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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3 > (6/245)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3 >

“큼큼, 어이, 현 주임.”

목소리를 고른 엄 팀장, 현 주임을 부르더니 출력물 하나를 던져놓았다.

“새 업무분장.”

“오경도 업무 일부를 저하고 은빛 씨에게 넘기는 겁니까?”

서류를 집어든 현 주임이 물었다.

“그래.”

“왜요?”

“오 주임 업무가 과중하잖아? 게다가 민원인 사망사고로 정신적 피해도 있을 테고.”

“사표낸 거 아닙니까?”

“낸다고 넙죽 받아? 그런 줄 알아.”

엄 팀장이 말을 잘랐다.

“푸헙.”  

“그리고 수급자 물품배포 업무 말이야. 그거 오늘부터 공동으로 하지 말고 사안별로 나눠서 각자 배포하도록 해.”

“예?”

“각자 하라고.”

“지금 잘 되고 있는데 왜?”

“잘 되긴? 오경도가 노가다 전담이잖아?”

“언제는 그게 효율적이라면서요?”

“그동안 많이 굴려 먹었잖아.”

“그래도 9급입니다. 직급상 우리 팀 막내예요.”

“업무량은 7급 대우죠.”

듣고 있던 경도가 셀프 변론에 나섰다.

“야, 오경도.”

“오 주임 말이 맞아. 이번 일로 입원까지 했었으니 좀 챙겨주자고. 그리고 현 주임도 호칭 조심해. 밑의 직급이라고 함부로 부르지 말고.”

현 주임이 튀는 기색을 오지자 엄 팀장이 쐐기를 박아버렸다.

“오 주임은 나 좀 보고.”

‘오 주임’에 방점을 올린 엄 팀장이 추파를 던졌다. 그를 따라 회의실로 걸었다. 부글거리는 현 주임의 표정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ㅆㅂ, 우리 팀장 갑자기 왜 저래? 아침까지만 해도 사표 안 받으면 손에 장을 지진다더니.”

“홍 의원님 때문이잖아요? 줄 잡아서 사무관 따보려고.”

옆에 있던 은빛이 귀걸이를 재세팅하며 중얼거렸다.

“ㅆㅂ 그런다고 우리 팀장이 사무관이 돼? 그런 능력 있으면 여기로 안 왔지.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거야 알 수 있나요? 오남일 국장님 같은 분도 줄 잘 서서 파격 승진코스 달렸다면서.” .” 

“이 주임까지 자꾸 성질 건드릴래?”

“아, 오늘 우리 팀 남자들 왜 이런대? 단체로 그날인가? 저 어르신 쉼터에 출장 나가요.”

화장을 고친 은빛이 관용차 키를 챙겨들고 일어섰다. 도드라진 화장에 몸매가 드러나는 의상이니 단숨에 부각이 되었다. K시 공무원 패션스타 이은빛. 읍장조차 통제불능의 멋쟁이는 저 홀로 오러를 뿜어대며 멀어졌다.

“뭘 보냐?”

현 주임의 눈빛이 우석에게 날아갔다.

“아, 아무것도요.”

놀란 우석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

“마셔라.”

회의실 테이블에 캔커피가 놓여졌다. 고작 음료수 하나지만 이 또한 전에 없던 대우였다. 

“복채다.”

앞에 앉은 엄 팀장이 턱짓을 했다. 목도 마르고 하니 뚜껑을 땄다.

뽁!

소리 한 번 청량했다.

“어떠냐?”

성질 급한 엄 팀장, 한 모금을 마시기 무섭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직 다 안 마셨습니다.”

“그, 그래?”

“서두르지 마시고 싸목싸목. 천기는 몰아친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싸목싸목? 그거 죽은 민원인이 잘 쓰던 단어 아냐?”

“왜요? 저는 그런 단어 쓰면 안 되나요?” 

“그건 아니지만... 거기다 천, 천기...?”

“필을 받아야하거든요.”

“필?”

엄 팀장이 움찔했다.

“기분이 맑지 않으면 필이 안 옵니다. 남의 운명 들여다보는 게 팀장님이 퍼즐 게임하는 거랑 똑 같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맨날 초보단계시지만.”

