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급자에게 이상한 선물을 받았어요-1 >
거울을 보았다. 눈가의 붕대자국은 아직도 보였다. 수급자 황순감 할아버지의 컨테이너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다. 눈에 불덩이가 들어온 것 같은 작렬감에 실명까지 걱정되던 상황이었다. 그 붕대를 풀고 퇴원한 날 사직서를 출력한 것이다.
형과 어머니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그건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더럽게 꼬였을까? 대학 3학년 늦가을에 공시생으로 변신해 8개월 만에 138대 1의 경쟁을 뚫었을 때만 해도 세상은 경도의 것이었다. 덕분에 학과에 플랭카드까지 걸렸다.
[오경도, 공시 합격 ㅊㅋㅊㅋ.]
변리사, 회계사 합격자만 걸리는 거 아니다. 요즘은 9급 공무원 합격자도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노하우랄 건 없지만요.”
학과장의 요청으로 같은 과 후배들 앞에서 합격비법을 강의한 적도 있었다. 한껏 우쭐했다. 취업이 어려우니 재학 중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거의 레전드급 대우였다.
=전략과목 강화.
=취약과목 보완.
=집중력과 스피드.
경도가 강조한 합격비법이었다.
돌아보면 여기까지가 꽃피는 봄날이었다.
‘ㅆㅂ.’
욕이 방울토마토처럼 주렁주렁 달린다. 하늘에 닿은 기분에 금이 간 건 임용후보자 순위 때문이었다. 경도가 응시한 곳은 서울시와 인접한 경기도의 도농복합도시 K시였다. 인구는 30만을 넘었다. 일반 행정9급 10명 모집에 10등이었다. 간단히 말해 꼴등을 찍은 것이다.
‘꼴등?’
단어의 어감이 저급하니 합격 영광이 살짝 오염되었다.
알고 보니 실수가 있었다. 행정법에서 시험지를 넘기다 답안지 번호가 밀렸다. 모의고사에서 매번 80점 이상을 찍던 전략과목에서 45점을 먹었다. 과낙 안 되기가 천만다행이었지만 합격자 입장에서 돌아보면 후회막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0명 합격자 중에 꼴찌.
매우 불친절한 꼬리표가 되었다. 차석은 기억하지 못해도 수석과 꼴찌는 기억하는 사회였다.
덕분에 제1지망, 2지망, 3지망 근무희망지까지 가뜬하게 밀리고 생각지도 못한 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보생활을 시작했다. 일찌감치 때려치우라는 경고였을까? 시보 출근 보름만에 대형사고를 연출하고 말았다.
주연 : 시보 오경도
주제 : 입양신고 민원처리 빅 오류
찬조출연 : 엄낙기 행정주사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가랑비가 칙칙하게 내리는 오전이었다. 50대 초반의 여자 민원인이 여대생을 데리고 들어왔다. 깐깐한 그 모습은 아직도 고화질 HD 동영상처럼 해마 속에 생생했다.
“입양신고 좀 하려고요.”
그녀가 경도의 창구로 다가왔다.
시보조차 떼지 못한 얼뜨기 초보였다. 민원실의 최일선에 앉았지만 가진 건 민원사무처리 지첨서 한 권 뿐.
친절봉사.
국민에 봉사한다는 의욕으로 뭉친 시보의 머리 속에는 그것뿐이었다.
[업무능력 뉴비]
[친절의욕 만렙]
인벤토리 구성에 걸맞게 최대치 친절 모드로 민원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운까지 없었다. 옆 창구에서 조언을 담당하던 야전 책임자 권 주임이 곰새우 맛본다며 블라디보스톡으로 연가를 떠난 것이다.
민원인이 내놓은 서류는 좀 많았다.
“엇.”
서류를 확인하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재빨리 줍줍줍 하고 일어난다는 게 의자 모서리에 정수리를 찧었다. 미치도록 아팠지만 쪽팔림에 내색조차 못했다.
따르릉.
때맞춰 전화까지 집중을 방해한다.
“감사합니다. 강토면 행정복지센터 행정서기보 오경도입니다.”
전화 속에서 고음의 항의가 터져나왔다.
“당신, 이게 뭐야? 아까 준 서류가 바뀌었잖아?”
“......?”
놀란 마음에 발급서류 바구니를 확인했다. 레알 진실이었다. 업무가 밀리던 때라 다른 민원인이 신청한 서류를 내준 것이다.
“아저씨, 저 바쁘거든요.”
앞에 있던 민원인이 칼눈 재촉을 해왔다.
“네, 잠깐만요.”
겨우 수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에 등은 물 폭탄을 맞은 듯 질퍽하게 젖어있었다.
양자신고 건은 ‘당연히’ 처음이니 백전노장 엄 팀장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규정대로 해.”
