간문이 오목하게 꺼져야한다. 그도 아니면 여자의 눈썹뼈가 칼등처럼 솟는다. 이런 상은 이별수에 더불어 배우자를 극한다. 눈썹이 꼬부라지거나 사납게 거슬러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자의 간문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별수는 없었다. 이별은커녕, 도화빛이 남아있었으니 오늘 아침에도 부부의 정을 나누었다는 증거였다. 바람을 피울 상은 아니었으니 다른 남자와 붕가붕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행방불명이 아니었다.

사실 이 의심은 첫 현장 확인 때도 들었다. 여자는 현관문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았다. 문만 열어주고 만 것이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굳이 들어오겠다는 저의 가 뭐야?”

그 말이 경도를 막았다.

왠지 찜찜했다. 전임자에게 조언을 구하니 그 답이 더 걸작이었다.

“열일하는구나. 대충 눈치껏 해라.”

그렇게 넘어갔던 남편 체크였다.

여자의 생떼는 말릴 수 없다. 그러나 남편의 실재를 확인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야말로 완전한 반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남은 관상을 마저 짚었다.

노순애의 눈썹은 짧고 산만하다. 생긴대로 논다는 말에 딱이었으니 이런 눈썹의 소유자는 성질머리가 포악하고 완강하다. 턱 옆 살이 푸짐하니 낯가죽 철판깐 것도 관상에 나와 있었다.

‘어쩌면 남편이...’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남편에게 잘 할 여자는 결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여자는, 관골이 불규칙하고 입술이 검었다. 중년에 운세가 막힐 상이니 읍면동 드나들기 시작한 때와 시기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때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주임님, 빨리 오셔야겠어요.]

우석이었다. 마침 신호가 떨어졌다. 전속으로 페달을 밟았다.

“저기요.”

집 앞에 도착하자 우석이 노순애의 집 앞을 가리켰다. 노순애의 집에서 나온 중년 남자가 가까운 곳에 주차된 이동식 뻥튀기 차량에 뭔가를 싣고 있었다. 

우석에게 내린 특명이 이거였다. 만약 남편이 집에 있다면 노순애가 연락을 취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잠시 시간을 끌며 우석을 먼저 보낸 경도였다. 그 짐작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박관철 씨?”

갑자기 호명하자 남자가 돌아보았다.

“예?”

본능적으로 대답도 나왔다. 

빙고.

-딱 걸렸어.

행방불명이라던 남편이 버젓한 현장을 잡은 것이다.

“......!”

뒤를 이어 도착한 노순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그녀가 괜히 생떼와 악다구니의 달인인가? 얼굴빛조차 변하지 않는 거짓말이 나왔다.

“우리 남편 아니에요.”

여자가 빙초산 원액처럼 톡 쏜다.

“남편이 아니시라고요?”

경도가 노순애 앞으로 다가섰다. 그들이 부부라는 사실은 두 얼굴에 블랙박스처럼 새겨져 있었으니 간문을 쏘아보는 경도의 눈은 확신으로 불타고 있었다.

< 제가 이제 찌질 말단이 아니거든요-3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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