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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4 > (7/245)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4 >

‘후우.’

복도로 나온 경도가 숨을 골랐다. 상괘의 핵심은 사모님이었다. 이 일은 엄 팀장의 운빨로 수습할 수 없었다. 코끝의 붉은 줄이 길어지니 빼박 형옥살이다. 보증서 미비라면 경고장이나 하나 받고 끝날 일. 그러나 봉투까지 받았으니 경찰수사가 들어올 수도 있었다.

사모님 처방을 낸 건 역시 사모님 때문이었다. 몇 번 보지 않았지만 늘 푸근했다. 남편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이다. 복덕이 깊으니 사모님을 내세우면 화해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사모님에게 자백을 해야 한다.

“사모님을 구세주로 생각하고 이실직고 하세요. 하나라도 숨기면 영빨 떨어지니 알아서 하시고요.”

경도의 선언이었다.

해임 아니면 파면 당하고 빵에 가느냐.

마누라에게 개쪽 당하고 정신 차리느냐?

엄 팀장의 선택은?

엄 팀장, 진땀 고민 후에 핸드폰을 열었다. 경도의 관상은 오묘했으니 서두르라는 말에 똥줄이 탄 것이다.

“여보, 난데...”

첫 통화음을 듣고 걸음을 옮겼다.

엄 팀장...

상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개박살 나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기회를 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관상에 대한 실험이었다. 홍 의원에게 던진 상괘는 기막히게 적중했다. 엄 팀장의 관상도 100% 적중했다. 그러나 따져보면 단 두 건이었다. 그렇기에 좀 더 확인하고 싶었다. 이렇게 한 다리를 건너가는 상괘도 적중이 되는 건지...

두 번째는 엄 팀장의 가치 때문이었다. 공직 임용 후에 몇 명의 팀장을 모셨다. 그 중 둘은 고참 팀장이라 퇴임을 했다. 경도는 트러블 메이커로 소문나면서 기피 부서를 전전했다. 

덕분에 인맥을 쌓지 못했다. 알짜 부서에서 근무한 권태술이나 염정아에 비하면 허허벌판 신세인 것이다.

3년 하고도 몇 개월.

짧다면 짧지만 그 안에 느낀 게 많았다. 가장 아쉬운 게 인맥이었다. 공직 생활에서 최고의 아이템을 꼽으라면 바로 인맥이다. 공무원이 되기 전, 경도가 생각한 최상의 아이템은 능력치였다. 막상 들어와 보니 능력은 선택에 불과했다.

사실 엄 팀장은 이제 끈 떨어진 신세다. 그러나 까칠하고 말빨이 세니 과장과 국장들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편파적인 게 문제지만 자기 라인이라고 생각하면 확실하게 챙겨도 준다. 그렇기에 경도로서는 이용가치가 있었다.

지금껏 당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했다. 절대 불변의 아킬레스건을 잡았으니 바람막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모님을 내세운 상괘가 먹혔을 때의 일이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경도는 잃을 게 없었다. 어떻게 보아도 손해볼 것 없는 장사였다.

“야, 오경도.”

짐을 제자리에 돌려놓자 현 주임이 턱짓을 했다.

“왜요?”

“너 귀신들렸냐?”

“뜬금 없이 웬 귀신요?”

“너야말로 뜬금없이 웬 관상이야? 너 미신 같은 거 비호감이었잖아?”

“과거보다 현실이 중요하죠.”

“현실?”

“예.”

“아네? 그럼 현실적으로 니가 누구 밑이냐?”

“공무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나 지자체의 사무를 위임 받아 처리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경도가 받아쳤다. K시의 불량 호랑이로 소문난 엄 팀장도 눌러놓은 마당이었다. 그 아래의 늑대 정도는 겁도 나지 않았다.

“너 아직 아프구나?”

“천만에요. 아픈 건 주임님 어머니 같은 데요?”

경도가 변죽을 울렸다.

“뭐야?”

“이마에서 내려온 실금이 코까지 내려왔거든요. 이마는 어머니 아버지를 상징하는데 오른쪽 이마의 월각에 검푸른 기운이 깃들면 어머니에게 우환이 닥친다는 신호입니다. 퇴원 기념으로 알려드리는 거니까 주임님 현실부터 챙기시죠.”

