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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로 먹으면 체해요-2 > (11/245)

< 날로 먹으면 체해요-2 >

차려준 밥상이었다. 서두를 게 없었다. 명작에는 본래 오랜 시간이 쌓이는 법. ‘시장’감으로 회자되는 홍 의원의 관상을 싸목싸목 뜯어냈다.

관상은 어떻게 보는가?

황 할아버지의 관상도감 ‘싸목도감’을 불러냈다. 책 제목이 없으니 그렇게 지어버렸다. 할아버지의 관상법은 직관으로 시작한다. 상정으로 불리는 이마에서 하정의 턱까지 한 눈에 훑는 것이다.

이마에서 눈썹까지가 상정, 거기서 콧날까지가 중정, 중정에서 목까지를 하정이라 부른다. 상정은 30세까지의 운을, 중정은 50세, 하정은 노년기인 70세까지의 기세를 볼 수 있다.

남자는 ‘눈’이오, 여자는 ‘입술’이라지만 일단 눈을 중시한다. 관상의 궁극을 심상으로 치는데 그 마음의 창이 눈이기 때문이었다. 눈은 주로 청년기의 운을 좌우한다.

다음은 무엇일까?

싸목도감에서는 코를 지목한다. 코는 얼굴의 중심이자 한 인간이 살아갈 운명이자 장년기의 운을 반영한다. 중심이 허무하고서야 재산도 건강도, 명예도 강건할 리 없었다. 코의 이상적인 형태는 ‘매끈하고’ ‘반듯’하게 뻗어 끝이 둥그스레하면서 도톰하게 마감되는 형태다. 이런 코가 재벌이거나 재벌에 가까워지는 관상이다.

그 다음이 눈썹과 눈의 안광이다. 눈썹은 형제덕, 부부덕을 반영하며 일직선 형태가 이상적이다. 초승달 모양도 좋으니 인복을 누린다.

의외로 광대도 중요하다. 광대뼈의 기세는 재산을 지키는 문지기로 해석한다. 지나치게 돌출되거나 빈약하지 않아야한다. 얼굴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이제 다시 이마를 본다. 이마 가장자리가 수려하면 부모의 은덕을 받은 것이다. 머리가 영리한 어린이들도 여기가 돋보인다. 이 이마의 중심부위가 복스럽게 볼록하면 부자의 상이다.

입은 말년 운의 자리로 재산과 자식운, 건강운에 해당된다. 양쪽 입 끝이 약간 올라가는 듯 힘차게 보이면 귀격이다. 이런 입 모양새는 최고의 관운으로도 꼽힌다.

코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법령, 소위 팔자주름은 수명과 직업운, 지도력 등의 척도가 된다.

마지막으로 귀는 조상운과 함께 성품 판단에 쓰인다. 귀가 후덕하게 생긴 사람은 공덕을 잘 베풀기 때문이다. 얼굴보다 색이 희고, 앞에서 보았을 때 잘 보이지 않는 귀를 귀격으로 꼽는다.

이를 종합해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 균형 잡힌 얼굴

* 수려한 이마

* 가늘면서 길고 깊으며 맑은 눈

* 눈보다 길고 힘이 엿보이는 눈썹

* 매끈하고 반듯하게 뻗어나가 끝이 둥그스레하면서 도톰하게 마감된 코

* 얼굴의 중심보다 위에 위치하면서 귀의 아래 부분을 꽉 채우고 정면에서 잘 보이지 않는 귀

* 잘 여문 듯 도톰하고 입꼬리가 올라간 주홍빛 입술

* 둥그렇고 넉넉한 턱

전체 파악이 끝나니 부분으로 들어간다. 얼굴의 각 부위에는 나이별 기세가 바둑판처럼 정교하게 반영되고 있다.40대와 50대, 60대의 운은 주로 뺨과 코, 입 주위에 몰려있다. 해당 부위를 관통하면 그 해의 기세를 알 수 있다.

집중이다.

경도의 눈빛은 확대경 이상으로 유년운기부위를 스캔해 나갔다.