일부러 염장 좀 질러댔다. 때늦게 빠진 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내로남불 외치던 게 마음에 남은 것이다.

“......”

“가서 세수 좀 하고 오세요.”

“세수는 왜?”

“개기름 번득이잖아요? 그럼 얼굴빛 제대로 못 봅니다.”

“개기름... 크험.”

입맛을 다신 엄 팀장이 일어섰다. 안에 딸린 화장실로 가더니 열심히 얼굴을 닦는다. 일방적으로 당하던 ‘을’의 입장에서 ‘갑’을 시켜먹자니 그 통쾌함도 쏠쏠했다.

“이제 됐냐?”

수건까지 들고 온 그가 제 자리에 앉았다.

“말해보세요. 어떤 건인지?”

다리는 일부러 꼬았다.

“그건 관상에 안 보이냐?”

“말대꾸는 허용 안 합니다.”

“말대꾸?”

“저는 지금 팀장님 부하직원이 아니라 관상전문가로 앞에 앉아 있습니다. 예를 갖추지 않으면 영빨이 안 서거든요. 게다가 팀장님은 복채도 없이 천기누설을 부탁하는 형편이고요.”

“복채는 음료수로...”

“그럼 음료수 가격만큼만 봐드릴까요?”

“......”

“어떤 건이죠?”

“오 주임, 너 이거 절대 비밀이다.”

잠시 고민하던 엄 팀장, 다짐을 놓은 후에야 실토를 시작했다.

“뭐냐면 여기로 좌천되기 전에 있던 과에서 생긴 일인데 보증서가 문제가 되었다. 위에서 예산 조기집행하라고 닦달하다 보니 한 달 사이에 근 일 년치 공사를 계약했는데 한 업체에서 보증서를 첨부하지 않았잖아? 하지만 계속사업이다 보니 잠깐 편의를 봐줬는데 어떤 놈이 그걸로 민원을 넣은 거야. 감사실에서는 민원취하가 안 되면 정식조사 들어가겠다는 거고.”

“계속해 보세요.”

“해서 내가 진상 민원으로 분류해서 강제삭제 시켰는데 그 민원이 때늦게 자기 민원을 확인하다가 그 사실을 알고 재민원을 넣었다는군.”

자백을 들으면서 계속 얼굴을 짚어나갔다. 시선은 마흔 아홉을 뜻하는 왼쪽 콧날의 금갑에서 시선을 멈췄다. 재복이 다른 때보다 풍성하다. 그러나 맑은 색이 아니니 눈 먼 돈이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뇌물까지 잡수셨군.’

“......!”

상을 짚어낸 경도가 자가 경련을 일으켰다.

이게 말이 돼?

얼굴을 보니 조선왕조실록처럼 한편의 인생실록이다. 귀에는 소년기의 이력이 나와 있고 이마에는 청년기, 광대뼈를 중심으로 하는 얼굴의 중앙 부위는 장년기, 코밑의 부분에서는 노년기의 디테일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우우.’

살이 떨리고 뼈가 떨렸다.

<유년운기부위>

欲識流年運氣行 男左女右各分形

天輪地輪人輪 俱耳之上中下之分 

욕식유년운기행 남좌여우각분형

천륜지륜인륜 구이지상중하지분

운의 흐름을 알고자 한다면 남자는 좌측 여자는 우측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귀를 중심으로 상중하로 나눈 것이다.

얼굴 부위에서 노래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이 작은 얼굴에 천기가 숨어있다니?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일을 알 수 있다니? 이것만으로도 한 인간의 역사를 대략 짚어낼 수가 있었다.

“봉투 먹은 건 왜 말 안 합니까?”

숨을 돌린 경도, 매운 눈빛으로 사자후를 뿜었다.

“억!”

봉투 이야기가 나오자 엄 팀장이 입을 막았다. 김영란법 이후로 뇌물은 모든 공무원들의 단칼 아작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었다. 약삭 빠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2월경이네요.”

“어억.”

