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국왕이 무능하다는 편견
그녀의 물음에 거리낌도 없이 마법사가 대답했다.
마치 상사에게 보고하는 듯한 말투였다.
“남자 사형수는 자신의 아이와 아내를 포함하여 다섯이나 때려죽인 죄이고, 여자 사형수는 의붓자식 넷을 때려죽이고 자신의 자식을 굶주리게 해서 죽인 죄입니다.”
“끼리끼리 노는군. 알겠네.”
그녀가 나가고 남은 마법사들이 입을 열었다.
“어서 다시 실험을 시작하지.”
“어디 보자. 다음 마법 실험은 전쟁, 사고 등의 일로 잃어버린 신체를 복원하는 마법을 만드는 실험이군.”
“사형수 준비해. 저번처럼 금방 죽도록 하지 마. 사형수가 매번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조심하겠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고 곧 실험실에는 비명소리가 끝도 없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아!”
“차라리 죽여줘!”
* * *
그녀는 회상을 끝내고 상급 신관을 내려다봤다.
“치료법은 알아냈습니까?”
“실력으로는 최상위급인 마법사들, 의사들, 신관들이 모두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아직 없다는 뜻이군요.”
페루제 공작부인이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참담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이에 상급 신관이 황망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메디치 루비로즈 백작각하께서 이리도 힘을 써주시는데 성과를 내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갑자기 나타난 병입니다. 손쉽게 치료법이 나오리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에게 미안할 뿐이죠.”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슬퍼했다.
눈물을 닦아 내는 모습이 얼마나 처연해 보이던지 저절로 손이 가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반드시 치료법을 알아낼 것입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믿고 있어요.”
그 말에 상급 신관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성모라는 칭호를 얻을 만한 분이다.
백성을 위해 온 힘을 다하시는 분이다.
이런 분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아니 된다.
그는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리라 다짐했다.
‘정말 이놈이나 저놈이나 무능하구나. 치료법을 알아내라고 사형수도 제공하고 자금도 내주고 시설도 줬는데 제대로 된 성과를 하나도 해내질 못해.’
짜증이 나서 다 죽이라고 말하고 싶은 심경이다.
그러나 자신의 눈에는 하찮아도 남들 눈에는 아니니 참는다.
교황과 자신이 공생관계라고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갈 리가 없었다.
그 훗날을 대비하여 자신에게 호의적인 무리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라스타 왕국에서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데 이곳은 전혀 아니라서 놀랐습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방치를 하다니 저도 놀랐어요.”
상급 신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라스타 왕국에서는 이미 감염 경로를 알아채고 백성들에게 알리며 교육하는 중이었다.
이로 인해 그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확 줄어든 추세이다.
이에 반해 알펜 왕국은 아직도 그 병이 공기 중에 전염된다고 믿고 있었다.
“아직도 무지한 이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까요.”
“백작각하께서 라스타 왕국에 계셔서 든든합니다.”
“그리 말해 주니 감사하네요.”
알펜 왕국의 귀족들과 왕족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서류를 제대로 읽는다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안다면 의혹을 가질 만한 일이다.
그 생각 하나를 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신관님, 제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말해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저는 알펜 왕국의 귀족들과 왕족들이 능력이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죠.”
그녀가 참으로 민망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신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상급 신관은 그녀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제가 폐하께 감염 경로를 알려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백작각하께서 하셔서 공적을 세우시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을 끝낼 수 없었다.
그녀의 눈망울이 너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억지로 억울한 마음을 참는 것처럼 느껴졌다.
“폐하께서 저를 믿지 못하시니까요. 라스타 왕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어찌 그런단 말입니까!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기 위함인데! 정말 알펜 왕국의 국왕께서는 속이 좁으십니다.”
“그런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누가 뭐라고 해도 제가 마땅히 따라야 하는 이 왕국의 왕이십니다.”
“알겠습니다.”
상급 신관이 그녀에게 감동했다.
자신은 상상도 못할 깊은 충심이었다.
자기 눈앞의 여인은 성모에 어울리는 인품을 지녔다.
“각하의 몸에 전염병은 없습니다.”
“그이가 걸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나가서 전염병이 어찌 확산되는지 폐하께 말을 올리겠습니다.”
“네.”
상급 신관이 방을 나가고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변했다.
차갑고 이성적인 얼굴이었다.
아까의 감정적인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이었다.
그녀의 곁에 있던 시녀가 다가왔다.
“만족하셨습니까?”
“아주 좋았네. 말이 많고 감정적인 놈을 붙여 달라고 했는데 정말 조건에 부합하는군.”
“교황폐하께 매우 만족하셨다고 전하겠습니다.”
“알겠네.”
신관들은 감정적이다.
그 감정에 매몰되어서 자신들이 무조건적인 정의인양 떠들어대는 것이다.
신관들은 입이 참으로 가볍다.
전도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가볍게 입을 놀리고 다닌다.
신관들은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
현재에 순응하며 성서를 기준으로 살기를 원하는 족속들이다.
신관들은 배타적이다.
사랑과 자애를 언급하지만 누구보다 배타적인 존재들. 종교를 이유로 얼마든지 사람들을 해칠 수 있다.
“이제 저 신관이 말하겠지.”
그런 성향들을 다른 신관들보다 강하게 가진 인물을 자신에게 붙여 달라고 요구했었다.
