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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6 > (20/245)

<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6 >

상괘로 보아 투신한 부하는 자살이 아닐 수 있었다. 설령 누군가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도 배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언급할 수 없었다.

<당신 모함살 맞았네요.>

<그 부하 타살일 수도 있겠어요.>

과장이 믿을까? 

경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직 경도와 공감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다. 처절한 좌절 이후에 사람에 대한 신뢰, 조직과 구성원에 대한 애정이 바닥이었다.

입을 닫았다.

적당한 기회가 필요했다. 아울러 투신한 사람에 대한 확인 관상도 필요했다. 사람의 목숨과 관련되는 일이니 함부로 예단할 일이 아니었다.

“팀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업무추진에 당신의 권위를 빌려주세요.

애당초의 용건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다들 잠깐.”

민원실로 내려온 엄 팀장이 팀원을 호출했다.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 말이야 곧 과장님이 내려오셔서 말씀하실 건데 남은 기간 중에 오 주임 좀 팍팍 밀어주도록.”

“......”

일단 현 주임은 침묵했다. 주차장에서 한 부탁이 주효했다.

-한 번만 밀어주세요.

과장의 공인도 중요하지만 고참 주임도 중요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현 주임이 초를 치면 어려울 수 있었다.  

“오 주임이 상위권 한 번 해보겠다네.”

“상위권요?”

상위권이라는 말에 은빛과 민지까지 화들짝 놀란다. 처음부터 올인했어도 어렵겠지만 3주를 남긴 시점에서는 능률의 신이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 주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지만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은 이장단, 부녀회장들의 전폭지지에 가맹점 확대, 사용처 발굴 등 부수적인 일들이 산더미야.”

“도전이라도 해보고 싶어서요.”

민지의 이견을 부드럽게 받아쳤다.

과장이 내려온 건 그때였다.

“오 주임이 한 번 해보겠다니 다들 협조해줘.”

다들 건조한 표정이지만 군말은 없다. 과장과 팀장의 파워는 단순히 6과 5의 숫자 차이가 아니었다. 추가로 3주 동안의 사회복무요원 이용권도 획득했다. 경도의 요청을 이 과장이 수용한 것이다.

이제 오후의 이장단 총회를 준비해야 했다. 이장단 총회 준비는 행정팀 소관이지만 경도가 양해를 받았다. 

사회복무요원 셋을 호출했다. 회의 준비에 더불어 3주 간의 역할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온 사람은 우석 뿐이었다. 남은 둘은 경도의 말을 씹어버린 것이다.

‘이것들이...’

사회복무요원들은 생각보다 다루기 어렵다. 주어진 업무 외의 다른 일은 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눈 좀 같이 쓸자고 해도 썩소를 날리고 돌발 민원에 대한 지시라도 할라치면 규정 들이대기 일쑤였다.

반발하는 공익 둘은 다른 팀 소속이었다. 그 팀에서도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골머리 앓는 중이었으니 컨트롤은 경도의 몫이었다.

‘어떻게 간을 본다?’

잠시 골똘할 때 입구 쪽 여자화장실에서 40대 민원인의 비명이 찢어졌다.

“까아악!”

“뭐야?”

현 주임이 반응하는 사이, 경도는 벌써 화장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지난번에도 노숙자 하나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시죠?”

“저기...”

민원인의 손이 열린 화장실 문을 가리켰다. 휴지걸이 선반에 이질적인 것이 보였다. 선반대의 일부처럼 보이는 만년필, 자세히 보니 소형 몰카였다.

몰카...

니가 왜 거기서 나와?

**

센터가 발칵 뒤집혔다. 민원실장 노원승에 이어 두 과장과 읍장까지 출동을 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팀장 이상의 직급자들이 쏟아낸 말은 복사판이었다.

“일단 진정하시죠.”

민원실장이 민원인을 달랬다. 그녀는 그 손을 뿌리치며 앙칼진 목청을 쏟아냈다.

“대체 뭐야, 여기 관공서 맞아? 관공서에 몰카라니?”

“......!”

직원 일동이 기가 죽는다. 이런 일은 민원응대 매뉴얼에도 나오지 않는다. 입이 백만 개라도 할 말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저희가 바로 조사해보겠습니다.”

