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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로 먹으면 체해요-1 > (10/245)

< 날로 먹으면 체해요-1 >

“배 주임님.”

잠시 후에 나온 경도가 민지를 불렀다.

“나?”

아직도 황당한 민지가 경직된 채 대답했다.

“할머니께 설명하셔야죠.”

“설명?”

경도의 말에 바로 울상이 되는 민지.

“괜찮아요. 잠깐 오세요.”

경도가 회의실 문을 가리켰다.

“......”

민지가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놓았다. 할머니의 표정이 조금 전과 달랐다. 야기죽거리던 칼각이 사라지고 외할머니 같은 미소로 변신한 것이다.

“앉아.”

의자까지 권한다. 경도를 바라보자 경도 역시 안심하라는 눈빛으로 화답했다.

“아까 궁금해 하시던 거 설명해 드리세요.”

“......”

“어서요.”

“그게...”

민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어르신들 마다 연금 수령액이 다른 건 사실이에요. 원인은 법적인 증빙 때문이에요. 제도에 빠꼼한 분들 부동산에 은행계좌에 싹 털어서 은닉해두고 월세 들어 살기도 하거든요. 그럼 월세 보조금 받잖아요? 재산 없으니 받을 거 다 받잖아요. 우리도 눈치 까지만 복지직 공무원은 검찰이 아니에요. 수색영장 들이밀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에요. 그분들 상당수는 그냥 거짓말 한 거예요. 자기는 잘나서 찾아먹을 거 다 찾아먹는다고 과시하려고 말이에요. 나이 먹으면 그런 구라 일상으로 까는 분 많잖아요? 그런 건 법으로 제재할 수도 없으니 우리가 어쩔까요? 

옆 지자체와 다른 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거긴 시장이 다르잖아요? 재정자립도도 다르잖아요. 그 수당 받고 싶으면 여기 와서 우리 쫄 시간에 그쪽으로 주민등록 옮기는 게 더 빨라요. 요즘 전입전출하는데 시간 걸리는 것도 아니라는 거 상식이잖아요?

작년 수당이 줄은 건 새로 생긴 수당 때문이죠. 이제 연금이나 수당 많이 타보셔서 아시잖아요? 뭐 하나 올라가면 다른 거 줄여요. 정치인들 조삼모사하는 공약 한두 번 겪어보셨어요? 앞에서 뻥튀기고 뒤에서 조지는 거 그 인간들 주특기잖아요. 우리도 이런 복잡한 계산 안하고 방송에 나오는 대로 드리면 너무 좋아요. 제도가 바뀔 때마다 이거 계산하느라고 밤 새우는 거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대통령 말이에요, 그분이 주란다고 무조건 주는 거 아니에요. 그건 대국민 발표용이고 실제로는 상세한 가이드라인이 내려와요. 우린 아무 힘 없어요. 그 가이드 라인에 맞추는 것 뿐이에요. 아니면 우리가 징계 먹어요.

민지의 설명이었다. 설명을 마치면서도 민지는 놀라웠다. 생떼 민원 넘버 원, 투를 다투는 할머니가 군말없이 설명을 들은 것이다.

“알았어. 내가 좀 심했지?”

오히려 위로 멘트까지 날리신다.

“......”

“이거 받아.”

할머니가 내민 건 비타 50000 음료수였다.

“이런 걸...”

거절하는 민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해가 서쪽에서 뜬 걸까? 이 할머니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마스크 설명은 저 양반에게 들었어. 내가 오해한 거니까 그냥 가져가서 쓸게.”

의자를 밀고 일어선 할머니, 경도에게 인사를 전한다.

“고마워요.”

손을 잡고 애절하기까지 하다.

“오 주임...”

민지는 어안이 벙벙하다.

“기부 물품 정리해야 해서요.”

눈망울이 복잡해지는 그녀를 두고 회의실을 나왔다. 나와 보니 여러 시선들이 경도에게 쏠려있다. 그중에는 엄 팀장과 읍장의 것도 있었다.

