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1 >
오행 목-화-토-금-수.
3정, 4독, 5악, 6요, 관인8법
운명의 척도로 삼는 인당부터 관운을 좌우하는 관록궁까지의 12궁.
귀, 눈썹, 눈, 코, 입의 오관...
남자는 눈이오, 여자는 입. 상순과 하순, 해각과 구각이 오만가지 운명을 예지하며 밀려들었다. 경도의 눈은 더할 수 없는 상으로 가득 찼다. 너무 가득해 움직일 수도 없었다.
순간 할아버지가 일어섰다. 구석의 라면박스를 열더니 옷을 꺼내들었다. 팔을 펴니 저절로 입혀진다. 할아버지는 이제 신선처럼 보였다.
마의였다.
그러나 신기했으니 누런 빛깔이 아니라 시리도록 흰빛의 백설이었다.
순간, 미릉골이, 천이궁이, 질액궁이... 인간사 길흉화복에서 입신양명과 대운대길까지 속속들이 깃든 관상 포인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불길은 쓰나미처럼 경도의 몸 전체로 번져나갔다.
‘이것.’
불을 보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불길은 결국 눈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거기서 심장을 치더니 심장에도 불을 질러버리고 말았다.
[오경도]
깊은 울림소리가 경도 귀 안에서 울컥거렸다. 마주 앉은 할아버지 얼굴에서 신선의 부동심이 느껴졌다.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
[싸목싸목 내 관상법을 모두 품었구나.]
[......]
[이마를 보거라.]
할아버지가 말하니 경도 얼굴 앞에 거울이 섰다. 이마가 달라보였다. 원래와는 달리 천주골, 보골, 명궁, 중정에 고루 서광이 서리는 것이다. 이 모두가 관운에 관련되는 포인트들이었다.
[......?]
[상은 타고 나는 것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지상을 타고 났어도 성실하게 노력하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는 법.]
[......]
[그 옛날 나는 보고 또 보았다. 한 쌍둥이 형제... 하나는 재상의 대운을 받은 상이었고 또 하나는 빈천한 거지의 상이었느니라. 그러나 재상의 운을 받은 사람은 그 운을 믿고 방종방탕하다가 거지가 되었고 거지의 상을 받은 사람은 마음을 비우고 주변사람들과 소소한 정을 나누니 마침내 그 운명이 바뀌어 그가 재상이 되었다.]
[......]
[고마워할 건 없다. 상맥은 오래 끊겼으니 네가 이어준다면 그 또한 나의 보람이라.]
[......]
[다만 한 가지 제한이 있으니 공직을 떠나서는 안 된다. 네가 관의 운명 앞에서 이 상법을 받았으니 관상의 통쾌함은 네가 관직을 가지고 있어야만 발현되고 유지될 것이다.]
[......]
[나라를 구하고 정의를 세우라는 것도 아니니 부담 가질 것 없다. 적어도 네 한 몸 지키는 힘은 될 테니까.]
[......]
[대기는 만성이야. 빨리 피는 건 빨리 지지. 그간의 시련을 담금질로 생각하면 오히려 도움이 될 거다.]
[......]
[작은 인연으로 부탁하느니 내 몸은 서해바다에 뿌려주기 바란다.]
[......]
[네 내 신이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믿을 것이다. 뜻을 이룬 자는 자신의 목숨이 접힐 날을 알고 있다. 이 늙은이가 한 생을 접고 쉬고자 너를 불렀음이라.]
[할아버지.]
암시에 놀라 입을 떼는 순간, 경도의 심장과 눈에서 화산이 터져버렸다.
[컥.]
화산은 오장을 뚫고 온몸을 물들여나갔다. 가슴을 만지면 뜨거운 피가 끓었고 눈에서는 펄펄 끓는 핏물이 흘러나왔다.
[두려워할 것 없다. 만물은 윤회하니 헌 것이 지면 새 것이 나는 법. 이제는 네가 나의 새로움이라. 내 책 역시 네 것이니 관상의 진리에 허기질 때 넘겨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붉은 시선 안에서 할아버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 몸에 오색이 내려왔다. 할아버지의 몸은 마침내 흰 잿더미로 산화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손을 내밀지만 닿지 않았다. 경도를 막은 건 오감과 오장, 오관의 폭발이었다. 눈으로 들어온 오만 가지 상들이 일만 촉수를 터트려 섬광을 만든 것이다.
-억.
-어억.
-아아악.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경도가 넘어갔다.
애애앵. 띠뽀띠뽀.
아늑히 멀어지는 의식 속으로 경찰차와 119 구조대의 사이렌만 요란했다.
의식이 돌아온 장소는 병원이었다.
“깨어나네?”
현 주임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움직여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대보니 붕대가 만져졌다. 눈에 붕대가 감긴 것이다.
“여기...?”
“병원이야.”
