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살해당한 왕
장례식의 주인공이 일국의 대비이다 보니 일주일이나 장례식을 진행했다.
시신은 보존마법으로 꾸준히 유지해주고 말이다.
“페루제 공작부인, 이렇게 3일내내 와주다니 고맙네. 피곤하지 않은가?”
“아닙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대비마마를 만날 수 없으니까요.”
국왕이 짜증을 억누르며 말하자 그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국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왕은 법적 아들이라서 어쩔 수 없이 신전에 있는다고 쳐도 페루제 공작부인은 달랐다.
아무리 친해도 남남이지 않은가?
어떻게 3일 내내 신전에 와서 대비를 애도할 수 있지?
형식만 갖추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한번 오면 한참 동안 대비를 보고 떠났다.
“마지막 인사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그리하게나.”
국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관에 누워있는 대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당신이 아끼던 아들은 폐하가 아니라 제가 죽였답니다.”
그 말을 하고는 우아하게 신전을 벗어났다.
그녀가 국왕의 형님을 죽인 이유는 단순하고 허무했다.
일종의 연습이었다.
들키지 않고 왕족 혹은 왕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동쪽에 고블린들이 세운 제국은 이단을 믿고 있다.
그들은 날로 부유해졌고 강해졌다.
점점 커져가는 그들을 약하게 하는 가장 쉬운 길이 그들 스스로 분열하게 하는 것이었다.
제국의 황제는 아직 후계자를 확정하지 못했고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황자들끼리 황제가 되기 위해 다툴 것이 뻔했다.
생각을 했으니 방법을 찾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상대는 제국이다.
수많은 인재가 있는 황궁에서 황제를 죽이는 동시에 철저하게 사고사 혹은 자연사로 위장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연습이 필요했고 불운하게도 그 대상이 국왕의 형님이 되었을 뿐이다.
어떤 경위로 그가 죽게 되었는지 밝혀졌기에 그녀는 그 계획은 폐기해버렸다.
알펜 왕실이 알아차릴 사실을 이단 제국이 모를 리가 없었고 그들은 알펜 왕실과 달리 배후까지 알아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녀가 신전 밖으로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짜를 앞에 두고 국왕을 원망하며 살다니 불쌍하네요.”
대비가 살아온 인생에 동정심이 생겼다.
그 불행함을 그녀가 줬더라도 말이다.
* * *
알펜 수도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중립파의 숙청부터 대비의 죽음까지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수도 전체가 침울하다보니 경제도 나빠졌다.
사람들이 밖에 나서기를 조심스러워했고 그러다보니 소비가 줄었다.
가게를 하는 사람들, 그 가게에 고용된 사람들이 타격을 받았다.
불만은 커졌다.
술집에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그 불만을 토로했다.
“자기 권력을 위해서 누명이나 씌우고 어머니를 죽이는 아들이 왕이라니.”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불평을 막으려는 사람도 있었으나.
“적당히 해야 참지! 적당히 해야! 이렇게 수도의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면 어쩌라는 거야.”
“그렇지.”
“옳은 말이야!”
대부분 그 말에 동조했다.
평민들이나 오고가는 술집이 아닌가.
윗대가리들이 이런 곳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감히 왕실을 능멸하는 것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당장 끌고 가 조사해라.”
“아이고! 잠시 푸념을 좀 한 것입니다!”
“능멸이라니요! 억울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술집에서 주도적으로 국왕을 욕하던 이들이 잡혀갔다.
그들이 잡혀간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나머지 사람들은 충격 받았다.
역대 어떤 국왕도 이런 술집까지 찾아와서 국왕을 욕한다고 잡아가지 않았으니까.
“자기 잘못은 생각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잡아가다니!”
“미친놈이 국왕이 되었어.”
“살다 살다 이딴 일을 보게 되는군.”
민심이 흉흉해졌다.
설마 국왕이 어머니를 죽였겠느냐니 중립파 귀족들에게 누명을 씌었겠느냐니 하며 편을 들던 소수의 백성들마저도 사라졌다.
* * *
퍽!
국왕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했어! 왜!”
수도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병 총대장에게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이 할 말을 해야 했다.
“폐하를 향한 과잉충성에 일을 저지른 모양입니다.”
“그것을 말이라고 하는가!”
“죄송합니다.”
국왕이 의자를 돌려서 창밖을 잠시 봤다.
“후우, 후우, 후우.”
숨을 들이키고 내뱉고를 몇 번 하고는 치안병 총대장을 바라봤다.
“당장 잡혀 있던 사람들을 내보내주고 일을 벌인 놈들에게는 그에 맞는 징계를 내려라.”
“이미 일을 저지른 놈들은 파직했고 사람들은 보냈습니다.”
“그래. 조치는 빨라서 좋군.”
국왕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알펜 왕국의 주요 언론사에 백성들이 억울하게 잡혔던 것에 관한 해명자료를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기자들을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과잉충성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해명자료 잘 봤습니다. 폐하께서 관여하신 것은 전혀 없다는 말씀이시지요.”
“맞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부디 진실을 기사를 써주게.”
“물론입니다. 진실을 쓸 것입니다.”
형식적인 대화였다.
기자들은 왕실이 내놓은 답을 믿지 않았다.
국왕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믿는다고 할지라도 대놓고 국왕을 적대하는 기사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백성들을 끌고 간 이들은 평소에 어떻게 살았는가?]
