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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166화 (166/221)

166화 파이브 카드 드로우 포커

페루제 공작부인이 무심하게 말했다.

“왜 천한 것들을 데려와서 아들과 싸워요?”

“공작 가문의 안주인이라는 여인이 말투가 그게 뭐야! ‘천한 것’이라니!”

“당신이 이런다고 저것들이 여기서 나가도록 하지는 않아요.”

벨로나 공작이 가족이 모이는 식사에 엘리사와 헤레스를 데려온 이유는 간단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어떤 판단을 심어 주기 위함이다.

그 판단은 정부와 사생아가 공작성을 활보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눈앞에서 꺼지게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엘리사와 헤레스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을 방해하기로 작정하면 피를 볼 수 있다.

부부 각자의 기사단이 성에 있었으니까.

그녀의 발언으로 보아하니 벨로나 공작의 시도는 실패했다.

벨로나 공작이 소리치는 것을 무시하고 그녀는 아들을 바라봤다.

그녀는 남편만 공격하는 그런 여인이 아니었다.

“저딴 것들 때문에 아버지와 싸우다니 어디서 못 배운 짓이니?”

“어머니!”

페루제 공작부인의 반응에 란델리노가 소리쳤다.

각자가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배가 고프니까 어서 식사하죠.”

그녀는 그들을 무시하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빤히 벨로나 공작과 란델리노를 쳐다봤다.

“뭐해요? 어서 앉지 않고요?”

한순간에 난장판이었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고용인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음식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

고요함만 있는 공간에서 그녀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다른 이들은 아니지 않은가.

특히 란델리노는 말이다.

“밖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들리더구나. 사실이니?”

“저 천박한 여인이 제 이모인 것은 사실입니다.”

어머니의 질문에 담담한 척하며 대답했다.

란델리노는 자신의 감정에 욱하는 모습이 귀족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질지 몰랐다.

아닐 수도 있으나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조심해야 했다.

“너의 친모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은 거짓이고?”

“그것도 사실입니다.”

“나도 파악하지 못한 것을 파악하다니 놀랍구나. 그 정보 경로가 궁금할 정도야.”

란델리노는 아차 싶었다.

이것의 정보 경로를 솔직하게 말하게 되면 비밀조직 아나스에 관해 알게 될지도 몰랐다.

아나스는 자신이 사촌에게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비장의 수단 중 하나였다.

아나스에 관한 정보를 유출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렇다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미리 선수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유서가 있었습니다.”

“……?!”

“……?!”

벨로나 공작과 엘리사는 충격에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에 비해 페루제 공작부인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유품은 그림책 하나뿐이지 않았니?”

“일정 나이가 되면 확인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 있다고 써져 있었습니다.”

마법 그림책이었음을 알리는 대신에 어떤 마법인지를 감추는 것이다.

이러면 적어도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 그림책인지 조사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마법 그림책이었다라… 갑작스러운 죽음도 설명이 되는구나.”

“그럴 리가 없다!”

“언니는 우리 관계를 몰랐다고요!”

페루제 공작부인은 이해했다.

반역죄로 몰린 외가에서 유일하게 귀족으로 살아남은 여인이었다.

그를 지켜줘야 할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아들을 지킬 방법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모정은 위대함을 그녀는 다시 깨닫게 되었다.

정신을 차린 벨로나 공작과 엘리사는 진실을 부정했다.

자신들이 잘 속여 넘겼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디서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야!”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요.”

페루제 공작부인이 바퀴벌레 한 쌍을 보듯이 눈을 힐끔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상대의 입장은 안중에 없었다.

“아이에게 상처가 될 대화하는데 굳이 여기에 앉혀 두는 것도 웃기네.”

“아이 앞에서 조심하면 될 것을! 어찌 그리 말해!”

“굳이 조심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알아서 치우세요.”

페루제 공작부인이 사생아를 배려할 이유는 없었다.

자기 자식도 아니고 남편이 바람이 나서 낳은 자식을 뭐가 예쁘다고 말인가.

그녀가 아들을 올려다봤다.

“지금도 가지고 있니?”

“특수한 마법이 걸려 있어서 몇 번 읽으니 태워져 버렸습니다.”

“하긴 마법까지 몰래 걸어놓을 만큼 조심스러운 사람인데 유서를 남겨 뒀을 리가 없지.”

란델리노의 말은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했다.

란델리노의 친모는 남편과 동생이 바람난 것을 끝내 모른 척하고 자결할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다.

유품인 그림책에 진실을 숨겨놓고 때를 봐서 복수해 주기를 원했고 말이다.

그 치밀한 사람조차 설마 펠로나 공작의 장남이 학대를 당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면서도 고용인들의 학대를 방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자기 남편이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판이었다.

벨로나 공작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를 위해서 다른 아이를 희생시킬 쓰레기였다.

그녀가 비웃었다.

바보같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살한 여인도, 벨로나 공작도, 앨리사도 머저리 같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모두를 하나하나 천천히 보고는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여기보다는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의중을 알아챈 란델리노가 말을 이었다.

그녀가 헤레스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아가야, 너는 혼자 식사를 해야겠구나. 불만이니?”

“…….”

겁에 질린 헤리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울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고갯짓으로 대답을 하는지. 쯧.”

“아들은 어머니를 닮은 법이죠.”

“역시 그래서겠지.”

그녀가 란델리노와 함께 엘리사와 헤레스를 조롱했다.

