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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115화 (115/221)

115화 건국제의 시작

대망의 건국제가 시작되었다.

밖은 활기로 가득했다.

“자! 여기 건국제를 모티브란 연극이 곧 시작합니다. 어서들 와 주세요!”

“건국제를 기념하여 특별할인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꽃을 뿌리며 즐겁게 놀았다.

건국제 기간에는 왕국 전 지역이 이렇게 활기가 돋을 것이다.

벨로나 공작저택의 고용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공작부부가 건국제 연회에 참석할 것이었다.

“준비된 드레스에 맞는 장신구는?”

“여기 있습니다.”

“이 장신구 말고 다른 것으로 가져오게!”

“알았습니다!”

특히, 페루제 공작부인은 만발의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시녀들이 공작부인의 방을 들어왔다가 나갔다가를 반복했다.

그로 인해 짜증이 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벨로나 공작이었다.

그는 1층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택 기둥에 몸을 기댄 그는 자신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집사, 그 여자는 도대체 언제 나오는 것인가?”

“사람을 보냈으니 곧 대답이 올 것입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인데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거 하나 기다려 주지 못하다니요. 인내심이 없으시군요.”

그녀가 계단에서 우아하게 내려왔다.

그가 눈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이렇게 입으려고 이리도 시간을 낭비한 것이오?”

“겨우라니요. 섭섭하군요. 나름 심사숙고하여 입은 것입니다.”

그녀는 묘한 겉옷을 입고 있었다.

그 겉옷은 길었다.

그녀가 붉은 드레스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상체를 가렸다.

그리고 품질은 좋아 보이나 뭔가 낡았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요?”

“저는 수작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단지 저에게 어울리는 등장을 위해 준비했을 뿐이에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겉옷을 입었단 말인가.”

“네. 모두 놀래라고요.”

“기겁하게만 만들지 말게.”

그가 귀족적인 태도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우아하게 그에게 팔짱을 꼈다.

정말 공과 사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만 보면 정말 금슬 좋은 부부로 오해하기 좋았다.

벨로나 공작가문의 마차가 왕궁 안으로 들어왔다.

그 근처에 있던 모든 시종, 시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소문의 페루제 벨로나 공작부인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소문의 그 부인을 드디어 보게 되네요.”

“그러게.”

“성격만큼 외모도 별로일 것이 분명해요.”

“외모는 아름답다고 하던데?”

“다 과장이죠. 소문이 다 그렇잖아요.”

마차에서 벨로나 공작이 먼저 내려왔다.

그는 아내를 잡기 위해서 손을 건넸다.

그 손을 잡고 내린 페루제 공작부인은 소문보다 더 아름다운 외모였다.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네요.”

“그러게.”

“그런데 왜 옷을 저렇게 입지? 이상하잖아.”

“뭐, 라스타 왕국식인가 보죠.”

옷차림이 이상해서 그렇지 말이다.

“그건 그렇고 엄청 신기한 구두네?”

“생전 본 적도 없는 구두에요. 불편에서 어떻게 신고 다니는지 신기할 지경이에요.”

그들은 처음 보는 구두가 신기했다.

뒷부분이 뾰족하게 긴 특이한 구두였다.

“아까 북부 출신의 부인들은 다 저 구두를 신더라고요.”

“북부의 유행인가 봐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리지는 않아도 느껴질 터였다.

자신을 주시하는 분위기를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들의 관심 따위는 하찮았다.

그들이 하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혀 신경이 쓰이지도 거슬리지도 않았다.

왕궁으로 들어온 그들은 어느새 연회장 문 앞까지 도달했다.

그들의 방문을 알릴 시종이 그들에게 인사했다.

“벨로나 공작각하, 공작부인 오셨습니까?”

“여기 초대장이네. 어서 우리의 방문을 알리게.”

그가 초대장을 시종에게 줬다.

그가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벨로나 공작내외께서 오셨습니다.”

“아! 이거 벗어야 하는 것을 잊었네. 여기 가져요.”

“당신!”

그녀가 그 시종에서 자신의 묘한 겉옷을 줬다.

벨로나 공작이 겉옷 안에 감췄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아쉽게도 이미 늦었다.

문은 완전히 열렸고 모두가 그들을 바라봤다.

이미 입장소개가 되었다.

무조건 연회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연회장 입장을 선언했음은 왕도 그들의 방문을 안다는 것이다.

이는 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이었다.

왕에게 오겠다고 선언했으면서 오지 않는 것은 불충이었다.

또각또각.

그들의 등장에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는 들고 있던 부채를 떨어뜨렸다.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본 것이 맞는지 눈을 비볐다.

어떤 이는 혀를 내밀며 멍해졌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을 들어오는 그녀는 아름다웠다.

화려한 장신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눈처럼 하얀 피부와 장미처럼 붉은 입술, 핏빛과 같은 드레스는 페루제 공작부인과 너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묘하게 소름이 끼쳤다.

마치 그 입술도, 드레스도 진짜 피로 붉게 만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이 이곳을 침묵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뭐가요?”

그가 장소를 생각하며 작게 말했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은 떨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가 끊어지려는 이성을 억지로 부여잡는 상황이기는 했다.

“어찌하여 어깨와 팔을 다 보이는 드레스를 입는단 말이오.”

“그게 어째서 문제가 됩니까?”

여인은 정숙해야 한다.

그것은 사회에 깊게 박힌 사상이었다.

그리고 그 사상에 따라서 여인들은 모두 팔, 어깨, 가슴을 가리는 드레스를 입어 왔다.

발목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이렇게 과감하고 충격적으로 어깨와 팔을 보이게 하는 여인은 없었다.

