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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100화 (100/221)

100화 니나스 알도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고급 의상실) (1)

‘니나스 알도’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 앞에 화려한 마차가 섰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웅성거렸다.

“엄청나네.”

“번쩍번쩍 눈이 부시는군.”

귀족들이 가장 좋아하고 열광하는 디자이너의 의상실이다.

귀족들의 마차가 오는 것인 만큼 마차가 화려한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동안 봐 왔던 마차들과 비교해 보면 이 마차가 가장 멋지네.”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 시선이 가는 무늬야.”

그렇지만 페루제 루비로즈가 타고 온 마차는 격이 남달랐다.

무언가를 과하게 금이나 보석으로 꾸미지 않았다.

화려한 조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목재로 만든 마차에 새겨 놓은 무늬만으로 그 가치가 대단했다.

마차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과 같았다.

마차와 함께하는 삶을 사는 마부들은 본능적으로 그 가치를 알아봤다.

“도대체 저 마차는 어떤 나무로 만들었을까?”

“그러게. 마부로 산 지 20년이 넘었는데 저런 마차는 처음이야.”

“그치?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가격일 것이야.”

이 마차는 ‘암라나무’로 만들어졌다.

나뭇잎부터 나무뿌리까지 신성력이 담겨 있어서 ‘신성한 나무’로 불렸다.

또한, 성도에 삼백여 그루가 전부였다.

마차에 무늬를 새긴 예술가는 라스타 왕국 최고 예술가 중 하나로 불리는 미켈란젤로였다.

그 가치는 감히 인간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마차는 페루제 루비로즈가 가진 힘을 보여줬다.

세상에 삼백 그루 정도밖에 없는 나무를 마차로 쓸 정도로, 그것을 교황이 허락할 정도로, 왕국 최고의 예술가가 이동수단을 예술로 승화시킬 정도로 영향력이 있음을 말이다.

그 마차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아이가 내렸다.

“여기가 그 유명한 니나스 알도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군요.”

“그래. 소문만큼 실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니나스 알도’란다.”

란델리노도 페루제 공작부인도 별로 감흥은 없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이미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인생.

원래 웬만한 것은 눈에 차지 않았다.

“이곳에서 있을 일이 기대되어요.”

“나랑 마음이 같구나.”

란델리노는 의상에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이곳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모자는 서로를 웃으며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는 오트 쿠튀르 하우스의 문을 열었다.

* * *

문이 열리자 오트 쿠튀르 하우스 직원들의 시선이 잠시 페루제 공작부인과 란델리노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곧 관심을 거뒀다.

그들은 페루제 공작부인을 졸부 정도로 치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맞다고 여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그녀는 귀족답지 않았다.

보통 이곳에 방문하는 귀족들처럼 시종이나 시녀를 대동했다.

그런데 그녀의 곁에는 어린 아들뿐이었다.

그녀가 지나가자 작게 키득거리며 자기들끼리 말했다.

“귀족들만 오는 곳에 꼭 저렇게 허세를 떠는 졸부가 온다니까.”

“그치? 여기는 상류 귀족들만 오는 곳인데 분수도 모르고 와서 망신을 당하고 나간다니까.”

“그 모습 보는 것이 몇 안 되는 즐거움이지.”

부유한 평민이 자신이 귀족이라도 된 것처럼 찾아왔다가 쫓겨나가는 일은 종종 있었다.

“아니, 허세를 떨려면 시녀나 시종이나 끌고 와야지. 아들이랑 둘만 오냐? 귀족이라고 착각해 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네.”

“그러니까. 여기 일하면서 시녀, 시종을 여럿 끌고 오는 졸부들은 봤어도 저런 졸부는 처음이네.”

“그치? 웃겨.”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밖에 있는 마차를 봤다면 그녀를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그런 직원들에게 관심이 없는 그녀는 당당하게 앞으로 걸었다.

프런트 앞으로 다가왔다.

프런트는 고객대기실도 겸하고 있어서 먼저 온 부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시간에 예약했다고 들었네. 확인해 주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페루제 부인으로 되어 있을 것이네.”

프런트의 직원이 힐끔 그녀와 란델리노를 봤다.

이곳은 귀족들만 오는 곳이었다.

예약 명단에 있다면 그녀는 귀족이기에 있는 것이었다.

귀족이 아니면 아무리 부유해도 올 수 없었다.

프런트의 직원은 다른 직원들처럼 그녀를 단번에 졸부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사실 시녀나 시종도 없이 자기가 직접 문을 열고 들어온 모습만 보면 귀족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너무 완벽하게 우아했다.

걸음걸이, 손짓 하나하나가 우아함 그 자체였다.

다른 직원들은 편견으로 보지 못했으나 그는 확실하게 느꼈다.

이렇게 완벽한 귀족의 자태를 가진 사람이 귀족이 아닐 리가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약 명단에서 성함을 확인하겠습니다.”

“그러게.”

“페루제 부인… 여기 성함이 있으시군요.”

프런트의 직원은 이 오트 쿠튀르 하우스의 주인인 니나스 알도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었다.

그가 이곳의 직원들을 관리하는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위치에 어울리는 연륜과 안목을 지녔다.

“페루제 부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게.”

“페루제 가문은 어떤 가문인지요? 제가 무지하여 페루제 가문은 듣지를 못해서요.”

필시 수도에 오지 않던 명문 가문의 부인일 것이다!

“페루제 가문? 아?!”

뭔 헛소리를 하느냐는 눈빛이 곧 바뀌었다.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대가 오해했군. 페루제는 내 이름이네. 가문의 이름이 아니라.”

