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화 변화가 시작되다
파필리오 공작은 지금 상황이 자신들에게 좋게 흘렀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최측근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분명히 저희의 상황을 알고 움직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사람들은 가문을 위해 헌신하는 시녀장을 위해 움직인 우아한 귀부인으로 칭송한다지만 말이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고 벨로나 공작 가문의 사람인 것이 분명한 시녀장을 위해 움직일 여인은 아닌 듯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른 의중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그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은 머리가 아프고 귀찮았으니까.
기사에 나오는 말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굴었다.
“저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길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는…….”
“대단하지. 이미 알펜 왕국의 정치적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직접 만나 봐야 알겠지만 일단 저희에게 호의적인 듯합니다.”
“그러니까 그리 나서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판을 만들었겠지,”
* * *
자신의 사람들을 내보내고 그는 아내와 방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연애결혼한 사이로 시대를 앞선 커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부모가 정해 주는 상대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으니까.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될 만한 역사를 지닌 부부였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사이가 좋았고 가정에 충실했다.
그녀가 와인과 잔을 가져왔다.
잔에 와인을 따르며 물었다.
“무슨 근심이 있어서 이리 피곤해하세요?”
“역시 당신은 못 속이겠군.”
그가 아내가 주는 잔을 받으며 웃었다.
파필리오 공작부인이 요즘 사교계에서도 화제인 인물에 대해 떠올리며 말했다.
“벨로나 공작부인 때문에 걱정이에요?”
“보통 여인이 아니니까. 그대도 그녀를 대할 때는 경계를 늦추지 말고 거리를 둬.”
“그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에요?”
“무서운 사람이지.”
그가 진지한 눈빛으로 진중하게 말했다.
남편이 저리 여유가 없이 말하는 경우는 진짜로 위험한 상대임을 아는 그녀도 덩달아 긴장했다.
“그녀는 잔인하고 계획적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원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그래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이지. 그런데 나는 다른 것이 무서워.”
“무엇이요?
“이번에 폐하께서 밀어붙인 인물이 다른 때와 달리 쉽게 대법관이 된 이유가 무엇이겠어?”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그래. 우리 측 사람들이 그가 내린 판결 서류들을 읽어 보지 않았겠어? 명분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은 봤을 것이야.”
그녀는 지혜롭게도 공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이제까지 모두가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했던 문제를 ‘문제’이며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바꿨군요.”
“그래. 사람에게 고정된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행했지. 너무 쉽게 하나의 사건으로 말이야. 성서까지 언급하며 자신이 독실한 신자로 도덕성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어.”
“여보, 일단 쉬어요. 피로할 땐 떠올라야 할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요.”
“알았어. 괜히 당신 걱정만 하는 말을 했네.”
“아니에요. 나도 알아야 조심하며 행동하죠.”
그들은 다정하게 서로의 뺨에 입술을 대고는 잠을 청했다.
파필리오 공작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앞으로가 너무 걱정되어서였다.
* * *
파필리오 공작이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던 시각.
페루제 공작부인은 와인을 마시며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곁에 있던 시녀에게 물었다.
“파필리오가 고대어로 무엇을 뜻하는지 아니?”
“제가 부족하여 그 뜻을 알지 못합니다.”
“파필리오는 나비를 뜻한단다.”
“나비요?”
“그래. 나비는 꽃을 찾아서 날아오기 마련이니 인내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나에게 오겠지?”
“물론입니다.”
그녀는 앞으로가 너무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잔에 든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그녀가 있는 곳은 벨로나 공작 가문의 저택이 아니었다.
바로 신전이었다.
* * *
아르테 젠탈레스키 사건 재판장에서 한껏 사고를 치고 우아하게 페루제 공작부인은 마차에 탔다.
그녀는 마차 안에서 명령을 내렸다.
“저택이 아니라 신전으로 가자. 기왕 나왔는데 큰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낫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신전에 볼일이 있어서 며칠 동안 그곳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그이와 란델리노에게 전하렴. 물론 내 방문을 신전에 전해는 것도 잊지 말고 말이야.”
“네. 빠르게 전하겠습니다.”
명령을 내리고 그녀는 서류들을 차근차근 읽었다.
* * *
“도착했습니다.”
“벌써? 빠르구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니 어느새 신전에 도착했다.
신전 앞에는 그녀를 마중하러 나온 신관들이 대기 중이었다.
그녀가 마차에서 우아하게 내리자 그들의 대표인 대신관이 다가왔다.
“부인, 이리 와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리 말씀을 해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괜히 바쁘신 분들을 귀찮게 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귀찮다니요! 부인과 같은 신실한 신자님을 만나는 것은 저희의 행복입니다.”
“그리 말씀을 해주시니 너무 기분이 좋네요.”
그들은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 나가며 대화를 나눴다.
“귀빈을 이리 밖에 세워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어서 들어오시지요.”
“며칠 동안 기도를 드리기 위해 신전에서 머물려고 하는데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녀의 물음에 대신관이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들은 신전에 함께 들어갔다.
그 동시에 웃음을 머금고 있던 대신관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그녀도 웃음을 지웠다.
“준비가 되었고요?”
“물론입니다.”
“그러면 진행하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실패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지금 나의 패배를 언급하는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가시지요.”
그녀가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일반 신관들과 노신관들이 있었다.
