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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2 > (5/245)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2 >

“무슨 짓이야?”

옆에 있던 엄 팀장이 아부가 폭발했다.

“아드님 계시죠?”

무시해버렸다. 천기를 읽어버린 경도이기에 직속 엄 팀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아들?”

“지금 어디 있습니까? 눈밑 와잠에 더해 좌측 눈빛이 사색인 걸 보니 딸은 아니고 아들에게 위험이 닥쳤습니다.”

“첨 팀장님, 이 친구가 지금 뭐라는 거요?”

“의원님, 신경 끄십시오. 병원에 며칠 있더니 정신줄까지 출렁이는 모양입니다.”

엄 팀장이 경도를 깎아내렸다.

“저 정신 멀쩡합니다. 아드님에게 위험이 닥쳤으니 확인이라도 해보십시오. 빨리요.”

“허헛, 우리 장 읍장님, 엄 팀장님, 아까 말한 애로를 알겠군요.”

홍 의원이 돌아섰다.

“어이, 오경도. 이 자식이 맛탱이가 갔나? 너 귀신 씌었어?”

배웅을 끝낸 엄 팀장이 도끼눈을 부라렸다. 그 관상 또한 한눈에 들어와버렸다.

‘황량하게 넓은 이마에 혼미한 금빛 눈, 코가 섰으니 칼끝의 검봉비에 눈이 깊어 인간미는 제로 빵.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을 밟아대는 상... 거기에 플러스, 하관이 빈약해 부하궁은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니 공무원이 아니었으면 자리보전도 힘들...’

우워워.

몸서리가 처진다.

폴더가 열리듯 엄 팀장의 정체가 한 눈에 보인 것이다.

이런 인간에게 상사로서의 포용심을 기대했으니 나무에서 물고기 떨어지기를 바란 격이었다.

“안 미쳤거든요.”

보란 듯이 응수했다. 구설수에 올라 어느 팀에서도 받으려하지 않던 행정서기보였다. 잘 나가는 동기가 거푸 승진을 하는 동안에도 행정서기보로 찌질거리던 경도가 처음으로 팀장에게 목청을 높이는 순간이었다.

“현 주임, 이 자식 눈빛 좀 보게. 저 때문에 우리 센터가 전쟁터가 될 뻔했는데 아주 막보기로 나오잖아?”

“나 때문에 왜요? 황 할아버지가 죽은 게 내 책임입니까? 그렇게 내 업무처리가 못 미더웠으면 팀장님이나 현 주임님이 나갔어야죠.”

“뭐, 뭐야?”

“할아버지는 자연사입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임종하셨다고요. 나는 다만 그 충격에 정신을 잃은 것 뿐이고요. 그건 경찰수사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위로는커녕 사람을 범죄자처럼 몰아쳐요? 2인 1조 방문원칙을 어기고 혼자 출장을 보낸 팀장님은 책임 없는 겁니까?”

한 번 터진 봇물은 막힘이 없었다.

“어어, 이 놈이 점점...”

“이 놈 저 놈 하지 마십시오. 제가 첫 단추 잘못 끼운 건 압니다. 그런데 그 단추가 잘못된 게 누구 때문입니까? 시보단지 한 달도 안 된 제게 어려운 업무 떠넘겨놓고 검토 요청하니까 대충 보고 만 게 팀장님 아니었습니까? 솔직히 그 업무, 시보가 할 일이었습니까?”

“야, 오경도...”

한통속 현 주임이 끼어든다.

“주임님도 오십보백보입니다. 무거운 기증품 전달이나 황당한 출장은 맨날 나한테 떠넘겼죠. 코로나19 자가격리 환자 자택 도시락 배달도 저만 배정됐고요. 여직원들 힘 딸리는 물건들 남자가 맡는 건 불만 없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같이 돕는 척이라도 하더니 이젠 아예 제 업무인양 쌩까더라고요. 지난달에도 종교단체에서 들어온 20kg 쌀 100포대 말입니다. 토요일날 다들 핑계대고 안 나오는 바람에 그거 전달하느라 밤 10시까지 뺑이쳤었습니다.”

“얘가 진짜 맛이 갔네?”

파편을 맞은 현 주임도 얼굴빛이 변했다. 경도의 이런 면은 그도 처음이었다.

“사표는 팀장님 책상 위에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사시죠. 보아하니 인당이 어둡고 양관골이 죽은 빛에, 눈이 붉고 귀에도 사기가 깃들었으니 오늘 안에 흉살이 닥칠 상이긴 합니다만.”

짐을 챙겨든 경도가 돌아섰다. 

민원실 문을 여는 순간, 주차장으로 들이닥치는 홍 의원의 세단이 보였다. 세단에서 내린 홍 의원이 미친 듯 민원실로 뛰었다.

“오 주임.”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의원님.”

엄 팀장이 재빨리 달려나와 자동아부 자세를 갖췄다.