그 말을 남기고 민원실을 나왔다.

“야, 내일 출근할 때 진단서 받아와라.”

현 주임의 목소리가 따라 나오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이마?”

현 주임이 핸드폰 카메라를 열었다. 열심히 비춰보지만 실금 같은 게 보일 리 없다.

‘저 자식 저거 귀신이 쓰여도 단단히 쓰였구만.’

현 주임은 냉소를 뿜을 뿐이었다.

다시 나온 밖은 아까와 달랐다. 시야가 한없이 청명한 것이다. 

“안녕?”

센터 앞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바리스타를 하는 인희 때문이다. 바로 앞이라 센터의 소식을 훤하게 꿰고 있으니 경도가 입원한 걸 모를 리 없었다.

와 친하기 때문이었다.

“어머, 경도 옵빠.”

“나 살아서 왔다. 아이스 모카나 한 잔 잘 말아봐라.”

“괜찮아요?”

“뭐가?”

“오빠가 민원인 죽여서 구속되었다는 말이 있던데?”

“드래곤 죽였다는 말은 없든?.”

“오빠...”

“소문이 그렇게 났어?”

“네, 퇴직금도 못 받을 거라고...”

“공무원 된지 몇 년 되지도 않는데 퇴직금 몇 푼이나 되겠냐? 아무튼 그거 내가 관상빨로 막았다.”

“관상빨요?”

“너도 좀 봐줄까?”

“오빠...”

“코에 붉은 물이 든 걸 보니 아직 이달치 월급 못 받았네?”

“으악, 귀신.”

인희가 자지러졌다.

“나 병원 간 사이에 남친하고도 헤어졌고...”

“아악, 족집게. 그럼 나 뭐해야 성공하는 지도 좀 봐주세요. 올해 넣은 취업지원서 완전 허당이에요. 출판사도 디자인 회사도 인재를 몰라보네요.”

인희가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인희와 친해진 건 취객 때문이었다. 가게에게 꼬장부리는 걸 경도가 막아준 적이 있었다. 이후로 인희는 경도에게 살갑게 굴었다.

“복채줄 거야?”

“얼만데요?”

“정식 개업한 것도 아니고 내 걱정도 많이 한 거 같으니 공짜로 봐준다.”

“와아. 옵빠 쵝오.”

“어디 보자. 눈썹이 독특하게 삼각형에 턱 가운데가 살짝 홈이 났으니 예술가 스타일인데?”

“진짜요?”

“응, 색채감각 플러스 창의력의 대가?”

“진짜죠?”

“그런 쪽에 생각 있으면 공부해 봐. 대성할 것 같아.”

“근데 옵빠 언제 관상 배웠어요? 그런 말 없었잖아요?”

“원래 주무기는 드러내는 게 아닌 법.”

“안 그래도 저 사실 웹툰 공부하고 있거든요. 웹툰으로 성공하면 이 가게 사서 주인 아저씨를 종업원으로 쓸 거예요. 마구 부려먹으면서.”

“그럼 커피가 맛 없을 텐데.”

“성공하기만 하면 옵빠 커피는 내가 타드릴 게요. 펴엉생 평생무료로요.”

“복채로 괜찮은데?”

“이제 계속 출근하는 거예요?”

“응, 내일부터 지긋지긋하게 보자.”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커피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커피머신 앞의 인희가 쌍엄지를 흔들어준다. 경도의 관상에 만족하는 표정이다.

테이블에 앉아 주변 사람들 관상에 견적을 내보았다.

-아버지 없는 사람.

-어머니 없는 사람.

-미혼.

-기혼.

-이혼남.

-빚쟁이.

-귀인상.

-노숙자상...

쳐다보면 그 얼굴이 답을 주었다. 믿기지 않아 얼음이 다 녹도록 관상에 몰두했다.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황 할아버지...’