‘역시.’

싸목싸목 뜯어내니 과연 귀격이다. 최고라고 하기엔 아쉽지만 드물게 좋은 관상이었다.

이제 관운으로 들어갔다. 

이마는 수려하다. 명궁과 중정의 기세가 코의 산근까지 이어지니 이름도 떨치고 부귀도 누릴 상이다. 목소리까지 맑은 편이라 K시의 시장 정도는 문제 없는 격이었다.

공무원이 되려면 얼굴에 맑은 기운이 있어야한다. 9, 8, 7급의 하위직이야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고위직은 그렇지 않았다. 보다 높은 관직으로 가려면 관운이 따라야한다. 그런 자리에는 기세가 필요했다. 기세에는 때가 있다. 그 ‘때’와 관상, 천기가 일치할 때 고위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관상=때=천기>의 공식이 성립한다.

“혀를 좀 볼 수 있을까요?”

마무리 단계에서 경도가 엉뚱한 요청을 했다.

“혀?”

홍 의원이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예.”

경도는 미치도록 담담하다. 이 순간만은 틈 많은 말단 행정서기보가 아니었다.

홍 의원이 결국 혀를 내밀었다. 

혀도 관상에 포함될까?

당연히 그렇다. 혀는 마음의 등대다. 거짓말에 익숙한 사람은 혀를 봐도 알 수 있다. 혀에 점이 있는 사람이 그렇고 말소리보다 혀가 먼저 나오는 사람이 그렇다. 짧고 뾰족한 혀를 가진 사람도 큰 일을 하기 어렵다.

반면 혀가 강한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오른다. 혀에 세로무늬가 있으면 금상첨화의 귀격이었다.

경도의 눈빛이 홍 의원의 얼굴에서 내려왔다. 상괘가 나온 것이다.

“의원님.”

경도의 입이 느리게 열렸다.

“......”

홍 의원이 촉각을 세운다. 엄 팀장은 아예 절반 정도 굳어있었다.

“지인 분께서 관상에 조예가 깊다고 하셨죠?”

“대략 보는 것 같더군.”

“......”

잠시 홍 의원의 반응을 체크했다. 엄 팀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괜찮네. 재미로 보는 건데 뭐 어떻겠나?” 

눈치를 차린 홍 의원이 천기누설을 허락해주었다.

“전체 상과 관록, 유년운기부위의 기세로 보아 공천은 받으실 운 같습니다.”

경도의 상괘를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엄 팀장이 바로 구미를 맞춘다.

“허헛, 우리 선배도 그러더니 둘이 짠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이 복채... 즐거운 마음으로 본 것이니 거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닐세. 남의 노력을 꽁으로 뺐을 수 있나? 지난번 우리 아들 일도 있고 하니 그냥 넣어두시게.”

“......”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나는 다른 약속이 좀 있어서 말입니다.”

홍 의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공천 확실한가?”

홍 의원이 떠나기 무섭게 엄 팀장이 확인에 들어왔다.

“그런 것 같습니다.”

“복채는 얼마나 들었어?”

엄 팀장이 목을 빼들었다.

“이건 팀장님이 센터 기부금으로 접수하시죠.”

통째로 넘겨버렸다.

“홍 의원이 복채로 준 걸 왜?”

“제가 관운이 박복하지 않습니까? 액땜을 위해서라도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하긴 이거 기부금으로 접수하면 홍 의원도 좋아할 거야. 자기 얼굴 나는 일이니까. 나중에 알면 오 주임에게도 득이 될 테고.”

“팀장님도 득이 되겠죠.”

경도가 정곡을 짚었다. 엄 팀장은 잠시 흠칫하지만 흐뭇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잘 하면 굉장한 투자가 될 일이었다.

“홍 의원이 시장 공천을 받는다... 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아까부터 긴장을 참았더니 방광이 폭발 직전이야.”

“......”

혼자 남은 경도의 시선은 멀어지는 홍 의원의 차량 후미에 있었다.