“고맙네. 오 주임 덕분에 우리 아들 살았어.”

엄 팀장을 밀어낸 홍 의원이 경도 손을 잡았다.

“의원님...”

엄 팀장은 황당하다.

“우리 늦둥이가 어린이 뮤지컬 관람회에서 쓰러졌지 뭡니까? 오 주임 말을 듣고 혹시나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맨 뒷좌석에 앉은 데다 공연 소리가 커서 담임선생도 몰랐다더군요. 장이 꼬였다는데 병원에서 조금 더 늦었으면 큰 일날 뻔했다고...”

“예?”

엄 팀장과 현 주임이 한 세트로 경기를 했다. 

“진짜 고맙네. 오 주임이 이제 보니 관상천재였어?”

“......”

“엄 팀장님, 전에 식사 한 번 하자고 했었죠?”

“예? 예.”

“언제 여기 오 주임하고 한 번 하십시다. 내가 금이야 옥이야 하는 늦둥이였는데 천만다행이지 뭡니까?”

홍 의원이 엄 팀장 어깨를 잡았다.

엄 팀장은 할 말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 초유의 하극상(?)을 일삼은 괘씸한 인간이었다. 때마침 사직서도 받아놓았다. 경도를 짜르고 말 잘 듣는 신삥 직원 하나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병가 들어간 과장과도 대략 언질이 오간 상태였다.

그런데 같이 식사?

식쌰?

상대는 홍상선 의원이다. 시장이 바뀌면서 끈 떨어진 엄 팀장은 이 줄을 잡기 위해 모진 애를 썼다. 비선 라인을 통해 식사요청을 한 것만 해도 십여 차례였다. 

매번 뺀찌를 맞았다. 홍 의원은 아무하고나 식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그 딜이 온 것이다.

살짝 난감.

그 단어가 정수리에 꽂혀있다. 홍 의원의 요청을 받으려면 경도를 수습해야했다. 9급 따위와의 타협은 생각도 못했다. 잔머리가 소리없이 굴러갈 때 배민지가 전화기를 들어보였다.

“팀장님, 감사담당관실이라는 데요?”

“감사실?”

되묻는 엄 팀장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짚이는 데가 있었다. 전화를 받는 표정은 더 위태롭게 변했다.

“아, 그 건이요? 예, 예... 알겠습니다.”

맥없이 수화기를 놓는다. 경도가 말한 흉살이 제대로 관통된 표정이었다.

“엄 팀장님, 날 정해서 꼭 전화하십시오. 나는 의회 행사가 있어서 말입니다.”

홍 의원이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예, 예.”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허리가 접어대는 엄 팀장. 그 시선이 책상의 사직서에 닿았다.

‘오경도...’

사표 위에 경도의 말이 CG 효과처럼 아른거렸다.

[인당이 어둡고 양관골이 죽은 빛이라, 눈이 붉고 귀에도 사기가 깃들었으니 오늘 안에 흉살이 닥칠 상이긴 합니다만.]

귀신?

엄 팀장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감사담당관실의 사건은 센터의 누구도 모른다. 그걸 귀신처럼 짚어낸 것이다. 게다가 홍 의원의 아들 일까지?

머리회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엄 팀장의 할머니 때문이었다. 무속에 빠져 살았다. 집안에 액운이 끼면 살풀이부터 하던 분이었다. 그렇기에 무속에 큰 거부감이 없는 엄 팀장이었다.

‘홍 의원이 귀인이면 이 놈은 귀인으로 이어지는 다리다.’

체면 한 번 접고 영감에 기대보기로 했다.

“오경도. 나 좀 보자.”

결론을 내린 팀장이 복도를 가리켰다. 그러나...

“싫습니다.”

경도가 거부하고 나섰다.

“뭐야?”

“사표냈잖습니까? 더 이상 팀장님 지시 따를 의무 없거든요.”

찌익!

경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팀장이 사표를 찢어버렸다. 

“이러면?”

그 순간, 경도 몸에 소리 없는 천둥이 일었다. 천둥을 따라 몸 안 곳곳에 섬광이 들어왔다. 섬광이 켜켜이 쌓인 어둠을 씻어낸다. 소극과 주눅, 숱한 불운들까지.

리뉴얼.

어둠을 밀어낸 섬광 속에서 황 할아버지가 속삭였다.

[헌 꽃이 지면 새 꽃이 나는 법, 자네 출발은 이제부터야.]

그래서일까?

속된 말로 그 분이 오신 걸까?

의기양양한 엄 팀장 모습이 가소롭기까지 했다.

“잠깐 보자고.”

엄 팀장이 다시 경도를 끌었다.

“왜 이러십니까?”

팔을 뿌리쳤다. 9급 주제에 처음으로 엄 팀장 앞에서 당당했다. 그런데...

“알았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 그럼 됐냐?”

기막힌 현실이 펼쳐졌다. 콧대 높던 엄 팀장이 콧대를 접은 것이다.

