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급자에게 이상한 선물을 받았어요-2 >
“황순감 님...”
“쉬잇.”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낸 할아버지, 퍼즐에만 몰입했다.
‘치매.’
경도 머리에 한 단어가 스쳐갔다. 주민이 전해준 말이었다.
“아무리 봐도 치매가 온 거 같아요. 눈도 잘 안 보이는 사람이 컨테이너 안에서 불도 피우는 것 같고... 그러다 불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불?”
보고를 받은 엄 팀장이 전격 반응을 했다. 그는 센터가 임시 휴양소였다. 언제고 시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말썽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야, 오경도, 니가 나가봐.”
담당도 아닌 경도의 등을 떠밀었다.
“제 담당 아닌데요?”
경도가 답했다. 주소로 보아 이은빛의 구역이었다.
“저거 말하는 것 좀 봐라. 얌마, 이 주임은 여자잖아? 여자가 홀애비 사는 곳에 어떻게 가? 게다가 신종 코로나 절정기 때 엄청 굴렀다잖아? 이 주임이 뜨면 너랑 둘이 가야하는데 그럴 바에는 혼자 가는 게 능률적이잖아?”
“코로나 절정기 때는 저도 많이 굴렀습니다.”
“사고 치는 걸로?”
“......”
“게다가 그 노인네, 너랑 친하다며?”
엄 팀장 엉뚱한 연결선을 들이댔다. 이렇게 연결해 버리니 기가 막히지만 황 할아버지가 경도를 선호하는 건 사실이었다.
“눈이 등대 같네.”
그게 이유였다. 할아버지는 경도를 처음 본 날부터 그랬다. 담당자인 민지를 제치고 경도만 찾는 것이다. 등대는 몰라도 별 같다는 말은 많이 들던 바였다. 어쩌면 눈은 경도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의 하나인 지도 몰랐다.
그런 할아버지가 맨바닥에 앉아 검은 해골뼈를 맞추고 있었다. 경도도 사람인지라 치매말고 다른 단어를 찾기 어려웠다.
“안 되겠네.”
조각을 맞추던 할아버지가 손을 홀홀 털었다.
“오 선생이 한 번 해봐.”
돌연 경도에게 떠넘긴다. 그가 부르는 호칭은 꼬박꼬박 선생이었다.
“괜찮으세요?”
“싸목싸목 해. 내가 보름이나 했는데도 안 맞아.”
이제는 손목까지 잡아당긴다. 싸목싸목은 ‘천천히’라는 뜻을 가진 사투리였다.
“이게... 뭔데요?”
“묻지말고 맞춰봐. 만물에는 임자가 있다고 오 선생이 임자일 지도 모르지.”
“저는 할아버지 병원에 모시고 가보려고...”
“나?”
“예.”
“왜?”
“......”
치매.
차마 말하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삼켜버렸다.
“알았어. 오 선생이 가자면 가야지. 아무튼 그 맑은 눈으로 맹한 표정 짓지 말고 한 번 맞춰봐.”
할아버지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옆자리에 앉았다.
연고자가 없는 할아버지다. 치매로 입원이 되면 다시 나오기 힘들다. 그렇다면 자유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조금은 놀아주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숯?’
뼈가 아니라 숯이었다. 그래도 모양만은 사람의 뼈를 닮았다. 바구니를 채운 숯의 숫자는 많았다.
‘해봐.’
할아버지가 눈으로 재촉하니 건성으로 몇 개 맞춰보았다. 그게 기절의 발단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숯 조각의 수는 모두 618개였다. 맞추다 보니 사람이 되었다. 206개인 뼈를 하나당 세 개씩 조각낸 퍼즐이었다.
“오 선생이 임자 맞네.”
할아버지가 무릎을 쳤다. 그때 경도는 두 번째 경악을 했다. 할아버지의 눈 때문이었다. 백태로 덮여 희미하던 눈동자에서 먹구름이 걷힌 것이다. 멋내기용 콘택트렌즈를 낀 연예인의 눈처럼 초롱거렸다.
‘내 눈이 잘못됐나?’
돌아서 눈을 비비는데 뼈를 치는 질문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오 선생, 공직생활 고달프지?”
“......?”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마치 외할머니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자애로운 소리였다. 지금까지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백태처럼 탁한 탁음이었는데...
“그동안 잘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내가 선물 하나 줄까싶은데?”
‘이게 말로만 듣던 예쁜 치매라는 걸까?’
경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할아버지, 이제 그만하고 병원에 같이 가요.”
“병원은 왜? 기왕 가려면 더 좋은데로 가야지.”
“예?”
“공직생활 고달프지?”
그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이 어린 학생에게 묻듯 압도적인 권능까지 느껴지니 기분이 아릿했다.
“예, 좀 힘드네요.”
경도가 답했다. 그러면서 놀란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생각이, 입을 비집고 나온 것이다.
“내가 팔자 좀 바꿔줄까?”
‘알고 보니 중증 치매?’
머리 속에 잠깐 들어온 생각이었다. 그러나 경도는, 생각과는 달리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점점 얌전해지고 있었다.
“내 가방 좀 가져와봐.”
할아버지가 구석의 가방을 가리켰다. 문제의 가방이었다. 가방 안에는 5만원 권 현금뭉치가 들었다. 계좌에 300만 원 이상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할아버지는 수급비로 들어가는 80여만 원을 꼬박꼬박 인출했다. 그걸 넣어가지고 다니는 가방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태도도 오해를 불렀다. 어디든 가방을 지고 다닌다. 누가 손이라도 댈라치면 부정탄다고 정색까지 했다.