“조사? 이미 내 몸 다 찍혔을 거 아니야? 아니, 나만 찍혔겠어?”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시고...”

“됐어요. 경찰 부를 거예요.”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니, 경찰까지는... 저희가 일단 알아볼 테니 이리 오셔서 좀 진정을...”

민원실장이 벌벌 기며 여자를 모셨다. 신고라는 말에 광탈 직전까지 몰린 것이다.

“10분 줄게요.”

상담 소파에 앉은 여자가 잘라 말했다.

10분.

몰카 설치범이 자수하지 않는 바에야 어떻게 범인을 찾는단 말인가? 민원실장은 일단 청소아줌마를 불러 사실확인부터 했다.

“아침까지는 없었어요. 내가 거기 걸레질을 했거든요.”

그렇다면 이 몰카는 아침 이후에 설치된 것이었다. 그 시각 이후에 여자 화장실 근처에 간 사람을 찾아야했다. 여자를 ‘모시고’ CCTV 화면을 체크했다. 사회복무요원 둘이 여자화장실이 가까운 통로로 지나간다. 남자 민원인들도 지나가고 직원도 몇 명 지나간다. 그 이상의 디테일은 파악이 불가했다. 여자화장실이기에 CCTV도 없었다. 그런 걸 달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민원실장은 사회복무요원들부터 점검에 나섰다. 최고참 윤학길이 의심스러웠다. 짧은 치마를 입고 3층으로 올라가는 여자 민원인의 뒤를 따라가며 힐금거리다가 항의를 받은 전과 때문이었다.

“아이, 씨... 우리 아니거든요.”

세 요원들이 펄쩍 뛰었다.

“뭐? 아이 씨?”

민원실장이 눈을 부라렸다.

“......”

“얌마, 경찰 오면 다 밝혀져. 그러니까 일찌감치 자수해.”

“왜 우리만 의심하는 데요? 의심하려면 CCTV에 나온 직원들도 다 포함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밖에서 연결되는 문은요? 누가 그리로 들어가서 설치했을 수도 있잖아요?”

윤학길의 항변은 제법 논리적이었다.

“좋아. 일단 핸드폰부터 까봐.”

“예?”

“핸드폰 까보라고.”

“실장님.”

요원들 표정이 과격하게 어두워졌다.

“이 자식들이 오냐오냐했더니... 경찰 부르기 전에 빨리 못 까?”

민원실장이 목청을 높였다. 지켜보는 직원이 많으니 탄력을 받은 것이다.

“그러지 말고 직원들 핸드폰 내 앞에서 다 까세요.”

여자가 몰카 만년필을 흔들며 외쳤다. 직원들 얼굴이 하얗게 굳는다. 개중에는 야동을 즐기는 직원들도 있었다. 기타 독특한 개취로 인해 남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자료를 가진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핸드폰을 까라니? 아재 세대로 말하자면 일기장 까라는 말과도 같았다.

경도는 소란을 주목하고 있다. 직원들의 얼굴 스캔은 끝났다. 이제는 민원실장을 몰아붙이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이마의 양 모서리 천이궁이다. 눈 옆의 간문과 그 눈꼬리와 눈썹.. 시선은 확대경처럼 여자의 움직임을 쪼아댄다. 코의 산근을 살필 때 여자가 사레에 걸렸다. 물을 마시다 캑캑거린 것이다. 혀에 찍힌 점이 보였다.

혀의 점...

경도 얼굴의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그건 일종의 확신이었다.

“실장님.”

마침내 경도가 나섰다.

“뭐?”

“그 친구들은 범인 아닙니다.”

“오 주임이 어떻게 알아?”

민원실장이 권위로 누른다.

“제가 책임질 수 있습니다.”

“책임까지?”

민원실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경도를 안다. 민원유발자에 존재감 없는 9급. 나설 자리가 아니지만 책임을 지겠다니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럼 왜 핸드폰 못 까겠다는 건데요?”

여자가 목청을 높였다.

“사생활 아닙니까?”

“그게 말이 돼? 나는 그곳까지 찍힌 판인데? 떳떳하면 까란 말이야.”

“센터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유감이지만 합리적인 증거도 없이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생활을 까라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경도 태도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했다.

