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99화 (99/221)

099화 더는 수도에 흥미가 없다

모자간의 대화는 훈훈한 마무리만이 남았다.

“네가 알아서 잘하는 아이인 것을 안다. 그러나 어미의 마음이란 언제나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멈추지 않는 것임을 이해해다오.”

“언제나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있어요.”

“나도 너를 가슴 속에 품고 있단다.”

그들이 서로 웃으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어울리지 않는 대화 내용이라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적을 섬멸해야 한다는 내용이 ‘사이좋은 아들과 어머니’가 할 만한 대화 주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이제 디자이너에게 가 볼까? 예약한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어머니랑 디자이너를 만날 생각을 하니까 너무 즐거워요.”

드디어 훈훈한 두 모자는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 * *

마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란델리노의 표정이 심드렁했다.

처음 수도에 도착했을 당시와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동안 수도의 저택 안에 있었던 아이가 즐거워할 것이라 믿었는데 의외였다.

“혹시 어디 아프니?”

“네?”

“저번에는 그리 즐거워하며 밖을 봤잖니. 그런데 오늘은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서 말이다.”

“어머니 오해예요.”

어머니의 말에 란델리노가 기겁했다.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억지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했다는 생각에서였다.

순간, 란델리노는 꿈속의 내용을 떠올렸다.

소년과 성인의 중간 모습을 한 자신은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여기요! 싸요! 채소가 싸요! 오늘만 딱 이 가격입니다!”

“여기 카플란 왕국에서 가져온 고급 스테이크에요! 집에서 드실 수 있게 특수한 마법포장이 되어 있어서 처음과 같은 상태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꿈속에서 본 도시는 생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꿈속의 자신은 그곳을 놀라워하며 두리번거렸다.

“푸르르릉!”

거대한 푸른색의 말들이 힘차게 움직였다.

거대한 마차가 6—8대가 지나다녀도 괜찮을 도로와 넓은 인도가 구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안전하게 길을 걸었고 말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았다.

모두가 영지에서 정해준 규율을 지키며 움직였다.

마차도, 사람도 길을 지날 때는 마법으로 만든 등이 녹색이 되면 지나갔고 붉은색이 되면 멈췄다.

사고가 날 일이 없었다.

“저기는 어디인데 저리도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아까도 비슷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던 것 같은데 말이야.”

혼잣말한 그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나 차를 마시는 곳이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그도 주문하고 차를 받았다.

그 와중에 옆자리의 대화가 잘 들렸다.

“내가 타국의 다른 영지에 놀러간 적이 있지 않나?”

“그래. 그래서 자네를 다들 부러워했지.”

“눈만 버렸네. 왜 괜히 타국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해야 하냐고 부모님에게 욕만 먹었지 뭐야.”

“왜?”

“말들의 변이 도시의 길을 그렇게 더럽게 만들 수가 없네.”

라스타 왕국은 환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환수는 환수계라는 정령세계에서 사는 정령동물이었다.

정령의 일종이었기에 환수는 배설하지 않았고 도시의 위생을 유지하도록 해줬다.

진짜 말보다 훨씬 힘도 세고 강했다.

“진짜?”

“그래. 야만스럽게 말들이 도시에 들어오기 전에 설사약을 먹인다고 하는데…….”

“설사하고도 남아 있던 것을 말들이 도시에 배설하는 것이군.”

“그래! 어머니는 코를 찡그리고 아버지는 밖의 냄새 때문에 마차 문을 닫으시고 난리였어.”

그들은 타국을 야만인 취급하며 낮잡아 봤다.

“경국부인이 없으셨다면 우리도 계속 그렇게 야만스럽게 살았겠지.”

“그럼. 메디치 루비로즈 백작님이 아니었다면 계속 그리 살았겠지.”

“솔직히 메디치 백작령이 대단하다는 소리는 여러 번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네.”

“그치? 라스타 왕국의 중심지인 루비로즈 백작령도 대단한데 여기는 그의 몇 배는 뛰어넘는 기분이야.”

그들 모두가 페루제 메디치 루비로즈를 칭송했다.

꿈속의 자신이 그때 느낀 감정은 비참함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왜 나에게 이곳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한 번이라도 자신의 영지에 가 보라고 해볼 만도 하건만…….’

‘어머니의 아들이지만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아서인가?’

‘내가 후계자의 야심을 가지고 움직이게 될지도 몰라서?’

‘내가 어머니의 후계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과한 욕심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인정받을 수 있지?’

수많은 생각이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란델리노는 회상을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말을 계속했다.

“그때는 수도가 대단하게 느껴졌으나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요.”

“무엇이 지금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니?”

꿈속의 메디치 백작령과 비교하면 수도는 하찮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아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것이 일반적인가?

보통의 아이가, 그것도 학대를 받고 방치되었던 아이다.

벨로나 공작령에서도 여기에서도 제대로 밖을 나선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제대로 수도를 구경하는 일은 처음 왔을 때와 이번이 딱 2번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수도의 화려함과 규모에 놀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아이 양육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양육을 잘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원래 아이들은 빨리 흥미를 잃는가 보군.’

흥미를 잃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란델리노는 어머니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도록 하고 싶었다.

