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제국의 재림을 위해!
그 문제의 발단은 바로 도르테아 영식이었다.
“요즘 도대체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거예요?”
“당신은 알아서 다하는 여인이니 내가 필요 없지 않은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군.”
그녀가 아내가 되고 가문을 위해 한껏 노력하자 흥미가 떨어졌는지 다른 여인을 찾기 시작했다.
“제발 며느리를 홀대하지 말거라.”
“야무지게 가문을 돌보며 잘 지내는 것을요.”
“그 아이가 너만 바라보는 것을 알지 않니? 너를 위해 노력하는 아이다.”
“어머니. 저희 일입니다. 제발 그만 간섭하세요.”
도르테아 영식은 어머니의 말도 듣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던 그녀는 서서히 메말라 갔고 병이 걸려서 죽고 말았다.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했던 여인의 말로였다.
공작부인처럼 상대가 가진 모든 것을 사랑했다면 그리되지 않았으리라.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가 가진 것은 그대로일 것이니까.
부모를 제외하고 그녀의 죽음에 가장 슬퍼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도르테아 남작부인이었다.
* * *
그 연회의 여파는 벨로나 공작에게도 왔다.
근래에 그는 심히 언짢았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으니까.
“벨로나 공작각하도 참으로 딱하신 분이죠.”
“그렇지. 설령 사랑하지 않더라도 남편이 정부와 놀면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공작부인은 그 질투조차 하지 않을 분이시지.”
“벨로나 공작 각하께서 바람을 피든 말든 그분이 가진 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니까.”
여인들도, 심지어 사내들도 벨로나 공작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내에게 일말의 애정조차 받지 못하는 사내라고 말이다.
“내 아내는 내가 정부와 놀면 틱틱 거리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요. 공작 각하는 그 작은 감정조차 받지 못하시네요.”
대놓고 사람들이 그런 눈빛으로 보니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게다가 페루제 공작부인 암살미수 사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않는가.
“그 여자는 정말 하나하나 열 받게 하는군.”
“원래 성정이 그런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그것이 사랑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여인이지.”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그 이루고 있는 것 중 하나라도 잃게 된다면 그 마음도 바로 변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이 어찌 사랑이겠는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는 그 여자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사실, 그 여자가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아니, 뭐라고 말하든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굳이 그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까발려서 이딴 시선을 받게 하다니 화가 났다!
* * *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페루제 공작부인은 아주 기분이 더러웠다.
그녀는 자신만의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정원은 특별했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위험한 식물들도 있었기에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녀 앞에는 몇 명의 인물들이 부복하며 주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에 빅토르도 있었다.
가위로 나뭇가지를 잘랐다.
“루비카 남작과 란델리노가 밀담을 나눴다고 하더구나.”
“……?!”
“그럴 리가 없습니다!”
빅토르 옆에 있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경악하며 단호하게 확언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내가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고개를 들어? 요즘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긴 하지.”
“주군, 죄송합니다. 믿어지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흥분한 모양입니다.”
빅토르가 부하의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잠시 달아났던 눈치가 돌아왔는지 부하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딴 일이 아니기는 하지.”
페루제 공작부인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가지치기를 했다.
“어디까지 파악했느냐?”
“사냥터에 간 것은 파악했습니다.”
빅토르가 주군의 심기를 고려해서 빠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또?”
“사냥터에서 막사를 꾸리고 거기에서 며칠을 있었습니다.”
“막사에서 며칠을 있었는데 수상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저희도 그리 여겼습니다. 그러나 몇 년 간 꾸준히 보이던 모습이었습니다.”
빅토르도 처음에는 수상하게 여겼다.
사냥하러 와서는 1~3일은 막사에서 지낸다.
그 이후에 사냥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떠보기까지 했다.
“게다가 란델리노 백작은 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고요. 저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아들로, 벨로나 공작의 아들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쉴 틈 없이 달렸다.
사람이라면 잠시라도 쉬고 싶을 것이다.
마음과 몸을 쉬고 다시 달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 탈진하고 쓰러질 것이 뻔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역시 남들과 달랐다.
“왜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
“쉬고 싶다고 숨을 멈추는 것과 뭐가 다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너 스스로 이해하지 말아라.”
“죄송합니다.”
평생을 가문을 위해서 달리기만 했다.
살기 위해서 숨을 쉬는 것처럼 가문을 위해 사는 것이 ‘살기 위해서’ 해야 할 당연한 것이었다.
그 당연한 것을 쉬고 싶다고 멈추는 것은 죽겠다는 것과 같았다.
“그 아이를 호위하기 위해 둔 병사들은 뭐라고 하던가?”
“그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막사 안에만 있었다고요. 그 막사 안에는 식사를 주기 위한 전속 시녀만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비밀리에 나갔을 가능성은?”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 그게 맞겠지.”
빅토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혼자서는 동행한 기사들과 병사들을 따돌리고 밖에 벗어날 수 없었다.
능력이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속여서 그를 빼돌릴 인재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란델리노는 그런 정보전과 첩보전을 할 사람들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잘 알았다.
란델리노가 그녀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서만 있도록 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그런 인재들과의 접선도 양성도 허락하지 않았다.
