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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83화 (83/221)

083화 욕망에 눈이 뜬 부인들

부인들은 눈을 반짝이며 공작부인을 바라봤다.

“부인의 가르침 덕분에 제가 제대로 내정의 기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부인과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정작 그 열화와 같은 시선의 주인공은 부인들의 격렬한 아부와 호의에도 담담하게 차를 음미했다.

마치 그들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 태도에 흠짓했다.

자신들의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것일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녀는 귀족답게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정말 소름 돋게 귀족적인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감정이 있는 것일까 한 번 이상은 궁금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그녀는 진짜로 푸른 피를 가졌을지 모른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가 찻잔에서 입을 떼기만 기다리듯이 강렬하게 바라봤다.

그녀는 그 시선들에도 무심함을 유지했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에요.”

말을 하면서 찻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잖아요. 그쵸?”

유일무이.

그 뜻은 ‘오직 하나밖에 없음’이다.

자신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누구에게 자기 자신은 하나였다.

그것은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그러니까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가장 위에 있다는 의미일 것이 뻔하다.

“그럼요. 그 누구도 공작부인보다 위에 있을 수 없어요.”

“공작부인과 같은 분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맞아요. 가장 위에서 저희를 보듬어 주시는 분이시죠.”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그녀를 찬양했다.

그것은 점점 심해졌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그들의 아부에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인께서는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지요.”

“누가 감히 부인의 뜻을 반대하겠어요.”

“저희의 본분은 부인의 말을 따르는 것이에요.”

부인들의 말을 듣고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갑자기 그녀가 우아한 미소로 표정이 바뀌자 모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들은 그녀가 해맑은 미소와 상반되는 발언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생각을 해주니까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러면 내 작은 소망도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의 명령을 거절하겠는가.

‘작은 소망’을 이루게 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라는 명령임을 모르지 않았다.

감히 자신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지 않으려는 부인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허투로 이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은 것이 아니다.

다 관리를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이용할 수 있다고 파악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녀가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대답을 ‘네’라고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미소와 박수였다.

부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네! 맞습니다. 그래야 마땅합니다.”

“성심성의껏 부인의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부인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경쟁하듯이 호응했다.

“잘되었네. 나는 부인들이 거절할까 봐 걱정했거든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맞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면 도리어 저희가 섭섭하죠.”

거절하면 이 모임에서 나가야 한다.

더는 정부를 때리면서 우월감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공작부인이 어떤 보복을 할지 무서웠다.

거절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이 모임에 나가면 더는 정부를 괴롭히지 못한다는 진실은 부인들에게 이 모임에 관한 집착을 불러왔다.

자신의 의도처럼 그들은 이 모임에 점점 의존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분노를 참을 필요도 없고, 바로 분노를 풀 수 있는 모임은 마치 신을 영접하는 순간처럼 부인들에게 다가왔다.

“말씀만 해주세요! 말씀을 받들겠습니다!”

“어머, 고마워라.”

그녀는 밝은 웃음으로 부인들의 반응에 화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찻잔을 들고 한입 마셨다.

“연회나 모임에서 누가 나랑 같은 색상의 드레스를 입는 것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헉!”

페루제 공작부인이 그녀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 말을 들은 귀부인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귀족의 체통을 잃은 모습이다.

그 어떤 공작부인도 심지어 왕비도 여인들의 드레스 색상을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건 여인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짓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어떤 색상을 택할지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자신들에게 매번 서신으로 그런 것을 알릴 정성을 들일 리 없었다.

그러면 공작부인의 드레스 색상에 대비하여 미리 색상만 다른 여러 드레스를 사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요일에 따라 입는 드레스 색상을 정할게요. 그 요일에는 절대로 그 색상은 입고 오지 말아요. 그리고 제가 초대하는 모임에는 초대장에 있는 색상의 드레스를 입을게요.”

물론 그 걱정을 그녀는 해결해 줬다.

그들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물론 특별한 행사에는 달라지겠죠.”

다 해결해 준 것도 아니다.

특별한 행사에는 다르다고 하니까.

모두가 황망해하는데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정말 뚝심이 있었다.

“참, 곧 건국제지요?”

그 특별한 행사에는 건국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네. 맞습니다.”

알펜 왕국의 건국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건국제에서 여는 연회는 왕국의 주요 귀족들은 모두 참석하는 큰 행사였다.

“그때는 붉은 색은 피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 말에 북부 여인 중에 붉은 드레스를 입을 사람은 사라졌다.

그녀를 적대하는 짓거리를 할 바보는 없었으니까.