오랜 연륜과 지식은 있으나 대신관이 되지 못한 신관들은 노신관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마치 편을 나눈 듯이 갈라져서 앉아 있었다.
서로를 마주보고는 있었으나 무언가 분란이 생겼음이다.
“그래요. 저기 앉아 계신 분들이 이번 교황 폐하의 개혁안을 반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찌 그런 큰일을 폐하의 독단으로 처리를 한단 말입니까. 그것도 일개 아녀자에게 휘둘리다니요.”
한 노신관이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일개 아녀자.
그것이 페루제 공작부인을 뜻하고 있음을 모르는 인물은 여기에 없었다.
지금 성도를 지켜주는 것은 그녀의 카엘족들이었다.
그녀의 명령 하나면 그들은 성도를 비울 것이다.
성도를 지켜줄 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대신관은 개념 없이 나대는 노신관에게 화냈다.
“어허! 무엄하네! 어서 예의를 지키시게!”
“아무리 교단을 위해 헌신한 신자라고 해도 지켜야할 선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노신관의 무례에 대신관이 뭐라고 말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대신관이 더 뭐라고 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손을 들었다.
“되었습니다.”
“아랫사람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요.”
그녀가 자신을 위해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여유롭고 우아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실, 이리 반대가 심한 문제는 노신관, 대신관, 교황 폐하가 모여서 회의를 하여 결정을 내렸죠. 제가 교황폐하를 대신하게 되었지만요.”
“흠흠흠. 교황께서 몸이 편치 않으셔서 말입니다.”
“뭐, 그것은 회의를 통해서 결정이 나겠지요. 대신관님. 시작하시오.”
원래 교황이 해야 할 일을 그녀에게 떠넘긴 것이었다.
대신관이 민망하여 헛기침하며 변명했다.
도대체 이놈의 교단은 뭐하는 놈들이 모였는지 모를 일이다.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징징거려서 알려 줬으면 그대로 하면 될 일이 아닌가.
그거 좀 반대에 부딪혔다고 이리 자신에게 의지한다.
현재 교황은 연좌제를 없애고 자신이 종교 개혁을 하는 좋은 교황으로 이미지 쇄신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민심을 얻는 것은 좋았다.
문제는 그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 옛날만큼 돈을 챙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다가 귀족과 왕실은 그들이 부정을 삼기를 눈을 부라리며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명분만 된다면 언제라도 성도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올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자금줄이 필요했고 그 자금줄은 공식적이면서 떳떳해야 했다.
“뭔가 방도가 없겠는가?”
“간단한 방법이 있지요.”
“그것이 무엇인가!”
교황은 언제나 의지하던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물었고 그녀는 답을 줬다.
“이혼신청을 백성들이 쉽게 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노신관과 자격을 갖춘 일반신관들에게 주는 것에 관한 회의를 하겠습니다.”
이혼과 혼인은 교단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교단은 결혼은 순고한 것이고 신이 정해 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혼 요청에 대한 것은 교황이 직접 결정을 내렸다.
다르게 말하자면 고위 귀족이나 왕족이나 교황에게 이혼신청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반 백성들은 만나볼 수도 없는 교황이 그들의 이혼신청을 전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사실상 이혼이 불가능에 가까운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그녀는 ‘이혼’을 자유롭게 하는 대신에 신전에서는 그 대가를 받는 것을 제안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이혼신청비용, 이혼소송비용 등 이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엄청난 자금을 벌어들일 것은 자명했다.
이혼하고 새로운 삶을 찾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사람들은 많았으니까.
이것을 반대하는 무리가 격하게 공격을 시작했다.
“이혼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신전에서 돕는다니요!”
“맞습니다! 신께서는 이혼을 미워하신다고 하셨는데 어찌 그것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돕는다는 말입니까!”
‘나는 이혼을 미워한다’는 성서에 나온 구절이다.
그들은 신께서 이혼을 반대하고 계심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녀는 신의 주장에 명확하게 구절이 성서에 있음에도 여유롭게 말했다.
“동시에 신께서 말씀하셨죠. 폭력을 너무나 쉽게 하는 사람을 미워한다고요. 이는 이혼만큼 폭력을 미워한다는 것이 폭력을 저지르는 자의 죄는 이혼만큼 큼을 뜻합니다.”
“…….”
“두 죄의 무게가 같다면 굳이 이혼을 반대할 이유도 없지요. 죄진 자와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인들이 이혼하는 것과 같은 무게의 죄를 저지른 남편들과 살 이유가 없다는 말이었다.
이혼이라는 죄의 무게와 가정폭력이라는 죄의 무게가 같다면 차라리 따로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사막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죠. 이혼하지 못할 이유도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혼이 신의 의사를 반하는 행위가 아님을 명확하게 하려고 했다.
“성서에서 나온 죄로는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 있습니다.”
성서를 보지도 않고 술술 성서의 내용이 나왔다. 오랫동안 성서를 읽어온 신관들이나 가능한 경지에 그녀도 이른 것이다.
그들은 서로 작게 말했다.
“독실한 신자라고 들었지만 이 정도라니요.”
“만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지만 놀랍니다.”
“이거 쉽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신관도 아닌 여인이 성서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 하며 쉽게 생각한 면이 없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신전에서 교육을 받은 기록이 있음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