“알았다. 가 봐.”
“다시 파악해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래.”
축객령과 같은 말에 빅토르는 부하들을 데리고 정원을 벗어났다.
부하들이 빅토르에게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란델리노 백작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너희도 알지 않은가. 우리의 주군은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를 꾸짖을 분이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빅토르의 말에 부하들이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그들을 불러서 루비카 남작과 란델리노의 밀담을 언급했다.
정보와 첩보를 담당하는 ‘검은 뱀’에게 말이다.
그들의 임무 수행에 빈틈이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뜻이다.
또한 그만큼 그 정보의 진위를 확신할 만한 경로에서 얻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란델리노 백작을 조사한다. 그에 관해 처음 조사를 하는 것처럼 싹.”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정보 조직을 가지고 있거나 거래를 텄다는 전제 하에 조사를 해.”
“알겠습니다.”
란델리노 백작이 남들 몰래 막사를 빠져나갔다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집단이 없고서는 불가능했다.
정보전.
첩보에 능숙한 집단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런 집단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할 것이 아니라 그 불가능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 * *
고급 여관에서 란델리노는 이동식 트레이를 끌고 온 고용인을 바라봤다.
여유로운 미소를 보여줬다.
“그래. 어떤 것 같아?”
“‘검은 뱀’은 일개 기사단이 아닙니다. 라스타 왕국의 많은 정보 조직과 협력하고 그들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최고의 정보 집단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겠지. 어머니가 친히 키운 인재들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 페루제 루비로즈가 인정하면 그건 진짜기는 하죠.”
“그런 그들을 속인 너희는 더 대단하고 말이야?”
“뭐,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고용인은 능청스럽게 칭찬을 받아들였다.
진짜로 자부심을 느끼는지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가슴을 앞으로 밀었다.
“롬 제국의 재림을 위해 1,000년 더 전부터 활동하던 너희니까.”
롬 제국.
서부 대륙을 시작으로 중앙대륙까지 세력을 뻗어 나갔던 대제국이다.
제국의 멸망 후 수많은 왕국이 그들이 후예를 자처하며 등장했다.
그 뒤에는 비밀리에 그들을 지원하던 이 조직이 있었다.
조직의 누군가는 직접적으로 나서서 건국의 공신이 되었다.
조직의 누군가는 거상으로 건국을 지원했다.
조직의 누군가는 정보 수집을 유도하여 승리를 이끌었다.
자신들이 세운 왕국이 부족하다 싶으면 멸망을 돕고 새로운 왕국을 세웠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롬 제국의 후예다운 성과를 내지 못하고 멸망했다.
“아무리 날고 길어도 너희보다는 못하겠지.”
“그럼요.”
란델리노의 말은 맞았다.
아무리 날고 기는 페루제 공작부인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천 년이 넘는 시간의 노하우를 지녔다.
수많은 건국과 멸망에 관여한 그들의 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했다.
“나를 낳은 여인의 가문이 그 조직에 속한 가문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저희도 당신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희에 관한 정보를 남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란델리노 옆에는 ‘그를 낳은 여인’이 남긴 유품이 있었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있는 책이었다.
닳고 닳아서 없어질 것만 같을 정도로 읽은 책이었다.
모두가 친모를 그리워하여 지금까지도 곁에 두고 있다고 여겼다.
“특수한 마법이 걸려 있어서 나에게는 다른 내용이 보였지.”
“저희 조직에서 특별히 고안한 책이지요. 오직 혈육만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이 없었다면 너희와 접선조차 할 수 없었어.”
그 여인이 남긴 책에는 이 신비로운 조직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 조직의 역사부터 그들을 접선하는 방법까지 필요한 정보들이었다.
“그러니 당신의 어머니에게 감사하십시오.”
“그녀의 가문이 저지른 반역도 롬 제국의 재림을 위한 것이었나.”
“네, 강경파의 간부들이 무리하게 추진했죠. 더는 기다릴 수 없으니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롬 제국의 재림을 이루겠다면서요.”
고용인이 이를 갈았다.
강경파가 무리하게 추진했음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성공할 것만 같았으니까.
반역에 성공하면 롬 제국의 재림을 직접 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대 벨로나 공작이 조직의 일원인 란델리노의 모친을 아낀 것은 유명했고 말이다.
“성공했을 것입니다. 그대의 조부가 배신하지만 않았다면 말입니다.”
“선대 공작께서도 그대 조직의 일원이었나?”
“아닙니다. 그렇지만 반역에 동참하기로 했었죠. 설마 뒤통수를 치고 사돈 집안의 재산을 가질 줄이야.”
그랬다.
사실, 벨로나 공작가문의 적장자가 그들에게 접선했을 때, 함정일지 모른다고 여겼다.
무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했다.
그 반대를 무릅쓰고 만난 것은 오직 하나였다.
란델리노는 배신자의 손자이기도 했으나 그가 조직을 위해 헌신한 가문의 핏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문을 당하는 와중에도 저희 조직에 관해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의는 고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대들이 아직도 활동하는 것이겠지.”
란델리노 외가의 남자들은 모두 반역죄에 맞는 대우를 받다가 죽었다.
편히 죽지는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