자신이 무조건 정의라고 믿고 행동하는 바보로 말이다.
‘왕은 백성만 격리하고 귀족은 그대로 두는 이중적인 작자라고 말하고 다니겠지.’
‘왕은 백성들을 위해 전염병에 관련된 조사조차 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말하겠지.’
“신관 중에서 가장 입이 가볍고 감정적이니 잘 말하고 다니겠지.”
처음에는 쉽게 넘어갔던 말들이 점점 많아져서 진실로 둔갑할 것이다.
왕실에 관한 신뢰가 무너질지 아니면 더 견고하게 만들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휴게실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자 곧 다른 상급 신관이 그 휴게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자리를 잡자마자 귀족이 휴게실에 들어갔다.
* * *
연회장으로 다시 돌아온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국왕의 앞에 서서 우아하게 말했다.
“폐하, 다행히 저는 그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허더군요.”
“그래? 그거 참 다행이군.”
국왕은 정말 다행이라는 듯이 웃었다.
속은 겉과 전혀 달랐다.
저 얌체 같은 여인으로 인해 짜증이 났다.
굳이 왕이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말했다.
“내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전에 미리 말하다니 민망하군.”
“빨리 폐하를 안심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에 먼저 말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네가 아프지 않아서 아쉽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인간적으로 너무 쓰레기였다.
그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은 때이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완전히 왕실의 이미지가 바닥을 칠 것이다.
지나가던 개도 알 만한 전개였다.
“상급 신관에게 전염 경로에 관해 들었네. 알고 있었으면 미리 말해 줬으면 좋았을 것을 말이야.”
“신전에서는 알펜 왕실에서 이미 알고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대라도 알려줬으면 참 좋았을 것인데 말이야.”
“어찌 일개 아녀자에 불과한 제가 그런 사실을 알겠습니까?”
신전과 페루제 루비로즈의 결탁을 모르는 인물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누가 봐도 알펜 왕실의 대응이 어떤 전제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지 말이다.
‘공기 중으로 전염병이 퍼졌다’라는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건국제에서 화려하게 등장하기 위해 일부러 무시하고 있던 일일지 모른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를 하고 자빠진 것이다.
“일개 아녀자? 일개 아녀자가 영주가 되지는 못하지.”
“일개 아녀자로 여기시고 제가 알펜 왕국의 귀족이 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여자가 영주가 된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고 알펜 왕국의 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 실책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마주볼 수 있다면 멱살을 잡고 화내고 싶은 심정이다.
먼저 연회장에 들어왔던 귀족들이 왕과 그녀의 눈치를 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밖에 좀 있다가 들어왔을 것이다.
숨 막히는 기 싸움에 다른 사람들이 기력이 빠지는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진짜로 기력이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대화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으니까.
“어머? 저를 높게 생각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제가 오해를 했네요.”
“오해가 풀렸다니 내 기분이 다 좋아지는군.”
그녀가 과장스럽게 부채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왕은 확신했다.
부채에 가려진 입은 분명히 비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그녀를 따라서 호탕하게 웃었다.
검사가 끝난 다른 귀족들도 연회장에 몰려들어 왔다.
아까보다 적은 수의 귀족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어떤 이들은 안도하는 얼굴을 드러냈다.
하얗게 질려서 연회장에 들어온 인물 중 하나가 국왕에게 말을 걸었다.
“폐하, 건국제의 초대를 받았으나 큰일이 생겨서 돌아가 봐야 할 듯합니다.”
“그러시게.”
그 큰일이 건국제에 같이 온 자식에 관련된 일임을 모두가 알아챘다.
분명히 그 전염병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아들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어떻게 연회장에 계속 있을 수 있겠는가.
그를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입을 열었다.
“저도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가문에 일이 생겼습니다.”
“다음에 좋은 기회에 찾아뵐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왕은 그들에게 가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어떤 이는 가문의 가주를, 어떤 이는 가문의 후계자를 잃게 생겼으니까.
아니, 미래가 정해져 버린 불쌍한 가문들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응을 준비하기 바쁠 것이다.
차마 그 전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특히 상급 신관들에게 전염 경로를 들었으니까.
그들은 은근슬쩍 은밀하게 귀족들에게 자신들이 아는 진실을 알려줬다.
그 병의 전염 경로가 문란하기 그지없는 상대에게 걸린다는 편견을 심어 주기에 딱 좋았다.
그들이 나가고 연회장은 조용해졌다.
가족들의 건강이 안전한 이들만 남게 되었다.
연회장에 있는 이들은 그들끼리 작게 대화를 나눴다.
“우리 가족들은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혹시 모를 일이지.”
“맞아요. 아이들이 문란하게 놀지 못하도록 단속을 제대로 해야겠어요.”
“자업자득인 면이 있어. 성병이라니 민망해서 말 꺼내기도 무서워.”
왕에게 병의 경로를 말하는 동시에 상급 신관들을 통해서 귀족들에게도 알렸다.
귀족들은 자신이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폐하께서 전염병이 어떻게 옮아 가는지 조사 한 번만 시켰더라면 이렇게 번지지 않았을 것인데 말이오.”
“그러니까 말일세. 이게 뭔가. 라스타 왕국에서는 이미 이에 관해서 교육을 시키고 대처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말이야.”
왕이 그것을 알아보도록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리라.
원래 인간이란 자기반성보다 남 탓하기를 좋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