[과잉충성이 만들어낸 문제 : 주변인들의 의견은?]
그들은 백성들을 잡아간 이들이 평소에 왕실에 관한 과잉충성 성향을 전혀 보이지 않았음을 썼다.
물론 왕실의 해명 자료도 쓰기는 했다.
단지 기사를 읽은 이들은 왕실의 변명으로 치부했을 뿐이다.
* * *
페루제 공작부인은 ‘대비와 친했던 왕비’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왕비궁에 있었다.
그녀는 접객실에서 왕비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왕비의 측근시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찻잔과 디저트를 앞에 대령하려고 했다.
시녀의 허리가 숙여지고 손이 그녀 앞을 향하자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때가 되었다.”
“언제입니까?”
시녀가 복화술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알겠습니다.”
그들이 대화를 끝내고 문이 열렸다.
왕비가 들어왔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자리에 일어나려고 하자 왕비가 만류했다.
“뭘, 일어나려고 해요. 앉아요. 나를 생각하는 것은 그대밖에 없어요.”
“제가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할까 걱정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이가 있다면 말하세요. 당장 다리를 부러뜨릴 것이에요.”
왕비가 하기에는 과격한 발언이었다.
소심하고 남편의 눈치만 보던 여인은 이제 없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천천히 공을 들여서 그녀를 변하게 했다.
그녀에게 남편은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 아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하지 말아요. 그대가 나에게 얼마나 귀한 사람인데요.”
왕비는 정신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하며 눈치를 봤다.
그녀 자신은 모르지만 페루제 공작부인이 윗사람인 양 굴었다.
바보가 아니라서 자신의 권력이 누구에게 나오는지 잘 알았던 것도 있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다정하게 웃었다.
“저는 내일 벨로나 공작령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벌써? 그러지 말고 더 있어요. 아직 대비마마를 떠나보낸 슬픔을 추스리지 못했어요.”
“누구보다 그러고 싶으나 국왕폐하께서 제가 이곳에 있기를 원치 않으시니 더는 있기 어렵습니다.”
왕비가 손을 미약하게 떨었다.
중립파 숙청의 과정에서 반왕파도 페루제 공작부인의 세력도 타격을 입었다.
명실상부하게 국왕은 왕권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불신과 분노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로 인해서 대비도 국왕의 눈치를 다시 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그것을 당연시했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렇게 될 상황에 분노한다는 것이다.
왕비는 더는 국왕의 멸시와 무시를 참고 싶지 않았다.
이는 왕비의 떨림은 분노에 기인했다는 뜻이다.
떨리는 손을 페루제 공작부인이 잡았다.
“폐하께서 천 년을, 만 년을 사시는 것은 아니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아직 정정하시니 최소 10년은 더 사시겠지요.”
왕비가 눈물을 흘렸다.
그 작자와 1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짜증이 났다.
급사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 독한 이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눈물을 닦아주며 안아줬고 토닥거려주기까지 했다.
자신의 아들에게도, 자신의 조카에게도 한 적 없는 짓을 왕비에게 해줬다.
안겨있는 왕비는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몰랐다.
‘지루하지만 참아야겠지. 대비는 오래오래 나의 꼭두각시로 있어야 하니까.’
얼마나 무료해하고 있는지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데 말이다.
왕비를 한껏 위로 한 페루제 공작부인이 서늘하게 말했다.
그녀 옆에는 왕실 기사 하나가 있었다.
“오늘밤에 할 것이다. 시킨 것을 잘 해야 한다.”
그 기사는 상당히 준수한 외모와 그 외모에 어울리는 평판을 가진 사내였다.
높이 올라가고 싶어서 평소 생활부터 관리하는 인물이었다.
“물론입니다.”
그는 페루제 공작부인이 준 기회를 잡고 싶었기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그 대답에 어떤 말도 없이 가버렸다.
* * *
그날 밤.
왕비는 잠을 자는 도중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축축한 것을 만지는 것만 같았다.
물도 아닌 기분이 나쁜 끈적함이 그녀를 감쌌다.
그 불쾌감을 참지 못하고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손이 무언가를 친 듯했다.
고개를 돌려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어?”
그녀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자신이 왜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악몽인 것인가?
도대체 자신이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머리가 복잡해졌고 자신의 미래가 두려워졌다.
왕비는 바닥에 누워있었고 그 옆에는 국왕이 있었다.
엎드려 누워있는, 아니 엎드려서 죽어 있는 국왕이었다.
복부 쪽에 흐른 피가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왕비의 한손은 피가 젖어 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피로 붉게 변한 칼이 있었다.
충격적인 현장에도 왕비는 검을 쥐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명을 질러서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오도록 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본다면 국왕을 죽인 범인은 왕비라고 확신할 것이다.
왕비조차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국왕을 죽인 기억이 전혀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윽.”
갑자기 두통에 머리가 아파졌다.
어떤 기억이 그녀를 잠식했다.
온몸이 떨려왔다.
‘내, 내가 그랬다고?’
늦은 시각에 국왕의 침실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치마 속에 숨기고 있던 칼로 국왕을 여러 번 찔렀다.
그리고는 서서히 눈이 감겼다.
기절한 것이 분명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
밖에는 왕실기사단의 부단장이 있었다.
왜 자신을 들여보내줬는지 아직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침까지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니 괜찮았으나 결국엔 드러난다.
백 년, 만 년.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자신의 미래는 안 봐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