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204화 (204/221)

204화 부부의 협력

파빌리오 공작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알았네. 무슨 일을 하면 되는가?”

“단죄의 홀에서 제가 원하는 일이 진행되도록 말을 꺼내 주시면 됩니다.”

파빌리오 공작은 그녀에게 말을 듣고 깨달았다.

‘저 여자 손아귀에서 모두 놀아나고 있구나.’

처음부터 그녀는 견제할 상대도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그가 눈을 질끔 감았다가 떴다.

“알았네. 그리하도록 하지.”

“사람들 입단속 단단히 시키시지요.”

그녀가 파빌리오 공작부인을 독에 중독되도록 만들었다는 소문이 들면 괜한 의심을 샀다.

파빌리오 공작부인을 빌미로 그녀가 협박을 했다는 의심이었다.

물론 의심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나 진실은 모르는 이가 많을수록 좋았다.

“이미 시키고 있네. 사람들은 정원일로 무리하는 바람에 열병이 생겼다고 믿을 것이야.”

“알아서 척척 해 주셨군요.”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고 난 이후에 ‘단죄의 홀’에서 만나게 되었다.

‘단죄의 홀’에서 그 어떤 귀족도 나가지 못했다.

단단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왕실 기사들이 가져올 증거를 기다렸다.

식사는 왕궁시종들이 가져왔다.

각 가문의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반역이 사실화되고 있음이었다.

반역에 관해서 조사할 것들이 많다는 의미였으니까.

귀족들은 단죄의 홀에 갇혀 있는 것도 조사를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

“도대체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까?”

“역대 어느 국왕도 이렇게 오래 귀족들을 가둬두지 않습니다.”

일부 귀족들은 참지 못하고 불만을 표하려고 했다.

“라보 공작각하도, 파빌리오 공작각하도, 메디치 백작각하도 모두 조용히 기다리십니다. 어디 한번 폐하께 뭐라고 해 보시지요.”

“아, 아니. 누가 불만이라고 했습니까?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요.”

왕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3인이 침묵하니 다른 귀족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중립파에 속한 귀족들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중립파 모두가 하는 생각은 같았다.

‘반역죄에 연루되면 가문은 멸문 당한다!’

왕궁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단죄의 홀에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나가겠다는 것은 반역을 저지르려고 해서 도망가려고 한다고 말하는 꼴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계속 남자니 누명이라도 씌어지면 도저히 도망갈 길이 없다.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어떤 귀족은 손톱을 뜯었고 다른 어떤 귀족은 손을 심하게 긁었다.

이 중립파 귀족 중 가장 불안하고 심적으로 힘든 인물은 주리스 후작이었다.

‘메디치 백작의 말이 맞았던 것인가.’

메디치 백작이 국왕에게 밀릴 것을 두려워해서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저 여인이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말들이 아니었는데 후회가 되었다.

만약 그녀의 말처럼 중립파가 쓸려나간다면 왕실의 재산만 불리게 된다.

오랜 세월 가문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왕실에 가져다가 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주리스 후작은 제발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진실로 이뤄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 모습들에 덩달아 반왕파의 귀족들도 불안해졌다.

‘국왕이 아까 메디치 백작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메디치 백작을 옭아매는 것이 실패했으니 차선책으로 반왕파의 세력을 정리하려 할 수 있다.’

‘이번 일에 엮이는 귀족들이 많을수록 왕실의 재산도 많아지겠지. 멸문된 가문의 재산은 왕실에 귀속되니까.’

괜히 억울하게 누명이 씌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에 반해 메디치 백작은 하품을 작게 하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녀 앞에는 시종에게 가져오도록 시킨 서책들이 쌓여 있었다.

다른 귀족들과 달리 아무런 생각이 없어보였다.

“폐하, 기사단장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증좌가 나왔는가!”

알펜 국왕은 다급하게 왕실기사단장에게 말했다.

“할레니움가의 66-6 주택은 매춘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사창가였단 말인가?”

“사창가이기는 하나…….”

알펜 국왕의 물음에 왕실기사단장이 말을 흐리며 에드네 백작을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경멸이 담겨있었다.

