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1 > (15/245)

<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1 >

“오 주임.”

센터에 들어선 엄 팀장이 두 팔을 벌렸다. 경도는 2시간의 연가를 마치고 출근해 있었다.

“으아악, 나의 애정하는 오 주임.”

엄 팀장이 경도를 끌어안았다.

“왜 이러세요?”

경도가 정색을 한다.

“아무튼 나 좀 보자.”

엄 팀장은 싱글벙글 뒷문으로 나갔다.

“능력자시네? 감사실 간 거 잘 된 모양인데?”

수급자 입력 작업을 하던 은빛이 쫑알거렸다.

“그래서, 도와줄 거예요, 말 거예요?”

경도가 재촉했다. 점심시간에 예정된 무료급식봉사 때문이었다.

“나 오늘 점심약속 있는 거 알면서 왜 그래?”

은빛이 까칠하게 쏘았다. 두 살 차이지만 임용년도도 한 해 빠르고 직급도 하나 높았다. 일병 군기는 상병이 잡는다고 선배 행세를 똑 부러지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이 주임님은 오늘 무료급식소 방향이 길하거든요.”

“장난해?”

은빛이 콧등을 구겼다.

“아쉽네요. 그럼 배 주임님이 좀 도와주세요. 한 시간 정도면 될 겁니다.”

경도의 SOS가 방향을 틀었다.

“나는 손목터널증후군이라 무거운 거 못 드는데.”

“그런 건 저하고 팀장님이 다 맡아서 할 게요.”

“팀장님이 가신대?”

“기분 좋은 거 보니 가지 않을까요?”

“좋아. 팀장님 가시면 나도 콜이다.”

민지의 반승낙이 떨어졌다.

“오 주임.”

청사 뒤편으로 나오자 엄 팀장이 기습 포옹을 날려 왔다.

“아, 진짜... 누가 보면 트랜스젠더인 줄 알겠습니다.”

“알면? 요즘 새로운 이슈는 전부 수용해야 꼰대 소리 안 듣는 거 아니야?”

“말로만요?”

“아무튼 오 주임, 이거다, 이거.”

엄 팀장이 쌍엄지를 세우고 흔들어댔다.

“이거나 받으세요.”

경도가 핸드폰을 건넨다.

“히야, 핸드폰... 그래서 우리 오 주임이 내 핸드폰을 가져간 거였어. 그렇지? 인사팀장 관상에서 액운을 발견하고... 이게 나한테 있으면 내가 인사팀장에게 전화하거나 받을 건 100%였고.”

“아침에는 엄청 핏대 올리셨다면서...”

“사람,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나 같은 소인배가 천기를 읽는 오 주임의 깊은 뜻을 어떻게 알겠나.”

“저 두드러기 나겠습니다.”

“아무래도 좋아. 내가 얼마나 십겁을 한 줄 아나? 진짜 천운이었네. 인사팀장, 하루 아침에 파면 위기에 처하는 줄도 모르고 그 배에 타려고 했으니...”

엄 팀장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한 일이었다.

“다행이죠?”

“다행이다마다. 지옥에서 생환한 기분이라니까.”

“그럼 그 기분으로 저랑 무료급식 배식봉사 나가세요.”

“배식봉사?”

“코로나 19로 중단되었던 무료중식봉사가 오늘부터 재개되잖아요?”

“그, 그게 오늘인가?”

“예.”

“그거 우리가 꼭 나가야하나?”

“내일 모레가 이장단 새 회장 선출인 거 아시죠? 글피는 부녀회장 선거고요.”

“그야...”

엄 팀장이 말을 얼버무렸다. 이장단 회장과 부녀회장은 총회에서 뽑는다. 엄 팀장은 아몰랑 모드다. 어떻게는 시청의 알짜 부서로 돌아갈 궁리만 하는 까닭이었다.

“죄송하지만 팀장님, 여기가 천이궁이라고 전근이나 이사운 같은 거 보는 곳인데 당분간 이동 운은 없습니다.”

경도가 엄 팀장의 이마 끝을 가리켰다. 

“그래에?”

엄 팀장이 한 풀 죽는다. 관상 용어는 모르지만 영빨을 알고 있다. 그러니 군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장기전인데 팀장 능력 인정 받으시려면 이장단, 부녀회장단과...”

뒷말은 하지 않았다. 엄 팀장이 모를 수 없는 팩트들이었다.

