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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103화 (103/221)

103화 니나스 알도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고급 의상실) (4)

그녀는 움찔거리는 부인들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무지한 것들은 끝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쳐요.”

“죄송합니다.”

눈빛이 로테 후작부인에게 향했다.

사과했으나 기분이 상한 공작부인이었다.

어떤 날선 반응이 올지 두려웠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저들에게는 그리 화가 나지 않았어요. 그대에게 화가 났지.”

“부, 부인! 정말 죄송합니다.”

말을 떨며 페루제 공작부인을 바라봤다.

다급함과 애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대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장미회에서 그대의 가입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북부 사교계를 수도 사교계에서 활동하기 위해 이용한다고 뒷말이 많잖아요. 그대도 알다시피.”

로테 후작부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처음 듣는 말이었으니까.

그동안 친분을 쌓아도 공작부인은 자신에게 장미회 가입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슬슬 말해 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유로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설마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게까지 북부에 인맥이 없는 인물이었나?”

“아, 아닙니다.”

지금 장미회는 그냥 가문이 좋다고 가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한 일개 개인의 사교계 영향력이 좋다고 가입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북부 사교계의 최고 모임으로 꼼꼼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들어올 수 있었다.

가문의 부, 명성, 권력, 개인의 평판과 영향력 등 그 기준은 많았다.

그래서 장미회에 가입된 부인들의 자부심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로테 가문이 후작 가문이기는 해도 알잖아요? 그대의 가문이 부가 월등히 많은 것도 아니고 압도적인 군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무난한 가문?”

“로테 가문은 역사가 깊은 가문으로…….”

로테 후작부인은 자기 가문을 두둔하려고 했으나 말을 끝낼 수 없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도중에 말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역사만 있겠죠. 장미회 가입한 부인들의 가문 중에 역사가 없는 가문이 있나요? 사실 그곳 부인들의 영향력에 비하면 로테 후작부인은 힘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로테 후작부인에게 다행히도 엄격한 확인 절차가 없어도 가입할 방도는 있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허락이었다.

그녀의 총애를 등에 업는다면 가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수도에서 로테 후작부인이 뻔질나게 그녀를 찾아간 것이다.

그 총애를 한번 제대로 얻어 보려고 말이다.

과연 그것을 북부의 부인들이 몰랐을까?

서로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로테 후작부인이 장미회에 들고 싶어서 아주 난리라면서요.”

“어디 우리 장미회에 들려고 해요? 우리가 그리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수도 사교계에서 인맥 좀 있다고 뻐기면서 북부를 등한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어디에 끼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요. 분명히 수도에서 페루제 공작부인께 아양을 떨 것인데 어째요?”

“일단 공작부인께 저희는 그 여자가 싫다고 어필해야죠. 그리고 다들 그 부인에게는 장미회에 관한 것은 입도 뻥긋하지 말아요.”

로테 후작부인을 자신도 모르게 북부 사교계에서 고립이 되었다.

자식들을 수도 사교계에서 적응시키는데 이용당하고 실속은 하나도 얻지 못한 것이다.

“나는 메디치 백작령과 인접해 있는 그대 가문을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가까운 만큼 친하면 친할수록 평화로울 것이니까요.”

“부인 오해십니다! 저는 북부 귀족자제들이 수도 사교계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로테 후작부인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자신이 그들의 자제들을 수도 사교계에 적응시키려고 얼마나 힘을 썼는지 알면 그리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개방적으로 보이나 수도 사교계는 상당히 배타적인 면이 있었다.

외부인을 잘 끼워 주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겉돌다가 북부로 돌아갔을 것이란 말이다!

그녀는 말을 끝낼 수 없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손을 들었다.

그만하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그대 입장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투가 바뀌었다.

우아함에 권위적인 느낌이 더해졌다.

어쩌면 짜증과 경멸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대가 장미회에 들어올 수 있는 명분을 주려고 여기 왔다는 것이야. 그대는 그 기회를 저 부인들 때문에 잡지 못했지.”

“저, 저와 함께 왔다면 이런 일은…….”

로테 후작부인이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켰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혀를 찼다.

혀 차는 소리에는 상대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대와 동행했다면 나는 만족스러운 대접을 받았겠지.”

“맞습니다. 제가 있었다면!”

“그런데 그러면 모르잖아. 여기가 자네 말처럼 정말 좋고 뛰어난 오트 쿠튀르 하우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잖아.”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미소에도 눈빛은 차가웠다.

“그대와 왔다면 손님을 두고도 키득거리는 직원들과 그 직원들을 가만히 두는 프런트 직원을 보지 못했을 것이야. 그렇지? 나는 그런 곳인 줄 모르고 좋은 곳이라며 칭찬하는 바보가 되었을 것이고.”

“부인! 제가 아둔하여 이곳이 그리 천한 곳인지 몰랐습니다. 당장이라도 제가 그것들을 요절내고 말겠습니다.”

