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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5 > (19/245)

<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5 >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인사와 함께 커피를 내밀었다. 물끄러미 경도를 바라보는 과장의 반응은 미세먼지만큼이나 건조했다.

“사표 안 냈나?”

“냈습니다.”

경도의 답은 주저가 없었다.

“그런데 왜 나왔나?”

“제 말은... 제 불운에 사표를 냈다는 뜻입니다.”

“불운?”

“황순감 민원인 일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연고가 없으시니 제가 화장을 대리했습니다.”

“엄 팀장 나왔나?”

“예.”

“커피 생각 없네.”

과장이 경도를 지나갔다. 경도는 숨을 골랐다. 어차피 각오하던 일이다. 시간은 많았으니 서두르지 않았다.

곧 이어 두 번째 커피 주인이 도착했다. 현 주임이었다.

“어머니는 좀 괜찮으신가요?”

경도가 또 커피를 내밀었다.

“......”

현 주임은 뭐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드세요.”

경도가 한 번 더 권하니 커피를 받아든다.

“관상 생색내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위기는 끝난 게 아니니 혹 거부감이 풀리면 말씀하세요. 자세히 봐드리겠습니다.”

“......”

“방금 전에 과장님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주임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현 주임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내려보는 눈빛이지만 전처럼 개무시는 아니었다.

“우석 씨.”

과장 몫의 커피는 우석에게 주었다.

“고맙습니다.”

“힘 안 드냐?”

“토요일은 좀 뻐근했는데 스트레칭하고 전신욕 좀 했더니 괜찮습니다.”

“고마웠다.”

“뭘요. 또 시킬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우석도 이제 경도에게 가까웠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 과장과 엄 팀장이 대화를 하고 있다. 엄 팀장이 신문을 꺼내 보인다. 인터넷에 나온 기사 역시 출력본으로 내민다. 

그 입술에 침이 튀자 이 과장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고작 일주일 남짓이었다. 그 사이에 찾아온 변화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팩트였다. 신문기사에 이어 읍장의 사진이 나왔다. 인사 차 들린 읍장실, 읍장이 이 과장의 손에 최현배 사장의 기증품 배포사진을 전한 것이다.

읍장이 말했다.

“그 친구 알고 보니 능력 있더라고. 조경철 지국장 알지? 그 깐깐한 인간을 두 번이나 동원했더군. 관상도 귀신처럼 보고.”

능력자.

경도에 대한 읍장의 평가였다.

주지하다시피 용포읍의 구성인원은 두 부류였다. 하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좌천된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승진으로 일시 이동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읍장은 직원들의 능력에 대해 기대를 걸지 않았다. 쓸만한 직원이라면 각자도생 길을 찾느라 바쁜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읍장의 입에서 능력자라는 말이 나왔다. 이 과장으로서는 생소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말미에 딸려나온 관상이라는 단어. 그건 또 무슨 멍 때리는 소리란 말인가?

형식적 인사를 마치고 2층 사무실로 내려왔다. 몇몇 팀장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엄 팀장이 올라왔다. 경도와 함께였다.

“오 주임이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엄 팀장이 용건을 밝혔다.

“앉아요.”

과장이 빈 의자를 가리켰다.

“뭔가?”

과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날선 눈빛이었다.

“병가 끝나고 나오시자마자 말씀 드리기 뭣하지만 3주 후에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이 마감됩니다.”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

용포읍으로써는 최악의 업무였다. 이유는 방대한 인구 때문이었다. 곳곳에 신규 아파트가 건설 중이니 인구는 날로 증가세. 그러나 분동은 아직 요원했다. 알고 보면 그 또한 공무원들의 장난질이었다. 장난질의 팩트를 까보면 ‘자리’가 중심에 박혀있다.

용포읍은 거대 공룡읍이다. 인구가 무려 10만을 오버했다. 공룡읍의 입지를 내세워 읍장을 서기관급으로 격상 시켰다. 이걸 두 개의 동으로 짤라버리면 서기관 자리 하나가 날아간다. K시의 입장에서 서기관 자리 하나는 어마어마한 비중이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또 하나는 국도 때문이었다. 현재 용포읍의 핵심도로는 국도였다. 분동을 하는 순간 국도의 관리권이 K시로 넘어온다. 공짜로 쓰던 국도를 관리하려면 많은 예산이 나간다. 이래저래 분동의 길은 요원했으니 다른 읍면동과 경쟁하는 지표는 늘 최악에 가까웠다. 그것뿐이어도 슬플 일이지만 이 지표는 시의 대내외 평가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대표주자가 문화누리카드였다. 문화누리카드는 6세 이상의 해당자에게 년 9만원의 혜택을 준다. 기초수급자 가정과 차상위, 그리고 교육급여 혜택을 받는 사람 등에게 발급한다. 이 또한 돈이기에 수혜자들은 열심히 카드를 받아간다. 

그러나 ‘문화’카드다. 기본적으로 사용제한이 있었다. 공연, 영화, 박물관관람, 서적, 문구 구입 등의 옵션이 걸린 것이다.

고령의 어르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책도 필요 없고 영화 볼 일도 없었다. 그러니 카드만 수령하고 돈을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위에서는 다단계 독촉이 작렬한다. 복지부-도-시청-읍면동으로 이어지는 트리플 스트레스였다. 위에서는 오직 실적만 챙기려 드는 것이다.

%로 몰아붙이는 평가는 용포읍에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관내에 문화누리카드 대상자가 작은 읍면동은 5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용포읍은 6000명에 육박했다. 그렇기에 지난 5년 내내 12개 읍면동에서 붙박이 꼴찌, 덕분에 규모가 유사한 타 시군구와의 비교에서도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경도가 정한 이미지 변신의 1호 업무가 이것이었다.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을 상위권으로 올려보겠다고?”