“그러자면 급식소가 아니라 이장단 회장에게 투자를 해야지?”

“김재웅 이장님이 이번에 회장 됩니다.”

“......?”

경도의 단언에 엄 팀장 눈빛이 튀었다.

“정말이야?”

“저도 이제부터 제대로 업무실적 좀 쌓을까 해서 이장단 사진 전부 뒤져서 관상 확인했습니다. 이번 총회에서 회장 바뀝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소강이긴 해도 완전히 종식된 건 아닌데? 거기 급식 먹는 사람들 중에는 중국교포 가정도 많고.”

“마스크 KF94로 두 개 겹쳐 드릴 게요.”

“오늘 긴장 좀 했더니 몸이 으슬거리는데...”

“팀장님, 어제 인사팀장님 만나려한 거 투자 때문이었죠?”

“......”

오늘 가시면 두 가지 투자가 될 겁니다.”

“두 가지?”

“첫째는 김재웅 이장님과 케미를 조성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시장님께 어필하게 되는 거죠.”

“시장님이 급식봉사 정도에 눈길 주실 것 같아?”

“신문에 보도가 되면 다르죠.”

“말도 안 돼. 그 정도로는 지역신문에도 안 실려.” 

“하나로일보 기자가 온다고 했는데도요?”

“조경철 지국장?”

“예.”

“그 싸가지가 웬일로? 시청 과장이나 우리 읍장님이 부탁해도 잘 안 오는 인간인데?”

“제가 시간 연가 내고 가서 부탁 좀 했습니다. 기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요.”

“조 국장을 구워삶았다고?”

“예.”

“관상으로?”

“어차피 기브 앤 테이크니까 작은 천기 하나 짚어줬죠. 상괘가 맞으면 취재해서 보도 좀 해주고 틀리면 반대로 비판 보도로 내달라고 했더니 딜을 받더군요.”

“그럼 비난 기사가 나갈 수도 있는 거네?”

“그러니 더 익사이팅 하지 않나요.”

“......?”

“그런 표정은 좀 섭섭한 데요? 팀장님 관상 보니까 이마의 관록이 좋지 않아서 공덕으로 명예운 좀 실어드리려는 건데.” 

“그래? 그렇다면 가야지.”

엄 팀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관상의 힘이었다.

“우와.”

소식을 들은 민지가 경탄을 자아냈다.

“우리 팀장님, 이제 오 주임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시네?”

그녀도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저도 도와드릴 게요.”

우석도 자원을 했다. 

시작이 좋았다. 

정원 여섯에 네 명 참가. 무려 7할 가까운 참여율이었다.

‘하나로일보...’

출장 차의 페달을 밟으며 생각했다. 조경철을 떠올린 건 늦은 밤이었다.

도내에는 10여 개의 일간지가 난립하고 있었다. 일부는 시청에 준강제구독권도 행사하고 있다. 관행이었다. 

대략 몇십 부씩 구독하지 않으면 눈 밖에 난다. 깜도 안 되는 내용을 기사화해서 엿을 먹이는 것이다. 신문의 위세는 전 같지 않지만 공무원들에게는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해악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혜로운 공무원들은 역이용한다. 담당업무를 미담기사나 홍보기사화 한다. 다들 도토리 키재기의 공적들이다 보니 공적조서 올릴 때 짭짤하게 먹혔다.

읍장을 위시해 시청의 고위직들도 호의적이었다. 이런 저런 매체에 시의 사업이나 미담이 나가면 각종 평가에 도움이 되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용포읍은 악몽의 복마전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미담이나 우수한 업무조차 무시되기 일쑤였다. 더구나 하나로일보는 경기권역의 언론사 중에서 1-2위를 다투는 전통지. 중앙언론사는 아니지만 K시에서는 무시못할 수준이었다.

출근하면 엄 팀장의 안달에 시달릴 걸 알고 있던 경도였다. 그렇기에 시간 연가를 달고 조경철 지국장을 만났다.

<대기만성>

인사팀장의 참사를 읽고 보니 황 할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초대형실수로 잘못 디딘 공무원 생활이었다. 그러나 정년 퇴직은 아직도 30여년이나 남았다. 

멀리 보려면 꼬리표부터 떼는 게 옳았다. 그러자면 업무능력이 중요하다. 관상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으니 경도의 직렬은 관상서기보가 아니라 행정서기보니까.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뭐 어때서?