이번에는 엄 팀장이었다. 짜증빨 제대로 서린 목소리는 얼음장보다 시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수급자 확인한다고 가더니... 지금 우리 시 난리난 거 알아?”
이번에는 두 살 많은 공주병 깍쟁이자 근자감의 주인공인 이은빛이었다. 도도발랄한 성격답게 목소리도 직선적이다. 이유는 현 주임 입에서 나왔다.
“수급자는 죽은 시체로 나와 담당 공무원은 그 옆에 널브러져. 나참...”
“할아버지가 죽었습니까?”
경도가 상체를 세웠다. 기다렸다는 듯이 엄 팀장의 폭언이 쏟아졌다.
“긴 말 않는다. 기자 놈들 개떼처럼 달려드는 거 과장님하고 내가 피똥 싸면서 막았으니까 웬만하면 사표내고 쉬어라. 넌 아무리 봐도 공무원 팔자가 아니야.”
“팀장님.”
“내가 너 시보시절에 짤랐어야 하는 건데 그 놈의 인정 때문에 결국 이 사단까지 오고 말았네. 감사실에서 정식 조사 들어간다는 거 과장님, 읍장님 등 밀어서 막아놓았다.”
엄 팀장의 구라와 공치사가 짬뽕으로 작렬했다.
“제가 뭘 잘못한 겁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엄 팀장 목소리가 높아졌다.
“야, 오경도. 니 민원인이 니 앞에서 죽었잖아? 수습은커녕 그 옆에 늘어졌고. 과장님은 시달림에 지쳐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도 지금 그런 말이 나와?”
현 주임이 엄 팀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나 때문에 죽은 건 아닙니다.”
“아니겠지. 우리 말은 수급자 보호하러 간 놈이 왜 그거 막지 못하고 사람 죽은 방에서 퍼질러져서 온갖 의혹과 억측을 난무하게 하냐고? 뭔가 잘못되었으면 바로 보고를 했어야할 거 아냐?”
“할아버지가... 진짜 죽었습니까?”
“허얼, 이 자식 진짜...”
“......”
“그만 가자고. 부하 운빨 하고는... 저도 똘아이는 아니니 이만하면 알아들었겠지.”
엄 팀장이 쐐기를 박고 돌아섰다.
“몸조리 잘 해. 팀장이 화나서 저러는 거야.”
민지가 몰래 속삭이지만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그들이 나가자 동기들이 들어왔다.
-야, 사태 심각해.
-아오, 낮술이라도 깠냐? 죽은 민원인 옆에 같이 눕다니...
-윗선에서 해임 얘기도 나왔다더라?
동기들도 경도 편은 아니었다. 잘 나가는 태술 등은 위로가 아니라 즐기는 목소리였다. 그들의 병문안은 초유의 사태에 대해 선긋기가 목적이었다. 그 실체는 곧 단톡방 강퇴 문자로 증명되었다.
[우리 22기 일동은 공무원의 품위를 훼손한 동기 오경도에 대해 본 단톡방 강퇴를 결정했음을 통지합니다.]
문자 앞에서 ‘관리자’ 태술의 이모티콘이 반짝거렸다.
“......”
말문이 막혔다. 동기들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보다 더 차가운 모습에 뼈가 시렸다. 주동은 권태술이다. 아버지 빽 믿고 건방이 차곡차곡 쌓인 놈.
-야, 이 자식아. 뭐 강퇴? 동기들이라는 게 위로할 생각은 않고 파편 맞을까봐 강퇴?
욕설이 매크로로 자동생성되지만 태술의 번호는 누르지 못했다. 눈을 막은 붕대 때문이었다. 동기들의 배신은 아팠다. 엄 팀장의 독설보다 100만 배는 치명적이었다.
“경도야.”
모두가 나간 후에 형 경규가 들어왔다. 생수와 티슈 등이 든 걸 보니 경도를 간호하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었다.
“공무원들 왔다더니?”
경규가 텅 빈 병실을 둘러본다.
“......”
“뭐가 어떻게 되는 거냐?”
“별 거 아니야. 엄마도 알아?”
“위중한 상태는 아니라기에 아직 말하지 않았다.”
“그럼 그냥 둬. 별 일 아니야.”
형에게도 구구절절 말하지 못했다.
-나 사실 개허접 취급이야.
9급 합격 때 춤까지 추던 형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붕대는 이틀 후에 풀었다.
제일 먼저 형 얼굴을 보았다.
관상...
“......?”
“왜?”
“아니...”
시선이 허망하게 무너진다. 화로의 재라도 들어간 걸까? 안과 진단으로는 별 이상이 없다지만 안개가 서린 듯 선명하지 않았다. 관상은커녕 눈만 버린 모양이었다.
관상으로 관운 개척?
‘ㅆㅂ.’
뻘짓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니 욕이 저절로 나왔다. 공직의 라스트씬치고는 너무 허망했다. 관운 역전이 아니라 치욕적인 안녕을 고해야할 코너로 몰리고 만 것이다.