“이, 이름이요?”

프론트 직원은 당혹감에 말을 더듬었다.

다른 직원들의 생각처럼 그녀는 졸부가 맞았던 모양이다.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에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었다.

대단한 귀족이라고 확신했던 것이 틀리니 약간 민망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안목이 아직 부족한 듯했다.

“그래. 내 이름.”

“풋!”

페루제 공작부인보다 먼저 오트 쿠튀르 하우스에 도착하여 대기하던 귀부인 중 하나가 비웃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호기심을 가졌던 부인들의 눈가에 비웃음이 서렸다.

부인들끼리 속닥거렸다.

“세상에나, 가문명을 말하기도 민망한 집안 부인인가 보네요.”

“그러게. 제대로 된 귀족이면 가문명을 말했겠지요.”

“몰락가문에서 운 좋게 졸부가 된 모양이에요.”

“귀족사회를 즐기고 싶으면 공부라도 하고 오지 말이에요.”

“그러게요.”

말이 속닥거리는 것이지 실제로는 페루제 공작부인과 란델리노에게도 그 말이 다 들려왔다.

프론트 직원과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모두가 오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알펜 왕국에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 귀족가문의 안주인은 자신을 이름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가문명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칸나 백작부인을 예로 들자면 칸나 백작부인이라는 소개는 자신이 백작가문의 안주인이라는 뜻이었다.

레티시아의 이모인 이노무세키 백작부인도 이노무세키 백작가문의 안주인이라는 것이었다.

자기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는 것은 가문명을 말할 정도의 가문출신이 아니라는 것과 같았다.

“어머니, 수도 최고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답게 내부가 화려하네요.”

“나름대로 신경을 쓴 모양이구나. 나쁘지 않아.”

수군거림에도 페루제 공작부인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으니까.

란델리노는 그들이 하찮게 느껴져서 오히려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그들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여유롭게 오트 쿠튀르 하우스 내부를 바라봤다.

귀부인들의 말을 전부 들었음에도 담담한 모자였다.

그 모습에 프론트 직원이 당황해하며 헛기침하고는 말했다.

“그러시군요. 지금 먼저 온 분들이 있어서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순서대로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괜찮네.”

“그러시면 원하시는 자리에서 기다리지요.”

“알겠네.”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란델리노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란델리노, 너는 어디에 앉았으면 좋겠니?”

“저는 조용한 곳이 좋아요.”

“그러면 우리 저기에 앉아야겠구나. 여기에서 그런 곳은 저기밖에 없으니까.”

란델리노와 함께 가장 안쪽에 사람들이 오지 않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마차에서 가지고 나왔던 책을 펼쳤다.

책의 제목은 ‘고대 찬송가 그 안에 담긴 의미’였다.

제목만 봐도 어려운 책임이 분명했다.

란델리노도 옆에서 따라서 자신의 책을 펼쳤다.

‘라스타 왕국 기본역사’이었다.

알펜 왕국의 아이가 라스타 왕국의 역사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머니에게 자신은 라스타 왕국에 호의적이며 그에 관한 지식을 끊임없이 쌓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라스타 왕국의 영지도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절대로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라스타 왕국 기본역사는 라스타 왕국의 역사를 처음 배우면 시작하는 책이지.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이 되어 있고 그림도 있어서 덜 지루하거든.”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시고 저도 재미가 있어서 계속 읽게 되어요.”

“그리 관심을 주니까 너무 좋구나.”

란델리노의 어린 나이를 생각하면 나오기 어려운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노력을 계속, 멈추지 않고 보여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녀의 무의식에 란델리노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루비로즈 가문과 메디치 가문을 지배할 만한 자질이 있다고 여기게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노력하는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력만 하는 사람보다 그 노력이 승리로 이어지는 사람을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

“저는 어머니의 아들이니까요. 당연하죠.”

“그래. 너는 내 아들이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해.”

그는 후계자가 되기 위해 작은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히 말이다.

밀어주고 싶은 후계자가 있는 마당에 자신의 심중을 노출하는 행동은 위험했다.

“어머, 여기 처음 오신 것 같은데 거기서 뭐하시나요?”

“맞아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시네요.”

그들을 만만히 보던 부인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서였고 그들을 상대로 재미를 보고 싶어서였다.

그녀가 수도 사교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임을 언급했다.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영향력 있는 가문이 아니지 않냐는 조롱이었다.

부인들은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같잖은 행태였다.

란델리노는 부인들이 말을 걸자마자 알아챘다.

바로 집중하며 책을 읽기는 글렀음이다.

그렇다면 바로 자신의 목적을 이룰 목표물을 찾는 것이 이로웠다.

“어머니, 저는 잠시 여기 구경하고 오겠습니다.”

“그러렴.”

그는 책을 덮고 어머니에게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그런 아들을 보고는 시선을 부인들에게 옮겼다.

“앉아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는 분이 없어서 책을 가져오셨군요.”

기다리는 동안에 책을 읽고 싶어서 가져왔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책을 가져왔다고 해석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싶어서 가져온 것인데 어떻게 그리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리 말하는 마음을 이해해요.”

“그럼요. 자존심을 챙기고 싶겠죠.”

“자존심?”

사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아까 부인들이 자신을 모욕하는 대화를 듣지 못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 대화를 들을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만약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면 진짜로 참사가 일어났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문을 모욕하는 것을 참지 못했으니까.

어떤 면에서 그녀에게 시비를 거는 부인들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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