공시날, 답안 밀려 쓰기만 하지 않았다면 K시의 수석이었다. 자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주눅에 대형사고가 겹치면서 자신감을 상실한 것 뿐이다. 수험생 때의 자신감을 가져온다면 누구에게도 꿀릴 게 없었다. 특별한 관상 스펙이 장착된 몸 아닌가?

<행정능력>

그 본연에 관상을 더해야 해피한 공직생활에 승진까지, 두 마리 토끼 사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용포읍은 모든 지표가 최악이다. 상상불허의 악성 민원인도 많았다. 역으로 보면 업무능력을 부각 시키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되면 경도의 이미지는 완전한 반전을 이룬다. 인사이동 때 서로 안 데려가려고 미루던 오경도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쟁탈전을 펼치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일단은 따까리내지는 뒤처리 팀으로 격하된 맞춤형복지팀의 위상재건이 급선무였다. 그런 다음에는 용포읍 전체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다.

악성 민원인 정리는 필수였다. 출소자라는 빌미로 은근한 협박을 일삼는 기동칠과 국보급 진상 나순애만은 ‘목숨 걸고’ 회개시키고 싶었다. 민원을 빙자한 그들의 횡포는 가히 역대급이었으니 전임자 한 사람이 정신과 치료까지 받을 정도였다.

다행히 조경철에게도 가려운 곳이 있었다. 그걸 긁어주는 옵션으로 받아낸 보도약속이었다.

<실적홍보>

공무원에게는 중요한 덕목(?)이다. 경도는 그걸 잘 못했다.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부풀리는 게 쑥스러웠다. 그렇기에 자기평가에도 ‘수(秀)’ 한 번 적어내지 못했다. 그 생각도 바꾸기로 했다. 공직사회는 특히 공적조서에서는, 낯이 뜨거울 정도로 자화자찬이 필요한 곳이었다.

싸목싸목 간다.

경도의 구상이었다.

당장은 코앞으로 닥쳐온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이었고 또 하나는 경도의 심정지를 유발한 애달픈 수급자 안재홍과 그 딸이었다.

문화누리카드 사용실적은 3주 후에 마감이다. 도 평가는 전국 평가보다 세 달이나 앞서 끝난다. 용포읍은 도에서 꼴찌를 달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청 주관부서에서 쪼여가면서 주간 보고나 하고 있던 차.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니 3주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카드 한도라야 9만원에 불과한 것이다.

‘내 힘으로 해보자.’

출근하자마자 관리자 모드에서 사용액을 확인하고 엑셀로 변환해 리스트를 뽑았다. 충전액의 절반도 안 쓴 사람들이 절반을 넘었고 심지어는 한 푼도 안 쓴 사람도 천 명에 가까웠다. 리스트 용지의 볼륨이 엄청나지만 기죽지 않았다.

‘까짓 거.’

관상 덕분이었다. 의욕이 불 타는 것이다.

마구마구.

“오 주임 대단하네? 진짜 엄 팀장을 모시고 오고.”

급식 준비를 지휘하던 김재웅 이장이 콧김을 뿜었다.

“코로나로 폐쇄된 후에 첫 배식 아닙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엄 팀장의 립서비스가 작렬했다. 엄 팀장은 언변이 괜찮다. 부하 직원 갈구는데 쓰지 않는다면 경쟁력이 있는 장점이었다.

이장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사진에서 보이던 이마의 서광이 더 밝아보였다. 이런 기세라면 이장단 회장이 되는 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급식소 줄은 굉장히 길었다. 슬쩍 관상들을 보니 식록에 푸른 물들이 들었다. 배곯는 입술의 특징이다. 허기 앞에는 장사가 없었으니 저 위대한 공자도 한 때 식록에 푸른 물이 들은 적이 있었다.

“늦었습니다.”

급식소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쌀을 지원하는 최현배 사장이 도착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시원하고 눈썹도 윤택했다. 역시 어질고 덕이 있는 관상이다. 앞치마에 토시, 모자 등으로 위생적 중무장을 할 때 조경철의 보도차량이 다가왔다.

“조경철 차잖아?”

앞치마를 두르던 민지가 긴장을 한다. 그녀는 조경철과의 딜을 모르고 있었다.

“걱정 안 해도 되요. 최소한 오늘만큼은 우리 편인 거 같습니다.”

경도가 웃었다. 

차에서 내리는 그의 코를 본 것이다.

< 존재감 리뉴얼 중이에요-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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