“오 주임 말입니다. 지난번 사건이 전화위복이 되었나봅니다. 존재감 별로더니 이젠 자신감이 넘치지 않습니까?”

“그래 보이는군.”

“관상 보셨죠? 어떻던가요?”

엄 팀장이 넌지시 질러갔다.

“끝내주더군.”

 “그렇죠?”

“솔직히 좀 놀랐네. 전문 관상가도 아닌 사람이...”

“무속이라는 게 영빨 받는 시기가 있다지 않습니까? 오 주임은 지금이 그때인 것 같습니다.”

“엄 팀장도 관상점 보았나?”

“아주 심장을 관통하는 짜릿함이었습니다.”

“허헛, 그런 사람이 아직 9급 달고 있으니... 역시 중은 제 머리 못 깎는 걸까?”

“읍장님이 한 번 힘써 주시면...”

“9급 몇 년 차지?”

“햇수로는 5년 차...”

“허헛, 그 직급에서는 똥차로군. 엄 팀장은 뭐했나?”

“......”

“자기 운동만 하지 말고 밑의 직원도 좀 챙겨주시게. 잠깐 고전 중이지만 그 정도 인맥은 되잖아?”

당부를 남긴 읍장이 돌아섰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엄 팀장이 빙긋 웃었다. 9급에서 8급으로 자동승진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5년 6개월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9급들은 3년 안팎이면 8급을 단다. 9급에서 ‘승진 정년’에 가까워지는 건 K시에서도 경도 뿐이었다.

‘저 재주...’

엄 팀장의 계산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번 근평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인사팀에 물밑 작업 들어가면 8급다는 건 가능했다. 불운한 부하직원 구제하는 것이니 폼도 나는 일이다. 마가 낀 9급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경도에게 구세주로 각인될 수도 있었다. 

악연에서 은인으로.

인연 세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엄 팀장의 상상이 훌쩍 미래로 날아간다.

써먹을 곳이 많았다. 저 귀신 같은 관상실력이라면 엄 팀장이 사무관을 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서기관도 가능할 일이었다.

꿀꺽.

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경도를 짤라 버리겠다고 벼르던 엄 팀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요인물 목록 0순위로 고쳐놓았다.

“아, 홍 의원님.”

옥상으로 올라와 핸드폰을 열었다.

<홍상선 의원님>

번호와 함께 이름이 반짝거렸다. 차기 시장으로 유력시되는 홍 의원이었다. 몇 번이나 뺀찌를 맞았기에 전화를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랐다. 경도의 ‘치적(?)’을 앞세워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홍상선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 의원님, 저 용포읍 맞춤형복지팀장 엄낙기입니다.”

보는 사람도 없건만 엄 팀장은 연실 조아리기 바빴다.

“예,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긴장 끝의 통화가 끝났다.

‘후아.’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내는 엄 팀장. 그런 다음 핸드폰을 거머쥔 채 부르르 통쾌한 전율을 떨었다.

‘나이쓰.’

쾌재가 쓰나미로 밀려든다. 마침내 벼르던 점심약속을 받은 것이다.

“마셔.”

민원실로 돌아온 엄 팀장이 경도 책상에 음료수를 올려놓았다.

“웬 거죠?”

“웬 거는? 악성 민원 격퇴한 치하야. 수고했어.”

“팀장님이나 드십시오.”

경도가 음료수를 밀었다.

“나?”

“사실 팀장님이 나서서 수습해야 하는 건들 아닙니까? 그러니 드시고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

엄 팀장은 뜨끔했다. 정곡을 제대로 찔린 것이다. 게다가 경도의 눈빛이 그랬다. 전에는 만만했는데 마주보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아, 사람...”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전 같으면 호통을 앞세우며 쥐 잡듯 짜증을 부렸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오 주임.”

애정 하는 눈빛 공세를 날린다.

“홍 의원님하고 약속 잡혔어. 모레 점심시간 비워두게.”

