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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로 먹으면 체해요-3 > (12/245)

< 날로 먹으면 체해요-3 >

관운은 누가 뭐래도 이마다. 

관록을 지나 명궁, 중정, 인당의 미간 부위에서 답이 나왔다. 미간이 엷은 핑크색이다. 핑크빛 서광이 코 옆의 법령까지 내려갔다. 보통 30세까지로 불리는 중정의 청년기 운이 대박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귀에 서린 윤기까지 비비 크림을 바른 듯 곱다. 말하자면 태술의 관운은 지금 폭발적 상승세였다.

‘어흑.’

탄식은 지역 토호의 자제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불공평 때문이 아니었다. 관상의 위력 때문이었다. 아빠 찬스에 이어 엄마 찬스까지도 가능한 태술이었다. 그게 관운에서 적중되고 있으니 유구무언일 뿐이다.

‘이러다 이 놈이 K시 최연소, 최단기 서기관 기록 세우는 거 아님?’

쓰린 예감에 브레이크를 밟아 준 건 코였다. 산근 아래가 살짝 무너졌다. 중정이 시작되는 부위다. 중년이 되기 전에 위세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잘 나가던 기세가 무너진다면 원인이 있을 수 있었다. 그걸 찾아냈다. 얼굴의 부조화였다. 이마에 현혹되어 전체 조화를 간과한 것이다.

‘그렇지.’

관상의 궁극은 심상이다. 강자에게 비비고 약자를 밟는 태술의 성격은 직장동료로 최악이다. 그 위로가 되었으니 얼굴상이 좁았다. 머리통 옆도 볼록하다. 턱 역시 대충 보면 V라인의 조각상 같지만 관상학적으로 보면 넘치게 뾰족하다. 허영심에 더불어 인색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상이었다.

코의 기세는 눈에도 투영되고 있었다. 눈동자에 붉은 기색이 물들기 시작하니 비난의 반영이었다. 

감사실 간판 앞세워 쥐꼬리만 한 권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다녔다. 비난이 쌓이면 결국 폭발적 관운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다.

“좀 나간다고 막 조지고 다녔구나? 동기된 정으로 충고하는데 좀 베풀면서 살아라.”

“개취 한 번 독특하네. 니가 지금 나 충고할 상황이냐?”

“뭐 그렇다고.”

“충고는 내가 하마. 사표 안 내려면 눈치 좀 챙겨라. 이번에는 처음이라 넘어가지만 다음에 또 비슷한 일 벌어지면 그냥 안 넘어간다. 난 우리 시도 그렇지만 우리 기수 물 버리는 인간은 용서 못하거든.”

“용서?”

“아직 9급 달고 있다 보니 감 완전히 떨어졌나본데 나 7급 행정주사보야. 거기다 너처럼 공무원 품위 손상 시키는 인간들 털고 다니는 청렴조사 담당이고.”

태술의 목에 힘이 들어간다. 입가에는 냉소가 가득하다. 마무리로 가소롭다는 눈빛을 남기더니 손을 들어 보이고 멀어졌다.

[감사담당관실]

자치행정과와 함께 꿀보직으로 꼽힌다. 그렇기에 승진의 지름길로 통한다. 그렇기에 태술은 임용 4년도 되지 않아 7급을 달았다. 전도양양하다 보니 태술의 머리에는 벌써 6급 팀장 자리가 들어와 있을 수도 있었다. 그 다음은 사무관이고 그 다음은 국장이었다.

그런데...

경도의 마음은 신기하게도 편했다. 전에는 쩔고 또 쩔었던 루저의 피해의식들. 그 또한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

태술의 운명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신규로 임용되었을 때 가장 큰 애로는 사람과의 관계였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던 선배는 빌런이었고, 빌런인 줄 알았던 선배 중에는 좋은 사람이 있었다. 태술도 그렇다. 연수원에서는 그렇게 싹싹하더니 요직에 발령 받기 무섭게 건방을 떨기 시작했다.

“너희가 감사실 힘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말 한 마디에도 우월감이 빠지지 않았다.

민원인들도 그랬다. 애걸복걸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찬바람 몰아칠 듯 하다가 수긍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사람 대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상대를 리딩할 수 있는 데에야 무엇인 겁난단 말인가?

“오경도.”

태술이 멀어질 때 또 다른 동기가 다가왔다. 자치행정과 조직팀의 마지웅이었다.

“몸은 어때?”

그가 물었다. 태술과는 다른 눈빛이었다. 지웅은 서울의 Y대를 나왔다. 동기들 중에는 스펙이 가장 좋다. 그러나 가난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 빽 같은 게 없었다. 

서울 소재의 대기업에 합격했지만 보험 삼아 보았던 K시 공무원을 택한 것도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병환 중이었으니 노년의 할아버지를 돌보려는 것이다.

“보다시피.”

“미안해. 병원에도 못 가보고... 읍 사무실에도 한 번 간다는 게... 요즘 할아버지가 계속 안 좋아서...”

“괜찮아. 잠깐 무기력했던 건데 뭐.”

“대략 들었는데 잘 해결됐어?”

“응.”

“사람들 참... 누가 잘못 되면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잡아먹으려고... 공무원, 알고 보니 살벌한 조직이더라?”

“이하동문.”

“커피 한 잔할까?”

“아니야. 우리 팀장님 금방 나오실 거야.”

“그럼 다음에 보자. 나도 국장님께 보고드릴 게 있어서.”

“힘내라. 할아버지는 두 달 쯤 지나면 일어나실 거야.”

“그랬으면 좋겠지만 니가 의사냐?”

“예언, 두 달 후에 맞으면 한 턱 쏴라.”