네가 아무리 발악해도 너는 평민이고 정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만 좀 해!”

“알았어요. 회의실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죠.”

벨로나 공작의 일갈에 페루제 공작부인이 일단 한걸음 물러섰다.

여기서 시간 낭비하기 싫었으니까.

“좋아. 회의실로 당장 나가지.”

“정부도 데려가죠.”

“그녀는 왜 데려가자는 것이야!”

벨로나 공작이 본 아내는 타인을 향한 동정과 자비가 없는 인물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어떤 말로 해코지할지 걱정이 되었다.

일이 꼬여서 여기에 들이게 되었지만 엘리사가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다.

남편의 분노에도 페루제 공작부인은 당당했다.

도리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당사자가 당사자의 일을 남에게 들으면 되겠어요. 본인일은 본인이 알아야죠.”

“알겠습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엘리사가 자신과 아이를 죽이려고 했던 여인을 향해서 의연하게 말했다.

그녀의 대답에 벨로나 공작은 당혹스러웠다.

“엘리사, 그대는 저 잔인한 여인과 마주할 필요가 없어.”

“아니에요. ‘저희’의 일이잖아요. 함께 알아야지요.”

“엘리사.”

벨로나 공작이 엘리사에게 감동한 듯했다.

과한 책무를 어깨 위에 지고 있던 그에게 ‘함께’라는 말은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저딴 말에 감동하는 남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엄마.”

그 말에 헤레스가 움찔거리며 엘리사를 안았다.

아이 나름대로 가지 말라는 의사표현이었다.

저 무서운 부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해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아이의 불안을 느꼈는지 엘리사가 헤레스를 안았다.

벨로나 공작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괜찮아. 아빠가 지켜줄 거니까.”

“그래. 아빠가 엄마를 지킬 거야. 아빠 믿지? 아빠는?”

“응, 믿어요.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

“그래. 그러니까 저녁 먹고 방에서 쉬고 있어. 알았지?”

“네.”

엘리사와 벨로나 공작이 다정하게 헤레스를 달래고 회의실로 향했다.

란델리노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홀로 있는 헤레스를 빤히 봤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가문의 유일한 적자인 그는 누리지 못한 것을 사생아는 누리고 있었다.

뭐, 부럽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부모의 사랑을 누린 대가로 목숨을 잃게 되거나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니까.

꿈속에서 헤레스를 죽인 것처럼 현실에서도 사생아 아우를 비극적으로 죽게 만들 것이다.

* * *

헤레스에게서 시선을 돌린 그는 회의실로 향했다.

“참으로 희한한 조합이네.”

“일반적이지는 않죠. 어머니.”

회의실에 마련된 원탁에 앉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처럼 평범한 조합은 아니다.

정부와 본부인이 남편을 두고 한 테이블에 앉아 있다니 말이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란델리노와 훈훈하게 웃었다.

모자의 좋은 분위기를 깨는 방해가 들어왔다.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눠 보지.”

“좋아요. 그러려고 저녁도 미루고 여기에 모인 것이니까요.”

벨로나 공작이 란델리노를 슬며시 보고는 입을 열었다.

“란델리노도 내보내지.”

“왜요? 엄연히 벨로나 가문의 유일한 적자입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란델리노도 페루제 공작부인과 같은 생각이었다.

“맞아요. 어머니의 말씀처럼 적자인 제가 가문의 일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죠.”

“여기서 결정된 것을 나중에 보고 받거라.”

“보고 받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것이 더 빠르고 낫죠.”

능청스럽게 말하는 란델리노였다.

벨로나 공작은 상대가 아들만 아니었다면 주먹이 나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로 페루제 공작부인의 친아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아이는 그녀를 닮았다.

외모가 아니라 분위기가, 성정이 비슷했다.

남성판 페루제 루비로즈가 있다면 란델리노일 것이다.

란델린노가 살벌한 아버지와 비웃음으로 맞대응하는 어머니를 보고는 박수를 쳤다.

그러면서 미소를 지었다.

“기왕 모였는데 포커 게임이나 할까요?”

포커 게임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분위기에 더 좋을 것 같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흥미롭다는 듯이 아들을 바라봤다.

“포커 게임도 여러 가지가 있지. 어떤 것을?”

“아버지의 뜻에 맡기지요.”

벨로나 공작과 언성을 높이며 싸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예의를 차리는 척을 했다.

보통 뻔뻔함으로는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파이브 카드 드로우 포커로 하지.”

“좋지요. 가장 간단하고 운에 좌우되는 포커니까요.”

벨로나 공작가문의 주인과 안주인이 결정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은 따르면 될 일이다.

엘리사는 이 공간에서 무언가를 주장할 권리도 거부할 권리도 갖지 못했다.

파이브 카드 드로우 포커에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상대의 카드 패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교환된 카드 숫자만으로 상대의 패를 예상해야 한다.

운에 따라 승패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원탁에 앉았는데 페루제 공작부인을 기점으로 오른쪽에 벨로나 공작이 왼쪽에는 란델리노가 있었다.

맞은편에는 엘리사가 있었다.

시작은 벨로나 공작이었다.

그가 페루제 공작부인의 카드를 한 장 가져갔다.

“그러면 바로 시작하지요.”

란델리노의 말에 따라 모두가 자리에 앉아서 5장의 카드를 받았다.

그리고 각자의 순서에 따라 카드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시비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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