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5 >
“들어가지.”
읍장실 앞에서 엄 팀장이 말했다. 급 애정하는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새로 산 넥타이를 잘 정돈했다. 첫 발령날 같은 기분이었다.
“오경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보 발령 첫날, 경도 앞에 선 선배 공무원들은 포스가 넘쳐보였다. 몸짓과 반응 하나조차 빈 틈 없는 경륜으로 보였다. 민원을 대하는 태도들 또한 부럽기 짝이 없었다.
‘나도 저렇게 되어야할 텐데...’
등본 하나 떼어주는 것도 살떨림이었던 그 때...
[리뉴얼]
그 단어를 씹어 삼키고 그 초짜의 기분으로 읍장실 문을 열었다.
“엄 팀장.”
관보를 열람하던 읍장이 엄 팀장을 바라보았다.
“우리 오 주임 출근했습니다.”
“어, 그래. 오경도...”
읍장이 대충 경도를 맞이한다.
“아직 어린데 눈앞에서 민원인이 죽으니 충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원래 제가 같이 나갔어야하는데 혼자 보냈으니 제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응?”
돌연한 해명에 읍장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제까지의 엄 팀장 포지션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는 남자 직원이라고 해도 출장은 꼭 2인 1조로 보내야할 거 같습니다.”
“그거야...”
“저희 맞춤팀이 좀 격무 아닙니까?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계절별 취약환자 돌봄에, 게다가 코로나19 여파로 오 주임이 과로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야 말이지만 당시 자가 격리자들 도시락과 생필품 조달 등도 오 주임이 도맡았었거든요.”
“그랬나?”
“이번 일로 사표낸다는 거 제가 책임지고 말렸습니다. 읍장님도 격려 한 말씀해주시죠.”
“어, 그, 그래. 우리 오 주임이 고생하는 건 나도 알지.”
읍장의 음성도 그리 썰렁하지는 않았다.
“기왕이면 한 번 뜨겁게 안아주십시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꼰대들 하고 접촉하는 거 비호감이니까 포옹대신 차나 한 잔 하자고.”
읍장은 포옹대신 자리를 가리켰다.
“마셔.”
차가 나오자 읍장이 찻잔을 들었다. 한 모금을 넘기더니 경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어제 말이야 홍 의원님 아들 장폐색 사건...”
“어, 읍장님도 아십니까?”
엄 팀장이 반응을 했다.
“자네가 관상보고 알려주었다면서?”
읍장의 시선이 경도를 겨누었다. 그제야 읍장이 다소 호의적인 이유를 알았다. 홍 의원 사건 때문인 모양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허헛, 관상을 그렇게 잘 본단 말인가?”
“그냥 취미삼아...”
“그럼 나도 좀 봐주게나. 홍 의원님 말이 아주 족집게라고 하던데...”
읍장의 요청이 나왔다. 읍 행정복지센터로 온지도 반 년 가까운 시간. 그동안 눈길 한 번 안 주던 읍장이었다. 경도로서는 처음으로 받는 관심이었으니 이 또한 관상 덕분이었다.
“그래, 좀 봐드려.”
엄 팀장이 빠질 리 없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
경도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남발은 모자람만 못하는 것이니 천기누설로 심심풀이 땅콩을 대신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게 잘 봐지는 시간이 따로 있어서 말이죠.”
경도가 살짝 비껴섰다.
“아무 때나 되는 거 아닌가?”
읍장 눈에 섭섭함이 깃든다.
“하지만 읍장님 말씀이니 간단하게 봐드리죠.”
밀었던 줄을 다시 당겼다. 그냥 차버리면 감정이 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맛배기 정도는 보여야 하는 것이다. 단 한 방, 그러나 애간장이 녹을 정도의 맛배기...
“팀장님은 죄송하지만...”
Out하셔.
경도가 말꼬리를 흐렸다. 눈치 하나는 달인급인 엄 팀장, 얼굴이 실룩거리지만 경도 말에 따랐다.
탁!
문소리와 함께 경도의 눈빛이 읍장을 꿰뚫었다.
<9급 말단과 4급 서기관>
그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민간 그룹의 신입사원과 이사의 관계와도 달랐다.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공직이었으니 부시장 바로 아래의 국장급들은 9급 서기보에게 있어 그냥 하느님이었다.
