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6 >
“주임님.”
우석이 바닥의 핸드폰을 주웠다.
“야, 오 주임...”
현 주임이 경도를 보며 경련을 한다. 파랗게 질린 채 부들거리는 모습이 발작 직전의 간질 환자처럼 보였다.
“너...”
“어머니 소식이죠?”
“이웃집 할머니가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어제 쓰러진 것 같다고...”
“네에?”
옆의 은빛이 몸서리를 친다.
“빨리 가보세요. 책상 정리는 내가 해드릴 테니.”
경도가 등을 밀었다. 현 주임 어머니는 경북 영주의 고향집에 홀로 산다. 봄에는 취나물, 고사리, 두릅 등을 따고 여름에는 곰취, 가을에는 송이 등의 버섯을 딴다. 그건 팀원 모두가 알고 있었다. 걸핏하면 말린 산나물 강매(?)를 했기 때문이었다.
“팀장님, 저 좀 다녀오겠습니다.”
세올 프로그램에서 연가를 올린 현 주임, 경도를 힐금 바라보고는 민원실을 뛰쳐나갔다.
“오 주임.”
엄 팀장이 경도에게 다가왔다. 관상이 궁금한 눈치였다.
“이번에는 큰 일 없을 겁니다.”
경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오른편 이마에서 내려온 검푸른 사색이 입술에서 멈췄다. 색조가 다소 옅어지는 기세니 목숨을 다툴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우석 씨 많이 먹어라.”
점심시간, 팀장이 턱을 내는 식당에서 우석을 챙겼다.
“주임님이 많이 드세요. 병원에서 나오셨으니...”
경도가 올려준 등심을 다시 밀어준다. 우석까지 데려온 건 경도의 의견이었다. 어차피 5인 예약이었으니 연가를 간 현 주임대신이었다. 엄 팀장은 다소 떨떠름하지만 경도가 끼고 앉아 챙기고 있으니 군말을 못했다.
“다들 많이 먹으라고. 연말부터 기증품 배포와 사각지대 수급자 찾기에 더불어 그 놈의 코로나19 관련물품들 배포하느라 고생 많았어.”
엄 팀장의 치사가 쏟아진다. 그러나 누구도 귀를 기우리지 않는다. 밥을 산다기에 오기는 했지만 제 돈 내고도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엄 팀장이었다.
그건 턱선의 부하궁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부하궁은 턱이다. 턱 아랫 라인인 지각에 각이 서고 푸석해 보이니 인기하고는 담을 쌓은 상이었다. 턱이 빈약하면 입술이라도 두툼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현 주임한테 연락 안 왔어?”
식사가 끝날 무렵, 엄 팀장이 물었다.
“병원에 도착했는데 미주신경성 쇼크인 것 같다고 하네요. 다행히 처치가 잘 되어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월요일 날 출근하겠대요.”
민지가 답했다. 현 주임이 주무 주임이니 그가 공석이면 민지가 주무 주임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다.
“오!”
엄 팀장의 시선이 경도에게 향했다.
“왜요? 그것도 오 주임이 관상으로 맞힌 거예요?”
깨짝깨작 고기를 먹던 은빛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은빛은 고기파가 아니다. 적어도 파스타나 샐러드바 정도는 되어야 수준이 맞는다는 고급진 입이었던 것.
“두 사람도 오 주임에게 잘 보여. 천기를 읽는 사람이니...”
“천기? 풉.”
은빛이 결국 ‘어이’를 뿜었다.
-그런 사람이 왜?
-동기들 다 승진하는데 용포읍 센터에 상한 오리알로 떠밀려 왔나요?
은빛의 헐렁한 미소에 담긴 속내였다.
경도는 웃어 넘겼다.
은빛은 제대로 튀는 공무원이다. 8급 승진자 명단이 공개된 다음 날에는 아담한 BMW320D를 타고 왔다고 한다. 그녀가 근무하던 도시사업과가 뒤집힌 날이었다. 당장 과장이 호출되었다. 하급 공무원의 신분에 맞지 않는다는 구두 경고가 떨어졌다. 원래는 일자리경제과 이동이 예정되었던 은빛의 전보 화살표가 용포읍으로 꺾인 날이었다.
감사실에 불려가서 남긴 은빛의 어록이 또 걸작이었다.
“그 차가 연비가 월등하거든요. 검소 강조하는 공무원에게 딱이지 않나요?”
감사실이 뒤집혔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는 열혈이자 자신감 폭발의 표본이었다.
본가는 강남 초고층 아파트에 아버지는 교장, 어머니는 모대학 교수. 자칭타칭 핵인싸. 그녀의 배경은 몸매나 화장만큼 화려했으니 읍장이나 과장도 돌발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관상은 따로 보지 않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상을 확인할 생각은 없었다. 경도는 이제 그 정도로 여유로웠다.
오후가 되자 수급자들 행렬이 이어졌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는 지역사회의 심장이다. 부자도 오고 가난한 사람도 온다. 건강한 사람도 오고 병자도 온다. 전자는 2층에 마련된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고 후자는 치료 연결이나 알선을 받는다.