과장 눈빛이 찌푸려졌다.

“자네 진짜 괜찮은 건가?”

과장은 경도의 상태를 걱정했다. 잊을만 하면 대형사고를 친 9급이었다.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은 누가 해도 안 될 일. 그런 일에 도전하겠다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 사람도 있다더군요. 한 번 해 보고 싶습니다.”

경도는 당당했다. 그 옆의 엄 팀장 역시 긍정의 고갯짓으로 지원을 했다.

“지금 지표가 어떤가?”

“타 읍면동은 많게는 80%, 적게는 65%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45%...”

“......”

“......”

“그런 열정 있으면 악성 수급자 관리나 잘 하는 게 효율적일 것 같은데?”

이 과장이 주의를 환기 시킨다. 용포읍 공인 진상민원을 말하는 것이다. 과장도 치를 떠는 수급자와 교도소 출소자가 있었다.

“그것도 한 번 해결해 보겠습니다.”

“뭐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게.”

이 과장의 답은 건조했다.

사실 이 건을 보고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과장과의 관계개선이었지만 팀워크 형성에도 복안이 깔렸다.

맞춤형복지팀의 팀워크는 가출한지 오래였다. 모두의 머리에는 원하는 부서로 갈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나 멤버 자체의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 단지 케미를 이루지 못해 콩가루가 되고 있을 뿐이었다. 과장과 엄 팀장 역시 겉돌고 있는 건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엄 팀장은 경도의 지지자로 변신한 상태. 과장까지 변한다면 모래알 콩가루가 케미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과장의 능력이었다. 이창교 과장은 시청에서도 정통 행정통으로 통한다. 그렇기에 사무관 승진도 초고속이었다. 서기관 승진도 빠를 것으로 생각했지만 제동이 걸렸다. 

부하 팀장 한 사람이 자살을 해버린 것이다. 부하는 대형 비리 의혹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과장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이 과장에게 제대로 깨진 다음 날 멋대로 장기 병가를 내더니 나흘 후에 팀장 소유의 원룸에서 투신해 버렸다.

그 주검이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자 이 과장이 구설수에 올랐다.

“과장 위해 죽었네.”

“총대 맸네.”

죽은 자는 면피가 허용되는 한국이었다. 그의 허물은 모두 이 과장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물을 먹어댄 끝에 용포읍까지 밀려났다. 읍장은 다음 시장에 따라 화려한 귀환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과장의 관운은 끝난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아까운 그의 행정능력. 경도는 그걸 배우고 싶었다. 그러자면 그의 인정을 받아야했다. 관상이 아니라 행정직으로서의 업무능력. 그 시발점을 문화누리카드에다 세팅한 것이다.

다른 이유는 팀 선배들이었다. 도 평가의 마감은 3주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그 업무에 올인하려면 팀 선배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런 까닭에 이 과장의 ‘인정’과 지시’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이 과장은 대체 어떤 관상을 가졌길래 롤러코스터를 탄 걸까? 부하운이 그렇게도 쪽박이었을까? 각광 받던 미스터 K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이창교 과장, 경도로서도 궁금한 사안이었으니 상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12궁 중에서 부하운은 노복궁에 속한다. 

노복궁(奴僕宮)은 턱의 중앙인 지각(地閣)을 중심으로 턱 전체를 본다. 이것으로 부하운을 비롯해 인덕의 유무를 본다. 인덕이 좋으면 대체로 노복궁이 좋다

턱은 이마와 대조를 이룬다. 이마가 양(陽)이면 턱은 음(陰)이다. 흔히 말하는 음덕이 바로 턱에서 나오는 것이다.

턱은 둥글고 풍만하면 좋다. 특히 양 쪽 턱뼈가 발달해 둥근 듯 네모난 형태를 이루면 강철의지의 소유자다. 이마가 다소 약해도 광대뼈와 턱이 발달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턱의 중심인 지각이 너무 날카롭고 하관이 빈약하면, 나아가 턱이 일그러진 형상이면 박복하다. 이런 상은 은혜를 베풀어도 본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인덕은 턱만이 좌우하는 건 아니다. 눈썹과 광대뼈, 법령도 주요 요소가 된다. 눈썹이 수려한 사람이거나 법령이 넓고 둥글게 그려진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산다.

“......!”

이 과장의 관상을 뜯어내던 경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복궁은 좋지 않다. 이 과장의 턱은 둥글지도 풍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썹과 법령이 좋았으니 그 운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렇기에 사무관 진급까지 주변의 지지를 받으며 승진가도를 달린 것이다.

그 답은 코끝 준두와 얼굴 양쪽 뺨을 이루는 관골에 있었다. 준두왕 관골 깊이 염색약처럼 눌어붙은 검붉은 기색. 시간이 경과하며 선명하지 않지만 모략의 칼에 맞은 게 분명했다.

‘살성...’

그 기세의 날카로움에 경도가 흔들렸다. 관상 능력을 받은 후로 처음 보는 살성이었으니 치명적인 모함살이었다. 관골 깊이 화살이 박힌 듯 흔적으로 남은 모함살. 유년운기부위를 찾아 꿰뚫어보니 5년 전의 일이다. 경도가 임용되기 전이다. 부하가 투신하던 해와 일치했다.

맙소사.

충격적인 상괘에 경도가 경련했다. 이 과장의 몰락에 이런 비하인드라니? 그렇다면 그 모함살을 날린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경도는 이 과장의 상괘에 미친 듯이 빠져들고 있었다.

<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5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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