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시험
남편의 뾰족한 말투에 페루제 공작부인이 웃었다.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느라 입가가 떨리는 기분이다.
“제가 하라는 대로 말하게 하면 그게 앵무새지 사람이에요? 자기 생각으로 행동해야지요.”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라는 것이야.”
“아비 역할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웃기네요.”
벨로나 공작도 웃었다.
그도 그녀처럼 입가에 힘을 주느라 고생이었다.
물론 그것은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복화술(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화술)로 대화하고 있었으니까.
왕도, 라보 공작부부도 떨떠름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왕이 한소리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오해하기 딱 좋았다.
“참으로 그대들은 사이가 좋군.”
“아닙니다.”
“부부가 기본적인 도리는 지켜야 하는 법이지요.”
벨로나 공작은 경직된 얼굴로 왕의 말을 부정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기본적인 도리’를 언급했다.
담백한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사이좋은 척하는 것이 부부의 도리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시종들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음식에서 나오는 냄새는 그 맛이 훌륭할 것임을 느끼게 해줬다.
“이제 음식이 오는군. 허기가 지니까 식사를 시작하지.”
“네.”
“알겠습니다.”
식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래. 이번에 왕궁에 들어온 포도주가 유독 맛있더군. 시종장에게 그대들의 저택으로 보내라고 명을 내렸네. 한 번 마셔 보게나.”
“폐하께서 극찬하시는 포도주라니 기대가 됩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돌아가자마자 마시겠습니다.”
이 대화에는 오직 페루제 공작부인만 빠져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맞다는 듯이 자연스러웠다.
스튜어트 라보는 힐끔 페루제 공작부인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씩 식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직 페루제 공작부인만 고요했다.
마치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빤히 봤던 것인가?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시선이 마주쳤다.
스튜어트 라보는 너무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했다.
그가 다시 슬쩍 고개를 들자 페루제 공작부인이 환하게 웃었다.
아름다운 웃음인데 무서웠다.
눈빛이 전혀 웃지 않았으니까.
“폐하, 드릴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녀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국왕을 봤다.
“폐하, 제 아들과 스튜어트 백작은 훗날 왕실을 도와서 왕국을 이끌 인재들입니다. 비록 두 아이 사이에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국왕의 말투는 조금 공격적이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수도에서 자신의 곁을 지켜야 하는 벨로나 공작을 공작령에 묶어 놨다.
왕권 강화를 위해 대법관을 자신의 사람으로 세우려던 왕의 계획을 막았다.
자신을 방해만 하는 상대를 좋아하는 것은 어려웠다.
“두 아이의 사이가 좋아질수록 가문 간의 사이도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여기에 있는 동안에 주기적으로 두 아이를 만나게 해줬으면 합니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있다면 더 좋겠지요.”
1초.
2초.
3초.
3초간의 침묵이었다.
분명히 좋은 의도가 담긴 듯한 말이다.
그런데도 의심이 들었다.
특히 그녀와 매일 대립하는 벨로나 공작은 더욱 그러했다.
분명히 불순한 의도라고 확신했으니까.
“원래 왕실에서 귀족가문의 아이들을 시간이 나면 초대하려고 하는 편이라네.”
“정기적으로 정해진 날마다 오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기는 하지. 좋네. 왕실에서 날을 정해 보지.”
“제 의견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실은 가주가 될 아이들을 초대하여 친분을 다졌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매번 다른지라 친해졌던 아이들도 다시 만나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접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도 일이었고 말이다.
국왕은 친왕파 아이들의 결속을 더욱 단단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훗날 태자를 지탱할 기둥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찜찜한 느낌에도 페루제 공작부인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이뤘다는 듯이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폐하,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불러주신다면 언제라도 오겠습니다.”
“만족스러웠다니 다행이군.”
형식적인 식사와 대화가 끝나고 그들은 왕궁을 벗어났다.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벨로나 공작이 말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시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벨로나 공작이 ‘아버지’라는 말에 순간 멈칫했다.
란델리노는 자신이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의 외면과 방치를 뼈저리게 새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라 부르며 친근한 척하는 것이다.
훗날 벨로나 공작자리를 탐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들어가거라.”
“네.”
모자는 벨로나 공작에게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 * *
그들은 조용히 걸었다.
밖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작게 말했다.
“그래. 내가 왜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도록 했는지 아니?”
“어머니의 의도를 어찌 제가 감히 알까요?”
“적어도 생각은 할 수 있겠지.”
란델리노가 다정하게 물었다.
그러면서 페루제 공작부인과 같은 곳을 보며 걸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덩굴장미가 참으로 예쁘구나.”
“그러네요.”
그녀가 정원 쪽에 보이는 덩굴장미를 빤히 봤다.
그러면서 덩굴장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란델리노는 이것이 어머니가 생각할 시간을 준 것임을 눈치챘다.
