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이용당한 암살미수범
페루제 공작부인이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가 누구인가에 관한 찰나의 호기심도 사그라졌다.
눈앞의 죄인은 그녀에게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도리어 암살미수범이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인지, 배후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물음에 그녀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주 작게 귓속말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행한 일이라면 나에게 침을 뱉지 않았겠지. 개인적인 원한이라는 것인데 글쎄… 워낙 많아서 말이야.”
페루제 공작부인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여유를 부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결단코 깨끗한 길만 걷지 않았다.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피로 만들며 걸어왔던 삶이었다.
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뿌렸겠는가.
명예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삶을 무너뜨렸는가.
권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을 희생시켰는가.
그 과정에서 생긴 개개인의 원한은 하늘에 닿고도 남았으리라.
그것을 하나하나 기억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할 일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홀로 여기에 잠입해서 내 목 근처까지 올 수는 없었겠지. 부인.”
“예!”
페루제 공작부인이 주최자인 부인을 보며 불렀다.
그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사건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에 대답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여기는 다섯 뱀 기사단이 조사를 할 것이네. 왜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물론입니다.”
본디 연회장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은 주최 가문에서 조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당당하게 이를 무시한 것이다.
또한 모욕적인 처사였다.
연회를 주최한 가문을 암살미수범의 배후로 여긴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에 대해서 항의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조사를 거부한다면 주최 부인의 가문이 암살 배후라고 자백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조사에 순순히 응하겠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게다가 페루제 공작부인의 의심은 타당했다.
연회를 주최한 이유가 페루제 공작부인의 마음을 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목숨을 가지기 위함이었을 수 있다.
그 증거로 단검이 그녀의 목 언저리까지 가지 않았는가!
모두가 방심하게 만들어서 틈을 엿본 것일 수 있었다.
일부러 페루제 공작부인의 기사들을 밖에 있도록 유도했다고 판단해도 뭐라고 하기 어려웠다.
본래 연회장에 형식적이라도 기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곳에는 없었으니까.
연회장 밖에 있었다.
주최한 이의 의도는 부인들끼리 편히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 다섯 뱀을 부르게.”
“지,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러면 지금 당장 해야지. 뭐, 시간이라도 줘야 했단 말인가?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게.”
“죄송합니다. 당장 부르겠습니다.”
“그러게.”
짜증스러워하는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투에 주최 가문의 부인이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얼른 소리를 쳤다.
“뭐하느냐! 공작부인께서 말하시지 않았느냐! 얼른 다섯 뱀의 기사들을 불러라!”
“알겠습니다!”
“기본적인 것을 모를 리는 없겠으나 혹시 모르지. 출입통제는 하고 있겠지?”
주최 가문의 부인이 다급하게 가문의 기사에게 시선을 힐끔거렸다.
가문의 기사가 안심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벌어졌음을 알자마자 출입통제부터 명령했던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 가문의 기사들이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빠릿빠릿해서 좋군.”
부인의 일갈에 주최 가문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우물쭈물했다가는 의심만 산다.
모두가 알았다.
이 일에 잘못 연루가 되면 고용인이건 주최 가문이건 다 죽는다.
“이 일의 배후를 알아내기 위해 저희 가문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부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선심 쓰듯이 말하지 말게.”
“선심이라니요. 아닙니다. 결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진상이 밝혀지면 노여워할 일도 없겠지. 그치?”
“그렇습니다.”
죄는 없었으나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저 죄인이 악감정을 품고 주최 가문 측에서 자신을 도왔다는 거짓 증언이라도 나온다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이미 ‘공작부인’이라는 것에서부터 보통 인물이 아니다.
공작부인 암살사건이라는 타이틀도 큰 문제였다.
그런데 그녀는 라스타 왕국에서는 국왕에게 경국부인이란 칭호를 받았다.
그 칭호는 그녀의 정치를 지지한다는 국왕의 표현이다.
비록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는 국왕의 아부일지라도 말이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라스타 국왕의 지지 아래에 정치를 주도했다.
영주로는 어떠한가?
그녀의 메디치 백작령은 부유하고 끊임없이 발전했다.
오죽하면 알펜 왕국의 사람들이 거기에 갔다가 돌아오면 박탈감에 견디지 못한다는 말이 돌겠는가.
그곳의 병사들은 알펜 왕국의 강병으로 불리는 벨로나 공작가문의 군사들과 비견되었다.
게다가 메디치 백작령은 엄연히 알펜 왕국 소속이었다.
그 영주가 라스타 왕국에서 온갖 권력을 휘둘러도 메디치 백작은 알펜 왕국의 귀족이다.
이 암살의 배후로 지목이 된다면 라스타 왕국에서도, 알펜 왕국에서도 이 연회 주최 가문을 그냥 둘 수 없게 된다.
양국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 죄인과 배후의 목숨을 거둬야 했다.
제대로 된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페루제 공작부인이 라스타 왕국을 통해서 알펜 왕국에 압박을 가할 것이니까.
“죄가 없다니 다행이군. 안심하게. 나도 한 가문이 몰살당하기를 원하지 않으니까.”
