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니나스 알도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고급 의상실) (3)
한 가문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것은 페루제 루비로즈를 편하게 해줬다.
“아무리 루비로즈 영애가 너희와 같이 가문의 일원이자 가주의 자식인 신분에 있다고 해도 그 격은 같지 않다.”
“맞아. 그러니까 그녀를 대할 때는 언제나 윗사람을 대하듯이 하렴.”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한 가문의 실권을 쥐었으니 가주로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
“네, 알겠어요.”
“행동을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영애와 영식이 부모님에게 루비로즈 영애는 같은 영애가 아니라 가주로 여기고 대하라는 교육받았다.
가문을 잇지 않은 영식과 가문의 일원에 불과한 영애가 그녀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하극상이었다.
명실상부 그녀는 라스타 왕국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가문의 주인이었으니까.
갑작스럽게 초면의 부인들로 인해 벌어진 시비와 같은 일은 루비로즈 가문이 라스타 왕국의 최고 가문으로 서기 전에도 경험하지 못했다.
하물며 루비로즈 가문이 라스타 왕국의 최고 가문이 되었을 때, 그녀가 그런 시비를 경험할 일이 있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간에 페루제 영애가 말하는 것은 모두 옳다고 해야 한다. 알았지?”
“네.”
“그리고 그분의 심기가 불편해할 일은 절대로 벌이지 말고! 그게 우리 가문이 살아남는 길임을 명심하렴.”
“명심하고 또 명심할게요.”
다행히도 라스타 왕국에서 그녀와 그녀의 사람들에게 죽고 싶은 마음에 이딴 시비를 건 인물은 지금까지 없었다.
* * *
다시 오트 쿠튀르 하우스의 상황으로 돌아오자면 시비를 건 부인들은 잠시 멍해졌다.
직설적이며 사실인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에 정신이 탈탈 털렸다.
정신을 차린 한 부인이 그녀에게 삿대질했다.
“어디서 이름도 없을 하찮은…….”
어디서 이름도 없을 하찮은 가문 출신이 나대려고 하냐는 말을 마치려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아! 멈춰!”
“꺄아아악!”
한 부인이 바람처럼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킥을 날린 것이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가문을 모욕하려던 그 부인에게 말이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부인들과 인터뷰한 기자의 말에 따르면…….
“그 부인의 킥은 마치 독수리와 비견될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고 합니다. 기사도 그런 킥을 날리지는 못했을 것이라고도 했고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많은 부인 앞에서 날라차기를 한 부인은 빠르게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다가갔다.
그 부인의 정체는 로테 후작부인으로 수도 사교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세상에나?! 이제 무슨 일입니까! 괜찮으십니까?”
“뭐, 살다 보면 별 해괴한 일도 다 경험한다더군.”
그녀의 기분이 별로 상하지 않았음에 로테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여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아까 자신이 봤던 상황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났다.
널브러진 부인은 분명히 ‘하찮은 가문’이라고 말하려던 것이 분명했으니까.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시비를 걸더군.”
“어휴, 정말 몰상식한 사람입니다. 왜 갑자기 다가와서 시비를 거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페루제 공작부인은 벨로나 공작가문이든 루비로즈 백작가문이든 자신의 가문을 욕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을 여인이었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날라차기를 해서 그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실을 모르는 부인들은 당혹감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도대체 내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저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어요.”
“사교계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분이 어찌 저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로테 후작부인은 북부 출신의 부인은 수도 사교계에서도 영향력이 상당했다.
북부 사교계 영애들을 수도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북부 출신 부인들의 중심이 되는 여인이었다.
지금 그런 부인이 몰락가문 출신이라고 생각한 여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 로테 부인을 보고 싸움 구경하던 부인들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그건 그렇고 저 부인이 누군데 저리도 눈치를 본데요?”
“그러게요. 발이라도 핥을 기세에요.”
로테 후작부인은 평소 도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평을 받았다.
“어휴, 부인께서 오실 줄 알았으면 미리 제가 모시고 왔을 것인데 죄송합니다.”
“그대가 죄송할 일이 무엇이 있나요? 그런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에요. 아랫사람이란 무릇 윗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미리 알아서 준비를 해두는 존재가 아닙니까? 저는 부인의 넓은 아량에 감동 중이에요.”
그런 그녀가 정체 모를 부인에게 아양이란 아양은 다 떠는 모습이었다.
어깨까지 주무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으니까.
“어찌 이런 무례를 저지르십니까?”
“부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에요.”
“맞습니다.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날라차기에 쓰러졌던 부인이 지인들의 부축으로 일어났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울먹이며 항의했다.
그 곁에 있던 부인들도 그녀의 편을 들었다.
“저 여인과 마찬가지로 가문으로 정식 항의를 할 것이에요.”
“항의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세요. 상관없으니까.”
로테 후작부인은 코웃음을 쳤다.
남편은 오히려 잘했다고 춤을 출 것이다.
