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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201화 (201/221)

201화 과연 누가 먼저 그 죄인을 잡을 것인가?

메디치 백작을 지지하는 귀족들과 메디치 백작이 몰락했으면 하는 귀족들이 팽팽하게 맞섰다.

“겨우 이런 일을 반역처럼 말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그런 식이면 반역이 아닌 귀족이 없겠습니다!”

“어느 귀족가문의 기사가 왕실 기사와 그딴 식으로 대립한단 말입니까!”

“옳소! 메디치 백작의 오만함이 하늘까지 닿아 있는 것이오!”

한쪽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다른 한쪽은 반역에 준하는 행위로 여겼다.

같은 상황임에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은 180도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반왕파의 수장인 파필리오 공작은 침묵했다.

파필리오 공작의 최측근이 그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파필리오 공작각하, 어찌할까요?”

“일단 지켜보지. 이게 함정인지 정말 몰린 건지 모르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평소라면 반왕파는 라보 공작을 공격했을 것이다.

그가 틀렸다며 뭐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나서기가 좀 그랬다.

아니, 이번만큼은 국왕폐하가 저 여인을 몰아냈으면 했다.

‘이 기회에 저 여인을 수도에는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야 해.’

파빌리오 공작은 페루제 메디치 백작을 아주 싫어했다.

친왕파와 알펜 국왕보다 더 싫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교묘한 수작질에 치가 떨리기까지 했다.

그는 주먹을 남몰래 꽉 쥐었다.

‘저 여인의 이간질로 친왕파나 반왕파나 내부적으로 분란이 생겨서 수습하느라 고생했지.’

친왕파 소속의 귀족들끼리, 반왕파 소속의 귀족들끼리 대립하는 사건들이 생기면서 친왕파와 반왕파는 타격을 입었다.

그러면서 세력이 그대로 유지된 그녀의 세력이 상대 쪽을 지원하지 않을까 싶어서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중립파도 세력 유지에 성공했으나 그녀의 세력은 더 커졌다.

각 파벌의 분열로 나가버린 귀족들이 그녀의 편에 선 것이다.

중립파는 루비로즈 파를 견제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차라리 중립파가 정권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으면 좀 나았을 것인데 안타까운 일이었지.’

중립파는 그들의 이익이라는 것에 초점을 둔다.

설득할 여지가 있음이다.

이에 반해서 루비로즈 파가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그들은 오직 페루제 루비로즈 메디치 백작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우습게도 그녀의 뜻은 친왕파를 위한 것도 아니고 반왕파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중립파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루비로즈 파의 정치 방향은 오직 그녀 자신을 윈한 것이었다.

문제는 페루제 루비로즈 메디치 백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왕권 약화인 것 같다가도 어느 날에는 반왕파의 세력 약화를 노리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애매함은 경계심과 불안감을 반왕파에게 줬다.

이렇게 생각에 빠져있는데 진중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메디치 백작이 찾는 인물이 반역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반역.

그 진실 여부와 상관이 없이 연루되면 죽은 목숨인 엄청난 죄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메디치 백작이 손을 들었다.

“그가 반역과 관련되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알펜 국왕이 여유롭게 웃었다.

“그 사내는 사라지기 전에 왕실 기사들에게 자신을 입막음하려고 한다고 했지.”

“그런 말을 했다는 말도 믿기 어렵지만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그 입막음당할 일이 반역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왕실 기사들의 증언을 불신하는 것이 매우 언짢지만 특별히 넘어가도록 하겠네.”

장난스러운 알펜 국왕의 말투에도 페루제 메디치 백작은 무심했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귀족들은 알아차렸다.

평소와 다른 미묘함이 느껴졌다.

메디치 백작은 뭔가 다급해 보였고 알펜 국왕은 승기를 잡은 듯한 기세였다.

정말 그들이 모르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 그렇지만 그 미지의 사내를 추적하던 중에 이런 서신들을 찾게 되었지. 가져와라.”

왕궁 시종들이 어느 큰 상자를 가져왔다.

“추적하던 중에 찾은 별채의 비밀공간에 있더군.”

그가 눈짓하자 시종들이 그 상자를 열었다.

어떤 글이 써져있는 종이들이 담겨있었다.

“그 서신에 어떤 말이 써져있는지 읽어라.”

“네.”

시종이 대답하고는 숨을 들이키고 내쉬었다.

“알펜 왕국의 국왕은 자신의 형님이자 적통 세자를 죽인 패륜아다. 그런데도 많은 방관자들로 인해서 그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는가. 더는 그가 왕좌를 차지하게 둘 수는 없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우리가 나서야 함이 마땅하다. 이는 모두 왕국과 백성을 위함이다”

시종이 서신을 다 읽고 입을 다물자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상자 안에 서신들이 가득 찬 것으로 보아 서신을 받을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기 어렵다. 허나 명백히 반역의 무리가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밝혀줄 인물이 메디치 백작! 그대가 찾는 인물이다. 이래도 내가 방관해야 하는가!”

알펜 국왕이 근엄하게 소리쳤다.

시선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약간 짜증이 난 표정을 지었다가 갈무리했다.

“그 죄인을 찾는 과정에서 우. 연. 히. 발견한 것들입니다. 어찌 반역과 그것을 연관 지으려고 하십니까?”

“죄인 하나를 찾으려다가 반역의 증거들을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를 생포하여 진상을 알아야겠다.”

귀족들이 보기에 알펜 국왕은 반역의 배후와 그 세력을 밝히려는 것이고 메디치 백작은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듯했다.

