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버려진 사생아를 곁에 둔 이유
펠리시아.
벨로나 공작령에서, 알펜 왕국 북부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어 버렸다.
벨로나 공작에게 버림을 받은 여인, 페루제 공작부인의 화풀이용 개가 된 여인으로 말이다.
펠리시아를 동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부라고 해도 불쌍해요. 개 취급이라니요.”
“뭐? 불쌍해? 말조심해!”
“맞아. 자기 아들 공작으로 만들려고 왔다가 그 꼴이 난 것인데 말이야. 공작부인께서 계시는 벨로나 공작 가문에서!”
“죄송해요! 제가 경솔했어요!”
펠리시아를 동정한다는 것은 알펜 북부 사교계에서 고립될 빌미를 주는 것이었다.
황제의 자리를 노린 역적들을 옹호하는 이들은 같은 죄로 처벌받는다.
북부의 귀족들에게 펠리시아는 대역죄인이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사교계의 절대권력자이자 여왕이다.
그런 그녀의 자리를 탐했다는 것 자체가 죄였다.
고로 펠리시아를 동정하는 것은 대역죄인을 동정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펠리시아가 당하는 모든 모욕은 ‘마땅히 따라야 할 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펠리시아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그들도 사람이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에 왔는지 몰라.”
“공작 각하께서 영지로 데려가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후딱 도망을 쳤어야지.”
“에휴, 아이만 불쌍하지.”
“사생아가 불쌍하다고 느껴보기는 처음이에요.”
푸른 피를 지녔다는 귀족들조차 란셀을 가엾게 여겼다.
귀족들도 그러한데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오죽할까?
* * *
사람들은 그녀의 자식인 란셀에게 친절했다.
그 친절을 행하면서 동정의 눈으로 란셀을 쳐다봤다.
“란셀 영식, 아침 가져왔습니다.”
“식사하기 전에 세안부터 하시지요.”
그들의 친절은 연민을 기반으로 했다.
누군가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자신이 그 누군가보다 높기에 할 수 있음이다.
란셀은 사람들의 눈빛에 든 우월감이 싫었다.
그렇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보지 말라고 소리조차 칠 입장이 되지 못했다.
똑! 똑! 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일부러 인위적으로 낸 듯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그 소리에 란셀이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형님! 왜 이제야 오셨어요!”
“바빠서 며칠 동안 못 찾아왔구나.”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일 빨리 끝내고 오면 안 돼요?”
“그래. 미안하다. 다음에는 그러마.”
란셀은 란델리노를 안았다.
그는 자신의 형님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펠리시아는 나날이 초췌해졌다.
살은 점점 빠져서 나중에는 뼈만 남을 것 같았다.
란셀은 아픈 어머니에게 심려를 끼쳐드리기 싫었다.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던 날부터 펠리시아의 제대로 된 웃음을 보지 못했다.
란셀은 어머니의 슬픈 웃음이 마음이 아팠다.
“여기 너에게 주려고 산 선물들이야.”
“정말로요? 지금 풀어 봐도 되나요?”
“물론이지.”
란셀은 기쁜 마음으로 선물 꾸러미를 풀었다.
거기에는 좋고 신기한 장난감들이 있었다.
그는 정말 즐거워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형이 준 장난감을 받고 즐거워하는 동생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형.
정말 정다운 모습이었다.
란델리노는 란셀을 놀아주고 이야기를 나눴다.
란셀은 그의 무릎 위에 앉아서 조잘거렸다.
“형님, 저는 그런 눈빛들이 싫어요.”
“그런 눈빛? 너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들이 있니?”
“아니요. 다들 잘해 줘요. 그런데 불쌍하게 저를 봐요.”
“불쌍해하는 눈빛?”
“저를 낮잡아 보는 것이 싫어요.”
란셀의 말에 란델리노의 표정이 굳었다.
서늘한 눈빛으로 동생을 내려다봤다.
란델리노의 무릎 위에 란셀이 앉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그 차갑고 짜증스러워하는 눈을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니까.
그의 반응은 자연스러웠다.
란델리노는 그 동정조차 받지 못하고 학대를 당했었던 과거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땅에 떨어진 연민이라도 핥아서 먹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란셀의 말이 자기 분수도 모르는 말이었고 오만한 말로 들렸다.
그가 싫다는 동정을 받고자 구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푸념을 한단 말인가!
목적이 있어서 곁에 두었으나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숨을 천천히 들이켜고 내쉬며 짜증을 갈무리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란셀, 혹시 어머니를 원망하니?”
“어? 그게요…….”
란델리노의 물음에 란셀이 말을 흐렸다.
란델리노가 말한 어머니가 ‘페루제 공작부인’임을 알았다.
자신의 어머니인 펠리시아를 개 취급하며 모욕을 주는데 어찌 원망하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어머니와 자신을 죽이려고 한 페루제 공작부인이 무섭고 미웠다.
“이제는 아니에요.”
“그래? 다행이구나.”
그렇지만 이제는 달랐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형님이 사랑하는 어머니였다.
게다가 란셀은 어머니가 고통을 받게 된 이유를 알았다.
“형님의 말씀이 맞아요. 페루제 공작부인은 벨로나 가문의 안주인으로 하실 일을 하신 거예요.”
“이해해 주니 고맙고 좋구나.”
란셀은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배웠다.
이제 란셀은 알았다.