엄 팀장의 입이 통제불가로 벌어졌다. 계약처에서 봉투를 수수한 건 사실이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들은, 봉투를 먹으면 과비로 쓰거나 혹은 일부라도 주변 라인과 공유한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따뜻한 동지애(?)로 뭉쳐 사방팔방 인맥망을 동원해 무마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다른 공무원들의 이야기였다. 엄 팀장의 성향은 완전히 달랐다. 돈이 들어오면 윗선에만 살짝 뿌릴 뿐, 과원이나 부하에게는 입을 닦는 것이다.

“월까지?”

엄 팀장은 치가 떨린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무속 비슷한 것들을 경험했지만 이렇게 뼈를 치는 영빨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눈자위를 정밀하게 체크한 경도, 더 따가운 목소리 엄 팀장을 몰아세웠다.

“그 돈은 사모님 말고 다른 여자에게 들어갔죠?”

“아이고, 오 주임, 아니 관상천재님.”

이건 살짝 넘겨짚은 상괘였다. 그러나 엄 팀장이 스스로 무너져주었다. 그 탄식을 보며 경도가 오싹하게 웃었다.

여자를 암시한 건 눈의 흰자위였다. 거기 검은 점이 찍혔으니 영락없다. 입술까지 거무튀튀하니 주제에 한 여자로 만족할 수 없는 상이었다.

시선을 간문으로 옮겨갔다. 간문은 눈썹 끝과 눈끝 사이다. 오장 중에서 신장의 정기를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곳의 색이 어두우면 정력 고갈이다. 다행히 간문 끝에 일부 광택이 남았으니 두 집 살림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만하고 얼굴 드세요.”

경도는 느긋해졌다. 이쯤 되면 엄 팀장의 생사여탈권을 쥔 저승사자가 누군지 자명해진 것이다.

“얼굴은 이, 이렇게?”

엄 팀장이 턱을 당겼다. 

‘헐.’

다시 봐도 만정이 떨어지는 상이었다. 모질고 이기적인 마음이 관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마 전체와 턱이 어두운 데다 코의 끝까지 붉으니 형옥살이 내린 건 명백한 사실. 이런 주제에 박복한 건 아니었으니 붉은 기운이 조금씩 배어나고 있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도 되나?’

콧김을 뿜으며 정리에 들어갔다.

이 인간...

어쩐다?

죽여?

살려?

고민하는 사이에 엄팀장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번 본 적 있었다. 얼굴은 볼 것 없지만 마음씨가 솜사탕이었다. 음식 솜씨도 좋아 첫 발령 때 얻어먹은 게장의 맛은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아하, 사모님 공덕.’

경도가 내심 무릎을 쳤다. 횡액에 숨통이 보이는 건 사모님 공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처복이 꼬인 팔자에 탈출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모님 사진 있죠?”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다.

“있지.”

“잠깐만 보여주세요.”

“여기...”

엄 팀장은 두 말없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

관상을 본 경도 입이 악 소리나게 벌어졌다. 사모님의 관상은 엄 팀장과 반대였다. 얼굴의 3박자가 맞춤하게 어울리고 비문이 시원하게 뚫렸다. 복덕궁이 이렇듯 수려하니 찌찔한 남편의 허물을 다 덮고 있는 것이다.

“사모님 덕으로 사는군요.”

마무리로 날린 상괘였다. 

“우리 마누라?”

“그런 분을 두고 한 눈을 파세요?”

“그게... 한 눈이 아니라... 좀 딱한 여자라서...”

“팀장님 사생활까지 참견할 생각은 없으니 됐고,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어쩌실래요? 처방 드려요?”

“뭘 어떻게 하면 되겠나?”

“귀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경도가 손짓하니 엄 팀장의 몸이 다가왔다.

“억!”

상괘를 받은 엄 팀장이 혼비백산을 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거 아니면 형옥살이니 서두르세요. 코끝의 붉은 기운이 조금이라도 더 어두워지면 그 방법도 안 통해요.”

경도가 일어섰다. 엄 팀장 이마에 홍수가 쏟아진다. 소리없이 중얼거리는 모습은 똥 마려운 강아지에 다름 아니었다.

‘죽었다, ㅆㅂ...’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3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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