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163화 (163/221)

163화 정부를 개처럼 굴리다

부인들은 페루제 공작부인이 너무 온정을 베풀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정부가 은혜도 모르고 독살 시도를 했죠.”

“이래서 정부들은 때려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있는 거예요.”

그들 중 누구도 페루제 공작부인이 펠리시아에게 잘해 준 것에 ‘미스릴 광산’이 연관되어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사실은 독살 사건에 관련된 ‘사교계의 꽃’만 알았다.

“말롬 쿠키가 아니었다면 큰일이 났을거라는 소문이 파다하잖아요.”

“그래서 요즘 귀족들 사이에게 말롬 쿠키가 유행이죠.”

북부 귀족 사회에서는 말롬 쿠키가 유행으로 번지고 있었다.

이 쿠키는 알펜 왕국의 북부만 아니라 전역으로 인기몰이를 할 것이다.

“귀족처럼 독살의 위험에 있는 위치에 있는 존재가 얼마나 있겠어요.”

“맞아요. 독살 의혹은 자주 들리는 일이니까요.”

왜냐하면 귀족 사회에서는 독살은 자주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들은 자신도 독살 의혹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불면증에 걸리는 이들도, 과하게 예민하게 구는 이들도 그런 두려움이 바탕으로 깔려 있었다.

후계자 문제로 분란이 있는 가문, 재산 분할 문제로 싸우는 가문, 집안 내부의 이권 다툼을 하는 가문 등 독살이 일어날 만한 가문은 많았다.

그리고 말롬 쿠키는 그런 불안감을 해소해 줄 구원이었다.

“말롬으로 쿠키를 어떻게 만들죠? 말롬으로 만든 쿠키를 먹어 보니까 너무 쓰고 맛이 없던데요.”

“어떻게 직접 만들 생각을 했어요?”

“정말 순수하네요.”

보통 귀족들은 전속 요리사를 두고 그 요리사가 그들의 모든 식사를 담당했다.

그 식사에는 디저트도 포함이었다.

그러니까 요리사를 시켜서 말롬 쿠키를 만들도록 시킨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부인들이 비웃음으며 상대를 촌스러운 사람 취급한 것이다.

그 부인은 다른 부인들의 반응에 얼굴이 붉어졌다.

괜히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제과 전문 상단에서 구매를 해야죠. 라스타 왕국에서는 음식도 세분화해서 각 분야에 전문가와 전문 상단이 따로 있다고 들었어요.”

“역시 상단은 라스타 왕국의 상단이 좋아요.”

“그럼요. 품질도, 직원들 수준도 말이에요.”

이렇게 라스타 왕국의 상단들은 알펜 왕국에서 귀족들의 삶에 침투했다.

알펜 왕국의 상단들보다 좋은 품질, 좋은 서비스와 예비 고객들의 욕구를 달래 줄 새로운 것들로 말이다.

독살 미수 사건은 페루제 공작부인이 한 일종의 홍보 전략이기도 했던 것이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펠리시아에게 누명 하나 씌워 놓는 것으로 ‘즐거움’, ‘미스릴 광산’, ‘장미회 부인의 충성심’, ‘라스타 왕국의 상단 홍보’ 등 많은 것을 얻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공작부인께서 드십니다.”

밖에서 들리는 말에 부인들이 모두 일어났다.

문이 열리고 그들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북부 사교계의 주인이신 공작부인을 뵙사옵니다.”

“오랜만에 부인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

부인들이 허리를 펴고 몸이 굳었다.

충격적인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그들의 시선에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그녀는 줄 하나를 들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개 한 마리 구했답니다. 예쁘죠?”

“아. 네! 정말 부인의 안목에 다시 감탄했습니다.”

“저는 저런 개를 얻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대단하세요.”

모두가 알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개’라고 칭한 것은 사람임을 말이다.

그 ‘개’가 ‘펠리시아’임도 눈치 챘다.