그럼에도 경도의 눈빛은 일체의 동요도 없이 읍장을 압도했다. 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모략...’
광대뼈와 눈썹 옆의 관자노리를 물들인 적색 기세가 보였다. 누군가의 모략으로 좌천되었다는 풍문을 관상으로 확인하는 경도였다.
“가장 큰 이슈는 자녀분들 진학이시군요?”
첨예한 얘기보다 자녀 쪽 이슈를 가닥으로 잡았다.
“그게 보이나?”
읍장 몸이 경도 앞으로 기울었다.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관상...’
여전히 신기했다.
관상, 사주, 점, 궁합, 토정비결...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두 번은 듣거나 만나게 되는 단어들이었다. 그러나 이 첨단과학시대에 그것에 얽매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경도도 그랬다. 하지만 그건 영험한 능력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대로만 맞춘다면, 누구도 이 위력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눈밑 애교살 말입니다. 관상가들 말로 와잠이라고 하는데 그게 많이 어둡습니다. 얼굴은 좌남우녀라고 하는데 우측 눈빛이 더 어두우니 따님 걱정이 먼저로군요. 혹시 사진 가지신 거 있습니까?”
“허어.”
읍장이 감탄을 터트린다.
“여기 있네.”
핸드폰이 넘어왔다. 한 살 차이 아들과 딸 사진이 나왔다.
“이마가 맑은 데다 눈동자가 샘물 같으니 좁은 땅에서 놀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따님은 해외로 유학을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길게 말하면 품격 깎이니 진액만 추출해주었다.
“유학?”
읍장 표정이 복잡하게 반응했다. 이 또한 경도의 관상이 적중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따님 이마가 넓고 입까지 크니 자기 주장이 쇠심줄입니다. 읍장님이 컨트롤하기 힘듭니다.”
슬쩍 매조지에 들어가는 경도.
“......”
“수학 잘 하시죠? 그길로 가면 대성할 상이니 회계사 공부가 알맞을 것 같습니다.”
갈등하는 읍장에게 대안까지 내밀었다.
“회계사라고?”
읍장은 이제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서 있었다.
<지방서기관 김상국>
그는 사실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공직 30여년 동안 단 한 번도 시청의 알짜부서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두 번의 선거운동에서 암약한 것으로 알려진 오남일에게 밀렸다. 그가 결국 자치행정국장을 차지하면서 사무관 이상을 정리할 때 변방행이 된 것이다.
그 허탈감에 부하 직원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런 까닭에 개인사에 대해 잘 말하지 않고 있었다.
현재 그의 고민은 아들과 딸의 진학이었다. 아들은 문제가 없지만 딸은 유학을 원했다. 공무원으로 평생을 보낸 그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공직의 변화는 느리고 느렸으니 그에게는 아직도 보수와 고지식함이 대량으로 남아있었다.
그 고민을 경도가 콕 집어낸 것이다.
[딸의 성격은 쇠심줄]
[잘 하는 과목은 수학]
[장래희망은 회계사]
딸의 주장이 그것이었다. 미국에 가서 미국공인회계사, 즉 USCPA를 따겠다는 것. 마치 직접 보기나 한 것처럼 집어내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읍장님은 자녀궁이 좋은 편이니 믿고 밀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칼처럼 자르고 일어섰다. 맛배기는 제대로였다.
“뭐 봐드렸나?”
복도의 엄 팀장이 귀를 세우며 물었다.
“팀장님.”
묵직하게 견제구를 날렸다.
“아, 미, 미안... 천기누설이지.”
엄 팀장이 자기 입을 막았다.
2층으로 내려와 안전과장과 팀장들, 행정지원과의 팀장들에게도 인사를 진행했다. 행정지원과장은 병가 중이었으니 팀장들만 만났다. 일부를 제외한 센터 팀장들은 2층 사무실에 몰려 있었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엄 팀장의 일장 설명이 끝나자 경도가 인사로 마무리를 했다.
“고생 많았어.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힘내게.”
사람 좋은 백광서 팀장이 음료 한 캔을 따주었다. 성의가 고마워 그 자리에서 마셨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남기고 1층으로 돌아왔다.
