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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192화 (192/221)

192화 손거울의 비밀

마법사 적합 판정을 받으면 아이들은 마법사가 되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정식 마법사가 되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원한 페루제 공작부인은 꾸준히 변화를 원했고 마법은 그것을 이루게 해 줬던 것이다.

마법사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지식인 계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마법사는 부모가 가난하거나 부족해도 자식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되었다.

백성들은 자신의 자식이 마법사가 되어서 부유하게 잘 살기를 원했다.

왕국 측면에서의 지원과 백성들의 지지는 마법사들의 위치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마탑 측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솔직히 정령사의 가치가 예전보다 못하지요.”

“신전에서 정령사를 대우하는 것을 바꾸는 것은 저희의 권한이 아닙니다. 훗날 정식으로 신전에 의견서를 제출하시지요.”

“나머지 주장에 대해서는 긍. 정. 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있는 메디치 백작령은 서대륙 최고이자 최강의 영지였다.

이렇다 보니 메디치 백작령의 정책은 타국에서도 적용되었다.

마법사의 양성이 왕국 혹은 영지의 강함을 좌지우지할 요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령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무슨 소리입니까! 왜 마법사들의 주장만 들으시려고 합니까!”

“정령술도 엄연히 이론을 가지고 체계화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마법사 양성 정책의 반이라도 정령사 양성에 힘을 써주신다면 정령사도 마법사만큼 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저항은 힘없이 끝나 버렸다.

마법사가 대세인 세계에서 정령사의 발언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정치를 하는 분들은 심드렁했다.

“소환수가 있는데 왜 정령사가 필요하지요?”

“마법사를 양성하는 것은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기초과학의 영역이니까요.”

“그대들을 불러서 정령을 소환하는 것보다 가게에서 소환서를 구매해서 소환수를 부르는 것이 더 간단합니다. 그런데 왜 그대들을 지원해야 합니까?”

마법사들 말처럼 짐승형 정령인 소환수가 대중화되어서 그들의 가치가 떨어졌다.

일반 백성들도 소환수를 소환하는 시대다.

그들이 왜 필요할까?

원하는 능력을 가진 소환수를 소환하면 되는데 말이다.

물이 필요하면 물의 능력을 가진 소환수를, 불이 필요하면 불의 능력을 가진 소환수를 부르면 되었다.

정령사들은 그 말에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말한다고 한들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을 듯했다.

정령사는 마법사와 귀족들에게 당한 모욕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만약 란델리노 백작이 아니었다면 다들 먹고 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온갖 발린 말을 하던 것들이 그렇게 입을 싹 씻을 줄은 몰랐습니다. 란델리노 백작님은 저희 정령사들의 은인이세요.”

“그렇게까지 말해 주니 고마운데 민망하네.”

란델리노가 뺨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환수들은 전장에서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사적인 살해에도 이용될 수 없다.

그것이 어머니와 환수 왕 간의 계약이라고 들었다.

반면에 정령사들은 그들의 의지로 얼마든지 정령을 이용해서 살육을 벌일 수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 그들을 거둬들인 것이다.

그래서 란델리노는 불의 정령사와 바람의 정령사를 참으로 좋아했다.

“아참! 제가 드릴 선물이 있었는데 깜빡했네요.”

“선물?”

“이거입니다.”

란델리노는 정령사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

손거울이었다.

예쁘기는 하지만 아주 많이 낡은 손거울이었다.

“손거울?”

“네. 그런데 일반적인 손거울이 아니에요. 마나를 넣으면 이렇게 푸른빛이 나와요.”

“마도구인 거야?”

란델리노는 무심하게 손거울을 내려다봤다.

마법사들의 수장이나 같은 어머니를 뒀다.

저택에 훨씬 좋은 마도구들이 깔려 있었다.

“이, 이것의 기능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시큰둥한 반응에 정령사가 당혹스러워하며 빨리 말을 꺼냈다.

삐질삐질 땀도 나는 듯했다.

“여기 낡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손거울 무늬 사이에 고대어가 적혀 있습니다.”

그 말에 란델리노가 흥미를 가졌다.

그러자 정령사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는 어서 오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대는 어서 나의 부름에 답하라!”

이번에도 변화는 없었다.

“나나의 정령이여! 신물의 부름에 따르라!”

갑자기 그들이 있는 주변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도마뱀 형태의 붉은 정령이 나타났다.

불의 정령인 셀레맨더였다.

“이거 설마?”

“나나의 정령입니다.”

“나나의 정령을 다룰 수 있나?”

정령사가 안전한 곳에 있고 병사들이 정령을 대신 다룬다면 더 효율적으로 전쟁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란델리노의 눈빛이 기대로 물들었다.

“그건 아닙니다.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군.”

곧 실망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이것도 신기하지만 다른 신기한 기능이 있습니다. 이 손거울을 정령사가 보게 되면 얼굴이 비치지 않습니다.”

“얼굴이 비치지 않는다니?”

“물의 정령사라면 거울이 파랗게, 불의 정령사라면 거울이 붉게 변합니다.”

란델리노는 신기한 물건인 만큼 어머니가 만족하실 것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어머니는 남들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지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정령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대로 거울이 모습을 비추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어디서 찾아냈지?”

“저녁을 먹고 나서 수도의 골동품 가게에서 찾아냈습니다.”

“이 기능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지?”

“술 취해서 손거울의 문구를 읽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손거울을 샀고 2차에서 술에 취해서 손거울의 문구를 읽었다는 뜻이다.

“고맙네.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군.”

“정말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란델리노는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특이하고 낡은 손거울은 뭔가 위대한 성현이 만든 성물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실 수 있다고 여겼다.