건성으로 살펴본 그가 서류를 밀어주었다. 별 태클이 나오지 않았으니 오케이로 받아들였다. 정식 접수를 하고 입양자 등록을 마친 후에 초본과 등본, 주민증 등의 서류를 발급해주었다. 나름 어려운 민원을 처리한 초보 시보 오경도. 그게 초대형 사고인 줄도 모르고 뿌듯하기만 했다.
[입양신고 처리 성공]
퇴근하면서 동기 단톡방에 전리품을 올렸다.
-와아, 존경존경. 나 오늘 하루 종일 서류정리만 함.
-그러다 민원의 신 되는 거 아니야?
동기들의 칭송이 줄을 이었지만 신기루는 머잖아 사라졌다.
“오 주임, 이거 니가 처리했어?”
야전 책임자 권 주임이 곰새우 뜯어먹고 돌아온 얼마 후였다. 월간 업무의 교합과정을 살피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런데요?”
“으아, 미치겠네. 양자신고를 왜 양자신청 사이트에서 하지 않고 성본변경 사이트에다 올려놨어?”
“예?”
경도 머리에 벼락이 스쳐갔다.
“입양신고니까 입양 사이트에서 해야지 성본변경 사이트다에 올려놓고 주민등록 전산까지 진행해 버리면 어떡해?”
“그게...”
“만 20세... 친모가 있는데 판결문도 안 받았고.”
“그때 팀장님에게 확인도 받았었는데...”
무안한 마음에 중얼거리자...
“뭐야? 나한테 무슨 확인?”
뒤편의 엄 팀장에게서 총알 질책이 날아왔다.
“양자신고는 당사자가 성년이라고 해도 친부모가 생존하면 친권포기 판결문을 받아야 해. 게다가 등초본에 주민등록증까지 발급?”
“안 되는 거였습니까?”
경도의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엉뚱한 밭에다 씨앗을 뿌린 꼴이었다.
“당장 민원인에게 전화해서 미비서류 보완 받고 정정과정 밟아. 등초본에 주민등록증은 다 회수하고 새로 발급해야 돼.”
‘어억.’
뒷골이 미치도록 땡겨왔다. 통보를 받은 민원인이 폭풍기세로 달려왔다.
“일을 이 따위로 해놓고 사람을 오라가라 해?”
센터를 뒤집어놓았다.
“아저씨, 정규직 공무원 맞아요?”
주민증을 갈기 위해 따라나온 딸도 자존심을 제대로 긁었다. 피해보상은 물론이오, 시장까지 데려오라는 걸 동장이 나와 겨우 달랬다.
“아니, 젊은 친구가 컴맹이야? 사이트 구분도 못해?”
동장에게 깨진 엄 팀장 입에서 오만 가지 힐책을 나왔다.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권 주임도 개입하지 못했다. 이 건의 접수 당시 그는 해외여행 중. 도의적으로도 완벽한 면피였던 것이다.
그때 알았다.
공무원들은 징계 어쩌고 하는 일이 생기면 전부 등을 돌린다는 거. 혹시라도 파편이 튈까봐 우한폐렴 코로나19보다 더 거리를 두는 곳이 공직사회였다.
거기서 충격적인 금기어가 나왔다.
“아, 내가 이래서 임용 꼴찌는 안 받는다고 그랬는데 말이야.”
“팀장님.”
일방적으로 뭉개지던 경도가 꿈틀했다.
“뭐? 내가 없는 말 했어?”
“그래도 그 말씀은 여기서 나올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지금 니가 자존심 생각할 때야? 일 커지면 나하고 면장님까지 징계 받을 판이야.”
엄 팀장의 우려는 오직 그것이었다. 공무원 세계의 비정함을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잘 된 일은 결재 라인으로 공유가 되고 못된 일은 오직 본인 책임인 세계. 어찌어찌 수습을 했지만 강철 낙인이 찍혀졌다.
<대형사고 친 임용 꼴찌>
치욕적인 닉네임을 태그로 달고 시보 떨어지는 동시에 외진 사업소로 쫓겨갔다. 10명 행정직 동기들 중에서 유일한 이동이었다.
더 참담한 건 당시, 다들 경도를 기피했다는 사실이었다. 공직은 넓고도 좁았으니 그새 소문이 퍼진 것이다.
사업소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업무 자체가 단순, 한가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자 동기 중에 네 명이 8급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권태술, 염정아, 정락현, 마지웅...
꿀보직을 받았던 ‘성적 좋은’ 동기들의 약진이었다. 아, 정낙현은 최고령 합격자였으니 사회경험을 살려 점수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 틈에 경도도 시청으로 입성을 했다. 공원녹지과였다. K시는 도농복합이라 동 행정복지센터와 면 행정복지센터가 혼재하고 있었다. 관운 없는 놈의 운명이랄까? 여기서 또 대형사고에 휘말렸다. 그린벨트 해제와 맞물린 결재서류였다. 과장의 득달에 사인을 하고 결재를 진행했다. 업무를 익히기도 전이었으니 가부를 결정할 능력도 없었다.
