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그들이 없는 사이에 (3)
레티시아가 방을 나서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실리는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실리가 자신의 가면을 스스로 벗어서 바닥에 던진 것을 몰랐다.
단지 뭔가 연결이 느슨해졌거나 가면을 잘못 건드려서 떨어졌다고 여겼다.
“가면이 떨어지셨네요. 여기요.”
“어, 어… 그래요.”
실리는 가면을 건네는 레티시아의 얼굴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살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경멸과 경악, 동정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낀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페루제 공작부인도 얼굴을 보고 상대를 판단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레티시아와 페루제 공작부인은 달랐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실리가 ‘독기’와 ‘재능’이 있기에 추한 외모에도 곁에 둔 것이다.
그 독기와 재능으로 자신을 보좌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만약 그런 기대감이 없었다면 절대로 실리는 페루제 루비로즈의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기대감이 실리를 구원했기에 페루제 공작부인은 그녀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유일한 구원자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얼굴색이 좋지 않으세요.”
“너무 놀랐나보군요.”
“평소에 쓰고 계시던 가면이 갑자기 떨어지셨으니 놀랄만 하셨어요.”
반면에 레티시아는 순수하게 실리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대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자신의 모습에도 놀라지 않고 평범하게 가면을 주는 모습이 그러했다.
레티시아는 ‘실리의 추한 외모’보다 ‘가면이 생활화된 여인의 당혹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평소에 자신의 몸처럼 가면을 쓰던 실리의 마음을 배려한다는 듯이 말이다.
실리는 빠르게 가면을 썼다.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배려였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기분이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레티시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마치 실리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동요 따위는 없는 평온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아까 어떤 일로 부르신 것인가요?”
“미처 말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요.”
실리는 차마 내 얼굴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여 불렀다고 말하지 못했다.
너를 시험해 보려고 했다는 말이었으니까.
시험이 끝난 마당에 이렇게 상대를 시험하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인데 이상하게 이 아이는 신경이 쓰였다.
“필요한 대부분은 내가 그대를 가르칠 것이지만 몇가지 분야는 다른 교사들을 초빙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미리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레티시아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적당한 다리 굽힘과 허리 접힘은 완벽한 예법이었다.
실리는 그 모습을 빤히 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영애는 제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았습니까? 누구라도 눈을 찌푸리고 외면할 얼굴인데요.”
“…….”
그 말에 레티시아의 눈이 커졌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리의 입장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가면을 쓰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 전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으면 이리 살게 되었을까 싶게 말이다.
“그러면 잠시 저기 앉아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지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레티시아는 실리가 있던 책상 자리 앞 편에 의자를 뒀다.
레티시아는 그 자리에 앉아서 실리를 기다렸다.
곧 문이 열리고 실리가 차를 내왔다.
고급스러운 잔에 품질이 뛰어남을 할 수 있는 차향이 뿜어져 나왔다.
란델리노의 벗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접해볼 일이 없을 차일 것이다.
“먼저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어떤 분에 관해서 들으셔야 해요.”
“알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요?”
“네.”
레티시아가 차를 한 입 마셨다.
그리고는 그 여운을 느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제가 사는 동네가 참 좋아요. 3인이 살기에 딱 좋은 집, 분란이 없는 이웃들, 상업지구까지 편히 갈 수 있는 위치, 착한 또래들까지 있거든요.”
이노무세키 이모부가 자꾸 더 좋은 집을 마련해 주겠다며 다가오기는 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줄을 대고 싶은 것이 보였다.
조카를 이용해서 한몫 잡으려는 수작질이었다.
호의를 가장한 수작질은 훗날 레티시아가 갚아야 할 빚이었다.
그것을 아는 부모님은 거절하셨다.
딸의 인생을 저당잡아서 호위호식하기 싫다며 말이다.
“이웃 어른들이 말하는 저희 동네의 문제는 하나였어요.”
“그 하나가 무엇인가요?”
“추한 얼굴을 지닌 할아버지였어요.”
실리가 눈을 찌푸렸다.
어떤 말을 들었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감이 왔던 것이다.
“얼굴에 큰 화상을 입으셨거든요.”
“안타까운 일이군요.”
“어느 날, 이사를 왔다고 들었어요.”
실리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불운한 사고로 인해서 인생이 불행해진 꼴이었음이다.
“모두가 그분이 지나가면 피하고 아들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했어요.”
“놀랍지 않네요.”
실리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살해당할 뻔했다.
그 정도는 양호한 반응이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화상 입은 사내나 자신을 보는 타인의 시선에는 경멸과 혐오가 있다는 것은 같았으니까.
“젊은 시절에는 꽤 잘 생겼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어쩌다가 그리되었냐며 그분 앞에서 혀를 찼죠.”
“반대로 화상이 있어서 추한 외모가 그나마 덜 추해졌다는 소문도 있었겠군요.”
“맞아요. 대놓고 당사자 앞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한 사람을 앞에 두고 너무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사람의 양면성을 드러냈다.
하나의 감정은 어쩌다가 화상을 입었냐는 동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나마 화상 덕분에 덜 추해진 것이라는 조롱이었다.
동정과 조롱은 서로 너무 다른 성향이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같은 감정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함이 있었다.