“현 주임, 오늘 점심 내가 쏠 테니까 식당 좀 알아봐.”
현 주임을 호출한 엄 팀장이 목에 힘을 주었다.
“예?”
현 주임이 귀를 의심한다.
“뭐가 예야? 오 주임, 마음 고생 심했을 테니 밥 한 끼 산다는 건데?”
“두당 한도는요?”
“무한.”
카드를 흔든 엄 팀장이 책상으로 향했다.
“허얼.”
옆의 은빛이 신음소리를 낸다. 엄 팀장이 식사를 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위직에게 거의 절대 밥을 사지 않는다. 혹 쐈다하면 뭔가 꿍꿍이 속이 있는 경우일 뿐.
“너 뭐야?”
현 주임이 경도에게 눈빛을 쏘아댔다.
“미안하지만 호칭 교정 좀 부탁드립니다. 팀장님처럼요.”
경도가 이의를 제기했다.
“뭐야?”
“어제 팀장님이 말하지 않았나요? 은빛 씨한테도 주임, 옆 팀 노창봉 씨에도 주임인데 저한테만 야, 너더라고요.”
팀장의 여세를 몰아 실무정리에 들어갔다. 주임은 공무원들의 7급 이하 공무원들의 통칭이었다. 원래는 주사라는 말을 많이 썼지만 주무관이라는 용어가 나온 후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9급에서 7급까지는 대부분 주임의 호칭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아이고, 예, 오 주임님.”
배배 꼬인 목소리의 현 주임이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뭐가 말입니까?”
“우리 팀장님 말이야, 어제만 해도 바지에 끙아 지린 사람처럼 전전긍긍이었는데 오늘은 180도 변했잖아?”
“주임님도 관상 배웠습니까?”
“장난치지 말고.”
“꽉 막힌 운 좀 짚어주었습니다.”
“어제 감사실에서 전화온 건?”
현 주임이 촉을 세웠다. 감사실 전화를 반길 직원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아시네요.”
“그걸 네가 해결해주었다고?”
“......”
“오 주임이?”
“후배 기수에도 치이는 꼴등 찌질이 주제에 어떻게 해결까지 하겠습니까? 힌트만 드렸죠.”
경도도 변죽으로 받아쳤다.
“관상으로?”
“예.”
“헐, 수급자 할아버지 귀신이 제대로 쓰였구나?”
현 주임이 출력물을 들고 일어섰다.
“어머니는 챙기셨나요?”
거기서 슬쩍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도.
“아서라. 나는 그런 거 안 믿는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한 번만 속아보세요. 코로나19 안 겪어봤어요? 초반에 잘 대처했으면 쉽게 끝날 걸 세계적으로 키워버리는 통에 우리까지 뺑뺑이 쳤잖아요.”
“됐거든. 관심 없으니까 내 앞에서는 그런 미신으로 짖지말아라. 짜증난다.”
현 주임은 냉소를 남기고 일어섰다.
‘존심 있다 이거지?’
경도도 더 언급하지 않았다. 천명도 귀가 열린 사람이 듣는다. 주는 복을 차버리면 신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생계지원 신청, 보건의료신청, 장애인지원...’
그간 밀린 업무들을 체크했다. 인간들이 이렇다. 저희들이 연가가거나 바쁠 때는 경도에게 떠넘기던 일들. 경도가 며칠 병원에 있는 동안에 누구도 손대지 않은 것이다.
‘응?’
그래도 기증품 목록과 배포는 제대로 정리가 되었다. 사회복무요원 정우석의 소행(?)이다. 군대에 있어서라면 경도 이상으로 재수 옴 붙은 녀석이다. 디스크로 훈련소를 세 번이나 들락거린 천연기념물이지만 행실은 착하다. 지금까지 보아온 네 명의 사회복무요원들 중에서 최고로 성실했다. 단점이라면 좀 굼뜨다는 것 뿐이었다.
“우석 씨.”
경도가 우석을 부른다. 누구누구 씨는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권장 호칭이었다. 야, 너,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
“땡큐.”
윙크를 날려 고마움을 표했다.
그때 현 주임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예에?”
그걸 받는 현 주임의 눈이 뒤집히는 게 보였다.
툭.
핸드폰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경도가 짚어준 천기의 발현이었다.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5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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