“맞습니다.”

윤학길이 동의하고 나섰다.

“오 주임.”

민원실장이 경도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범인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경도의 돌직구가 날아갔다.

“범인을 안다고?”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그게 누구죠?”

여자가 득달처럼 물었다.

“범인은...”

경도의 시선이 직원들을 겨누었다. 한 명 한 명 체크를 한다. 여자는 경도 옆에서 호명을 기다린다. 호명되기만 하면 멱살을 잡아 뜯을 태세였다. 직원들은 그 기세에 살이 떨렸다.

그런 경도를 주목하는 건 이 과장이었다.  

도무지 존재감이라고는 없었던 오경도였다. 그런 그가 돌발을 주도하고 있었다. 까탈스럽던 엄 팀장까지 말릴 생각도 없이 몰입상태다. 이 과장도 다스리기 힘들던 공무원이 엄낙기였다. 그런 그가 이런 관심이라니...

톡톡!

읍장의 손가락이 그 긴장을 무너뜨렸다. 그가 눈짓을 해왔다. ‘지켜보세’ 그런 눈빛이었다.

‘읍장님.’

뒤에 있던 민원주임이 읍장 귀에 대고 속삭였다.

‘된통 걸린 것 같습니다. 저 여자 목요일에 장애인 자동차표지 발급 건으로 생떼를 쓰던 사람이에요.’

‘자동차표지발급?’

‘남편의 장애 때문에 왔었는데요. 주장애와 부장애가 보행상 장애에 해당되지 않아 ’주차가능스티커‘ 발급대상이 아닌데 중복장애로 합산해서 주차가능스티커로 달라고 생떼를 쓰다 돌아갔었거든요.’

‘허어.’ 

읍장이 한숨을 쉬었다. 복마전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사이에 직원들을 한 바퀴 스캔한 경도의 눈빛이 여자 앞에서 멈췄다.

“누구냐고요?”

여자가 쏘아붙였다.

“저 잠깐만 좀 볼 수 있을까요?”

경도가 조용한 방을 가리켰다.

“왜요?”

그녀가 칼각을 세운다.

“범인을 말씀드리려고요.”

“여기서 말하세요.”

“죄송합니다만 조용히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진짜 범인을 알아요?”

“예.”

“좋아요. 아니면 각오하세요. 당장 경찰하고 방송사, 인권위에 연락할 거예요. 읍사무소 직원들이 여자화장실에 몰카 달아놓고 음란을 즐긴다고요.”

협박을 날린 여자가 경도를 따라 상담실로 향했다.

“뭐야?”

민원실장은 황당했다.

“좀 기다려 봐요.”

엄 팀장이 나서서 그를 진정 시켰다. 이제 모두의 눈은 상담실을 향하고 있었다. 세 사회복무요원들도 그랬다. 벌겋게 상기된 그들은 핸드폰을 끌어안고 불안에 떨었다.

“오 주임 좀 오버하네.”

책상의 은빛은 냉소적이다.

“난 은근 기대가 되는데?”

민지의 반응은 달랐다.

“몰카도 관상으로 해결한다는 거예요?”

“그건 모르지만 우리 오 주임, 병원에서 나온 이후로 하는 짓마다 신뢰가 가거든.”

“저러다 초대형사고 친다고요. 자기가 경찰이에요, 뭐예요?”

“너무 그러지 마. 오 주임이 뭐 은빛 씨에게 피해준 거 있어? 온갖 귀찮은 일 다 떠넘겨놓고.”

“어머, 언니도 공범이면서 나만 나쁜 사람처럼 말하네?”

“말 나왔으니 말인데 은빛 씨는 얼굴 예뻐, 몸매 좋아 거기다 집안도 좋은 금수저라며? 나 같으면 여유부리며 살 거 같은데 왜 그렇게 매사에 까칠해?”

“됐거든요. 언니나 잘하세요.”

은빛이 선을 긋는 순간, 경도가 상담실 문을 열고 나왔다. 잠시 흩어졌던 시선들이 다시 경도에게 쏠렸다. 여자는 잠깐의 시간을 두고 따라나왔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발언, 읍 직원 모두를 패닉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6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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