그것은 우월감이었다.
동정도 조롱도 상대보다 우월하기에 느낄 수 있었으니까.
호의를 내포한 우월감도 경멸이 기반인 우월감도 기분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실리는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행태가 웃겼다.
못생긴 자신을 봐도 감히 그들이 자신을 동정할 수 있겠는가.감히 조롱할 수 있겠는가.
뒤에서 뒷말을 하는 것이 전부이리라.
실리는 약자가 아니라 강자였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할 말 못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하. 하. 하.”
레티시아가 머쓱한 듯이 뺨을 손가락을 긁적였다.
그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화상을 입은 아저씨에게 이웃들이 구는 행동은 옳지 않았다.
그녀도 잘 알았다.
그러나 이웃 어른들끼리는 사이가 좋았고 호의적이었다.
자신에게도 잘해 줬으며 다른 아이들과 돌고 있으면 간식을 챙겨 주기도 했다.
그래서였다.
그들이 나쁘다고 말을 꺼내기 어려운 이유가 말이다.
자신에게는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오직 그 한 명에게만 나쁜 사람이었기에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따진다면…….
“저도 그분들이랑 다르지 않아요.”
“영애는 다른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그들처럼 대놓고 배척하지 않았을 뿐이지 방관하고 외면했으니까요.”
레티시아는 어른들이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여 피했다.
죄를 짓고 화상을 입을 것이 뻔하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다가가기를 거부했다.
부모님은 이웃들과 척을 지면 좋지 않으니 그 할아버지와 거리를 뒀다.
다만, 부모님은 이것이 옳지 않음을 알았기에 괴롭히고 욕하는 것에 참여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레티시아는 옳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외면의 대가는 삶의 평화다.
한 명을 외면하는 대가로 그들은 이웃과의 분란도, 이웃들 사이에서 고립되는 일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끼지던 어느 날이었어요.”
레티시아는 그날을 떠올리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실리는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이것임을 알아챘다.
“주택 건물에 불이 났어요.”
동네 사람들이 모두가 그 앞을 구경하러 나올 만큼 큰불이었다.
레티시아도 지나가다가 멈추게 되는 불꽃이었다.
“아이고 어쩌나!”
“미혼부의 집이었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지 않은 아기가 있다고 들었어.”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아내를 대신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하던데 어쩌나.”
아내를 잃은 남자가 재혼하지 않고 홀로 아기를 기르고 있었다.
가정부를 고용하여 낮에는 아기를 맡기고 퇴근한 이후에는 혼자 아기를 돌봤다고 한다.
힘들 것인데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는 재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들었다.
혹시라도 계모가 아이를 괴롭힐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강하듯이 아버지도 강했다.
“가정부는 어디에 있고?”
“아기가 잠든 틈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왔다고 하네.”
불이 난 가정에는 아기가 있다는 소리에 모두가 발을 동동 굴렸다.
아기의 안전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불길 속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아기의 목숨도 소중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했다.
그렇게 불길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나!”
“저 불길에 들어갔어!”
“두 사람이 죽게 생겼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곧 내려왔다.
아기를 품에 안고 말이다.
“정말 다행이네!”
“대단하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 순간을 기뻐했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아기 아빠가 달려왔다.
“아가!”
“여기 아기는 안전하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기의 아버지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아기를 구한 은인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제야 옷에 달린 모자에 가려진 얼굴이 보였다.
모두가 동네의 유일한 문제라고 하던 화상 입은 사내였다.
그렇게 사내를 배척하던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조용하든 말든 아기의 아버지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은인의 얼굴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기를 구해준 것만이 중요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아기의 아버지도 그들을 외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싫으면 싫었지 호의를 가질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아기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그 순고한 마음을 어찌 느끼지 못할까.
그것도 1층의 상가를 지나서 3층의 저택까지 불길을 뚫고 아기를 구한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느낄 기회조차 없이 생을 마감하게 둘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모두의 경멸과 혐오에도 그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레티시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 자신의 행동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는 실리를 당당하게 쳐다봤다.
“저는 창피했어요. 그 사람 자체를 보지 않고 겉만 봤던 자신이요.”
“…….”
“저는 부끄러웠어요. 그 사람 자체를 보지 않고 남들의 말에 휘둘렸던 자신이요.”
“…….”
“저는 민망했어요. 가장 용기가 있는 사람을 외면했던 자신이요.”
“…….”
“물론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사람들의 시선은 한결 나아졌어요.”
경멸과 혐오의 시선으로 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거리를 두며 다가가지 않는 것은 같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은인과 레티시아뿐이었다.
“저는 그분에게 가서 사과했어요. 죄송하다고요. 그동안 대놓고 피하고 그랬던 것을요.”
“그랬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그분은 저에게 말했어요. 아이는 어른의 행동을 따라서 배운 죄밖에 없다고요. 그래도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레티시아는 화상 입은 사내를 그리워하는 눈빛을 내비췄다.
실리는 속사정을 모르기는 몰라도 그 이후에도 두 사람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눈치챘다.
“그때 저는 다짐했어요. 결코 사람의 외양에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고요. 오직 그 사람 자체를 보겠다고요.”
그것은 실리의 외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리라는 사람을 보았다는 말이었다.
실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고 들을 기대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