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210화 (210/221)

210화 대비의 방문

헬리오 왕국을 군림하던 대공은 절규했다.

“으아아아아!”

헬리오 대공은 온몸이 찢어지고 누군가가 내장을 수만개의 바늘 찌르는 고통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대공의 팔과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낸 상처였다.

피로 고통을 느끼면 잠시나마 몸 안의 고통이 줄어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화려한 방은 그가 토해낸 피로 더러워졌다.

소드마스터의 오러가 존재하지 않은 독이 있다고 판단하여 몸을 공격했다.

의사와 그의 제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한명은 대공을 잡고 다른 하나는 어떤 병을 꺼냈다.

“전하! 조금만 참으십시오! 고통을 완화해주는 포션입니다. 곧 효과를 볼 것입니다.”

의사가 빠르게 포션을 대공에게 먹였다.

그러나 비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아아악!”

암살자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활성화한 오러가 헬리오 대공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대공의 곁을 지키는 의사도 그의 제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대공을 지켜주던 오러가 그를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는 현실을 말이다.

* * *

의사가 방을 나왔다.

대공이 잠든 틈에 말이다.

솔직히 잠이 들었다는 표현은 틀렸다.

너무 큰 고통에 기절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곧 다시 몰아치는 큰 고통에 눈을 뜨고 소리를 칠 예정이었다.

기사단장이 의사에게 다가왔다.

“어떠신가?”

“살면서 이리 악랄한 독은 처음입니다.”

“악랄하다니?”

“너무 고통스러워서 대공 전하께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십니다.”

“뭐?”

“고통에 제정신이 아니시니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의사의 말이 옳았다.

정말로 악랄한 독이다.

죽여달라고 말할 정도의 고통을 주고 죽게 만드니까.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말이다.

소드마스터를 그리 만들 수준의 독이라니?!

이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과 같았다.

어떻게 하면 그런 독을 만들 수 있을까?

페루제 루비로즈 그 악독한 여인이라면 만들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얼마나 버티실 것 같은가?”

“그것은 대공 전하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참담하다.

대공이 당장 죽어도 놀라울 일이 아니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큰 고통에 자신을 죽이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고 하는데 언제 삶의 의지가 끊어질지 모를 일이다.

의사가 괴로움을 억지로 참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큰 고통을 스스로 끝내려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정도인가?”

“네… 그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시고 그 고통만큼 절규를 토해내고 계십니다.”

방 주변을 방음 마법으로 해놓지 않았다면 헬리오 왕궁의 모든 이들이 그의 병환을 알게 되었으리라.

의사는 헬리오 대공이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그런 고통을 경험한다면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심장에 칼을 찔렀을 것이다.

그가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는 오지 하나였다.

자신이 죽기 전에 헬리오 국왕인 어린 조카를 위협하는 것들을 모조리 처리해야 하기 위함이다.

“빨리 처리하셔야겠습니다.”

“재상께서는 내가 말하겠네.”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담긴 뜻을 왕실기사단장은 알았다.

헬리오 대공 전하를 위한 것은 빨리 죽게 해드리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기사단장은 헬리오 대공 전하를 위해서라도 조속히 숙청작업을 끝내야 한다고 재상에게 주장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렸는데 점점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대공 전하께서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주시지요.”

“요즘 대공이 방에서 나오지를 않으니 가족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주황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부채를 우아하게 펼쳤다.

그러면서 정말로 대공을 걱정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을 막는 시녀 너머에 있는 방쪽에 시선을 뒀다.

대공이 있는 방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나, 티를 내지 않았다.

시녀는 낭패였다.

헬리오 대공 전하가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하여 곁에 그녀 하나만 둬서 그녀 말고는 눈앞의 여인을 막을 사람이 없었다.

“오랫동안 쉬지 못하시고 달려오신 전하십니다. 대공 전하의 휴가를 재상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휴가라고 해도 방안에 며칠을 박혀 있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녀의 말에 시녀가 난감해했다.

솔직히 그는 활동적인 성향으로 방에만 있는 것은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헬리오 대공은 평소에 왕국의 일을 두고 쉴 사람도 아니었지만 쉰다고 한다면 밖에서 며칠 사냥을 보내다가 올 사람이었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많기에…….”

“나는 선왕의 부인이자 대공의 형수다. 대공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 당장 비키거라!”

헬리오 대공을 찾는 불청객은 대비였다.

대비는 호시탐탐 헬리오 왕국의 권력 피라미드 가장 위에 있기는 원하는 여인이었다.

자신이 가장 위에 있지 않은데 왕국의 안위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페루제 공작부인과 손을 잡고 대공이 죽어가는데 일조한 그녀는 뻔뻔했다.

그녀가 대공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비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한마디로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시녀의 변명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당장 헬리오 대공이 어떤 상태인지 봐야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손으로 들고는 자신 앞을 막는 시녀를 밀었다.

“아니됩니다.”

짝!