펠리시아는 네발짐승처럼 기어서 가고 있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움에 당장이라도 첨탑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만나기 전에 이미 훈련도 시켜 놓았는지 몇 가지 장기도 있지.”

그 말을 하고 페루제 공작부인이 펠리시아 앞에 섰다.

무릎을 구부리고는 손을 내밀었다.

“오른손.”

“으…….”

펠리시아는 차마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기분이 한순간에 나빠진 것이 눈에 보였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결국 오른손을 내밀어야 했다.

“옳지. 잘했다.”

“…….”

페루제 공작부인은 펠리시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개인데 왜 이리 조용하니? 어서 짖어 보렴.”

“왈, 왈, 왈!”

거부할 수 없기에 개처럼 짖어줘야 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페루제 공작부인이 일어났다.

몸을 돌려서 부인들을 봤다.

“어때요? 정말 똑똑지? 훈련을 잘 받은 티가 나.”

“호호호, 살면서 이리 똘똘한 개는 처음이에요.”

“저도 한번 길러 봤으면 좋겠어요. 어디서 구하셨나요?”

부인들은 왜 이제껏 남편의 정부들을 이렇게 할 생각을 못했는지 아쉬웠다.

그러면서 페루제 공작부인은 자신들과 다른 수준에서 노는 인물임을 확실하게 느꼈다.

“남편 곁을 잘 보면 있을 것이니 한번 잘 찾아봐.”

“눈을 부라리고 찾아야겠어요!”

“그러게요! 개를 기르면 부인처럼 잘 길러보고 싶어요.”

아마 한동안 정부를 개취급하는 것이 유행으로 돌 것 같았다.

벌써부터 부인들이 남편의 정부를 어떻게 개취급을 할지 머리를 굴리는 것이 보였다.

정부들이 안다면 북부를 도망갈 일이었다.

“팁을 주자면 말을 듣지 않으면 채찍으로 좀 때려.”

“도움이 되는 말씀만 해주시네요!”

“매질을 좀 해서 말을 듣게 하면 조용해지겠죠. 공작부인의 지혜에 존경심만 생겨요.”

펠리시아는 그 대화를 들으면서 있어야 했다.

잘 훈련된 개처럼 얌전히 말이다.

“부인들도 한번 명령을 내려볼래? 나만 누리기에는 아까우니까.”

“기회를 주신다면 즐겁게 하겠습니다.”

“저도 너무 하고 싶어요!”

최악이었다.

그들도 펠리시아를 개취급했다.

사람을 개처럼 굴리는 모습에 놀란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음에도 자연스러웠다.

부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명령했다.

“자, 왼손!”

“오른손, 왼손은 이미 했으니까 저는 오른발을 내밀라고 해야겠어요.”

“저는 왼발이요.”

“개도 오줌을 싸는데 그런 자세를 한번 보고 싶어요.”

“어머? 개가 오줌 싸는 모습을 봐서 뭐하게요?”

“저런 종자는 처음이니까요.”

“그건 그렇지요.”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방을 계속 울렸다.

한 사람의 웃음이 멈추면 다른 한 사람의 웃음이 들렸다.

펠리시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즐거워했다.

그렇게 한참을 부인들의 조롱거리이자 장난감이 되었다.

얼마나 즐겼는지 해가 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던 페루제 공작부인이 입을 열려고 했다.

시끄럽던 부인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우아하게 말했다.

“그거 알아? 사실은 펠리시아가 나를 독살하려는 배후가 아니야.”

“그, 그러면 누구입니까?”

모두가 펠리시아가 독살 미수 사건의 배후로 알았다.

그런데 괴롭힐 것을 다 괴롭힌 후에 아니라고 하다니?

이건 무슨 경우인가.

그러나 부인들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북부 사교계에서 페루제 공작부인이 하는 모든 일은 정의였고 진리였으니까.

“원래 더 사랑하는 이가 진다고 하는데 내가 딱 그런 경우지.”

“…….”