센터와 관련된 단체, 모임도 많다. 직능단체의 정기적 및 비정기적 회의도 줄을 잇는다. 기타 지역 유지급들의 후원품 기부행사도 있다.
이럴 때는 플래카드가 필수품이다. 그 앞에 기부물품을 쌓아놓고 기부자와 읍장 이하 간부들이 나와 인증샷을 박아준다. 인증샷 좋아하기로는 신세대와 다르지 않는 것이다.
사회복지업무의 애로는 주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고 나면 변하는 수급자 제도였다. 어찌나 조변석개하는지 담당자들도 헷갈리는 게 많았다. 겨우 익숙해질만 하면 또 법이 바뀐다.
-줘라.
-말아라.
-조금 뺏고 줘라.
짜깁기 춤을 추다보면 필연 민원인들에게 시달리게 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수급자들이었다. 센터가 관리하는 수급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과거에는 저소득이 주 수급자였지만 시대가 변했다. 한시적 실업자를 시작으로 장애인, 결손가정, 독거노인가구 등 셀 수도 없는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어쩌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저 홀로 사망사고에 노출되면 전국의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특급비상이 걸릴 지경이었다.
-나가서 밥 굶는 사람 찾아라.
-관리비 밀린 사람 찾아라.
-아파도 병원 못가는 사람 찾아라.
미친 듯이 볶아댄다.
지자체의 현장 팀은 많아야 두어 명이다. 용포읍은 아파트 개발이 봇물을 이루는 곳이라 인구유입이 많아 무려 10만을 상회한다. 덕분에 읍장의 위상도 높아 시 내에서는 유일하게 국장급이다. 인구가 많으면 민원인도 많으니 ‘정부’님이 회전의자에 앉으셔서 만든 대로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결정적인 걸림돌이 있으니 바로 개인정보보호법이다. 본인들이 말하지 않는 한, 센터의 복지공무원들이 개인의 일상을 체크하는 건 불법이었다.
그래서 도입된 게 야쿠르트 여사님들의 협조다. 이 분들은 가가호호를 누비니 동네 사정을 잘 안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우유가 문 앞에 쌓이면 이상조짐을 알 수 있었지만 이제 우유나 신문구독 가구가 줄어들다보니 대안이 되었다.
다른 방법은 전기나 수도세 등이 있다. 이것들이 오래 연체되면 주민에게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조치에 나서고 있었다.
이것 뿐이면 말도 안 한다.
누가 아파도 맞춤형복지팀, 누가 일자리 잃어도 맞춤형복지팀, 심지어는 누가 며칠 외출하지 않아도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였다.
인력이 딸리다 보니 복지업무에 일반행정직이 투입되는 건 다반사였다. 엄 팀장도 그랬고 경도도 그랬다. 그렇게 낯선 업무에 투입되다 보니 더 골머리를 앓는 것이다.
골머리의 압권은 일방통행의 어르신들이었다. 오늘이라고 별 다르지 않았으니 용포읍 무대뽀 민원 레전드 5인방의 3위쯤에 랭크된 이순분 할머니가 떴다.
“이 마스크 담당자 누구야?”
단골답게 센터에 들어서기 무섭게 목청부터 찢었다.
“담당자님 연가 가셨는데요?”
우석이 답했다.
“대신 일하는 사람 있을 거 아냐?”
우석을 입담으로 몰아붙인다. 늘 벌어지는 루틴대로 약아빠진 은빛이 먼저 자리를 피한다. 민지는 주저하다 할머니의 레이더에 걸리고 만다.
“무슨 일이신데요?”
민지가 물었다.
“전에 나눠준 이 마스크 말이야 이거 불량품이라던데 읍에서 이런 거 나눠줘도 되는 거야?”
“불량품요?”
“내가 아껴놨다가 우리 손주줬더니 그러잖아? 이건 코로난지 콜라인지 중국 병 못 막는다고. 늙은이들은 불량품이나 쓰다 죽으라는 거야 뭐야?”
할머니가 마스크 봉지를 팽개쳤다. 민지가 보니 저소득층 긴급 구제용으로 뿌렸던 황사용 마스크다. 그러나 SNS를 중심으로 KF94가 부각되다 보니 KF80의 유효성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유행도 잡혀가는 상황. 그러나 어르신들이다 보니 이렇게 뒷북 때리는 일도 한 둘이 아니었다.
“이 제품 불량품 아니에요.”
“아니긴, 대학 나온 우리 손주가 그걸 모를까?”
“할머니, 손주님 말씀은 아마도...”
“아니, 나이도 어린 색시가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답이야?”
“......”
“내가 이것 뿐이면 말을 안 해. 복지수당도 그렇지. 우리 옆집 할망구는 나보다 잘 사는데 왜 나보다 수당도 많고 공공근로도 더 많이 해?”
“할머니, 공공근로는...”
“그리고 저쪽 SS시는 토박이 수당이라는 것도 있던데 우린 왜 안 줘? 나라에서 주라는 거 공무원들이 안 주고 있는 거 아냐?”
할머니의 불만은 카더라 통신까지 확장되어 갔다.
