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2 >
조경철은 코 뿌리 산근이 맑았다. 더불어 양 쪽 콧망울인 금궤와 갑궤를 위시해 준두까지 핑크빛이 나른하게 번졌으니 돈맥이 뚫렸다는 표시였다. 막힌 돈맥이 그의 고민이었고 그 해결을 예견한 게 경도였다.
코의 최고봉은 쓸개를 거꾸로 매단 듯 보이는 현담비와 대나무를 잘라놓은 듯한 절통비를 꼽는다. 전자는 부를 이루고 후자는 부귀까지 가능하다.
조경철은 매부리코 과에 속했다. 매부리코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눈이 악해 보이면 지능적인 사기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경철의 눈은 다행히 선량해 보였기에 경도가 딜을 던진 것이었다.
조경철은 사실 과장급도 우습게 안다. 9급 정도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경도를 대하는 태도는 제대로 각별했다.
“오 주임님. 엄 팀장님도 오셨네?”
“아이고, 우리 조 국장님.”
엄 팀장의 허리가 자동으로 숙여졌다.
“최현배 사장님이십니다. 이 급식사업에 쌀을 지원하고 계십니다.”
경도가 최 사장을 소개했다.
“좋은 일 하십니다. 하나로일보 조경철입니다.”
둘은 명함부터 교환했다.
“그나저나 오 주임.”
그런 다음 경도를 잡아끄는 조경철.
“돈맥 뚫렸죠?”
“벌써 알아?”
조경철이 반색을 한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맞춰드려요?”
“......?”
“5억 정도 받으셨네요.”
“어억.”
숫자가 나오자 조경철이 휘청거렸다.
“뭐야? 혹시 부동산에서?”
“지국장님 얼굴이 부동산입니다. 코에 쓰인 계약서가 어디 가겠습니까?”
“......!”
조경철은 혀를 내둘렀다. 계약성사를 맞춘 것만 해도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액까지 거의 정확했다. 그가 받은 돈은 515000000원이었다. 원래 5억 2천을 불렀지만 상대가 다운을 요청해 500만원을 깎아주었던 것.
‘......’
뒷골이 띵했다. 저 먼 곳의 고향 땅이었으니 경도가 부동산업자를 알리도 없었다. 그야말로 신빨 넘치는 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도와주실 거죠?”
“남자가 일구이언하겠나? 도와주지, 암.”
조경철은 흔쾌했다.
“오 주임하고 엄 팀장 부각 시키면 되는 거지?”
“아뇨. 우리 김재웅 급식소장님 하고 최현배 사장님요.”
“응?”
조경철의 눈빛이 튀었다. 뜻밖이었다. 제사보다 젯밥. 공무원의 특징이다. 그런데 경도의 태도는 다른 공무원들과 달랐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당부를 남긴 경도가 배식 위치로 향했다.
“기자는 왜?”
김재웅이 경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장님 수고하시잖아요? 최 사장님도 숨은 공로자시고요. 그래서 미담 기사 좀 제대로 내달라고 모셔왔어요.”
“진작 말했으면 사비 털어서 반찬 한 가지라도 더 할 걸.”
“다음에 하시면 되지요.”
“좋아, 다들 배식 개시.”
이장의 콜이 떨어졌다.
“배식개시.”
경도와 우석도 복창으로 배식을 시작했다. 엄 팀장은 국을 푼다. 손목이 아픈 민지는 나물반찬을 맡았다. 경도는 찜솥 담당이었다.
“아이고,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급식이야?”
“그러게나. 그 놈의 코로나 때문에 무료급식 끊는 바람에 며느리 눈칫밥 먹느라 혼났어.”
어르신들이 합창을 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드십시오, 어르신들.”
엄 팀장의 인사로 활력이 더해졌다.
“팀장님.”
경도의 손가락이 보답의 하트를 그렸다.
“싱겁기는...”
엄 팀장이 얼굴을 붉힌다. 그러자 관상도 조금 맑아진다. 심상불여관상이다. 고운 마음과 선행은 악상 극복의 만병통치약이었다.
찰칵.
촬콱.
카메라는 이장과 최현배 사장 옆에서 쉴 새 없이 터졌다.
“아따, 늙은이 얼굴 뭐 볼 게 있다고?”
김 이장의 얼굴에 쑥스러운 홍조가 피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유, 오늘 국이 어째 그리 진국이래? 옛날 우리 어머니 손 맛이야.”
“오랫만에 밥 먹은 거 같네. 고마워요.”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봉사자들이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어쩌면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건지도 몰랐다.
“수고들했어요.”
김 이장 얼굴은 이제 활짝 핀 해바라기와 다르지 않았다.
“엄 팀장님, 앞치마 잘 어울리네. 종종 좀 나오세요.”
이제는 엄 팀장에게 농담까지 날리는 이장님.
“그래야겠습니다. 다들 좋아하시니 기분이 좋은 데요?”
엄 팀장의 화답도 아까보다 자연스러웠다.
“자자, 급식대 앞에 쭉 서주세요. 보도사진 찍습니다.”
조경철이 모두를 불렀다. 화면의 중앙에 서려는 엄 팀장을 경도가 슬쩍 끌어냈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장님하고 최 사장님이세요.”