-공천을 받을 것 같나?

그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귓전에 떠돌았다.

-공천 확실한가?

엄 팀장의 확인도 그 위에 겹쳐왔다.

<시장 공천>

두 사람의 관심은 거기 있었다. 하지만 경도의 생각은 그 다음 단계에 있었다. 선거에서 중요한 건 공천이 아니었다. 그건 필요충분조건에 불과하다. 필수적인 건 공천이 아니라 당선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걸 묻지 않았다. 묻지 않으니 상괘를 주지 않았다.

‘당선...’

경도 입가에 핀 미소는 이내 지워졌다.

“오 주임.”

돌아가는 길에 엄 팀장이 운을 떼고 나왔다.

“시청에 잠깐 좀 들리세. 희망복지팀에 업무가 있거든.”

“그러죠.”

“가는 길에 인사팀에도 들릴 거네.”

“예?”

“이번에 소폭 인사가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더군.”

“......”

“내 운동 하려는 거 아니야. 오 주임도 승진해야지.”“이번에 이 난리까지 쳤는데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근평도 엉망이었을 텐데...”

“험험.”

엄 팀장이 헛기침을 했다. 경도의 폭망 근평의 주범이 그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도 자네 도움 입었으니 신세는 갚아야지. 인사팀장이 서기 때 나랑 같이 근무했던 사람이니 부탁 좀 해볼게.”

“저 마음 비웠습니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튼 그런 줄 알고 조금만 기다리시게.”

시청 정문에 다다랐다. K시의 골칫덩이인 1인 시위와 현수막이 눈을 차고 들어왔다.

<똥간보다 더러운 K시 공무원들은 대오각성하라.>

“저 인간은 아직도 있군.”

엄 팀장이 눈살을 찡그렸다. 현수막 앞에서는 온갖 욕설을 적은 피켓을 든 1인 시위자가 확성기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K시장 물러가라. 용포읍은 자폭하라.”

“대체 언제까지 저럴 건지...”

엄 팀장이 치를 떨며 내렸다. 

시청의 희망복지팀으로 가는 건 기부물품 때문이었다. 누군가 시에 금품이나 물품을 기탁하면 시가 일괄해 읍면동에 뿌린다. 그러나 용포읍이라고 특정하면 그 물품은 용포읍으로 돌아간다. 더러는 기탁자와 수혜자의 직접 연결도 가능하다. 그 수혜자 문제를 협의할 모양이었다.

‘관상...’

엄 팀장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제와 확연히 다른 오늘이었다. 그때라면 엄 팀장이 이런 행동을 할 리 없었다.

[빽] ★★★★★ 

[정치] ★★★★

[아부] ★★★

[청탁] ★★

[운빨] ★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의 줄을 세워보았다. 경도에게는 찾을 수 없었던 승진의 요소들... 그 위에 살며시 ‘관상’이라는 요소를 올려보았다. 별을 몇 개 줘야할 지는 판단이 곤란했다. 

그러나 짜릿한 요소인 것만은 분명했으니 경도를 찬밥으로 보던 사람들의 주목이 그것이었다. 더불어 엄 팀장이 승진운동까지 해주겠다니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없었다.

“어?”

순간 옆에 주차한 차에서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극혐 동기 권태술이었다.

“각서 쓰러 왔냐?”

사이드미러에 기대서서 염장질을 개막 시킨다.

“각서?”

“사표내면 업무상 취득한 비밀에 대한 각서 쓰잖아?”

“사표는 왜?”

“존버해 보시려고?”

“뭐 어차피 버린 몸, 더 버릴 것도 없잖아?”

“멘탈 고렙이네?”

“그러는 너는? 근태점검?”

“누구처럼 대충 일하는 인간들이 넘쳐서 말이야.”

염장질 레벨이 올라간다.

경도의 두 눈이 태술의 얼굴을 조준했다. 잘 나가는 이 인간의 관상은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디 쌍판 견적 좀 내보실까?’

< 날로 먹으면 체해요-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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