귓전에 속삭인 엄 팀장이 느긋하게 의자에 앉았다. 그런 다음 핸드폰 카메라로 자기 얼굴을 잡았다. 왠지 모르게 훤해 보였다.

‘저 친구...’

시선이 경도 뒤통수에 꽂힌다.

‘어떻게든 내 사람을 만들어야겠어.’

엄 팀장의 입은 어느새 귀밑에 걸린 채 짤랑거렸다.

“아이고, 의원님.”

지역 유지들이 애용하는 음식점 예약석에서 홍 의원을 만났다. 엄 팀장은 몸둘 바를 몰라했다. 발바닥을 핥으라도 핥을 기세였으니 보는 경도가 민망했다.

“오 주임. 앉으시게”

홍 의원이 자리를 권했다.

“오시는데 차는 안 막혔습니까?"

엄 팀장의 아부가 시작된다.

“오늘은 괜찮더군요. 그나저나 우리 오 주임은 뭐 드시려나? 우리 준서 생각하면 거하게 쏴야하는데 아무 래도 점심시간이다 보니...”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그럼 오늘은 간단하게 쌀국수로 때우고 다음에 또 보자고.”

홍 의원의 오더가 떨어졌다.

“아, 다음 달에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던 유럽 선진탐방 출장 있으시다던데 준비는 잘 되고 계십니까?”

엄 팀장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우리야 뭐 준비할 게 있나요? 의회 사무국 직원들이 고생이지.”

“유럽은 많이 다녀보셨죠?”

“예, 사업하면서 몇 번...”

“저도 한 번 다녀왔는데 비행시간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사지가 뻐근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오 주임...”

홍 의원의 관심이 경도에게 넘어왔다.

“관상을 어떻게 그렇게 잘 보시나? 보아하니 우연은 아닌 것 같고...”

“예, 조금...”

“조금이 아니지. 내 지인 중에 천기득이라고 보는 눈 대신 관상 눈 밝은 사람이 있는데 그 말 듣더니 깜짝 놀라요. 얼굴기색을 그렇게 정밀하게 읽어내는 관상쟁이는 우리나라에 한둘 있을까 말까라고.”

“과찬이십니다.”

“오 주임이 겸손해서 그렇지 관상천재 맞습니다. 읍장님도 인정하는 바이고, 오늘도 골칫덩이 민원의 소란을 관상을 봐주며 무마 시켰거든요.”

엄 팀장이 끼어들며 눈도장을 받는다.

“그래요?”

“그런데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동기들 중에는 7급 단 친구도 있는데 혼자서 9급이지 뭡니까? 의원님이 힘 좀 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관운은 없는 편이군요?”

홍 의원이 웃었다.

식사가 끝나가자 엄 팀장이 슬쩍 옆구리를 찔러왔다. 홍 의원의 관상을 보라는 주문이었다. 떠도는 말처럼 진짜 시장이 될 운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썩은 동아줄인지 출세를 견인해줄 황금줄인지.

‘어서.’

엄 팀장의 눈짓이 거듭될 때였다. 무게를 잡고 있던 홍 의원이 봉투 하나를 꺼내놓았다.

“복채네.”

‘복채?’

경도가 고개를 들자 홍 의원 목소리가 묵직하게 이어졌다.

“다들 다음 시장선거 얘기로 말이 많은데, 어떤가? 내가 시장 공천을 받겠는가? 그냥 재미로 한 번 봐주시게.”

홍 의원이 물었다. 그 역시 궁금한 모양이었다. 

“공천 말입니까?”

“그렇네.”

홍 의원이 얼굴을 바로 세웠다. 하긴 경도도 궁금했다. 많은 사람이 차기 시장으로 꼽고 있는 홍상선 의원... 과연 관상도 그렇게 타고 났을까? 관운하면 일단 이마, 그 이마의 관록궁에 경도의 시선이 꽂혔다.

< 날로 먹으면 체해요-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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