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화 어머니의 가르침
수도 내의 벨로나 공작가문 저택에서 페루제 공작부인은 유명했다.
고용인들은 매일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공작부인께서는 원래 저러신 분인가?”
“야, 시녀장님이 백작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셨잖아요.”
“뭐, 어때. 시녀장님도 은근히 이곳의 내정업무를 부인께 드리고 있잖아.”
“하긴 나라도 그렇게 하기는 하겠다. 자기 딸을 구해 준 은인이잖아.”
페루제 공작부인은 여유로웠다.
아무리 많은 업무에 쌓여 있어도 순식간에 끝나 있었다.
힘든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고용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아! 아까 원래 저러시냐고 물었잖아. 뭐를?”
“아니, 이곳의 업무 말고도 다른 업무도 많잖아. 그런데 보면 그 업무량을 생각하면 그것을 끝내는 것이 가능한가 싶거든.”
“맞는 말이기는 하지. 처음에 여기 업무 아니고 개인적인 업무라며 가져온 서류를 보고 기겁을 했다니까.”
고용인들은 당시 공작부인의 사람들이 그녀의 방에 가지고 들어가던 서류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그것을 끝낼 수나 있을까 싶었다.
“신기하게도 하루 만에 다 끝내잖아.”
“맞아. 그것도 먹을 것은 다 먹으면서, 차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면서 말이야.”
“왜 저번에는 하루 종일 초상화에 시간을 썼는데도 그 업무량을 다 마쳤잖아.”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어. 그것도 낮에 일하지 않다가 하는 것 같잖아.”
“진짜 대단하신 분이야. 엄청 뛰어난 재능이라니까.”
“그러니까 라스타 왕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따르고 벨로나 가문에서도 권위가 하늘을 찌르게 된 것이겠지.”
실제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너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다르게 보자면 타고난 재능이 없음과 같았다.
빠르게 일을 할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기 충분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평소의 모습에서 자신이 그들을 지배할 만한 자격이 되는 인물임을 보여준 것이다.
* * *
고용인들은 모를 것이다.
페루제 공작부인도 사람이었다.
“나가 있거라. 홀로 업무를 봐야 집중이 더 잘 되니.”
“알겠습니다.”
그녀는 엄청난 업무 서류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 업무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타나토스.”
“불렀어?”
그녀의 부름에 어둠의 정령왕인 에레보스가 집무실에 나타났다.
“밖을 구경하던 중일 것인데, 미안.”
“뭘, 네가 부르는데 그깟 구경이 중요해? 나는 네가 우선이라고.”
에레보스가 낮을 느끼는 것을 중요시해도 계약자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약자인 동시에 자신의 친구였으니까.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또 어둠의 공간을 열어 달라는 것이지.”
에레보스가 만드는 어두운 공간은 시공간의 틈에 있었기에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인간세계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많은 업무를 처리하기에는 제격인 곳이다.
“응. 할 일이 많네.”
“메디치 백작으로, 손님으로 쉰다고 했잖아?”
“나는 쉬고 싶은데 여기저기서 나에게 결정을 내려달라고 난리네. 게다가 시녀장도 은근슬쩍 나에게 이곳의 내정업무를 주고 있잖아.”
에레보스가 보기에도 기겁할 업무량이었다.
그는 그녀가 쓰러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걱정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업무를 줄이는 것은 어때?”
“그건 안 돼.”
“왜?”
“보여줘야 하거든.”
“보여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데?”
“내가 이런 업무량을 단시간에 처리할 정도로, 여유를 부려도 처리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이야.”
그래야 자신의 능력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생기고 자신의 세력은 견고해질 것이니까.
리더가 뛰어남과 자질을 보여주지 않는데 사람들이 어찌 따르겠는가.
‘열심히 하는 사람’은 성실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재능이 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했다.
“그러면 다 끝나면 불러줘.”
“알았어.”
그녀가 이리 외로운 공간에 홀로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녀의 업무를 해줄 것도 아니고 그녀가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으니까.
무력함을 느끼며 공간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
“뭐?”
“인간의 일이니까 인간의 선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매번 이런 도움을 받네.”
“그렇게 말하지 마. 나는 너에게 이런 도움이라도 줄 수 있어서 기쁘니까.”
그는 자신을 위하는 친구의 마음을 느끼며 공간에서 사라졌다.
설령 자신이 원하는 마음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독이 아니라.
* * *
페루제 공작부인이 란델리노와 차를 마셨다.
모자가 차를 마시는 일과는 일상이었으니까.
차의 향을 느끼던 그녀가 우아하게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란델리노, 듣기로는 수도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디자이너가 있다더구나. 이름이 니나스 알도였던가?”
“그런가요? ‘니나스’라는 디자이너가 얼마나 실력이 뛰어나길래 최고라고 불릴까요?”
“글쎄다. 수도 최고의 디자이너 실력이 정확히 어느 수준인지는 모르지. 그러나 최고라고 불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거야.”
란델리노는 알아챘다.
어머니가 ‘수도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가 볼 생각임을 말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원하는 말을 꺼내는 것이 맞았다.
어머니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마음을 얻어야 했으니까.
분명히 그녀의 의도를 알아챈 자신에게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한 번은 찾아가길 원하기는 했었다.
어머니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자신이 꺼냈을 이야기였다.
“어머니, 상대에 대해 모를 때, 직접 그 상대와 만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네, 최고라고 불리는 실력을 보고 싶어요.”