“노인연금도 그래. 방송에서는 30만원으로 인상한다고 하던데 그거 준다고 원래 주던 거 깎는 건 뭔 놈의 심보야? 그거 대통령이 알아, 몰라?”
“할머니 그건요. 법에 의해서...”
“법 같은 소리 하네. 대통령이 주라면 주는 거지 읍사무소 공무원이 대통령보다 높아?”
할머니는 무대뽀로 민지를 몰아붙인다. 일선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이 말만 나오면 할 말이 없다. 정부 정책의 구멍이었다. 충분한 설명 없이 인상액만을 부각해 홍보하다 보니 많은 수급자들의 오해를 사고 있었다.
덕분에 이 제도 도입 원년에 기초노령연금 포기각서 받느라 복지직들이 피똥을 쌌다.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되면 기초노령연금은 별 혜택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틀딱의 저주를 받은 것은 물론이오, 업무량 자체에도 눌려 파김치가 되었었다. 그 여파가 아직 남았으니 연금 불만이 나올라치면 부록으로 딸려나오고 있었다.
할머니의 삿대질 공세에 민지는 초토화가 되었다. 원래도 되바라지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고스란히 폭격을 당하는 것이다.
복지업무의 애로가 이것이었다. 개인별로 다른 차별 혜택에 대한 불만이 담당 공무원에게 쏟아지니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었다.
“할머니, 복지수당은요 재산과 소득 실사를 통해서 엄정하게...”
지침에 대해 설명을 할라치면...
“엄정 좋아하셔. 그렇게 엄정해서 이장하고 친한 것들, 체육회장하고 친한 것들은 이것 저것 나눠주나? 며칠 전에도 우리 옆집 할망구는 담요하고 빵 가져와서 자랑질 육시랄 하게 하대?”
호통질이 먼저 날아온다.
할머니는 초강경 기조였다. 담요와 빵은 지역 유지의 기부품목이다. 센터에 기부되는 품목 중에서 소량으로 들어오는 건 담당자의 재량이 용서된다. 어차피 모든 수급자에게 줄 수 없으니 더러 진상 민원인들 입 막는 용도로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튼 이 불량품 좋은 걸로 바꿔줘.”
할머니가 마스크를 민지에게 떠밀었다.
그쯤에서 경도 시선이 엄 팀장에게 향했다.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있던 엄 팀장이 그 시선을 느꼈다.
“흠흠, 할머니.”
별 수 없이 엄 일어선다.
‘바로 지금.’
경도의 카운트다운이 제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 할머니가 주저앉아 곡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주특기다. 생떼로 선공을 날리고는 통곡으로 공무원들의 대응을 무력화 시키는 전법이었다.
“아이고, 분통해라. 영감 가고 혼자 사니 온갖 것들이 사람 무시하네. 나 새 마스크로 바꿔주기 전에는 절대 안 가. 대통령이 와도 안 가.”
접근불가에 대화불가.
생떼 만렙다웠다. 이 전략에 익숙한 터라 민원실 책상들이 휑하니 비어갔다. 할머니 지칠 때를 기다려 자리를 피한 것이다.
“아, 거참...”
체면치레를 했다고 생각한 엄 팀장도 복도로 나갔다.
난처한 건 볼모가 된 민지였다. 마스크는 모두 배분하고 없었다. 그렇다고 자기 돈으로 사다줄 수도 없었다. 경도가 일어선 건 그때였다.
“어, 읍장님.”
복도에 있던 엄 팀장이 소란을 듣고 내려온 읍장의 손을 당겼다. 경도의 관상마법, 또 한 번 신통력을 발휘할 것인지 궁금했다.
“할머니 손자 분 딱 하나죠?”
경도의 말은 단 한 마디였다. 그러나 엄 팀장의 기대대로 할머니가 관심을 보였다.
“뭣이여?”
“자손 귀한 집에서 4대 독자 외아들에 5대 독자 외동 손주잖아요. 아닌가요?”
경도의 공략이 이어진다.
“그걸... 어떻게 알았대?”
2회 차 공략에서 쌍도끼 눈썹의 살기가 풀리는 할머니.
“아랫눈꺼풀요. 황금 누에가 매달린 상인데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어요?”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눈꺼풀이 복덩이라고 그랬어.”
“맞아요. 이게 할머니 복덕인데 남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누에가 달아나요.”
“잉?”
“아드님 송사 걸렸죠?”
“이잉?”
결정적 한 마디에 독기가 풀려버리는 할머니.
“복덕 잃으면 아드님 패소할 텐데?”
“공무원이 점도 볼 줄 알아?”
“점이 아니라 관상요. 좀 자세히 봐드려요?”
“그, 그럴까?”
할머니가 먼저 반응했다. 천둥치던 분노는 어느새 길을 잃고 없었다.
“이리 오세요. 저쪽에 조용한 방이 있거든요.”
경도가 앞서자 할머니는 두 말없이 뒤를 따랐다. 말 잘 듣는 아이가 따로 없었으니 민지도 넋을 놓을 뿐이었다.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6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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