기적의 스펙을 안겨준 그 분이 떠올랐다. 커피점을 나왔다. 그러고 보니 할 일이 있었다. 황 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무연고자로 분류되었으니 시가 정한 지침에 따라 화장을 하게 될 것이다. 임종을 본 사람으로서 장례를 맡았다. 비용은 시 예산으로 나가니 더하는 건 수고 뿐이었다.

화장장 화로 앞에서 책을 펼쳤다.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남은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온갖 품종이 섞인 쌀 한 줌이었고 또 하나가 이 책이었다. 책은 두툼한 화선지에 할아버지가 직접 쓰고 그린 것들이 가득했다. 

관상의 태조로 불리는 숙복부터 고포자, 나아가 얼굴색 관상의 시조로 알려진 당거를 비롯해 이성계를 보고 왕이 될 것을 알았다는 혜증을 비롯해 마의상법과 상리형진 등의 비기를 발전 시킨 것들이었다.

<心相>

그 책이 시작에 쓰인 한문이었다. 특이하게도 딱 중앙에도 쓰였고, 책의 마지막에도 心相이라는 한문이 보였다.

‘심상으로 시작해 심상으로 끝난다는 건가?’

생각이 깊어질 때 화장의 끝을 알리는 불이 들어왔다.

“고인이 낙엽이신가? 20분 만에 끝나네. 화장장 근무 20년 만에 처음입니다.”

직원이 말했다.

화장은 보통 1시간 이상이 걸린다. 경도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죽는 순간 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몸 안의 신기를 경도에게 다 퍼주고 갔으니 남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옥빛 항아리에 유해를 담아 서해로 향했다. 소원대로 바다에 뿌려주었다. 유해가 다 가라앉자 물비늘 위로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이제는 물비늘 위에 관상을 그린다.

‘고맙습니다.’

소주 한 병을 부어주고 서울로 돌아왔다. 책은 책꽂이에 고이 모셨다. 시쳇말로 신주단지라도 모신 듯 마음이 든든해졌다.

다음 날, 경도가 거울 앞에 섰다. 새로 산 넥타이를 매며 마인드컨트롤을 작렬시켰다.

-오경도.

-그동안의 찌질 불은은 다 삭제된 거야.

-진짜 공무원 생활은 오늘부터 재부팅이다.

-짜식, 알지?

거울 속의 모습에게 확신을 불어넣었다. 셀프 하이파이브도 했다.

부릉.

시동도 시원하게 걸렸다.

“오경도.”

센터 주차장 앞에 도착하니 누군가 팔짝거리며 두 팔을 흔들었다.

“팀장님.”

경도가 조수석 유리를 내렸다.

“어이, 관상천재, 내 관상 좀 다시 보라고. 어때?”

그가 얼굴을 디밀었다.

“와우!”

상을 본 경도가 감탄을 터트렸다.

“횡액 가셨지? 그렇지?”

엄 팀장이 소리쳤다.

정말 그랬다. 이마가 시원해지고 명궁도 밝아졌다. 콧등까지 내려온 붉은 기색도 거의 사라졌다. 나아가 간문에도 윤기가 돌았다. 여자까지 정리된 모양이었다.

“성공하셨군요?”

“그럼, 누구 상괘였는데? 우리 마누라, 처음에는 방방 뛰면서 잡아먹으려고 하더니 팔 걷어부치고 나서더라고. 민원인 찾아가 눈물까지 흘리니 그 사람이 한 풀 꺾이면서 민원 취하해주겠다지 뭐야? 봉투는 마누라가 채워서 돌려줬고 여자도...”

설명하던 엄 팀장이 얼굴을 붉힌다.

“사모님이 다른 말은 없었나요?”

경도가 넌지시 물었다.

“왜 없어? 자네한테 고맙다고 전하고 생명의 은인처럼 떠받들라고 하더라고. 나 마누라님에게 인증 받아야하니까 인증샷 한 장, 되겠나?”

“물론이죠.”

차에서 내린 경도가 포즈를 취해주었다. 엄 팀장의 셀카 솜씨가 엉망이니 핸드폰을 받아 대신 촬영까지 서비스를 했다.

카메라 셔터가 엄 팀장의 이마처럼 윤기나는 소리로 장단을 맞췄다.

촬-콱!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4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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