자신은 아니었으나 어머니인 펠리시아는 자신을 잘 살게 해주고 싶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란델리노와 페루제 공작부인을 치워야 한다는 것도 함께였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스스로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선 것뿐이었다.
게다가 공작부인은 독살을 당할 뻔했다.
강경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모든 비극을 만든 것은 벨로나 공작각하, 그 천박한 악녀와 더러운 아이에요.”
“그렇지.”
란델리노가 장하다는 듯이 란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벨로나 공작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인 엘리사는 천박한 악녀가 되었다.
벨로나 공작이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은 더러운 아이가 되었다.
“그래. 너의 행복한 삶을 부숴 놓은 것은 우리의 아버지지.”
“아버지에게 속살거려서 어머니와 저를 불행하게 만든 악녀가 있고요.”
란셀은 펠리시아와 단둘이 잘 살았다.
아버지가 없었다고 해도 그 빈자리를 느끼지 않았고 언제나 밝게 살아왔다.
마을에서 친구들과 해가 지기 전까지 놀았다.
어머니가 해준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하루의 일을 말했다.
그런 즐거운 하루가 계속 되어 왔다.
행복하게 살던 그들을 아버지라는 작자가 이곳으로 데려왔다.
잘해 주겠다고, 지켜 주겠다고 했으나 전부 거짓이었다.
그들은 기만당했다.
“잘 기억하고 있구나.”
“당연하죠!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에요!”
란델리노가 따스하게 말했다.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만족감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란델리노는 동생이 이렇게 자신이 하는 말을 신뢰하면서 따라줬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단코 잊지 마렴. 아버지는 처음부터 어머니를 독살하고 그 범인으로 지목하기 위해서 너와 너의 어머니를 데려온 것이야.”
“형님.”
란셀이 고개를 돌려서 란델리노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아주 작게 맺혔다.
그때의 일은 다 잊었다는 것처럼 형님에게 푸념도 하고 놀기도 했으나 아니었다.
란셀의 마음은 아직도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돌아가셨다면 저와 어머니가 뒤집어쓰고 죽었겠지요?”
“내가 너만은 어떻게든 살렸겠지.”
란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란델리노가 닦아 줬다.
란셀은 몸을 돌려서 란델리노를 꽉 껴안았다.
자신과 어머니를 지켜줄 사람은 형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도감 때문인지 흐르는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란델리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을 토닥였다.
“그 악녀와 더러운 것들이 벌을 받지 않고 있어요.”
“…….”
엘리사와 헤레스는 벨로나 공작과 아침마다 정원을 걸었다.
란셀과 펠리시아가 성에 왔을 때는 바쁘다며 며칠을 오지 않는 것과 달리 말이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사랑하는 연인과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냈다.
행복한 웃음이 보였고,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음에도 들리는 듯했다.
“엄마는 매일 불행한데!”
“…….”
밤마다 펠리시아의 비명이 성안에 울렸다.
악몽으로 인한 것이면 그나마 나았다.
비명이 들리면 고용인들이 다급하게 펠리시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보면 자해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것을 본인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엉망이 된 머리와 몸의 상처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펠리시아 본인이었다.
“나도 불행한데!”
“…….”
펠리시아도 불행했지만 란셀도 불행했다.
다정한 형님이 있어도, 고용인들이 자신에게 친절해도 불행했다.
아버지는 란셀과 어머니를 버렸다.
어머니는 개 취급을 당하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란셀은 아슬아슬하게 대우를 받는 처지였다.
고용인들의 연민이 사그라지는 날에, 란델리노의 형제애가 사라지는 날에 잃어버릴 것들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나은 편이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자비가 끝나는 날에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으니까.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하잖아요!”
“…….”
란셀이 애타게 소리쳤다.
란델리노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토닥였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과 다정한 손짓이 더 힘이 될 때가 있었다.
그는 동생이 다 울 때까지 안아주며 토닥임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란셀의 울음이 그쳤다.
아이의 숨소리가 진정이 되었다.
란델리노가 차가운 눈으로 다정하게 말했다.
“신께서는 자애로운 분이시지.”
“그 자애를 신께서는 저와 어머니에게 베풀어 주시지 않았는걸요.”
란셀이 훌쩍이며 그의 형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빛이 무서웠으나 이상하게도 시선을 피하기 싫었다.
차가운 만큼 눈빛은 강렬하게 빛이 났다.
“그건 네가 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 해서지.”
“신의 뜻이요?”
“신께서는 너에게 기회를 주시는 거란다.”
“무슨 기회를요?”
란델리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란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는 불행했고 자신도 불행했다.
어디에도 신의 자애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네가 직접 죄인들을 벌할 기회.”
“벌할 기회요.”
“그래.”
서늘한 눈빛과 아름다운 미소가 만나니 멋있고 우아했다.
형님에게서 눈을 피할 수 없었고 절로 집중하게 되었다.
“너를 비참하게 만든 것들을 네가 비참하게 만들어라.”
그것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진리를 내뱉는 것과 같았다.
반드시 지켜야 할 맹세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란셀은 자신도 모르게 질문했다.
“그들을 어찌 비참하게 만들 수 있죠?”
“헤레스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면 된다.”
그리고 그는 다짐했다.
“반드시 그리되도록 할 것이에요!”
자신과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든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벨로나 공작도, 앨리사도, 헤레스도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이다.
란셀의 눈에 증오와 광기가 새겨졌다.
란델리노가 원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