로테 후작가문의 영지는 불운하게도 메디치 백작령과 경계하고 있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메디치 백작으로 군을 보낸다면 지리학적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훈련을 빌미로 그들이 볼 수 있으면서도 경계선에서 메디치 백작령 병사들이 지척까지 온 적이 있었다.
로테 후작가문은 난리가 났었다.
걱정스러웠던 로테 후작부인은 남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때요? 싸울 만하겠어요?”
“못 이기겠던데?”
후작이 너무 순순히 자신들이 패배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니,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고 말해 주지 어찌 그러는지 야속했다.
“그렇게 강한가요?”
“급파한 세작이 말하는데 군대의 규모도 무기의 품질도 더 뛰어나다고 하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상당한 실력의 공격 마법사들도 있고 말이야.”
세작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냥 납작 엎드리고 비위를 맞춰 줘야 살 것 같다고 했다.
굳이 그렇데 의견을 피력하지 않아도 자료만으로 충분했다.
“당신이 수도 사교계에 집중하는 것은 아는데 이제는 안 될 것 같아.”
“수도 사교계에서의 영향력을 잃게 될 거예요. 활동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교계에서 가치가 떨어지잖아요.”
“수도고 나발이고 우리가 살고 봐야지. 지금 군사훈련 빌미로 이러는 이유가 뭐겠어? 경고잖아. 알아서 비비라고.”
“휴, 알겠어요. 당신 말처럼 우리가 살고 봐야죠.”
로테 부인은 북부 사교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과 가문의 권위를 위해 무엇이든 할 여인이라는 사실이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가문과 자신의 권위를 중요시하니까 조금이라도 가문과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이 되면 가차도 없어요.”
“역시나 조용히 메디치 백작을 따르는 것이 맞았군.”
“무조건 엎드리고 말을 잘 들어야 우리가 살아요.”
남편에게 조금의 트집 잡힐 일도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처음에는 페루제 공작부인와 우호적 관계를 위해 접근했다.
그런데 이 부인을 가까이 할수록 이익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수도에서 그분을 만나면 최대한 아부를 떨어서 한몫 잡으려고 했다.
“부인께서 만드신 장미회에서 얻는 투자 정보와 기회는 어머어마한 이득을 주니까 이번에 만나면 어떻게 해서든 가입을 허락받아야지.”
“부인, 어떻게든 장미회에 가입해서 우리도 한번 돈 좀 만져 봅시다.”
“나만 믿어요!”
장미회는 로테 부인이 페루제 공작부인과 적당한 친분으로 가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벨로나 공작가문의 저택에 자주 갔다.
수도의 트렌드를 잘 아니까 알려드리고 싶다는 명목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장미회 가입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장미회 가입이 코앞에 있는 상황에서 그 부인들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하필이면 이 오트 쿠튀르 하우스에서 말이다!
이곳은 로테 후작부인이 추천한 곳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장미회 가입은커녕 북부 사교계에서 매장을 당하게 생겼다.
수도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했었다고 해도 그것도 북부 사교계에서의 인맥이 있기에 가능했다.
북부 영애들과 부인들을 규합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이유다.
이러다가 다 잃게 생겼다.
그녀는 부인들에게 호통쳤다.
로테 후작부인은 아까 자신이 봤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저들이 벌인 일에 머리에서 열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고 이러다니요! 저한테 고마워하며 절을 해도 부족함이 없을 짓을 저지르고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군요!”
“그, 그게 무슨?”
“도대체 저분이 어떤 분이신데 그러십니까?”
이제야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시비를 걸었던 부인들은 상황 파악이 좀 되었다.
방금 전에는 분노와 흥분으로 못 보던 것이 보였다.
로테 후작부인은 계속 자신들을 화나게 만든 여인을 힐끔거렸다.
어떻게든 불편한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이분이 바로 벨로나 공작부인이시자 메디치 백작님입니다.”
“그, 그게 무슨!”
“뭐하십니까?! 어서 예의를 갖추세요!”
사교계에서 페루제 루비로즈에 관한 관심이 컸다.
요즘 사교계의 주제는 ‘페루제 공작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스타 왕국의 왕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권리를 얻은 여인.
헬리오 대공조차 사과하게 만드는 여인.
벨로나 공작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여인.
부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허리를 숙였다.
“감히 공작부인을 몰라 뵈었습니다. 제발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공작부인,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무지하여 무례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졸부 귀족 따위가 아니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알펜 왕국으로 대군을 이끌고 공격할 수 있었다.
“저희는 절대로 벨로나 공작가문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벨로나 공작 가문의 안주인이신 부인을 어찌 무시하겠습니다.”
“알았다면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 것들을 배제해도 문제였다.
그녀는 벨로나 공작가문의 안주인이었다.
그들의 무례는 벨로나 공작 가문의 권위를 무시하는 짓거리와 같았다.
그녀는 힘이 있는 안주인이었으니까.
부인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그들을 잠시 말도 없이 바라봤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 침묵이 무서울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곧 그녀가 눈을 떴다.
“내가 공작부인이기에 사과를 하는 것이군요.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됨을 모르다니 참 대단하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그 모습조차 우아했으나 누구도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그들의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