지웅의 등을 밀었다. 예언의 소스는 그의 명궁에서 나왔다. 어두운 빛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지웅의 운은 이제 태술보다 더 강한 상승세로 향하고 있었다.

“......!”

순간 기막힌 생각 하나가 머리를 치고 갔다.

대박운도 대운 앞에서는 초라해진다.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통령의 기상을 타고 난 사람들도 더 큰 기상을 만나면 고비를 마시게 되는 것이다.

지웅 덕분에 태술을 엿 먹일 방법을 깨달았다. 태술의 브레이크를 앞 당기려면 그 인간 앞에 상승운이 더 강한 사람을 붙여놓으면 될 일이었다.

‘역시 관상.’

이렇게 되면 시건방을 떠는 태술도 경도의 손 안에 있는 셈이었다. 

**

같은 시각, 엄 팀장은 자치행정과 계단참에서 인사팀장 강계욱을 만나고 있었다.

“오경도?”

음료수 뚜껑을 따던 그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알아?”

“왜 모르겠습니까? 출장 나갔다가 사망한 민원인 옆에서 잠들었다고 소문이 자자한 판에?”

“아무튼 어때?”

“글쎄... 이번 후보자 명단에는 없던 거 같던데요?”

“좀 넣어줘. 그 친구 동기들 중에는 7급 단 사람도 여럿이야.”

“그거야 그 기수들 중에 빵빵한 애들이 많잖습니까? 권태술, 마지웅, 염정아...”

“그 후배 기수들 중에서 추월한 애들도 여럿이고.”

“그럼 이번에 근평이나 잘 줘보세요. 다음 정기 인사 때 한 번 보죠.”

강계욱이 선을 그었다. 엄 팀장에 비해 나이는 어리지만 그는 K시 미래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엄 팀장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아, 진짜 이럴 거야? 내가 처음으로 청탁하는 건데.”

“그거야 잘 알죠. 엄 팀장님이 부하직원 챙기니 놀랍기도 하고요.”

“그럴 능력 되니까 그러는 거야.”

“좋습니다. 그럼 그 친구 공적이 뭡니까? 긴급복지 잘 해서 총리상이라도 탔나요? 아니면 대통령상?”

“내 입장에서는 그 것보다 더한 공적을 올린 친구야.”

“뭔데요?”

“인사과 실세니 내 소문 들었지?”

“......”

“그 민원, 우리 오 주임이 해결책을 주었어.”

“민원유발자로 소문난 변방의 9급이 무슨 재주로요?”

“관상.”

“관상? 얼굴 보는 관상요?”

“그 친구가 관상을 기 막히게 보거든.”

“장난하십니까? 저 들어갑니다.”

강계욱이 돌아서자 엄 팀장이 그 팔을 잡았다.

“농담 아니거든. 나 뿐만 아니라 악성 민원인 해결에다 심지어는 홍상선 의원도...”

“......?”

엄 팀장이 속삭이자 강 팀장이 걸음을 멈췄다.

“사실입니까?”

“그렇다니까. 이건 아주 족집게가 아니라 현미경이야, 고배율 전자현미경.”

“말도 안 되는...”

“못 믿겠으면 한 번 시험해 보든지.”

엄 팀장이 넌지시 자극을 했다.

“......”

강 팀장이 생각에 잠겼다. 실은 그도 초고속 사무관 승진을 노리고 있었다. 그걸 바라고 꿰어 찬 인사팀장이었다. 

그러나 세상 일은 알 수가 있다. 안전빵이 되려면 현 시장 체제 하에서 과장을 달아야했다. 그 미래는 인사팀장에게도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좋아요. 지난번 사건 얘기도 본인 입으로 들어볼 겸, 엄 팀장님 체면을 생각해서 한 번 보기는 하지요.”

강 팀장의 수락이 나왔다.

“오케, 그럼 저녁에 소주나 한 잔 꺾자고.”

엄 팀장이 다짐을 놓고 돌아섰다.

“저녁 약속요?”

차 안에서 경도가 물었다.

“그래. 어렵게 잡은 약속이니까 관상이나 슬쩍 봐주라고.”

“싫습니다.”

환희에 찬 엄 팀장을 경도가 단칼에 잘라냈다.

“오 주임.”

기겁을 하는 엄 팀장.

“제 관상 아무렇게나 볼 수 있는 거 아닙니다. 아무나 보는 것도 싫고요.”

“인사팀장은 아무나가 아닐세. 나보다 열 배는 나은 친구야. 오 주임도 도 전입가거나 다른 시도로 갈 거 아니면 인맥 만들어야지? 인사팀장 정도면 괜찮아. 그 자리가 국장 코스의 하나거든.”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경도는 단호했다.

“오 주임.”

엄 팀장이 소스라쳤다. 이미 잡아놓은 약속이었다. 여기서 취소가 나오면 실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낭패다. 경도를 앞세워 자신을 어필하려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다.

“오 주임 생각을 묻지 않은 건 사과하네. 하지만 어렵게 정한 약속이니 한 번만 만나주게.”

엄 팀장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럼 이번 한 번만입니다.”

그제야 경도의 경직이 풀렸다. 엄 팀장에 대한 강력한 경종이었다. 승진 운동에 도움을 주는 것을 빙자해 경도를 앞세우는 걸 차단하는 것이다. 관상을 봐도 경도가 본다. 그 대상도 약속도 경도가 정한다.

<당신 마음대로 숟가락 얹지 마.>

룰을 각인 시킨 것이다.

그러나 인사팀장과의 교분은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 못 이기는 척 실리를 취하는 경도였다.

“고맙네, 오 주임.”

엄 팀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경도의 추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 날로 먹으면 체해요-3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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