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토끼몰이
펠리시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쓰러지고 초대한 부인들은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다.
마치 환영처럼 그들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다.
“공작부인! 괜찮으십니까?”
“어서 눕혀! 너는 얼른 의원을 불러라.”
“알겠습니다.”
방 안에 있던 고용인들은 서둘러서 페루제 공작부인을 눕혔다.
소파에 누워 있는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시녀 하나가 방을 나갔고, 비명에 놀란 다른 고용들이 빠르게 방에 들어왔다.
그들은 기사들과 함께였다.
한 부인이 펠리시아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저 여자가 독을 먹인 것이 분명해요!”
“세상에! 손가락 끝이 보라색이에요!”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기사 하나가 서슴없이 펠리시아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
그녀가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피했다.
“나는 아니에요! 내가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것은 조사하면 나올 일이겠지요.”
“나는 아니라니까!”
그녀는 강하게 저항했다.
지금 이대로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다.
게다가 모름지기 범죄 조사는 현장의 모든 이들을 용의자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는가!
누가 보더라도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왜 다른 부인들은 가만히 두고 나만 끌고 가!”
“험한 꼴 보기 싫으시면 순순히 따라오시지요.”
“그이가 올 때까지 나는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이야!”
그 말에 기사들이 머뭇거렸다.
그들이 메디치 백작인 공작부인의 기사들이라고 해도 벨로나 공작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관계가 나쁘더라도 그들은 부부였으니까.
“뭐하는 게야!”
“시녀장님, 오셨습니까?”
실리가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기사들을 죽여 버리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 주군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거늘! 이따위로 굴어?!”
“죄송합니다.”
그 옆에는 급하게 달려와서 들숨 날숨을 크게 쉬는 의원이 있었다.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공작부인에게 갔다.
다급하게 진찰하고 상태를 살폈다.
“부인께서는 어떠하신가?”
“다행히 독이 크게 작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원의 말에 이곳에 있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공간에 있는 사람 중에 페루제 공작부인의 덕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사라지면 그동안 누리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것이 돈일 수 있고, 권력일 수 있고, 지배욕일 수 있었다.
펠리시아만 그녀가 없어야 이득인 사람이었다.
기사들이 펠리시아만 끌고 가려는 이유였다.
페루제 공작부인을 보던 의원이 물었다.
“공작부인께서는 어떤 것을 드셨습니까?”
“펠리시아 저 간악한 것이 준 차와 공작부인께서 가져오신 쿠키를 먹었네.”
“맞아. 딱 그 두 가지만 입에 대셨네.”
“그 외에 따로 드시는 것은 보지 못했어.”
의원이 묻자마자 부인들이 대답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이번에는 의원이 실리에게 물었다.
“저 쿠키는 무엇으로 만든 쿠키입니까?”
“말룸으로 만든 쿠키네.”
“이 말룸 쿠키 덕분에 사신 것 같습니다.”
의원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말이었다.
쿠키 때문에 독을 마시고도 살 수 있다니?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다.
한 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쿠키 때문이라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룸의 효능 중에는 해독 작용이 있습니다.”
의원이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땀은 날지언정 마음은 편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죽기라도 했다면 그도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니까.
실리 시녀장은 자신의 주인을 살리지 못한 의원을 살려 두지 않았으리라.
“몸에 든 독을 해독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피를 토하시며 쓰러지신 듯합니다.”
“피를 토하신 것이 다행인 것이로군.”
“말룸이 없었다면 독이 계속 몸에 돌아서 큰 사단이 생겼을 것입니다.”
천만다행이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쓰러진 모습을 목격한 부인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얗게 질린 안색도 서서히 다시 돌아왔다.
이는 고용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잘못되었다면 여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큰일을 당했을 것이니까.
“그러면 지금은 괜찮으시다는 것이지?”
“이대로 푹 쉬시고 몸에 남아 있을지 모를 독을 해독할 약을 꾸준히 드시면 됩니다.”
“다행이군. 너희는 어서 부인을 방으로 모셔라. 이분을 이딴 곳에서 누워 있게 하실 수는 없지.”
실리가 부인들과 펠리시아를 노려봤다.
이에 귀부인들은 손을 떨었다.
그들은 실리가 시녀장이라는 위치에 있어도, 그녀의 위치는 시녀장 따위가 아님을 알았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펠리시아만 몰랐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으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제 이런 사악한 짓을 저지른 것이 누군지 밝힐 일만 남았군요. 전부 끌고 가!”
“네!”
기사들이 펠리시아만 아니라 다른 부인들도 끌고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부인들이 경악하며 손가락으로 펠리시아를 가리켰다.
공작부인을 독살하려고 한 사건이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조사를 받아야 마땅했고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그러나 페루제 공작부인은 용의자가 귀족이라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의를 차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별채로 끌려갈 것이 뻔했다.
그 별채의 악명은 높았다.
그 안에서 살아 나와도 더는 살아 있는 모습이 아니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지옥으로 던져야 함이다.
“분명히 저 악랄한 것이 독을 탄 것이 분명해요! 시녀장!”
“맞아요! 확실해요!”
“아니에요! 내가 독을 탔다면 부인들도 영향을 받았겠죠!”
“핫! 찻잔에다가 독을 미리 넣어 놨다면 가능한 일이지요!”
“정말 처음부터 계획적이었군요!”
“아니라고요! 내가 나에게 잘해 주신 공작부인을 왜 해쳐요?”