이것은 지금의 사회적 사상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꼴이었다.

그들은 옥신각신하며 국왕과 왕비 앞에 섰다.

“벨로나 공작, 폐하와 왕비마마께 인사드립니다.”

“메디치 백작이자 벨로나 공작의 아내인 페루제가 인사드립니다.”

그 모습에 놀라서 굳은 국왕과 왕비였다.

다행히 곧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인사를 받아줬다.

“그래. 어서 오게.”

“벨로나 공작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공작부인, 반갑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모두가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를 눈치였다.

왕비가 상대와 초면이지만 나서기로 했다.

“페루제 공작부인, 휴게실에 가서 겉옷이라도 입고 오는 것은 어떤가? 나의 의복을 빌려주겠네.”

“그러는 것이 좋겠군.”

왕비의 말에 왕이 반색하며 동조했다.

뭐, 벨로나 가문의 안주인이 겉옷이 없어서 왕실에 옷을 빌렸다며 조롱거리가 되겠지만 어찌하겠는가.

자업자득이다.

벨로나 공작도 안주인 단속을 못한 대가로 받아들여야 한다.

“왕비마마의 호의는 감사하나 괜찮습니다.”

“괜찮다니?”

태연하게 왕비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것도 초면에 말이다.

그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했고 그녀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거절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병이 걸린 것이 아니고 건강하거늘. 어찌 감추겠습니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정숙의 문제일세.”

왕비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정숙함과 건강은 엄연히 다른 문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국의 왕비가 이리 말했으면 물러나야 마땅하다.

국왕도 왕비의 의견에 동의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페루제 공작부인이었다.

“왕비마마도 요즘 돌고 있는 전염병에 대해 들으셨을 것입니다.”

“듣기야 들었네.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고 하더군.”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피부궤양(피부의 일부분이 짓무른 현상)과 피부발진(피부나 점막에 돋아난 작은 종기)이 생긴다는 것도요?”

페루제가 말하는 전염병은 아스만 제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이상한 전염병이었다.

아스만 제국은 이단을 신으로 모시는 동쪽의 제국이며 카플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병의 시작은 카플란 국경지대를 공격한 병사들에게 유린당한 여자들이었다.

그들을 시작으로 병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카플란 왕국을 넘어서 헬리오, 라스타, 알펜 왕국에도 퍼졌다.

병의 원인도 치료 방법도 몰랐다.

그 병에 걸리면 무조건 죽게 되었다.

“그렇습니까?”

“그것까지는 몰랐네. 그대는 어찌 알았나?”

요즘에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그 병이 퍼져서 서로 쉬쉬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병의 정확한 증세를 왕비가 알 리가 없었다.

모두가 침묵으로 병을 감추려고 했으니까.

왕비의 물음은 어떤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한 영지의 영주로, 한 가문의 안주인으로 어찌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겠습니까? 알아보고 또 알아봐야지요.”

“그렇군요.”

왕비가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낸 것 같아서 창피했다.

괜한 질문에 왕의 정부인 여자가 얼마나 자신을 모욕할지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거렸다.

“저는 왕비마마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어찌 그대가 나보다 부족하겠는가?”

페루제 공작부인은 정말로 감동하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왕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한 새로운 조롱 방법인가 순간 생각할 정도였다.

“저는 자존심이 아주 강합니다.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기를 궁금하더라도 싫어하여 물어보지도 않죠.”

“그, 그런 성격이었군.”

지금 모습만 봐도 엄청 강한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놓고 자기 자신이 강한 성격이라고 할 줄은 몰랐다.

왕비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런데 일국의 왕비께서 아랫사람인 저에게 친히 질문하시는 모습을 보니 과거의 제자신이 너무 부끄럽더군요.”

“이 사람의 무지를 그리 생각해 주다니 고맙네.”

“앞으로도 왕비마마 곁에서 이런 깨달음들을 얻고 싶을 따름입니다.”

왕비와 친해지고 싶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페루제 공작부인, 그대의 말. 잊지 않겠네.”

“기억해 주시고 언제든 초대해 주십시오.”

왕비는 감동했다.

남편의 정부들로 인해 왕비의 권위가 실추된 지 오래였다.

정부들은 왕의 권력을 믿고 나댔다.

처음에는 정부들을 혼내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를 알게 된 왕이 정부들의 편을 들면서 왕비를 혼냈다.

그 모습에 자신과 교류하던 부인들은 어느새 하나둘씩 왕비궁에 발길을 끊어 버렸다.

원래도 왕의 총애를 받는 정부가 왕비 머리 위에 있는 것은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선약이 있더라도 무조건 왕비마마께 가겠습니다.”

아니다.

아예 끊지는 않았다.

자신은 왕자들의 어머니였으니까.

미래의 왕이 될 태자의 어머니였으니까.

그들은 배고픈 개에게 먹이를 주듯이 적당하다 싶은 때에 찾아오고는 가 버렸다.

그게 참으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알펜 왕국의 어머니인 왕비마마가 아니십니까. 왕비마마보다 우선시될 알펜 왕국의 여인은 없죠.”

그래서 지금 왕비 자신을 향한 호의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국왕은 무슨 의도로 왕비에게 접근하려고 하나 싶은 눈초리로 페루제 공작부인을 쳐다봤다.

벨로나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페루제 공작부인과 왕비 둘만의 훈훈한 분위기가 풍기려고 하는데 방해꾼이 있었다.

“그대의 말은 그대는 건강함을 보이기 위해서 어깨와 팔을 드러냈다는 것이지?”

“네. 맞습니다.”

바로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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