자신의 물음에 관한 답을 생각할 시간이었다.
솔직히 친왕파의 결속은 왕권 약화를 원하는 그녀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가 굳이 친왕파 아이들의 결속을 다져 줄 계기를 만들 이유는 없었다.
비정기적으로 만나게 하는 것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친분을 덜 가깝게 해줬다.
“제가 생각해 보기에 어머니는 친왕파 아이들이 친해지기를 원치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당당하게 말해라. 말을 흐리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란델리노가 말을 흐렸다.
자신이 말해도 되는 말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과한 자기평가일 수 있었고 과신일 수 있었으니까.
아들의 머뭇거림에 그녀가 재촉했다.
“제 대답이 저의 오만일 수 있고 저의 과신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만과 과신인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다. 대답해 보거라.”
페루제 공작부인이 덩굴장미에서 시선을 뗐다.
고개를 돌려서 아들을 내려다봤다.
서로가 눈을 마주쳤다.
란델리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제가 친왕파의 아이들을 ‘친왕파 사람들’이 아니라 ‘제 사람들’로 만들길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아들을 보는 눈빛치고는 너무 서늘했다.
자신도 모르게 침이 삼켜질 카리스마였다.
그녀가 한 손으로 란델리노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그리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마치 네 말이 정답이라는 듯한 말투였다.
그리 말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란델리노에게 맞춰 주지 않는 걸음이었다.
어머니의 옆에 서기 위해 그는 발을 분주하게 놀렸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나 마음이 복잡했다.
‘왜 단순한 일을 어렵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친왕파 아이들끼리의 정기적 만남을 제안한 이유는 별것 아니다.
아이들끼리 친해지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으니까.
그들은 아직 아이들이다.
아직 13세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결속을 해봤자 그 마음이 어디까지 유지되겠는가.
‘참으로 희한하지 않은가?
자신의 제안이 친왕파의 결속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결속이란 정기적으로 만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자신의 이득과 신념에 부합해야 이룰 수 있다.
어릴 때의 일은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니까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왕도, 라보 공작부부도, 벨로나 공작도 자신의 의도를 곡해했다.
사특한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의심했으니까.
자신의 의도는 하나였다.
왕에게 한 제안은 란델리노에게 질문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왜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도록 했는지 아느냐는 물음을 던지려고 한 것이다.
이 질문으로 란델리노를 시험해 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란델리노는 답을 했다.
‘별거 아닌 일을 그렇게 뒤집어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가?’
자기 또래의 아이들끼리 정기적으로 만나서 노는 것을 기회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가?
그 시간 동안에 자신의 사람을 만들 생각을 하는 것이?
아무리 아이를 곁에 둔 경험이 없는 자신이라도 알았다.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뛰어나다는 말도 적합하지 않았다.
‘아이임에도 자신의 감정을 잘 숨겨.’
그녀는 일부러 아들을 배려하지 않고 걸었다.
그것을 따라잡겠다고 빠르게 걷는 란델리노를 잠시 내려다봤다.
힘들다고 좀 천천히 걸어달라고 칭얼거리지도 않았다.
힘들어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자신이 란델리노의 걸음을 맞춰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평온했다.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하구나.”
“네?”
란델리노가 자신의 말을 못 들었는지 화들짝 놀랐다.
어머니의 발걸음에 맞추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느라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냥 나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단다.”
“어머니의 아들이니까요.”
“그래. 자식은 부모를 닮은 법이지.”
란델리노는 자신이 어리다는 이유로 방심했다.
자신의 나이가 어리기에 어머니가 방심할 것이라 믿었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각인시켜도 된다고 여겼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어머니의 신중함을 간과했다.
적당히 아이의 순수함을 남겨 놓아야 했다.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감이 찬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란델리노의 사람들’을 만드는 기회로 여김을 드러내지 말아야 했다.
란델리노의 사람들은 루비로즈 가문의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제발 딱 여기까지만 해다오. 더는 앞서가지 말고 딱 여기까지만.’
그녀는 란델리노의 자질과 능력을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확실하다.
아이는 자질과 능력을 지녔고 그것에 걸맞은 야망을 품었다.
문제는 그 야심이 가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였다.
아무리 아끼는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루비로즈 가문보다 위에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루비로즈 가문을 위해서 너를 죽일지 살릴지 고민하지 않도록.’
그것이 과연 루비로즈 가문을 위해서 좋을지 좋지 않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판단이 서는 날, 란델리노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리라.
그녀가 아름답고 환하게 웃었다.
“벌써 마차에 왔구나. 어서 가서 차를 마시자구나.”
“네, 알겠어요.”
장미가 화려하게 핀 듯한 웃음이었다.
아들의 생사를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고민이 무색하게 시간은 흘렀다.
흐르고 흘러서 건국제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