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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180화 (180/221)

180화 진상고객

레티시아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였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기사들이 처참하게 패배하는 것까지 그녀의 계획대로였다.

망해데쓰 남작이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라서 다행이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수도의 상인들이 애용하는 보석상 거리가 있다.

망해데쓰 남작은 그 보석상 거리의 사장들에게 유명했다.

아는 척을 못하면 죽는 병에 걸린 진상 손님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이 보석은 말이야. 알로니아 보석으로 그 역사를 말하자면 앗! 설마 보석상인데 그 역사는 알겠지. 그렇지?”

“여기 흠이 났잖아. 이런 것을 사면 손해라니까. 나랑 다른 곳에 가자.”

“이거는 나파 보석이고 나파르 보석이야. 보석 이름이 비슷하고 빛깔도 비슷해서 착각하지. 여기처럼 말이야.”

보석상들보다 자기가 보석에 관해 더 잘 아는 것처럼 굴었다.

아무리 망해데쓰 남작이 보석에 관해 잘 알아도 보석상들보다 알지는 못한다.

엄연히 그들은 전문가였으니까.

진상이라고 출입 거부라고 써놓고 싶었으나 불가했다.

그들은 상인이었고 그는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귀족을 거부하는 평민이라니!

하극상이 따로 없다.

아무리 진상이라도 매출에 도움이 된다면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역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보석인가?”

“이 보석은 말입니다.”

“그거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부인?”

“네?”

이렇게 보석상이 손님에게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망해데쓰 남작이 끼어든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 뒤에 손님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손님보다 보석에 관해 모르는 보석상이라니 웃기다.”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가자.”

하나는 전문성이 없는 보석상으로 오해하고 가게를 나가 버린다.

“아니, 보석상에게 물어본 것인데 왜 자꾸 끼어든데?”

“그러니까. 부담스러워서 못 있겠어.”

망해데쓰 남작의 적극적인 다가감이 부담스러워서 가게를 떠났다.

그 손실만큼 망해데쓰 남작이 손을 쓰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이 보석으로 하겠네.”

“큐빅을 구매하시는군요.”

“여기에는 내 수준에 맞는 보석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큐빅이란 모조 다이아몬드였다.

한마디로 가짜 보석인 것이다.

거금을 쓸 고객은 쫓아내고, 가짜 보석을 사는 망해데쓰 남작은 수도 보석상 거리의 적이었다.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하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보석상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제발 오늘은 자신의 가게에 그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날도 망해데쓰 남작은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부인, 이 보석은 루이자 보석이고 저 보석은 루파나 보석이지요.”

“아, 그렇군요.”

언제나처럼 망해데쓰 남작에게 잘못 걸린 어느 귀부인이 썩은 얼굴로 잡혀 있었다.

단지 다른 일이 있었다면 그가 있는 보석 가게에 레티시아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혹시 선물용 보석을 구할까 하는데 어떤 보석이 있는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러면 추천하기 전에 몇 명에게, 어떤 분들에게 드릴 것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보석상의 점원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레티시아가 보통 영애가 아님을 말이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도 고급이었으나 다가오는 걸음걸이, 말투, 손짓에서 우아함이 느껴졌다.

단기간에 나올 수 없는 자태인 것이다.

“평소에 저를 아껴주신 두 분의 어른께 선물을 드리려고 해요. 두 분 전부 저희 어머니뻘이시고요.”

“그러시군요. 그러면…….”

점원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무례하게 두 사람의 대화를 끊어버린 작자가 있었다.

“영애, 괜찮다면 연륜이 있는 내가 추천을 하지.”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레티시아라고 합니다.”

“이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소개를 하지 못했군. 망해데쓰 남작이라고 하네.”

보석상 점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고객 하나가 떠나가는구나 싶었다.

방금 전에 있던 귀부인은 망해데쓰 남작이 자신을 잡을까봐 도망쳤다.

“이보게. 점원, 플라워마린을 보여주시게.”

점원은 미안함에 레티시아를 바라봤다.

잘못은 망해데쓰 남작이 했으나 저런 진상을 막지 못한 책임도 있었기 때문이다.

“네, 어떤 것을 추천해 주실지 궁금하네요.”

그 미안함을 알아챈 레티시아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괜찮다고 신호를 보냈다.

다정한 미소는 그 마음이 진실임을 알게 해줬다.

점원의 옆에 있던 사장도 눈을 반짝이며 감사의 뜻을 눈빛으로 전했다.

점원은 아까 망해데쓰 남작이 잡고 있던 귀부인의 응대를 하고 있었다.

“플라워마린을 추천하지.”

“플라워마린을요?”

망해데쓰 남작의 추천에 레티시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네. 이 아쿠아로즈로 말하자면…….”

“아쿠아로즈를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에게 드리라는 것은 아니시죠?”

망해데쓰 남작의 말은 중간에 끊어졌다.

레티시아가 경악한 것처럼 굴면서 끊어 버린 것이다.

“예?”

“아쿠아로즈는 푸른 보석 안에 꽃모양이 박혀 있죠. 그 꽃모양은…….”

“장미가 아닌가! 얼마나 좋은가!”

“하아.”

레티시아가 한숨을 쉬었다.

참으로 생각이 부족한 인물이라는 듯한 한심함을 가득 담았다.

망해데쓰 남작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다행히 화가 나서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데 그러는 것인가?”

“푸른 장미가 어떤 의미인지 아시나요?”

푸른 장미는 현 시대의 기술로는 교배나 품종 개량으로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꽃말은 허상, 불가능, 부질없음이었다.

한참 어린 소녀가 어른들에게 부질없음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그들에게 그대들이 지낸 세월이 부질없었다고 하는 것은 모욕이었다.