펠리시아의 반박에 그녀들은 자신들이 상상한 범행 방법이 진실인 것처럼 떠들었다.
“당신은 일개 정부이고 당신의 아들은 사생아니까!”
“솔직히 당신은 그분을 해칠 동기가 충분하잖아요!”
“우리는 그분이 없으면 큰일이 나는 사람들이라고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을 알면 우리가 그분을 해하려고 했다는 말을 꺼낼 수도 없을 걸요.”
그녀들은 펠리시아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 외에는 페루제 공작부인을 해할 목적을 가진 사람은 없었음이다.
그들이 보기에 펠리시아는 사생아에 불과한 아들을 정식으로 입적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펠리시아는 종국에는 후계자가 되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펠리시아는 그 욕심에 방해가 되는 페루제 공작부인을 처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공작부인의 비호를 잃은 란델리노를 쫓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안일함도 한몫했다.
벨로나 공작이 란델리노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란델리노도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모르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부인들이 매섭게 펠리시아를 몰아세웠다.
그 모습을 조용히 보던 실리는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손을 들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펠리시아, 저 여인만 끌고 가.”
“알겠습니다.”
“아니라고! 나는 아니라니까! 봐! 놓으라고!”
펠리시아가 기사들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공작각하께서 너희를 그냥 두실 것 같으냐! 놓으란 말이야!”
“…….”
이번에는 기사들도 동요하지 않았다.
펠리시아가 힘을 주고 벗어나려고 해도 놓아 주지 않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최측근인 실리 시녀장이 있었다.
그녀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중간한 모습으로 불신을 심어줄 수는 없었다.
실리가 발악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작게 귓속말했다.
“공작각하께서 정말로 너희를 아껴서 여기에 데려왔다고 생각하니? 너와 네 아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뭐?”
“그 세월 동안 외면했던 너와 사생아를 굳이 여기로 데려왔는지 고민하렴.”
가면에 가려진 입가에 비웃음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펠리시아는 저항을 멈췄다.
멍해진 기분이 들었다.
뭔가 스스로 덫에 들어온 사슴이 된 착각이 들었다.
실리는 고용인들을 바라봤다.
“기사들에게 진실만 말해라.”
“네.”
“그리고 너희는 한동안 고용인 숙소에서 자숙하거라.”
“알겠습니다.”
이 일과 연루된 고용인들이다.
정상적인 조사였다면 응당 그들도 조사를 받아야 했다.
숙소에서 자숙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펠리시아 부인이 직접 독을 넣는다는 것보다 고용인을 시켜서 독살하려고 했다는 것이 더 사리에 맞았기 때문이다.
의혹을 가질 만했다.
그렇지만 너무 놀라서 부인들은 그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부인들은 기사들에게 이번 일에 관해 증언을 해주십시오.”
“물론이지요!”
“그럼요!”
“저 사악한 죄인을 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습니다.”
아니, 자기 살기에 급급했다.
그딴 괴리감 따위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기사들에게 자신들이 목격한, 경험한 것들을 말하고 부인들을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공작부인의 상태를 더 지켜보고 돌아가겠네.”
“그러면 저희들도!”
“아닐세.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분이신 것을 알지 않는가.”
초대된 부인 중 가장 서열이 높은 부인만 제외하고 말이다.
부인들의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서 있던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페루제 공작부인의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누워 있는 페루제 공작부인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90도 각도로 말이다.
“감사합니다. 부인. 그리고 저 때문에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알기는 하는군.”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곧 눈이 떠졌다.
서늘하고 짜증이 난 눈빛이었다.
“내가 뽑은 사교계의 꽃이라는 이유로 자네가 누리는 것이 많아. 그렇지?”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쯧.”
사교계의 꽃.
본디 사교계의 최고 여인에게 주는 칭호였다.
그러나 페루제 공작부인으로 인해 사교계의 꽃은 그 의미가 변질되어 버렸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허락 아래에서 사교계에서 권력을 휘두를 자격을 받은 이들이었다.
사교계의 꽃은 북부 사교계에서 페루제 공작부인 다음으로 권력자인 부인들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히 그래야지.”
“부인께서 힘을 보태 주셔서 그 정부를 처리하기 쉽게 되었습니다.”
북부에서는 남편의 정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 대세에 따를 수도 있겠으나 이 부인은 달랐다.
일단 정부의 집안이 그녀의 집안보다 힘이 좋았고 정부의 집안에 빌린 자금이 컸었기 때문이다.
우위를 점하고 싶어도 점하기 어려웠다.
“펠리시아에게 독을 준 여인으로 그 정부를 지명하도록 할 것이야. 그러니 자네는 실수만 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감히 벨로나 가문의 안주인을 독살하려는 사건이야.”
그 말에 부인이 웃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은 모양이었다.
“목숨을 잃고 가문이 망가져도 될 대죄지요. 그 죄에 맞게 최대한 뽑아내시도록 돕겠습니다.”
”자네는 이 기회에 자네 외가의 빚도 청산하고 말이야.”
“부인의 은덕입니다.”
“가 봐.”
부인이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몸을 일으켜서 앉았다.
실리에게 말했다.
“뜯어내려면 제대로 뜯어내야겠지. 그 가문의 미스릴 광산이 있었지?”
“네. 그것도 상급 미스릴이 많이 나오는 곳이지요.”
“가문을 멸문하지 않는 대가로 딱이겠군.”
실리의 입에서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나 어쩌나 하는 목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