어머니와 나들이할 때에 드리면 딱 좋겠다며 스스로를 자화자찬했다.

“어머니, 오늘 어떠십니까?”

“날씨도 적당히 선선하고 햇빛도 좋아.”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기대가 되는구나.”

그녀가 란델리노가 준 상자를 열었다.

거기에는 손거울이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들어서 얼굴을 비췄다.

“얼핏 낡아 보이지만 특이한 손거울입니다.”

“특이하기는 하구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여져 있다니 말이야.”

란델리노는 정령사의 말을 떠올렸다.

물의 정령사는 거울이 파랗게.

불의 정령사는 거울이 붉게.

그렇다면 거울이 검다는 것은?

그것은 어머니가 어둠의 정령사라는 뜻이었다.

성모인 어머니가 악마의 사역마로 불리는 어둠의 정령사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이 손거울의 기능을 알게 된다면 어머니는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흠이 생기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셨으니까.

성모가 ‘어둠의 정령사’라니 지나가던 개가 비웃을 일이지 않는가.

한때 악마의 사역마와 계약한 죄로 사형을 당하던 ‘어둠의 정령사’가 성모라니!

이는 신전과 신의 권위를 한껏 떨어뜨리는 짓거리였다.

동시에 란델리노는 깨달았다.

어머니가 왜 ‘어둠의 정령사’라는 이유로 이단 재판과 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했는지 말이다.

어머니 당사자가 어둠의 정령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실한 신자임에도 반대를 무릅쓰고 욕을 먹으면서 ‘어둠의 정령사들’의 안전을 보장해 줬다.

적어도 죄가 없다면 ‘어둠의 정령사’라는 이유만으로 죽지 않게 된 것이다.

“죄송합니다.”

“응? 뭐가?”

“골동품 풍의 마도구를 요구했는데 불량품을 보낸 모양입니다.”

“괜찮다. 그럴 수 있지. 그러니 마도구를 만든 이들을 너무 혼내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그녀가 우아하게 앉아서 언덕 아래의 영지를 바라봤다.

란델리노는 땀에 젖은 손을 옷으로 닦았다.

그리고는 이 거울에 관해 하는 정령사와 그 동료들을 모조리 독살했다.

죽음은 가장 빠른 침묵이자 완벽한 침묵이었다.

란델리노가 목 졸린 와중에도 여유를 부렸다.

“큭, 내가 죽으면 어머니가…….”

그 말에 에레보스가 그를 놓아 줬다.

눈을 찌푸리면서 내려다봤다.

란델리노는 몰랐으나 그가 뿜어내는 살기에 동굴 밖의 나무들과 풀들 그리고 짐승들은 죽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신물의 힘으로 죽지 않은 것이다.

정령왕조차 강제로 소환하는 신물이니 그의 힘을 막는 것도 당연했다.

“헉! 헉! 헉!”

“말해라. 저 손거울은 뭐지? 그리고 너는 어떻게 저것을 가지고 있지?”

란델리노는 막혔던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목을 만지며 자신의 생존을 재차 확인했다.

그런 란델리노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이 에레보스는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다시 묻지. 어떻게 저것을 가지고 있지?”

중요한 문제였다.

에레보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두 존재 중 하나였다.

그런 에레보스를 강제로 여기로 불렀다는 것은 저 손거울이 자신보다 높은 존재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라도 저 손거울 이용해서 에레보스를 불러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자신보다 높은 존재가 만든 신물이라서 빼앗을 수 없었고 신물이 인정한 주인을 죽일 수도 없었다.

빛의 정령왕을 제외한 만물이 에레보스에 아래에 있다.

자신이 무력하게 끌려와야 한다는 것은 기분이 더러워지는 일이었다.

란델리노도 에레보스도 몰랐지만 그 신물을 만든 존재는 바로 란델리노를 회귀하도록 해 주고 회귀 전의 일을 꿈으로 보여주는 존재였다.

에레보스조차 못하는 시간 회귀를 하는 존재가 그 손거울 만든 이유는 오직 재미였다.

약자가 약자를 손아귀에서 가지고 노는 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중요합니까?”

“네가 죽고 싶구나.”

“어머니께서 슬퍼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그리하지 마십시오.”

에레보스는 눈을 찡그렸다.

심기를 거슬리게 했으나 그는 자신의 친구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것이 가식이든 진실이든 말이다.

“그게 그리 중요합니까? 제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불렀는지가 중요하지요.”

“그래. 어디 한번 네가 어떤 말을 지껄이는지 들어보지.”

“사람 하나를 죽일 생각입니다.”

에레보스가 헛웃음을 냈다.

계약자도 아닌 놈이 감히 자신에게 그따위 명령을 내리려고 하는 꼴이 웃겼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답게 저 망할 손거울이 강제로 명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면 진작 명령을 내렸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사람을 죽이고 어머니가 범인을 물으면 거짓을 말해 주시지요.”

“내가 왜 거짓말해야 하지? 그것도 계약자에게 말이야.”

에레보스가 비아냥거렸다.

하찮은 인간 놈의 말에 따라서 계약자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그런 정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상대가 빅토르니까요.”

란델리노가 입 밖으로 꺼낸 이름에 에레보스가 움찔했다.

“당신은 빅토르를 시기질투하지 않습니까.”

“…….”

“이것으로 저를 도울 이유는 충분할 것 같은데요.”

에레보스는 그 말에 어떤 반론도 내뱉지 못했다.

그는 빅토르를 미워하고 질투했다.

겨우 인간 따위에게 어둠의 정령왕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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