이 건이 과장의 뇌물수수 의혹과 연결되면서 경찰수사까지 받게 되었다. 담당과장이 조기 퇴직을 하면서 사건은 유야무야되었지만 경도의 꼬리표는 하나가 더 늘고 말았다.
알탕 생각이 났다.
9급 첫 출근 전날, 어머니가 준비해준 행운의 알탕이었다. 그러나 출근을 서두르다 홀랑 태워버려 탄 냄새만 먹었다. 그래서 부정이 탄 걸까? 그걸 제대로 먹었어야하는 건데...
동기들의 뒷담화도 이때부터 노골적으로 변했다.
-걔, 또 대형사고 쳤다며?
-그러다 짤리는 거 아냐?
문제가 생겼으니 또 전보가 되었다. 용포읍 행정복지센터다. 면에서 읍으로 왔으니 영전 아니냐고?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용포읍의 사정은 좀 특별했다.
용포읍은 K시의 복마전으로 불린다. 전임 시장 때부터 시작된 난개발이 절정에 이르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10만을 넘었다. 인구가 는다는 건 공무원들로서는 닥치고 땡큐한 일이었다. 인구가 늘면 행정조직이 확대되고 그렇게 되면 고속 승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난개발이다 보니 온갖 민원이 줄을 이었다. 개발이익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반발도 심했다. 토착 원주민과 아파트에 입주한 중상층들과의 신경전 또한 극에 달했으니 센터가 조용할 날이 없었다.
특히 사회복지 담당자들에게는 무덤으로 불렸다. 수급자 숫자가 타 읍면동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마디로 격무인 데다 지표평가에서도 불리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K시 공무원들은 인사철만 되면 용포읍으로만 보내지 말아달라는 청탁이 줄을 잇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인사발령은 불법이었다. 지방공무원임용령 제27조에 의하면 한 업무의 근속기간 2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도에게만은 사문화규정에 불과했다.
공무원이 된지 3년 10개월 차가 되던 날, 연례행사인 인사발령의 뚜껑이 열렸다.
“이번에는 승진해야지?”
사람 좋은 백광서 팀장이 덕담을 건네왔다. 맹물로 불리는 그 역시 좌천된 형편이기에 그나마 경도의 마음을 헤아리는 편이었다.
결과는 헬나이트였다. 동기 중에서 권태술, 염정아가 7급을 먹었다. 공적조서에는 혁신사업에 공을 세웠다고 나왔지만 그 용어는 공무원들이 단골로 우려먹는 용어였으니 관운빨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나머지도 일동 8급으로 승진을 했다. 심지어는 1년 늦게 임용된 기수에서도 8급들이 나왔으니 낙동강 오리알이 된 건 경도 뿐이었다.
승진은커녕 악몽이 따라왔다. 시보 때 저승사자로 군림하던 엄낙기 팀장이 전입을 온 것이다.
뜻밖이었다. 7급 때는 자치행정 주무주임을 맡을 정도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장이 바뀌며 끈이 잘렸다. 이번에도 뭔가 문제를 있었던 모양인데 어쨌든 모진 악연이었다.
“행정주사 엄낙기 맞춤형복지팀장에 보함.”
하필이면 그가 경도의 직속 팀장이 되었다.
“미치겠네. 또 너냐?”
“......”
“내가 너 때문에 승진 시기 놓쳐서 겉돌다가 이 모양인데...”
그가 치를 떨었다. 경도를 바꿔달라고 읍장에게 요청을 날렸다. 다른 팀장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부터 악연의 후편이 속개되었다.
엄 팀장은 사사건건 경도를 갈구었다. 읍으로 밀려온 화풀이를 경도에게 하는 것이다. 직급도 높았고 말빨도 센 엄 팀장이었으니 당하는 수 밖에 없었다. 같은 팀의 현동욱, 배민지 주임에 이은빛까지도 경도 편은 아니었다.
사직서의 발단은 황순감 할아버지 때문에 벌어졌다.
할아버지는 수급자 신분이다. 이 할아버지, 다른 수급자에 비해 많이 독특했다.
“싸목싸목 할아버지가 좀 이상하다니까요.”
이웃 주민의 전화를 받고 나갔을 때 황 할아버지는 낡은 컨테이너 안에 있었다. 생소한 수식어는 할아버지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였다.
“황순감 님. 읍사무소에서 왔습니다. 계세요.”
컨테이너 안의 황 할아버지, 놀랍게도 검은 해골을 놓고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두 눈은 백내장으로 덮여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 이날 경도는 세 번 경악했으니 그 시작이 이 장면이었다.
검은 해골이었다.
< 수급자에게 이상한 선물을 받았어요-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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