“아니지. 그럴 필요는 없어. 이곳이 원래 이런 곳인데 내가 뭐라고 해?”

페루제 공작부인은 말을 마치고 주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과 마주칠까 부인들이 시선을 얼른 바닥으로 옮겼다.

“여기가 원래부터 아주 수준이 낮은 곳임을 알아.”

그녀가 이곳 부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려는 것처럼 살벌하게 눈을 빛냈으니까.

“부당한 시비를 당하는 이를 외면하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손님들이나.”

그 시선이 직원들에게 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시하던 부인의 정체에 그 화가 미칠까 두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손님을 가만히 두는 직원들이나 그 수준이 같아. 이런 곳이 수도 최고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라니 놀라울 따름이지.”

그녀가 덮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아까 읽다가 말았던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부인, 이제 그만 가 봐.”

“공작부인!”

“가.”

로테 후작부인은 차마 뭐라고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가라고 했다는 것은 더 이곳에 있으면 진짜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미임을 알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방문하여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러던가.”

후작부인은 흐르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빠른 걸음으로 이곳을 벗어났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그런 그녀에서 잠시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묵묵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인들, 여기서 디자이너를 만나려고?”

“예?”

“오늘은 그냥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가 기분이 나빠서 말이야.”

시비를 걸었던 부인들을 향한 말이다.

그들은 로테 후작부인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모든 일을 크게 키운 원흉들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어리석은 이들은 도망칠 타이밍조차 알지 못했다.

“그, 그것이…….”

“내가 그대들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어. 안심해.”

그들은 안도했다.

공작부인이 생각보다 심기가 불편하지 않은 듯했다.

정말로 아무런 분노도 짜증도 보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부인의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네. 부인의 넓은 자비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들은 그녀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감정에 따라 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책장을 넘겼다.

“감사할 필요는 없어. 가문으로 정식으로 항의를 할 것이니까. 모스퀴토스 백작가, 딥테라 남작가, 인섹툼 남작가 맞지?”

“헉!”

부인들은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들을 알고 있었다.

침묵한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었음이다.

“여기 오는 부인들에 관해서 아까 로테 후작부인에게 들은 것이 많거든.”

“부인!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들은 벨로나 공작가문의 안주인에게 시비를 건 것이었다.

동시에 메디치 백작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무례했고 아둔했다.

누구라도 누가 잘못했는지 알 상황을 만든 것은 그들이었다.

당연히 가문 간의 문제로 일이 커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의 가문을 향하게 될 것이다.

“왜 자꾸 사과해? 나는 그대들에게 화가 나지 않았어. 그러나 하극상을 벌인 것에 관한 본보기는 필요하잖아. 그렇지 않으면 위계를 바로 세울 수 없으니까.”

“부, 부인 제발!”

“나가. 내가 우아하게 나올 때.”

살기까지 느껴지는 말투에 부인들은 움찔거리며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어느새 북적거리던 고객대기실은 조용해졌다.

부인들은 디자이너를 기다리던 것도 포기하고 달아났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날카로움이 자신들에게 향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방관만 했던 부인들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었으니까.

프런트 직원이자 직원들의 관리자인 사내가 다가왔다.

아까부터 다가가고 싶었으나 도저히 다가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끼어들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분위기였으니까.

“벨로나 공작부인,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가 예의를 갖추며 허리를 숙였다.

사과에도 페루제 공작부인은 시선을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페이지를 넘겼다.

우아한 손짓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눈짓했다.

‘어서 공작부인에게 무례한 언행을 한 직원들을 데려와!’

그러나 직원들은 이곳을 나가지 못했다.

“괜한 직원들 데려올 필요는 없어요.”

“네?”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는데 굳이 데려오는 것은 시간 낭비잖아요. 그렇죠?”

우아한 자태로 말하는 공작부인은 너무나도 귀족적이었다.

“부인, 죄송합니다. 제발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사과를 하는 것이 웃기죠. 천한 수준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에 천한 직원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프런트 직원은 얼굴이 붉어졌다.

너희가 원래 수준이 낮은 것들임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이것은 일개 프런트 직원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고객응접실에서 나온 직원에게 눈짓했다.

‘니나스 알도 디자이너님은 왜 나오지 않고?’

그 직원은 고개를 저으며 슬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필 안에 계신 손님이 공작부인이시잖아요. 도저히 나올 상황이 아니세요.’

그는 그 의미를 알아챘다.

낭패였다.

디자이너가 응대 중인 공작부인은 드레스에 진심인 여인이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 주길 원했고 그것을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곳의 최고 단골인 그녀에게 나쁘게 보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군을 거느리고 있다는 공작부인의 심기를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생각이 복잡할 때였다.

“네가 뭔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앗!”

아이의 외침이 들렸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얼른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넘어진 란델리노와 아들을 넘어뜨린 것이 분명한 아이가 보였다.

그녀는 책을 덮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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