“어린 소녀와 소년들이 있었습니다…….”

에드네 백작이 무릎을 꿇었다.

“제가 어린 소녀와 소년들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도저히 안 되었습니다.”

반역죄로 죽는 것보다 차라리 어린 소녀와 소년을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았다.

그것은 자신 한 명만 망하는 것으로 끝나니까.

“그렇다면 반역을 도모했다는 증거는 없는가?”

알펜 국왕은 제발 이것이 에드네 백작의 변태적 성향이 들어난 해프닝으로 끝났으면 했다.

그러면 에드네 백작 하나 벌주고 다 해결된다.

아니면 너무 많은 피를 흘릴 것이고 국왕인 그는 귀족들에게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왕실기사단장이 국왕이 어떤 입장에 처했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거짓을 말했다가 나중에 들키면 생길 후폭풍이 더 컸다.

그는 조사 결과를 그대로 말했다.

“그곳을 조사하여 확인한 바, 할레니움가의 66-6 주택에서의 매춘은 반역 모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어린 소녀와 소년을 좋아했을 뿐입니다!”

왕실기사단장의 발언에 에드네 백작이 반박했다.

바로 자신이 쓰레기 변태였다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곳의 포주는 부정했으나 반역과 관련된 자료가 저택의 비밀 금고에 나왔으며 그 관련자들에 관한 자료도 있었습니다. 여기 그 명단이 있습니다.”

알펜 국왕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는 공언했었다.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이들을 처벌하겠다고 말이다.

하물며 이것은 반역죄다.

도저히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여지가 없었다.

“이 명단에 있는 이들을 모두 감옥에 가두고 제대로 조사하라.”

“네!”

국왕의 명령이 떨어졌다.

귀족들의 운명이 정해졌다.

기사들에게 붙잡힌 귀족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거 놔라!”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

어떤 귀족들은 강하게 거부했다.

“폐하, 억울합니다. 누명입니다!”

“저는 정말로 역심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귀족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다.

중립파 귀족들은 어느 정도 운명이 예상이 되었으나 예상외의 인물들도 잡혔다.

“나는 중립파 귀족이 아니오!”

“어허! 왜 이러는 것이오! 파빌리오 공작각하 제발 뭐라고 해 주십시오!”

“메디치 각하! 제발 살려주십시오!”

중립파처럼 거의 전부가 쓸려나가지는 않았으나 반왕파와 루비로즈 파의 귀족들도 일부 끌려가게 되었다.

오직 친왕파의 귀족들만 안위를 보장받았다.

단죄의 홀에 있던 귀족 중 반수가 반역으로 끌려갔다.

* * *

친왕파만 제외하고 본다면 반수 그 이상이리라.

건국제 연회로 상당수 귀족들이 식솔들을 이끌고 수도에 왔다.

덕분에 그들을 잡는데 수월했다.

평화로웠던 저택에 들이닥친 왕실기사들은 살기등등했다.

그리고 그 저택의 주인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것 놔라!”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무슨 죄로 이리 우리를 끌고 갑니까?”

저항하는 후계자와 당황해하는 안주인.

10 중의 10은 모두 그러했다.

“반역죄요.”

“반역죄?”

“어머니!”

죄명을 듣고 어머니나 가문의 여식이 쓰러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런 일은 소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한 집안의 가주이자 왕국이 신하로 왕실을 위해 충성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어찌 반역을 도모하겠습니까?”

“제발 재조사해 주십시오.”

그들은 내 아비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역죄는 호소한다고 해서 풀려날 죄가 아니다.

그러나 이례적인 결정이 내려왔다.

“재조사를 윤허한다. 더 철저하게 조사하라.”

다시 반역죄에 관해 억울한 희생자가 없게 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이었다.

아쉽게도 조사하면 할수록 연루된 귀족들은 불리해졌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증거자료를 보면 대리인을 두고 실질적은 소유주는 남작이었더군요. 그 자금으로 반역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물론 대리인을 두고 상단을 운영한 것은 맞으나 절대로 그 자금을 반역에 쓰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저지른 죄와 반역이 교묘하게 엮였다.

