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니나스 알도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고급 의상실) (2)
페루제 공작부인은 솔직했다.
솔직하게 말했음에도 상대가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실을 말해 줘도 거짓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피곤하다.
“자신이 사교계에 아는 인맥도 없음을 인정하기 싫겠죠.”
“그래도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저희도 돕지 않겠어요?”
“귀족다운 인맥이 없는 귀족은 귀족사회에서 적응할 수 없답니다.”
그들은 그녀를 친한 척 데리고 다니며 자신들과 비교되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자신들의 가치는 더 빛나고 그녀는 더 나락으로 떨어지겠지 싶었다.
편견에 사로잡혀서 그녀의 귀족다움은 보이지 않았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시간을 가지나 싶었는데 이리 방해꾼들이 몰려왔다.
그녀가 책을 덮었다.
여기서는 제대로 책을 읽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귀족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귀족다운 인맥이 있어야 한다. 맞는 말이에요. 인맥은 세력이 되고 힘이 되니까.”
“역시 잘 알고 있네요.”
그러나 지금은 책의 내용보다 지금은 그들의 생각이 더 궁금했다.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여자의 비웃음이 섞인 말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부인들도 같았다.
“그런데 그거랑 그대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대들에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들에게 무슨 가치가 있어서 나를 돕는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을 들은 부인들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지금 저희를 모욕하시는 건가요!”
“얼른 이 무례를 사과하세요!”
“호의를 베풀어 주려고 왔더니 이런 모욕을 주다니!”
“어떻게 이런 여자가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죠?”
그들이 화를 낼 만한 물음이었다.
그들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대놓고 말한 것이니까.
그것도 초면에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왜 무례입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리고 질문 그 자체도 기분이 나빴다.
그렇지만 그것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저 담담하고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거기에는 상대를 깎아내리겠다는 의도도, 상대를 괴롭히겠다는 의도도 없었다.
그 순수성은 자신들이 진짜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대들과 일면식도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 내가 그대들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도와달라며 그대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건가요? 그대들이 누군데요?”
“뭐라고요?!”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초면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관해 아는 것도 하나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도와달라며 다가갈 수 있겠는가.
목숨을 잃을 위기사항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이미 상대를 자신들보다 낮잡아보는 부인들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저런 하찮은 여자에게도 알려지지 못할 정도로 사교계에서 영향력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인지 모른다.
“훗.”
그들의 대치를 보고 듣고 있던 부인 중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비웃음을 흘렸다.
상대를 조롱거리로 만들려고 했다가 도리어 자신들이 조롱거리가 된 꼴이 웃겼다.
그녀는 그들의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자신이 뭔가 실수를 한 것인가?
알펜 왕국의 기본적인 예법은 숙지했다고 여겼는데 아닌 모양이다.
자신도 참 허술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그대들이 누군지 몰라도 아는 척을 해야 하나요? 여기서 그러는 것이 예법이라면 따라야겠지요.”
“뭐, 뭐예요!”
“누가 그러라고 했어요! 지금 저희를 놀리는 건가요?!”
그녀에게 시비를 걸던 부인들은 귀까지 빨개졌다.
얼굴부터 귀까지 붉어진 모습이 마치 희극을 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고객대기실에 있던 부인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쏠렸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작게 속닥거렸다.
“보통 여인이 아니네요.”
“그러게. 보통 저러면 깨갱거리며 고개를 숙이지 않나?”
“뻔뻔한 것인지 아니면 무지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사교계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활동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부터 적을 만들다니요. 쯧.”
그들은 몰락 귀족이었다가 졸부가 된 부인을 무지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자신들이 상대의 신분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일반적이지 않은 태도가 그 편견을 단단하게 해줬다.
사교계 활동은 쉽지 않다.
한순간의 실수로 모두의 외면을 당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교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그룹이 있어야 함을 모르나 봐요.”
“아무리 몰라도 그렇죠. 저건 아니지 않나요?”
“그건 그렇죠.”
소문 하나 나쁘게 나서 사교계에서 사라진 여인들은 많았다.
같이 뭉쳐 다닐 부인들이 있어야 그런 소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용이했다.
지금 그녀는 그런 손길을 외면한 것이다.
부인들이 보기에는 사교계에 적응하기 위해서 비굴해도 잡아야 할 손을 내친 것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대들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군요.”
“세상에! 사과는 하지 못할망정 그따위로 말하다니!”
페루제 루비로즈는 라스타 왕국에서 사교계의 꽃으로 군림했다.
그녀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더니 눈이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했다는 눈빛이었다.
“혹시 시비를 걸었던 것인가요? 귀족이 거는 시비라고 하기에는 저열하고 1차원적이라서 몰랐어요.”
“뭐라고요! 1차원!”
“저열하다고요?!”
“그래요. 듣기는 했죠. 이렇게 격 떨어지게 노는 이들이 있다고요.”
그녀는 분노하는 부인들을 무시하며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 듯이 말이다.
정말 아무런 사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밤에는 달이 뜬다는 진리처럼 그들이 수준이 낮다는 것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시비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마음을 다해서 받아줬을 것인데 참으로 미안했다.