“또한, 그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그 세력을 뿌리 뽑을 것이다!”

“그리하십시오!”

“왕국의 미래를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십니다.”

명분이 알펜 국왕에게 있었으니 굳이 그녀의 편을 들 이유가 없었다.

더는 왕실의 개입을 막기 어려웠다.

루비로즈 파의 귀족들이 메디치 백작을 힐끔거렸다.

알펜 국왕은 그녀를 빤히 봤다.

마치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더는 반대하지 않나?”

그가 비아냥거리자 그녀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언짢은 마음을 그리 드러낸 것이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아하게 웃었다.

회의장에서 계속 무표정이었다가 말이다.

“마땅히 그리하셔야 한다고 하시니 어쩔 도리가 없지요. 그러나 저도 조건을 붙여야겠습니다.”

“반역죄에다. 조건을 붙이다니 말도 웃기지도 않는군.”

“폐하, 저희의 관계를 생각하면 타당한 제안입니다.”

“타당하다? 그 타당하다는 조건을 말해 보게.”

알페 국왕이 턱을 까딱거렸다.

어서 말해보라는 의미인 듯한데 참으로 짜증을 유발했다.

양아치가 할 법한 태도와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죄인을 잡으면 모든 고위 귀족이 보는 앞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해 주시지요.”

“당연히 조사를 한 뒤에”

“아니요. 1시간 이내에 저희 앞에서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시지요.”

귀족들이 침묵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국왕이 그 죄인을 잡아다가 거짓 자백을 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그것은 알펜 국왕이 보여준 증거도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뜻했다.

“거짓이 없다면 그리해도 별탈이 없을 것입니다. 1시간이라는 시간도 있고요.”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디치 백작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만한 상황이었다.

알펜 국왕과 메디치 백작의 사이는 그 정도로 나빴다.

누명을 씌울까 걱정할 만큼.

반왕파의 수장인 파빌리오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폐하, 반역의 배후와 세력을 밝히는 일입니다. 저희가 모두도 알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겨우 조사 1시간으로 배후와 그 세력들을 알아내라는 것인가?”

알펜 국왕이 얼굴을 찌푸렸다.

반역이 얼마나 큰일인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폐하, 그 1시간 안에 전부를 밝히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죄인이 본 것과 행한 행동을 저희 앞에서 밝히게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죄인이 말한 말을 듣고 난 뒤에 정식 조사를 해도 괜찮았다.

그 말을 기반으로 조사를 시작할 것이고 적어도 알펜 국왕이 거짓 증거를 만들어 냈다는 오해도 풀릴 것이었다.

“고위 귀족들이 죄인을 말을 들은 증인이 될 것이고 그 진위의 신뢰성은 견고해질 것입니다.”

파빌리오 공작이 슬쩍 메디치 백작을 봤다가 국왕을 다시 쳐다봤다.

알펜 국왕은 반왕파의 수장이 무슨 저의로 그녀의 편을 들었는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그녀가 반왕파와 손을 잡았는가?

이 일을 통해서 무슨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인가?

메디치 백작의 세력을 약화하는 것보다 큰 이익이 무엇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파빌리오 공작이 그녀를 지지할 이유는 없었다.

자기 세력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이었으니까.

메디치 백작의 몰릴 때에 발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결론 내렸다.

고위 귀족들이 죄인의 말을 들은 증인이 된다면 그녀를 더욱 강하게 몰아세울 수 있었다.

아무래도 라스타 왕국에 있는 30만 대군은 부담이 되었으니 빈틈없이 준비하고 몰아내야 했다.

“백작의 말을 받아들여도 그리해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라보 공작이 국왕의 진위를 파악하고 대답했다.

“저도 찬성합니다.”

중립파의 수장인 주리스 후작도 찬성했다.

“좋네. 라보 공작도 파빌리오 공작도 주리스 후작도 찬성을 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 일에 관해서 결정이 되었으니 저는 이만 나가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그녀는 발걸음에 힘을 주며 걸었다.

그 걸음걸이에는 짜증과 분노가 담겨있었다.

최대한 마음을 억누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회의장을 나가고 곧 다른 귀족들도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이거 어찌되는 것입니까?”

“어찌기는 뭘 어째요. 기다리면 될 일이지요.”

“기다리다니요?”

“그 죄인을 폐하께서 잡으면 폐하의 승리이고 메디치 백작이 잡으면 백작의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그때 행동을 어찌할지 판단하면 되겠군요.”

저마다 이 싸움의 최종 승자가 누구일지 궁금해 했다.

* * *

과연 누가 먼저 그 죄인을 잡을 것인가?

이것에 따라 이 싸움의 승자가 정해진다.

그리고 그 승기는 국왕이 잡았다.

그는 죄인이 있는 곳으로 친히 갔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죄인이라면서 정작 그는 감옥에 있지 않았다.

뒷골목 출신은 경험할 수 없는 좋은 방에 있었다.

감옥이 아니었기에 죄인은 고문도 당하지 않았다.

그는 알펜 국왕을 보자마자 머리를 땅에 박으며 그리고 다시 머리를 들고는 손을 비비며 애원했다.

“무엇이든지 말하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

“그대에게 죄가 없다면 응당 보호해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펜 국왕의 자신만만한 확언에 그 사내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그러니 말해 보게. 도대체 무엇을 봤는지 말이야.”

“물론입니다!”

그 죄인은 안도하며 자신이 본 것을 나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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