“그럼요…….”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린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명제다.
그러니 라스타 왕국에서 항의를 해서 알펜 왕실에서도 그것에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주최 가문의 부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말을 들으니 기운이 빠졌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시선이 주최자에게서 죄인에게로 향했다.
“그래. 주변에 나를 죽일 병사들도 없고 나도 방심하고 있었으니 나를 죽일 좋은 타이밍이었을 것인데 실패해서 아쉽겠구나.”
“그래! 아쉽다! 아쉬워서 죽을 것 같아!”
그는 자신의 증오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눈빛에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 있었다.
그 살기를 받는 당사자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움찔거렸다.
“그렇겠지. 거의 성공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하! 조롱하는 것이냐!”
그녀는 암살미수범의 편을 들어주며 같이 아쉬워했다.
그것은 정말 말이 나오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는 눈앞의 여인을 죽이지 못한 것이 억울해서 죽을 것 같았다.
창자가 뒤틀리는 기분이 이런 것이리라.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위안이 될지 모르지만 너는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단다.”
“뭐?”
페루제 공작부인이 정말로 위로하듯이 애틋하게 말을 건넸다.
암살미수범에게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는 벙찐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우월감을 드러내며 팔에 있는 팔찌를 보여줬다.
“이게 무엇인 줄 아느냐? 성물이다.”
“성물?!”
성물은 신의 힘이 담긴 귀한 물건이다.
그리고 그 성물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성인, 현인, 성녀, 성모로 추앙을 받았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어찌 너 같은 악녀가 성물을 다룬다는 말이냐!”
“이게 성물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너의 암살을 막을 수 있겠느냐?”
악녀라며 자신을 욕하는데도 페루제 공작부인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큼한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경악을 하는 죄인을 다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말투는 바꿀 수 없는 사실을 알려 주는 선생님처럼 담백했다.
“거짓말하지 마!”
“내가 왜 거짓말을 말하겠느냐? 모두 진실이니라.”
“네가 정말로 성모라면! 성모가 맞다면! 교단에서 공표를 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이 절규했다.
악랄하고 잔인한 여인이 성모라니!
신성한 성물의 주인이라니!
전부 믿기 싫은 진실들이었다.
그래서 애써 그녀가 성모가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를 꺼내며 거부했다.
“나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서 성모가 되었어. 교단에서 조용했던 것은 말이야. 내가 공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거든.”
“…….”
“신의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했으니까.”
페루제 공작부인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자 그는 깨달았다.
그녀는 이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누군가가 그처럼 자신을 암살하러 올 것을 말이다.
이렇게 다수가 증인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기를 말이다.
도저히 비밀리에 처리할 수 없을 일이었다.
게다가 암살 대상이었던 인물은 메디치 백작이기도 한 벨로나 공작부인이다.
귀족사회에 파란을 불러일으킬 대사건이었다.
공론화가 되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놀아났구나. 놀아났어.”
그는 그녀에게 좋은 일만 시켰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그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진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배후와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조사를 하겠다는 직접 자신의 기사단을 움직였다.
그것은 진위를 알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진실을 조작하기 위함일 것이다.
처음부터 배후로 지목할 인물 혹은 세력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만약 다수의 증인이 없었다면 페루제 공작부인은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녀를 죽이려고 오는 밤손님들은 많았으니까.
그는 어쩌면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도 눈앞의 악녀가 유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페루제 루비로즈의 몰락을 위해 뭉친 동료 중에 배신자가 있음을 말이다.
주최 가문에서도 페루제 공작부인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암살미수범이 여기에 있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만 당했다.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결말은 비극이었다.
그는 그녀의 패에 불과했다.
“하, 하, 하.”
“왜 그리 웃지?”
암살미수범은 허망하다는 듯이 웃었다.
부인들은 그가 곧 죽게 생겨서 미친 모양인가 싶었다.
페루제 공작부인만이 눈을 찌푸렸다.
“신이 너를 선택했다고? 신께서 세상을 저버리셨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너같은 악랄한 이가 성물의 선택을 받겠느냐!”
“세상을 아끼기에 나를 선택한 것이지.”
“웃기지 마라! 네가 라스타 왕국에서 죽인 이들의 숫자가 얼마인가! 없애 버린 가문의 수는 얼마인가!”
암살미수범은 라스타 왕국의 혁명에 희생당한 가문의 가주였다.
루비로즈 백작가문의 병사들에게 재산과 가족 모두를 잃은 피해자였다.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그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이 지목할 배후는 알펜 왕국에 있었다.
여기서 라스타 왕국을 끌고 오는 것은 좋지 않았다.
“자신의 배후를 감추려고 수작질을 부리는구나. 뭐하느냐! 입에 재갈을 물리고 데려가라!”
“예!”
다섯 뱀의 기사들이 연회장에 와 있었다.
워낙 기척도 없이 들어와서 부인들은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주최 가문의 기사들에게서 죄인을 인계받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자신의 기사들을 보다가 한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대는 처음 보는데 신입인가?”
“네. 올해 다섯 뱀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어디 출신이지?”
뜬금없는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