처음에 바로 밟아야 저것들이 고개를 이리도 뻣뻣하게 세우지 못했을 것인데 아쉽다.
“그런 이들이 있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렇게 경험하네요.”
“더는 참을 수가 없군요! 정식으로 가문에 항의하겠어요!”
“저도요! 어서 어느 가문 부인인데 밝히세요!”
가문에 항의한다는 것은 이 일을 가문 간의 문제로 공론화하겠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가문의 대표인 가주에게 사과를 받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말 그 항의가 정당하다면 가주가 직접 사과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
이는 가문의 명성과 가주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짓이었다.
그래서 귀족 부인들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는 절대로 가문을 통해서 항의하지 않았다.
과거 작은 일이 크게 되어서 영지전으로 번진 일도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페루제 공작부인은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하찮은 시비를 받은 적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네요.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대놓고 시비를 걸겠다고 말해줘요.”
“그것을 지금 사과라고 하는 것인가요!”
“그딴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는 필요 없어요! 어디 가문의 부인인지 얼른 말해요!”
아까부터 대놓고 모욕을 자연스럽게 당하던 부인들은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그녀의 평온한 말투와 얼굴이 그들의 화를 더 키웠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들의 분노 따위는 그녀의 인생에 하나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이 짖어 봤자 그녀는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교계에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닌가요? 그것이 저열하고 1차원적인 것이 아니면 뭐죠?”
“저희의 호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니 정말 상식 밖의 사람이군요!”
“호의를 베풀었다고 하기에는 장소도 태도도 맞지 않았어요. 어차피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곳이잖아요. 연회처럼 사람들과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곳이 아니죠. 책까지 가져와 읽는다는 것은 제가 누구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요.”
그녀는 끝까지 담담했다.
화내며 난리를 치는 부인들과 대비되었다.
우아하고 냉철한 귀족 부인 그 자체였다.
그래서 차마 그녀의 말을 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차라리 뭔가 이해할 목적이라도 있으면 그렇구나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잖아요.”
란델리노를 괴롭히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주최한 첫 번째 티파티에서 방계 가문과 가신 가문의 부인들이 하극상과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은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준비한 티, 자신이 가져온 조각상들을 폄하하던 말들을 이해했다.
“정말로 순수한 호의? 그것을 믿기에는 저희 모두 많은 경험을 하지 않았나요? 저희가 살아온 시간이 있잖아요.”
집안의 내정을 쥐고 있던 칸나 백작부인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웠을 것이니까.
공작 가문의 내정을 쥐고 있다는 것은 공작 가문을 따르는 가문 부인들에게 가장 높은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녀에게 아부를 떨 이유는 명확했다.
이에 비해 칸나 백작부인에 의해 쫓겨나리라 여긴 란델리노에게 관심을 쏟을 이유도 없었다.
란델리노를 향한 외면과 방치 그리고 괴롭힘이 이뤄질 환경이었다.
물론 그것이 감히 자신에게 도전한 것을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녀 의혹자 명단에 그들의 이름을 집어넣고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대로 된 목적도 없고 시비 걸기에 맞지도 않는 장소에서 시비를 걸었다면 그 이유는 하나겠죠. 천박한 우월감과 가벼운 즐거움.”
그녀는 자신에게 시비를 건 부인들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틀린 말이 없었으니까.
“아까도 말하긴 했죠. 그래도 다시 말할게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이제껏 이런 수준 낮은 시비를 경험한 적이 없었거든요.”
말하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시 말을 할 정도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처음 사교계에 등장했을 때조차 그녀에게 이렇게 오직 재미를 위해 시비를 거는 인물은 없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루비로즈 영애가 아닌가요? 반가워요.”
“네, 부인 반갑습니다.”
“아버지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찬성했을 것도 기특한데 지금의 백작부인도 친어머니처럼 모신다는 이야기 잘 들었어요. 아픈 어머니를 엄청 정성껏 보살피느라 고생이라는 말도요.”
“그럼요. 루비로즈 백작께서는 뿌듯하겠어요. 이리 정숙하고 마음이 따뜻한 딸을 두셔서요.”
“아닙니다. 가문의 일원으로, 아버지의 딸로, 어머니의 딸로 당연한 일인 것을요.”
“어쩜. 이리도 겸손할까? 어린 영애들의 귀감 그 자체에요.”
사교계에서 잔뼈가 굵고 영향력이 있는 원로격의 부인들이 페루제 루비로즈를 아꼈다.
그들의 비호를 받는 페루제 루비로즈를 건든다는 것은 그 부인들의 권위를 건드는 것과 같았다.
마음씨가 곱고 아름다운 루비로즈 영애는 사교계에서 금방 입지를 다지고 사교계의 꽃이 될 수 있었다.
루비로즈 가문이 라스타 왕국 남부의 최고 가문이자 왕국 전체를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가문이 되었을 때도 그녀의 사교계 활동은 무탈했다.
“당신 같은 분이 루비로즈 영애께 다가갈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얼른 저리가세요!”
“그분 쉬시는데 방해하지 말라고요,”
추종자들이 그녀가 얼굴을 찌푸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방어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