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갑작스러운 죽음
“결국 국왕의 명령도 거부하고 영지전을 하겠다?”
“국왕폐하의 제안을 거절하고 영지전을 하는 것입니다. 폐하도 아시겠지만 영지전에 관여할 권한이 없음은 기본 상식이지요.”
그녀는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귀족들은 두 사이에 괜히 끼어들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 싫었다.
그들은 침묵을 선택했다.
그 침묵 속에서 알페 국왕이 소리쳤다.
“라보 공작은 부른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이냐!”
문이 열리고 얼굴이 파랗게 질린 시종장이 들어왔다.
“폐하! 라보 공작이 급사하였습니다.”
“뭐?!”
알펜 국왕이 놀라서 자리에 일어났고 그 소식을 들은 모든 귀족이 동요했다.
“당장 조사관을 보내고 라보 공작저택을 통제해라! 누구도 나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는 빠르게 명령을 내리고 페루제 공작부인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 따라 귀족들도 그녀를 슬쩍 봤다.
대놓고 보기에는 무서웠다.
“그대가 영지전 문제로 왕궁에 들어오고 들리는 소식이 라보 공작의 죽음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신께서 뜻이 있으셔서 데려가셨겠죠.”
그녀는 담담하게 감히 신을 언급했다.
자애로운 신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인도했다니 말도 안 되는 발언이었다.
“라보 공작의 문제가 처리된 다음에 다시 불러주시지요.”
그녀가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아님을 감지하고 나가려고 했다.
이를 본 알펜 국왕이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그대는 왕궁에서 나갈 수 없다.”
아직 페루제 공작부인이 그를 죽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라보 공작이 살해당했다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그녀였다.
도주하게 놔둘 수 없었다.
“그러면 폐하의 호의를 감사하게 여기며 왕궁에 잠시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왕비마마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면 되겠군요.”
그녀는 우아하게 인사하고는 나가버렸다.
아직 그녀가 죄인이라는 확증이 없기에 감옥으로 바로 데려갈 수 없는 것이 화가 날 따름이었다.
* * *
조사관이 라보 공작가문의 저택에 도착하자 본 것은 이미 저택을 통제하고 있는 라보 공작가문의 기사들이었다.
“누구도 여기를 벗어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여기를 나가려고 한다면 스스로의 죄를 자인한 것으로 판단하겠습니다.”
라보 공작이 벨로나 공작에게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기는 해도 자기 사람에게까지 열등감을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나름 후하고 대우하려고 해줬다.
그래서 기사들의 충성도가 다른 가문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다.
라보 공작가문의 기사단장이 왕실관리가 다가오는 것을 봤다.
“왕실조사관입니다. 폐하께서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제발 주군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기사단장이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라보 공작은 그에게 주군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이기도 했다.
“물론입니다.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알아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사관이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맡겨달라고 했다.
그는 정의구현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빠져있었다.
기사단장이 라보 공작이 쓰러져서 죽은 곳으로 안내했다.
회의장이었다.
가신들은 주군의 죽음에 충격을 먹은 듯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떤 가신은 눈이 멍하니 정신을 놓았다.
다른 가신은 손을 떨면서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찌하여 자신들과 주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조사관이 눈을 찌푸렸다.
라보 공작은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져서 너무나도 추했다.
조사관은 라보 공작의 시신부터 조사가 필요함을 잘 알았다.
“너희는 라보 공작각하의 시신을 가지고 가서 급사의 원인을 알아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가 부하들의 유능함을 믿었다.
분명히 그가 어떻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지 알아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라보 공작의 시신은 왕실조사관청으로 인계되었다.
조사관은 신입 시종부터 라보 공작부인까지 모두와 대면했다.
“집사, 각하께서는 돌아가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침을 드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대신에 언제나 부인과 영식과 함께 차를 마시셨지요. 그리고 곧 메디치 백작에게 서신이 왔고 바로 왕궁으로 가셨습니다.”
“간식은요?”
“오직 차만 드셨습니다.”
“그리고요?”
“왕궁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신들과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차를 마시거나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분위기도 아니고 차를 마실만한 주제로 모인 것도 아니기도 하고요.”
조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 독이 있었다면 라보 공작부인도 라보 영식도 죽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따로 무언가를 먹은 것도 아니다.
회의실에서도 따로 무언가를 먹지 않았다.
겉으로는 독살을 당할만한 정황은 없어보였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페루제 공작부인인 것을 감안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법을 썼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신 조사가 끝나면 윤곽이 잡힐 것이다.
라보 공작부인은 눈물로 얼굴이 탱탱 부어 있었다.
계속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해서 계속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부인, 충격이 크시겠지만 아시는 것을 전부 말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할 것이에요.”
라보 공작부인이 살벌한 눈빛으로 나름의 각오를 다졌다.
페루제 공작부인에 비하면 강아지가 짖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어찌되었든 라보 공작부인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조사관은 그녀가 조금 진정이 된 듯하여 물었다.
“라보 공작부인, 평소와 달랐던 것이 있습니까?”
“그 악랄한 여자가 서신을 보내기 전까지는 평소와 같았어요.”
라보 공작부인이 갑자기 손톱을 물어뜯었다.
상대가 워낙 거물이다 보니 불안함은 계속 그녀를 덮쳤다
“그 여자가 분명해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그 여자 말고 어디에 있어요?!”