환장할 노릇이다.

알펜 국왕은 미칠 것 같았다.

이 일로 숙청하게 생긴 귀족이 고위 귀족의 반이었다.

가문의 일가가 수도에 있었던 경우는 그나마 나았다.

문제는 가문의 후계자들이 영지에 남아 있고 이 소식을 들은 경우였다.

“왜 아버지께서 감옥에 계신단 말인가!”

“폐하께서 철저한 조사로 진상을 밝히겠다고 하셨습니다.”

저지르지 않은 일로 가문이 멸문하게 생겼는데 국왕의 말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과거 자신의 형님을 죽이고 왕위를 얻은 찬탈자다!”

“더는 가짜 왕이 그 자리에 있게 할 수 없음이다!”

잡혀간 이들의 아들이 뭉쳐서 진짜로 군사를 일으켰다.

메디치 백작 하나를 몰아세우려고 했던 것이 내전으로 이어지게 생긴 것이다.

왕국의 위기가 도래했고 그 위기를 해결한 인물은 둘이었다.

“반역죄에 잘못을 빌지 못할망정 군사를 일으키다니!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다시는 이런 죄가 벌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메디치 백작과 벨로나 공작이었다.

몬스터 토벌로 이끌던 군사들을 데리고 가서 역도들을 처단했고 메디치 백작도 이를 위한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알펜 왕국의 최고 무력집단이 메디치 백작과 벨로나 공작의 병사들이 힘을 합치니 역당들은 허무하게 쓸려나갔다.

그 재산을 파악하기도 전에 두 가문이 뒤에서 엄청 빼돌리고 나머지를 왕실에 바쳤다.

감옥에 갇혀서 자식들의 죽음을 듣게 된 귀족들은 절규했다.

“세상에 이딴 식으로 귀족들을 몰살하는 왕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죽어서도 네놈을 저주할 것이야!”

“네놈과 네놈의 후손이 고통스럽게 죽기를 기도하마!”

그들은 알펜 국왕의 모략에 자신들이 고문당하고 자식들은 죽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친왕파를 제외한 모든 정치 파벌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루비로즈 파에서는 겉으로는 중요시했으나 실상은 버림패였던 귀족들만 처리되었음을 몰랐다.

달이 아름답게 비추는 밤의 어느 막사에서 벨로나 공작과 페루제 공작부인은 서로 잔을 부딪히며 웃었다.

벨로나 공작이 자신의 벗이자 자신의 주군을 배신하고 아내와 손을 잡은 것이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정말 좋은 날이군요.”

“역시 한번 해 봐서인지 능수능란하더군.”

“혁명 때에 악랄한 귀족들을 처단하기는 했지요.”

벨로나 공작은 라스타 왕국의 혁명 당시에 루비로즈 가문이 귀족들을 몰살하고 그 재산을 빼돌린 일을 언급했다.

그녀는 그 말의 뜻을 알면서 모른 척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대놓고 인정하기 싫은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벨로나 공작이 진지하게 말했다.

“약속은 지켜야 할 것이야.”

“그럼요. 앞으로 같이 진행할 일들이 있는데 지켜야지요.”

그녀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잔에 담긴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폐하께서 당신을 의심하지 않으시겠어요?”

“나는 몬스터 토벌로 바빴고 역도가 있다는 소식에 그것으로 갔을 뿐이야.”

아직 알펜 국왕은 그들이 손을 잡았음을 알아서는 아니 되었다.

진짜 한방을 날리기 위해서는 그들은 사이가 나쁜 부부로 남아야 했다.

“나와 당신이 손을 잡았다는 의심을 할리가 없다?”

“친왕파의 동요가 상상보다 훨씬 커. 라보 공작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야.”

한마디로 친왕파 내부의 불신을 진정하는데 바빠서 벨로나 공작을 의심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친왕파 내부에서도 이번 반역 사건은 국왕이 심했다고 여겼다.

적당히 해야 벗을 삼지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속닥거렸다.

그 속닥거림에는 훗날 자신들도 그런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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