그 돈을 경도에게 주려는 걸까? 생각이 앞서가니 헛웃음이 났다. 그렇잖아도 관운 없는 경도였다. 수급자의 돈을 받았다가는 해임이나 파면도 가능했다. 현재의 팀장과 팀원들도 경도 편은 아니니 변론해줄 사람도 없었다.
“할아버지.”
“글쎄 가져와보라니까.”
할아버지가 성화를 하니 가져오기는 했다.
“어디보자.”
가방을 받아든 할아버지,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거기서 쏟아진 건 수백 장의 그림이었다. 돈은 한 푼도 들어있지 않았다.
“뭔지 알겠어?”
“글쎄요, 초상화... 도 아니고...”
“관상도야.”
“관상요?”
“그래, 관상. 오행, 삼정, 사독, 오악, 육요, 관인팔법, 12궁, 그리고 이건...”
그림을 나누던 할아버지가 이마가 그려진 그림 한 장을 골라놓았다.
“이게 바로 관운을 나타내는 명궁이야. 이마가 도톰하다 못해 푸짐해 보이지? 달을 반으로 갈라 엎어놓은 듯 수려하고.”
‘명궁’
관상의 관자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관운이라는 말에는 끌렸다. 지지리도 찌질한 관운 때문이었다.
“보시게. 이마 한가운데가 관운이라네. 여기가 바로 이마의 귀기가 모이는 곳이지. 여기가 풍요롭고 수려하면 관운이 좋지. 관록의 위세로 관운을 보는 거거든. 물론 눈까지 좋고 입술 끝에 목소리까지 더해지면 대운이 터지는 거지만.”
관상.
살아오면서 거기 관련된 말은 딱 한 번 들었다. 일곱 살, 엄마에게 이끌려 암자에 갔을 때였다. 거기 살던 여승이 경도를 보며 말했다.
-눈이 어쩌면 이렇게 샘물처럼 맑대? 족집게 관상 보던 우리 주지스님 눈빛이야.
그 기억에 승진가도를 달리는 동기 권태술의 이마가 겹쳐왔다. 연수원 샤워실에서 본 그의 이마는 시원할 정도로 반짝거렸었다.
“어때? 한 번 바꿔볼 테야?”
“하지만 관상으로 어떻게?”
“이걸로 명나라 황제의 스승이 된 사람도 있는데?”
“그건 옛날 말이죠.”
“요즘은 뭐가 다른데? 요즘 사람들은 얼굴이 없나?”
“요즘은 이런 것보다 빅 데이터가...”
“관상은 수천 년 간의 빅 데이터야. 그러니 한 번 속아봐. 이 늙은이가 짐 싸는 날 오 선생을 속여서 뭣하겠어?”
할아버지 눈이 진솔하게 빛났다. 말마다 맞는 말이니 반박불가였다.
“빅 데이터라는 건 빈 껍데기 아니면 영혼 없는 자료를 모은 것에 불과하지. 관상은 그런 부스러기 통계가 아니라 진짜배기 통계라네. 살아있는 사람의 살아있는 신체골격과 얼굴, 표정에서 얻은. 요즘 젊은이들 말로 하면 진퉁?”
“......”
“나 치매 아니야.”
할아버지가 경도 의표를 찔렀다.
“오 선생 관상에 관심 많았잖아? 수급자들 보면 이 사람은 젊을 때 뭘 어떻게 하고 살았길래 수급자가 되었나 살펴보기도 했고.”
“그건 그냥 호기심이었습니다.”
“호기심도 자질이야. 오 선생 이름이 경도지? 한자로는 거울 鏡(경)자에 그림 圖(도)?”
“예...”
“그렇다니까. 관상으로 명성 좀 떨치려면 이름에 거울경 자나 그림 도자 하나 정도는 있어야 그릇이 되지. 오 선생은 두 개나 있으니 찰떡 궁합이야.”
“......”
“이리 오시게. 내 전생에 죄가 많아 이 생에서는 관상봉인을 당해 입으로 발설할 수 없으니 그림만 그려댔는데 죽기 전에야 그 봉인이 풀렸어. 그러니 내 임종을 지켜보러 온 오 선생에게 다 주고가려네.”
“임종이라뇨?”
“그럼 폼 좀 나게 열반이라고 할까?”
“할아버지.”
“하지만 과정이 있어. 신이한 능력이라는 게 글자나 말로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할아버지가 화로를 당겨놓았다. 거기 손을 대니 숯불이 주홍빛 별꽃으로 피어오르다 내려앉았다. 재가 꼭 보석처럼 보였다.
“보이시나?”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재 위에 그림을 그렸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손이다. 그런데도 그 손이 그린 그림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눈동자네요.”
“천운일세. 재 위의 그림이 보인다면 오 선생이 내 관상법을 받을 수 있어.”
“......”
“시작할까? 저 위에서 방 빼라고 재촉을 하니...”
할아버지가 재 위에 각종 얼굴 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 경도는 세 번째 경악을 만났다.
‘말도 안 돼.’
첫 그림이 완성되었을 무렵이었다. 재 위의 그림이 시리도록 환한 레이저가 되는가 싶더니 경도의 눈으로 녹아들어온 것이다.
“그렇지.”
경도는 아찔한데 할아버지는 반색을 했다. 화로 위에서 움직이는 손이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재 위에 그려진 얼굴 상들이 꿈틀꿈틀 살아났다. 그런 다음 경도 눈 안으로 폭포처럼 밀려들었다.
< 수급자에게 이상한 선물을 받았어요-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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