대비가 시녀의 뺨을 아주 강하게 쳤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시녀의 뺨은 순식간에 붉게 변해있었다.

“감히 국왕의 어미인 내 앞길을 막다니! 당장 이것을 끌고 가서 죽기 직전까지 쳐라!”

“네!”

대비의 시녀들에게 헬리오 대공의 시녀가 끌려가기 직전이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비마마!”

왕실기사단장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대비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 것 같았기에 그 분노가 컸다.

왕실의 어른이라는 존재가 헬리오 왕국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페루제 루비로즈와 손을 잡은 것인가!

정녕 대비가 자신과 그녀의 가문이 페루제 루비로즈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나?

아니, 무엇을 대가로 헬리오 대공을 죽어가게 만들어달라고 했는가?

마음 같아서는 대비의 멱살을 잡고 진실을 물어보고 싶었다.

멱살을 잡고도 안 된다면 고문이라도 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국왕 폐하와 헬리오 대공 전하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녀가 왕실의 일원이자 남편의 동생인 대공을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상식선에서 하는 짓거리를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것을 막는다면 도리어 자신이 역풍을 맞아서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아랫사람으로 대비의 권위를 훼손했다며 적들에게 공격당할 것이다.

그가 왕실의 웃어른을 막을 권리는 없었으니까.

“대공 전하께서는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서 쉬고 계십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서까지 휴식을 방해하셔야겠습니까?”

그 말에 대비가 콧방귀를 뀌었다.

정말 대공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페루제 루비로즈 그 여자가 자신만만하게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그 여자라고 언제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고 말이다.

확인해야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확인한다는 것은 뒤의 시녀들도 대공의 상태를 확인하는 뜻.

그녀들이 아픈 대공의 상태에 관해 온 궁 안에 소문을 퍼뜨릴 것이고 그 소문이 왕궁 밖으로 나가서 헬리오 왕국의 전역에 알려질 것이다.

“그대가 그러니까 더욱 걱정이 되는군. 대공이 나를 만나지 못할 만큼 좋지 못한가보지?”

“대비마마!”

왕실기사단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방문의 저의가 너무 확실했기에 더욱 막아야 했다.

그가 은은하게 살기를 뿜어서 그녀의 몸을 잠시나마 아프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방안에서 의사의 제자가 나왔다.

시종의 옷을 입었고 있어서 영락없이 시종이었다.

“대공 전하께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그래? 그러면 들어가야지.”

대비가 왕실기사단장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두발로 당당하게 서서 대비를 맞이했다.

대비의 얼굴이 굳었다.

물론 왕궁에서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곧바로 표정을 풀었다.

화사하게 웃으며 헬리오 대공에게 다가갔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서인지 미세하게 경련이 났다.

일반 사람들은 모를 미세함이지만 헬리오 대공은 알아차렸다.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으셔서 다행입니다. 사람들이 대공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냐며 수근거리니 없던 걱정도 생기더군요.”

걱정이 아니라 기대였다.

대비는 헬리오 대공의 상태가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아서 짜증이 났다.

짜증도 짜증이지만 낭패이기도 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도리어 헬리오 대공의 건재함을 보여준 꼴이 되었다.

귀족들을 포섭하는 것을 스스로 방해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창밖의 달을 올려다봤다.

“본의 아니게 걱정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밖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얼굴을 비춰주세요. 그래야 나도 걱정을 덜하지요.”

남들이 보면 진심으로 헬리오 대공을 걱정한다고 여길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연기력 하나만큼은 페루제 루비로즈와 비견되었다.

“나이가 드니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지켭더군요. 젊은 시절에 제가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도 젊은데 그런 말을 하다니요. 대공보다 나이가 많은 저는 어찌하라고요.”

그녀가 몸을 돌려 그를 보자 그도 그녀를 봤다.

“말이 그렇게 됩니까? 제가 실수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농담인 것을 아시면서 사과를 하시다니 재치가 있으십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방에 울렸다.

“이리 강건한 대공을 확인하니 마음이 좋군요. 다음에 차라도 한잔 마셔요.”

“그러도록 하지요.”

기쁨을 표정으로 드러낸 대비는 조금 더 헬리오 대공과 있다가 방을 나왔다.

* * *

헬리오 대공에게서 멀어질수록 미소는 점점 없어지고 눈빛은 서늘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대귀족들도 입을 벌릴 사치품들이 있었다.

페루제 루비로즈에게나 감당할 수 있을 사치품들을 대비도 구한 것이다.

자신도 페루제 루비로즈처럼 할 수 있다는 허황된 자신감과 이유모를 라이벌의식으로 원인이었다.

“아아아악!”

쨍그랑!

대비 곁에 있던 도자기병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방음 마법 덕분에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정정하셨나보군요.”

방안에는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대비가 표독스럽게 그를 노려봤다.

“그대가 말하지 않았는가! 대공은 일어설 기력조차 없을 것이라고!”

“서 있었다고요?”

그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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