“그게 사과 모드입니까? 얼렁뚱땅 어르고 뺨치는 거지.”

여세를 몰아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가슴 속의 자신감이 경도 어깨를 미는 것이다.

“그럼 드라마처럼 무릎이라도 꿇어야 속이 시원하겠냐? 민원인이 공무원 앞에서 죽었다니까 부시장님부터 국장님, 감사실에 경찰들까지 난리쳐대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너도 우리 센터가 찬밥 기관이라는 거 알고 있잖아?”

엄 팀장이 팩트를 들먹인다. 찬밥 기관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K시 공무원 절대 다수가 꺼리는 복마전. 그중에서도 복지팀들의 환경이 가장 열악했으니 폭발적인 인구 덕분에 업무처리 지표 역시 다른 읍면동에 비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언제는 높은 직급에 고귀한 책임이 따른다면서요? 고난도 민원 같은 거 처리하려고 팀장, 과장이 있는 거라면서요?”

“......”

정곡까지 찌르자 엄 팀장이 찔끔한다.

“솔직히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제 업무도 아닌 일에 출장 나간 죄 밖에 없습니다.”

“미안하다고 하지 않냐? 이제 됐냐?”

“진정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조심하마. 업무 분장도 제대로 해주고.”

엄 팀장이 딜을 자청했다.

“진짜 사과할 마음 있으면 저 시보 때 일부터 사과하세요.”

“시보 때?”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뭐? 딱 그런 눈빛이었다. 세상 일이 이렇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가해를, 돌아서는 순간 잊어버린다.

“양자입양신고건이오.”

“그, 그게 언젯적 일인데?”

“신석기 시대 일이라고 해도 저는 사과 받아야겠습니다.”

“......”

“......”

“좋아. 사과한다. 솔직히 양자입양 업무는 나도 잘 모르는 업무였다.”

엄 팀장이 자백했다. 공직 인생에 잘못 끼워졌던 첫단추 양자입양신고건. 이렇게라도 사과를 받으니 감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됐으면 들어가서 꾸린 짐 풀어놓고 내일부터 출근해라.”

그 말 속에서 상황을 돌아본다.

사직서는 좌절감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좌절의 시작은 꼬인 관운이었다. 그게 못된 꼬리표를 만들었다. 동료들은 그 꼬리표를 상대적 우월감으로 누렸다. 그 가해의 선봉장이라 할 수 있는 엄낙기 팀장이 한 풀 꺾인 것이다. 

‘홍상선 의원...’

연결점은 그였다. 엄 팀장은 승진을 위해 경도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홍 의원과의 연결선은 경도였다. 그러니 엄 팀장은 경도를 괄시할 수 없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네 관상능력은 관직에 있어야만 유지되고 발현될 것이다.’

황순감 할아버지의 말이 뼈를 치고 갔다.

빽도 관운도 없는 말단공무원의 일상은 무거웠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희망이 새싹을 내밀었다. 엄 팀장의 행동이 신호였다. 관상의 힘은 생각보다 놀라웠으니 경도도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빅 데이터 따위.

진심 깜냥도 아니었다. 

-좋습니다.

답은 그렇게 정했지만 쉽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그럼 말이죠, 이번 기회에 업무분장 제대로 갈라주고 황 할아버지 사망건에 대한 것도 책임지고 수습해 주십시오. 제 귀에 다시는 안 들어오게 말입니다. 아, 거기다 플러스, 앞으로 저한테 야, 너, 인마, 짜식 등의 저속어도 금칙어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말난 김에 이것저것 쐐기를 박았다.

“야, 오경도.”

“기분 매우 몹시 나쁘거든요.”

“알았다.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뭡니까?”

“너 언제 관상 배웠냐?”

“또 너?”

“오 주임...”

“말단 공무원 생활도 서럽고 진상 민원에 진상 고참들이 너무 많아서 관상 도움이라도 좀 받으려고 배웠습니다.”

“......”

“왜요? 그것도 팀장님께 결재 받아야했던 겁니까?”

“아, 아니... 그런데 아까 보니까 제법 영빨이 있던데 진짜 내 얼굴에서 횡액인지 뭔지... 그게 보이냐?”

“홍 의원님 케이스 못 보셨어요? 엄 팀장님 횡액 맞춘 거는요? 그거 우연 같습니까?”

경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마다 엄 팀장은 오금이 저리는 것만 같았다.

“그럼 그 횡액인지 뭔지가 어떻게 될 것 같냐?”

엄 팀장 목소리는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업무분장 먼저 해주시면 싸목싸목 봐드리죠.”

옵션부터 걸었다. 할아버지가 쓰던 단어가 착착 입에 감겼다. 지금까지는 수동적이었던 관운 쪽박 말단 행정서기보. 찌질한 단어들을 마음 속에서 시원하게 찢어냈다.

불운 강퇴.

쫘악쫙쫙찍찍찍.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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