갑자기 소리치며 난리를 피워대는 라보 공작부인이었다.
라보 공작부인도 잘 알았다.
자신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라보 공작부인의 평판을 잘 알던 조사관도 마찬가지였다.
욱하고 불안해하고 이상했다.
분명히 그것은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일 것이다.
그녀 자신도 조사관도 그리 생각했다.
그들은 라보 공작부인이 잠을 자기 전에 맡는 향초를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향초의 향이 사람을 과민반응하게 만들고 이성을 흩트려 놓는다는 것을 말이다.
* * *
조사관은 철저하게 출입을 막은 라보 공작가문의 저택을 나섰다.
대낮에 갔는데 어느새 하늘은 어둡고 달빛만이 밝게 떠올라있었다.
그는 라보 공작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건이니 최고의 전문가들이 사망 원인을 파악해냈을 것이다.
슬프게도 조사관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독살이 아니라니 무슨 소리야?!”
“독살이 아니었습니다. 독 탐색마법으로도 나오지 않고요.”
독 탐색 마법은 독의 유무를 쉽게 알 수 있게 해줬다.
파악할 수 있는 독의 수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독 탐색 마법에 걸리는 독들은 한정되어 있잖아. 거기에 없는 독이겠지.”
“은으로도 했으나 독은 없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서 부검도 해봤으나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그것을 말이라고 하고 있어!”
아침까지 건강했던 라보 공작이었다.
하필 영지전 선포를 받은 날에 갑자기 죽는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부검을 했는데도 이상한 것이 없다고 함은 그냥 급사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혼란스러워하던 와중에 조사관 중 하나가 의견을 냈다.
“신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어떤가?”
“미쳤나!”
의견을 낸 조사관의 멱살을 잡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성모.
그녀와 신전이 같은 편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신관의 도움을 받자니? 독을 신성력으로 없앨 놈들이다.
“신관들의 신성력은 독의 종류는 몰라도 독의 유무를 알게 해주지. 정말 독살을 당했는지만 알아내면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어.”
“그 신관들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와 한편이다.”
그의 동료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조사는 모든 사람들을 용의자로 두고 조사해야 하는 것이야. 그것이 조사의 기본임을 잊어버렸나?”
그는 동료의 말에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조사의 원칙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범인을 찾는 것이지 한사람을 범인으로 특정해놓고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자네가 곁에서 수상한 짓을 하는지 보면 될 일이고”
“나는 신성력에 관해 몰라. 눈앞에서 수작질을 부려도 알 수 없다고. 다른 조사관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신관보다 신성력에 관해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러면 신관에서 파직된 이들을 찾지.”
“파직된?”
“신전과 적대적 관계가 되어서 도망 다니는 신관들이 있다고 듣지 않았는가.”
“음…….”
신관과 적대적인 전직 신관들이라…….
신전의 편을 들어서 거짓을 말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신전이 불리하게 페루제 공작부인을 옭아매도록 도우면 도왔지.
그는 동료의 의견이 받아들일만 하다고 생각했다.
“시신에는 보존마법의 효과가 사라지지 않게 주기적으로 걸어놓도록 하고 그들을 당장 찾아봐야겠군. 고맙네.”
동료의 어깨를 치고 조사관은 밖으로 나갔다.
* * *
비밀리에 쫓겨난 신관들을 찾아냈고 불렀다.
그는 그들이 시신을 확인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신성한 빛이 그들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고 시신은 성스럽게 빛났다.
그들 중 하나가 놀라며 고개를 들고는 조사관을 바라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신성력이 느껴집니다.”
“신성력이요? 어디예요?”
“심장입니다.”
조사관도 전직 신관들도 당혹스러웠다.
신성력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어도 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성력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신관의 말에 부검의가 가슴을 갈라서 심장을 보여줬다.
“헉!”
거기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보였다.
“신벌.”
조사관은 전직 신관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신벌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신성력을 넣고 반응을 했고 정확하게 심장에 고대어로 신벌이라고 써져있습니다. 이것이 신벌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심장에는 신벌이라는 글자가 명확하게 빛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조사관은 이 일을 어떻게 폐하께 보고해야 할지 윤곽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원인불명의 사태에 관해 입단속하는 것뿐이었다.
혼돈에 빠진 그들을 에레보스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그들의 행보를 보면서 웃었다.
“역시 내 계약자라니까!”
자신의 계약자는 역시 대단했다.
쫓겨났을지라도 신관은 신관이었다.
그런 신관들이 신벌이라고 인정한 일이다.
라보 공작은 신벌을 받은 죄인이고 성모인 페루제 공작부인은 신벌을 받은 죄인의 가문을 벌할 자격이 있었다.
라보 공작가문을 지키려는 자들은 신벌을 받은 죄인을 지지하는 악의 무리가 된다.
누명이니 뭐니 주장하며 싸운다고 해도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이 소식을 듣는다면 라보 공작가문 측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질 것이다.
“저들은 저 심장이 내가 바꿔치기한 심장인 것을 모르겠지. 미리 신벌을 새겨놓은 심장을 라보 공작의 몸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역시 대단해.”
그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라보 공작이 어둠의 정령왕에게 죽게 되었다는 것도.
에레보스가 그를 죽이면서 심장을 바꿨다는 것도.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