그 귀에 속삭이자 엄 팀장이 알아들었다. 경도와 엄 팀장, 민지 등은 줄의 구석에서 앵글을 받았다.
‘저 친구...’
촬영을 마친 조경철이 경도를 주목했다. 개념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오늘 고생했어요.”
촬영까지 끝나자 최현배가 경도에게 말했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내가 뭘... 푼돈 내고 나 행복해지는 시간인데...”
시원한 이목구비에 미소가 도니 천사가 따로 없다. 가까이에서 보니 눈, 코, 입, 귀 , 이마의 오악이 조화롭다. 그렇기에 기부를 할 줄 아는 것이다. 코뿌리 끝이 둥그니 금전운도 보통 이상이었다.
그런데...
“......?”
최현배의 인당에서 경도의 시선이 멈췄다.
“왜요? 밥알이라도 튀었나요?”
최현배가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 아뇨.”
대충 둘러대며 다시 인당을 살폈다. 어둡다. 인당만 어두운 게 아니었다. 양 관골에도 푸른빛이 선연하고 코의 금갑에 붉은 반점 같은 게 일어났다. 시선을 귀로 옮겼다. 최현배의 귀는 코끝처럼 둥근 모양에 적당히 깊었다.
귀인 타입의 귀지만 현재는 색이 죽었다. 좋은 귀는 얼굴색보다 밝아야 하는 법이다. 운세가 막히고 재산이 새나가게 된다는 신호였다.
그의 나이 58세. 나이를 나타내는 왼쪽 뺨 중앙에 위치한 호이(虎耳)에 관상스캐너를 발동 시켰다.
‘아뿔싸.’
스캔하던 경도의 눈빛이 풀썩 무너졌다.
사색의 전개가 빨랐다. 한 마디로 초특급 스피드의 횡액이었다.
어쩐다?
고민을 했다. 최현배는 맞복팀의 구세주와도 같았다. 팀을 통해 기부함으로써 팀장 이하 팀원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맞춤형복지는 돌발이 많아 독지가를 많이 발굴해야 하는 게 관건. 그 줄을 놓칠 수 없었다. 아니, 그간의 은혜를 위해서라도 이 횡액을 막아야했다.
방법이 문제였다.
<사장님 횡액 들었는데요?>
다짜고짜 들이대면 최현배가 믿을까? 무시해도 문제요 기분이 상해도 문제가 될 일이었다.
머리를 쓰기로 했다. 최현배 스스로가 믿게 만드는 것, 바로 실증이었다.
“어르신 오늘 쌈지돈 좀 나가셨네요?”
디저트로 믹스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는 어르신 그룹을 타겟으로 찍었다.
“나?”
한 어르신이 고개를 들었다.
“코 말이에요, 산근하고 준두에 푸른 빛이 돌아요.”
“어이쿠, 오 주임이 관상 볼 줄 아는 모양이네. 아침에 백수된 아들놈이 와서 징징거리길래 지갑 좀 털어줬다오.”
“지난달에도 줬다더니 그새 또 왔어?”
옆의 어르신이 참견을 한다.
“손녀 병원비가 없다니 어쩌겠나?”
“그럼 저한테 보내보세요. 사정이 딱하면 긴급구조 혜택 드릴 수 있거든요.”
“아이고, 정말이신가?”
어르신이 반색을 했다.
“어르신 따님도 건강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
경도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갔다.
“아따, 공무원이 진짜 관상쟁이임갑네? 우리 딸도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들어간지 보름 됐어.”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천천히들 마시고 가세요.”
“오 주임님.”
그제야 최현배가 호기심을 보였다.
“관상 볼 줄 아세요?”
“알다 뿐입니까? 우리 오 주임이 관상으로 직급 줄 세우면 여기 K시 시장일 겁입니다. 시장.”
고맙게도 조경철의 칭찬이 나왔다. 그 또한 경도의 계산이었다. 그래서 그가 가까이 다가온 후에 작업에 들어갔던 것.
“조 기자님도 오 주임님에게 관상 보셨습니까?”
최현배가 물었다.
“봤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이건 아주 대박 족집게더라고요.”
“그럼 아까...”
최현배가 경도를 돌아보았다. 사업가답게 눈치가 빨랐다. 조금 전 경도 눈치가 자연스럽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
“내 관상 안 좋습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다들 용하다 하니 말해보세요. 좋은 점괘 나오면 복채로 민원실에 피자 10판 쏘겠습니다.”
“실은...”
“안 좋군요. 어쨌든 말해보세요.”
“그럼 이리 좀...”
경도가 최현배를 나무 아래로 끌었다.
“뭐가 됐든 서두릅시다. 나 계약 건 때문에 시간 없거든요.”최현배가 시간을 거듭 확인했다.
“요 며칠 새 큰 거래 같은 거 터졌죠?”
“그런 것도 나옵니까? 내가 사업운이 트이면서 큰 건 하나 잡았습니다.”
최현배 얼굴이 밝아졌다.
“죄송하지만...”
침을 넘긴 경도가 뒷말을 이어놓았다.
“그 거래에 대형 관재수가 붙을 것 같습니다.”
“대형 관재수?”
최현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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