“우리 서로 마음이 맞았구나. 안 그래도 라스타 왕국 대사를 통해서 예약해 놨단다.”
“정말로요? 어머니 최고세요.”
그들은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그녀가 어떤 의도로 그곳에 가려는지, 란델리노는 왜 거기에 맞춰줬는지는 본인들만 아는 마음일 것이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침묵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머니. 저희는 이미 건국제의 의상을 맞추지 않았습니까?”
“응? 건국제 의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니 괜찮다.”
건국제가 다가오고 있다.
이 시기에 예약하고 디자이너에게 방문한다면 건국제 의상을 위해 왔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자신이야 괜찮았으나 어머니는 입장은 달랐다.
자신은 어린아이에 불과했지만 어머니는 한 가문의 안주인이었으니까.
유명 디자이너들이 건국제 의상으로 바쁜 시기다.
건국제 드레스를 맞춰 놓고 정작 건국제에서 입지 않는다면 사교계에서 뒷말이 나올 것이다.
이런 시기에 굳이 건국제와 상관이 없는 의상을 맞추는 것은 건국제 참석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라며 수군댈 것이다.
“다른 연회의 옷을 미리 맞춘다고 생각하렴.”
“뒷말이 나올 수 있어요. 어머니.”
게다가 디자이너의 드레스에 건국제에서 선보이지 않는다면 디자이너는 자존심이 상해할 것이다.
수도 최고라는 것은 왕국 최고라는 뜻과 연결된다.
수도는 왕국의 중심지이며 모든 유행의 시작점이었으니까.
그런 디자이너의 손님은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수도 최고 디자이너가 악감정을 품는다면 자신의 손님들에게 어떤 말을 내뱉을지 모를 일이다.
“공작 가문의 자금력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잖니?”
“어머니의 말씀 잘 이해했어요.”
란델리노는 어머니의 말에 깨달았다.
뜬금없이 자금력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머니가 뒷말 따위에 흔들릴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뒷말에 사교계의 입지가 정해지는 분이었다면 결코 라스타 왕국의 최고가 되지 못했으리라.
어머니를 걱정하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웃겼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머니는 그런 하찮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선을 넘는 뒷말로 어머니의 심기를 거스른 이들의 최후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가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는 아버지나 고모할머니께서 저에게 돈을 쓰지 않으셔서 몰랐어요.”
“훗. 그래. 그렇게 오해하기 쉬운 상황에 있었지.”
“맞아요. 그러니 제가 이런 말을 했음을 아버지도 고모할머니도 이해해 주셔야 해요.”
자신이 기르는 아들이었지만 참으로 잘 자라고 있었다.
자신의 말에 담긴 의도를 알고 대응했다.
그것뿐인가?
여유를 부리며 농담까지 할 배포까지 지녔다.
점점 훗날이 기대되는 아이였다.
물론 만족스럽다고 거기에서 끝내면 아니 될 일이다.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
“나도 그리 생각한단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타인을 탓하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지. 그러니 언행에 조심하거라.”
“그럼요. 저는 어머니가 아닌 사람에게는 절대로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아요.”
가르침을 준다면서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명령과 같았다.
그것이 너무 과하면 반항심만 키우니 아이가 이해할 이유를 말해 주는 것이 옳았다.
그 와중에 란델리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믿는 인물은 어머니임을 언급했다.
자신이 명백히 어머니의 사람임을 전한 것이다.
“그건 정말 기분 좋은 말이구나. 신께서 나에게 큰 행운을 줬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예배에 감사기도를 드려야겠구나.”
“저야말로 어머니 같은 분을 어머니로 모실 수 있어서 언제나 신께 감사하고 있어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모자의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간식을 직접 집어다가 입에 넣어줬다.
“하찮은 적을 만드는 것보다 귀찮은 일은 없고 강한 적을 만드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없음을 기억하렴.”
“알겠습니다.”
하찮은 적은 날파리와 같았다.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거슬리게 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지 날파리 같은 적에게 신경이 빼앗기는 경우가 있다.
그로 인해서 중요한 사항을 처리할 때를 놓칠 수 있었다.
해야만 할 일의 때를 놓친다면 ‘강한’ 적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노릴 것이다.
그런 약점을 만드는 것은 최대한 지양해야 했다.
강한 적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 가진 여력을 다해서 싸워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그 여력을 다 써버리는 상황이 온다면 제삼의 세력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강한 적들과 제대로 한판 붙지 못하는 이유였다.
‘강한 적’의 예로는 헬리오 대공이 있다.
자신이 뒤에서 귀족들을 자극하여 만든 내란을 빠르게 진압하고 권력을 얻은 인물.
동맹이자 적이기도 한 헬리오 대공은 처리하기 어려운 인물 중 하나다.
“적을 만드는 일이 불가피하다면 적을 완전히 섬멸해야 한다. 그 적을 이용할 수 없다면 후한거리로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시간이 걸릴지라도 말이야.”
하찮은 적이라도 이용가치가 있다면 그냥 둬도 된다.
자신이 혁명으로 탄생한 신귀족들을 그대로 두는 것도 가치가 있어서였으니까.
그들의 존재는 자신의 사람들이 나태하지 않도록 하는 도구이자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킬 명분이었다.
반면에 이용도 할 수 없고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쳐내야 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리’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의미로 헬리오 대공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반드시 명심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