꿈속의 경쟁자는 어린나이에 어머니에게 자질을 인정받고 후계자까지 되었으니까.

자신도 그 녀석만큼, 아니 그 이상의 재능과 능력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을 마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 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서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아들은 대답 대신에 질문했다.

그 물음이 자체가 답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물음의 답을 진짜로 알고 있는지 확인은 해 봐야 마땅했다.

자신의 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생존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나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설마 그런 깊은 생각을 할 정도의 아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즐거웠다.

예상을 벗어난 인재를 만나는 것은, 그 인재가 아들인 것은 말이다.

란델리노를 아들로 받아들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처음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계기가 물이었음을 생각하면 알 수 있지.”

“물이 없으면 그 어떤 생명도 살 수 없으니까요.”

“그래. 그 물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한곳으로 모였고 그 많은 사람을 관리하기 위해 행정, 법 등이 생겼지.”

인간을 이루는 모든 것의 기원은 생존 욕구다.

생존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그 많은 것들을 만들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것이 지배층이며 귀족이다.

내부의 분란이 생기지 않을 법과 다수를 쉽게 관리할 신분이 필요해졌다.

그들은 법을 만들고 신분 간의 차별을 정당화했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신화’를 만들었다.

‘신화’를 끊임없이 보여주기 위해서 ‘예술’을 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많은 것이 이어졌다고 그리 믿었다.

“생존은 모든 것의 기원인 것이지. 그리고 수도는 그 모든 것의 정점에 있다.”

“정점에 있다고 해도 최고는 아니지요.”

수도는 ‘왕국의 중심’이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일이 이뤄졌다.

알펜 왕국의 가장 높은 존재이며 지배자인 왕과 그 일가가 거주했다.

수도에서 주요 왕국의 법을 만들어졌다.

수도에서 모든 중요 행정업무가 일어났다.

수도는 고위층이 모이는 정치의 중심지로 많은 귀족이 수도에 저택을 뒀다.

수도에서 하는 연회들은 각종 유행을 이끌었고 문화를 발전시켰다.

최고가 아니라는 란델리노의 말은 위험했다.

왕의 도시가 최고가 아니라는 것은 왕국의 중심지가 다른 곳이라는 뜻이었다.

이는 왕의 능력과 권위가 떨어졌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충분했다.

“그것은 위험한 발언이다. 알고 있니?”

“네. 자칫 반역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발언이지요. 그러나 어머니 앞이 아닙니까?”

어머니가 자신을 밀고할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는 말이었다.

란델리노가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그러나 평소에는 조심하거라. 너를 책잡기 위해 눈과 귀를 집중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니.”

“물론이에요.”

“그러면 계속 말을 해보렴. 너의 대답이 심히 궁금하구나. 그것이 수도를 하찮게 여길 이유가 되는지도 말이야.”

그녀는 ‘생존’이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그의 답이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생존’이라는 말로도 충분했으나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어진 것이다.

정확히는 자신과 생각이 일치하는지가 말이다.

“어머니, 과거에는 물뿐만 아니라 염분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죠.”

“그래. 사냥하면 그 동물 안에 있는 염분으로 충분하지만 농경 사회로 바뀌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지. 아니 전보다 부족하게 섭취하게 되었다고 표현해야 하나?”

페루제 공작부인은 아들이 하는 말을 다 이해하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지식을 습득했기에 가능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가 넓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네. 그러면 그 염분을 얻을 수 없는 다른 지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염분이 있는 지역과 교역을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지역들을 중개하기 위해 다른 도시가 생겨났겠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니? 이제 진짜 답을 듣고 싶구나.”

그녀가 우아하게 웃으며 물었다.

진짜 자신과 생각이 같다면 정말 희열을 느낄 것 같았다.

자신을 이해해 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게다가 란델리노가 자신과 생각이 일치한다면 자신의 교육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도시는 생존을 위해 생겼죠. 그런데 그 방식은 달랐어요. 무역을 중개해서 살아남으려는 도시, 철 등을 팔아서 생존하려는 도시, 풍족한 수확물로 삶을 유지하려는 도시, 그 종류는 다양하죠.”

“그래서?”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란델리노는 자신의 답이 틀리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도시는 멈추지 않고 변화를 해야 해요. 시대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달라져야 모두가 ‘생존’할 수 있어요.”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수많은 도시의 멸망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들의 장난기가 느껴지는 질문에 그녀가 미소로 화답했다.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란다. 꾸준히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도시는 망하지.”

이곳이 수도임을 감안하면 이대로 나태하게 있다가는 알펜 왕국이 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이 보기에 여기는 변화가 없었다.

왕국의 중심이라는 역할에 빠진 곳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너와 나에게는 좋은 것이란다. 그러니 이 수도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렴.”

왕국도 변화하고 있으나 페루제의 영지보다 라스타 왕국보다 느렸기에 그리 생각했다.

그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그리고 곧 마차가 멈췄다.

“공작부인, 도착했습니다.”

“그래. 알겠다. 란델리노 내리자구나.”

“네. 어머니와 의상을 고를 생각하니 즐거워요.”

“나도 마찬가지란다.”

그들은 우아하게 마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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