할아버지의 사망은 사실이었다. 사인은 심정지였다. 무연고자의 시신이니 시청 지정 병원 안치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접자.’
안치소를 나오며 사직을 결심했다. 귀신에 제대로 홀린 모양이었다. 할아버지의 사망이 경도의 책임인 건 아니었지만 공무원이기에 도의적인 책임만은 면피되기 어려웠고 이렇게까지 찍힌 이상 K시에서는 버티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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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 주임?”
읍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자 백광서 팀장이 경도를 불렀다. 출장을 가던 모양이었다.
“괜찮아?”
그가 다가와 물었다. 50대 초반으로 동기들보다 한참 늦게 무보직 6급 신세를 벗어난 사람. 직속 팀장은 아니지만 간간이 경도를 위로하던 좋은 사람이었다.
“예, 죄송합니다.”
“오 주임도 참 운 없네. 하필이면 민원인 죽은 집에서 쓰러져 도마에 오르다니...”
“......”
“하긴 뭐 공무원 생활하다보면 산전수전 다 겪는 법이지.”
백 팀장의 말은 그나마 따뜻했다. 그래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주머니에 든 사표 때문이었다.
“엄 팀장이 병원까지 가서 사표 운운했다며?”
“......”
“그 양반은 이럴 때 자기 직원 지켜줄 생각은 안 하고... 아무튼 사표 어쩌고 하는 말은 그냥 흘려버리게. 뒷구멍으로 임용된 주제에 자기가 뭔데 공채로 들어온 사람을 나가라 마라야.”
위로를 남긴 백 팀장이 차에 올랐다.
안으로 들어섰다. 경도를 본 민원실 직원들, 하나 같이 표정이 굳는다. 나쁜 일에 묻어가고 싶지 않다는 표정들이었다.
“팀장님은 읍장님 방에서 홍상선 의원님 만나고 계시다.”
민원인과의 상담을 끝낸 현 주임이 말했다. 배민지와 이은빛은 출장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사회복무요원 정우석이 비타 50000을 내밀었다. 성의가 고마워 받아두었다.
홍 의원이라면 의회 전반기 의장이다. 차기 시장으로도 거론되는 K시 토박이 거물의 하나였다. 그렇기에 많은 K시 공무원들이 그와의 교분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시장은 승진의 금줄이다. 공무원의 승진은 능력과 큰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줄을 잘 서야 사무관도 되고 서기관도 될 수 있었다.
‘ㅆㅂ, 잘 먹고 잘 살아라.’
과장이 병가 중이라니 팀장 책상 위에 사직서를 던져놓았다.
현 주임이 빙그레 웃었다. 이 인간도 같은 부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교묘하게 엿 먹이던 게 이 인간이었다.
책상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비상근무 때 신던 운동화와 차곡차곡 모아온 업무자료들. 솔이 한 쪽으로 무너진 칫솔까지 챙기자니 가슴이 아려왔다.
장갑에 형광펜과 포스트잇을 쓸어담을 때 홍 의원이 눈에 보였다. 주위에는 읍장과 엄 팀장 등이 개미떼처럼 꼬여 있었다.
“어이.”
민원실로 들어온 홍 의원이 경도를 불렀다. 그 순간이었다. 눈을 가리던 희미함이 시원하게 벗겨지나 싶더니 홍 의원의 얼굴상이 입체처럼 눈을 치고 들어왔다.
‘어엇.’
관자놀이가 뻐근하게 반응했다. 홍 의원의 관상이 한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마의 상정이 수려하다. 코의 준두와 금갑도 제대로 빵빵하니 지역 부호로서 손색이 없는 관상이었다.
‘아.’
들고 있던 짐을 놓치고 말았다. 황 할아버지가 화로에 그려대던 관상들. 헛꿈이나 환상이 아니었다. 전에는 그저 이마와 눈, 코, 입이었던 것들... 그것들 하나하나에 생명과 혼이 이글거리는 것이다.
‘와잠.’
특별히 눈 밑의 살이 시야를 차고 들어왔다. 빠르게 번져가는 검푸른 기색. 명궁은 붉고 양 눈썹이 발딱 섰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와잠은 자녀를 뜻하는 곳, 즉 자녀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그 시기 또한 코앞이었다.
-이것...
손으로 만지듯 선명하게 감지되는 관상예지.
-믿어야하는 걸까?
머리와 눈에 관상 AI라도 로딩된 듯 막힘이 없는 상괘(相卦).
-말아야하는 걸까.
“자네가 대형사고쳤다는 오 주임인가?”
“의원님...”
“유감일세. 민원인을 대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지.”
-믿어?
-말아?
“의원님.”
결국 어깨를 놓고 돌아서는 홍 의원의 소매를 잡았다.
< SSS급 관상스펙의 9급 행정서기보입니다만-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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