그 세월 동안 그들이 이룬 것들을 부질없었다고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 그것이…….”

“하아.”

망해데쓰 남작이 말을 떨었다.

아는 척을 하기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푸른 장미의 꽃말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것을 주면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도 몰랐다.

레티시아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푸른 장미의 꽃말은 부질없음이에요.”

“부질없음! 그렇지! 나도 알고 있었어.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야.”

망해데쓰 남작이 뒤늦게 아는 척을 했지만 늦었다.

그러나 레티시아는 굳이 티를 내지 않았다.

“역시 그러시죠? 남에게 보석을 추천해 주실 정도로 조예가 깊으신 분인데 모르셨을 리가 없겠지요.”

“그럼! 흠흠흠. 잠시 정신이 없어서 기억을 못했을 뿐이니까.”

그는 민망함에 자신이 기억을 못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보석가게 사장과 점원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아는 척이란 아는 척은 다해서 장사를 방해한 빌런을 정의의 영애가 소탕해 주고 있었다.

레티시아가 이 가게를 나서는 순간에 이 일은 보석상 거리에 쫙 퍼지게 될 것이다.

레티시아가 잔잔한 미소를 얼굴에 머금고 입을 열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부질없음이란 하지 않아도 해도 부질없으니 일단 도전해 보라는 의미로 전해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희 어머니대의 부인들은 이미 경험해 볼 것은 모두 경험해 본 분들입니다.”

마치 상대에게 가르침을 주는 듯한 말투였다.

명백하게 자신을 위로, 망해데쓰 남작을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그분들의 세월을 조롱하는 선물을 보내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 그렇지.”

자식뻘 되는 영애에게 굴욕을 당했음에도 망해데쓰 남작은 인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레티시아 영애의 당당한 태도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솔직히 레티시아는 평소의 페루제 공작부인을 따라한 것뿐이었다.

“그러면 다른 보석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자네 마음에 쏙 들 보석을 말해 주겠네.”

망해데쓰 남작의 수난이 시작된 것이다.

“이 보석은 자넨이라고 불리는 보석이지. 그대 어머니뻘의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품위가 있다고 할까나?”

“자넨에도 등급이 있는데 이것은 어느 등급에 속할까요?”

“등급? 흠흠.”

망해데쓰 남작은 보석에 관해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겉핥기식으로 아는 것이었다.

그러니 상세하게 들어가면 어버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도면 상급이지.”

“정말인가요?”

레티시아가 눈을 반짝이며 보석상에게 물었다.

보석상도 레티시아도 마음이 통했다.

저 진상을 몰아내자!

솔직하게 말하기만 하면 되었다.

“중급입니다. 상급 자넨은 저희 보석상에서 매입이 불가능합니다. 이 보석상 거리에서 상급 자넨이 있는 곳은 왕실과 직거래하는 보석상들뿐입니다.”

“어머! 실수하셨나 보네요.”

“이이이익!”

망해데쓰 남작의 얼굴이 민망함과 창피함에 불타올랐다.

상급 자넨은 왕실과 직거래하는 보석상에만 있다.

쟁쟁한 재력과 권력 등을 가진 귀족들만 갈 수 있는 보석가게들이었다.

영지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망해데쓰 남작은 거기에 발도 디딜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보석을 아는 척한 상황이다.

아는 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 아는 척을 할 때마다 막히니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했다.

“에휴, 안 되겠네요. 남작님께서 자주 사시는 것을 보여주시겠어요?”

“아, 아닐세!”

온갖 비싼 보석들을 추천해 놓고 정작 자신은 큐빅을 샀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던 모양이다.

망해데쓰 남작이 강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당한 것이 많은 보석상 사장과 점원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빅엿을 먹일 기회였다.

“남작님께서는 여기 큐빅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아… 큐빅…….”

동정이 어린 눈빛으로 레티시아가 망해데쓰 남작을 바라봤다.

이에 욱한 그가 삿대질했다.

“너, 너 어린 것이 말이야! 어디 어른한데 훈계질이야! 어디에서 그렇게 막돼먹게 굴라고 배웠어! 어!”

“예? 그게 무슨?”

“어른이 생각해 줘서 의견을 냈으면 말이야! 감사하다고 떠받들지는 못할망정 어디서 뭔 짓이야!”

레티시아도, 보석상의 사장도, 점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가 자기한테 보석 좀 추천해 달라고 했는가?

아니다.

망해데쓰 남작이 자진해서 굳이 자기가 추천해 주겠다고 다가온 것이다.

“추천을 해주신 것은 감사하나 남작님의 추천을 따랐다면 제가 선물을 드리려는 분들에게 무례가 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던 것을 버릇이 없다고 말하시다니요!”

“저! 저것 좀 보게! 저리 뻣뻣하게 구는 것을 보니 곁에 사람이 없는 것이 보이네. 보여!”

“저에게 무례하게 구시는 것은 남작님입니다. 저에게 한 모욕적인 언사들을 사과해 주십시오.”

“나는 모욕적인 언사를 한 적이 없어!”

레티시아도, 망해데쓰 남작도 서로 물러나지 않았다.

망해데쓰 남작은 새파랗게 어린 영애에게 지기 싫어서였고, 레티시아는 계획대로 일이 진행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레티시아가 목적을 말했다.

“과거에 기사재판이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죠.”

“기사재판?”

기사재판이란 과거에 성행했던 재판 종류로 죄의 유무를 목숨을 건 대결 결과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대리인이 대신 싸웠기에 기사재판이라고 불렸다.

상대에게 죄를 졌더라도 이겼다면 무죄가 되는 웃기는 방식이다.

과거에 애매하고 양측의 대립이 팽팽한 재판에 많이 적용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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