“남편이 아끼고 사랑하는 여인인데 내가 뭘 어쩌겠어. 죽이고 싶어도 참아야지. 뭐.”

부인들의 머릿속에 벨로나 공작과 공작이 아끼는 여인에 관한 정보가 확실하게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 화풀이야. 남편이 사랑하는 여인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분노를 푸는 것이지.”

“…….”

모두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몰라서 침묵했다.

뭐라고 말해도 말도 안 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펠리시아는 불쌍한 여인이지. 몇 년 간 그이에게 외면당하다가 공작성에 불려왔는데 그것이 남편의 연인이 한 계략의 희생양이 되기 위해서라니 말이야.”

“저런…….”

아무리 정부라고 해도 불쌍하기는 했다.

버림받았다가 불러서 기쁘게 왔는데 그것이 희생양이 필요해서라니!

아무리 벨로나 공작이라도 해서는 아니 될 행동이었다.

“물론 그이가 동조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사실 그렇게 유도한 정부가 더 나쁜 것이겠지. 그런 여인이 사교계를 더럽힐까 걱정이야.”

“맞아요. 어디서 그런 양심도 없고 뻔뻔한 것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사교계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놔야 해요.”

“작은 모임에라도 참석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주최자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에요.”

“그대들이 잘 단속해 주면 나야 고맙지. 그리고 펠리시아는 가엾게 여겨 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엘리사는 불쌍한 펠리시아를 이용해서 페루제 공작부인을 독살하려고 한 죄인이자 벨로나 공작의 비호로 그 벌을 피해간 간악한 여인이 되었다.

게다가 장미회 부인들이 분노하면 사교계에서 매장시켜 버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들은 정실부인을 죽이려고 한 정부가 남편의 비호에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것을 그대로 둔다면 ‘선례’로 남을 수 있었다.

법적인 처벌은 하지 못해도 그에 상응한 벌을 내려야 했다.

적어도 헤레스가 또래 친구 혹은 미래의 지지 세력을 만들 길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모임에서 하고자 한 목표는 해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바쁜 부인들의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군. 이만 모임을 파하지.”

“시간을 잡아먹다니요!”

“저희는 이 모임만 기다리며 사는 걸요.”

“장미회 정기모임을 좀 더 자주했으면 한다니까요.”

부인들은 이 모임을 자신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강하게 어필했다.

실제로 삶의 활력을 주는 모임이기도 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주는 금액적 이익을 배제하고 말이다.

“정기모임을 자주하는 것은 어렵겠어요.”

“그렇지만 나중에 ‘개’를 기르는 부인들이 많아지면 다 같이 품평회를 해볼까요?”

“물론이에요!”

개들을 모아 놓고 신나게 놀자는 말에 부인들이 신나 했다.

가문으로 돌아가자마자 남편의 정부들을 깡그리 찾아낼 요량이었다.

그래서 품평회를 할 날짜도 당겨질 것이니까.

정부들을 아무리 싸잡아도 정부를 만드는 남편 덕분에 정부는 씨가 마르지 않았다.

찾기만 하면 개취급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다음에 만나요.”

“네, 좋은 저녁 보내세요.”

“펠리시아, 이제 가자!”

페루제 공작부인이 목줄을 강하게 당기자 펠리시아가 쓰러졌다.

“꺄악!”

“개는 그렇게 울지 않지.”

자비라는 느낄 수 없는 목소리였다.

펠리시아는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끼이이잉.”

“좋아. 그게 개다운 것이지.”

페루제 공작부인과 펠리시아는 그렇게 방을 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펠리시아는 개였고 페루제 공작부인은 개의 주인이었다.

모임이 끝났다고 해서 수모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마차 안에서도 네발로 짐승처럼 앉아 있어야 했으니까.

개 취급은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고서야 끝이 났다.

“이제 그만 사람으로 돌아와.”

“네.”

“방에서 쉬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내가 해도 졌는데 괴롭히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네, 감사합니다.”

펠리시아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그 누구도 그녀를 부축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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