* * *

페루제 공작부인이 건국제에 언급을 했지만 그날까지는 기간이 상당히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말을 꺼낸 것은 일종의 공표와 같았다.

“아직 건국제까지 꽤 시간이 있으니까 부인들을 확실히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지.”

북부의 사교계를 좌지우지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건국제 전까지는 완벽하게 알펜 왕국 북부를 ‘자신의 사교계’로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정부들을 괴롭히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최대한 모임을 잡아놓겠습니다.”

“그래. 귀찮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다 나의 사교계와 영향력을 위해서니까.”

이를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자신의 권위를 더 견고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덜 이성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권위가 세워진 상대에게는 감히 대들 생각을 못한다.

이성적이지 못한 상태에서는 불만을 가져야 할 일도 그냥 넘어가 버린다.

그녀는 수도에서 ‘최고’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부인들 간의 밀고를 활성화시켰다.

처음에는 친한 부인들의 뒷말을 전한다는 것에 꺼려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한번이 어려운 것이다.

한 명이 밀고를 시작하자 너도 나도 꼬투리를 잡아서 공작부인에게 말할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어떤 부인이 부채를 흔들면서 공작부인에게 다가갔다.

나름 우아하게 인사를 하며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부채로 입을 가리고 작게 말했다.

“공작부인, 저기 앉아 있는 부인 보이시죠? 글쎄 감히 공작부인의 결정에 불만을 품더라고요.”

“저런,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면 될 것인데 내가 말을 해봐야겠군요.”

공작부인은 자애로운 미소로 부인의 말에 반응했다.

그녀는 감동했다는 듯한 얼굴로 경망스럽게 부채를 흔들었다.

“어쩜! 이렇게 상대를 배려해 주시는지 감동이에요.”

“다음에 부인의 자택에서 모임을 가지죠. 부인 같은 인재가 모임을 제대로 주도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요.”

우아한 말투였다.

말이 끝나고 공작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밀고를 한 부인이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공작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들이 밀고까지 하면서 공작부인의 곁에 있으려고 하는 이유는 있었다.

밀고에 따른 혜택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사교계의 영향력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끌 수 있느냐에 따른 것이다.

사교계의 주류들은 정말 많은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아무리 귀부인이라고 해도 어떤 모임을 주도하는 역할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 무리를 이끌기 위해서는 그 무리의 인정이 필요했으니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 역할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페루제 공작부인의 등장 전까지의 이야기다.

자격이 없는 자에게 억지로 자격을 부여하는 짓을 했다.

한 번도 누군가의 위에서 우월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부인들에게 그것은 마약과 같았다.

이렇게 사교계 비주류 부인들의 마음을 포섭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가세가 기운 가문의 안주인들에게 신경을 썼다.

가세가 기운 이유는 사기, 투자실패, 사업실패, 도박 등 다양했다.

“부인, 요즘 가문의 가세가 좀 기울었다고 들었어요. 내가 좋은 투자처를 알려 주지요.”

“자금이 부족해요? 진작 말하지요. 내가 빌려줄게요.”

그들의 부족한 자금력을 메워줄 투자처를 제공해 줬다.

라스타 왕국 최고의 부자답게 그녀는 성공하는 투자처만 알고 있었다.

최소투자금액이 너무 큰 경우에는 낮은 이율로 돈을 빌려줬다.

공작부인 덕분에 손실을 채우고도 남을 돈을 얻게 되었다.

부인이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공작부인 앞에 섰다.

“공작부인, 정말 감사합니다.”

“뭐가요?”

“부인께서 새로운 투자처를 알려 주시지 않았다면 저희 집안은 정말!”

공작부인 덕에 돈을 벌어서 패가망신하는 것을 막은 여인이었다.

듣기로는 남편이 도박 빚이 엄청났다고 한다.

“울지 말아요. 내가 내 사람이 고생하는 것을 볼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공작부인!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공작부인의 말에 감동하며 선물을 준비한 부인이 울먹거렸다.

정말 충성을 다하겠다는 마음이 눈빛에서 느껴졌다.

충성심 따위는 원치 않는다는 듯한 서늘한 눈빛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대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거기서 끝나면 좋을 것이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부인이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그 찰나의 흔들림을 눈치채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마음 편히 말하세요. 우리 사이에 뭘 그리 고민을 합니까?”

그 말에 정말로 마음이 편해졌는지 바로 속에 감췄던 본심을 꺼냈다.

“혹시 다른 투자처도 있으신가요?”

그녀의 정보로 더한 부를 가지고 싶었다.

“그대가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주는지에 따라 달렸겠죠? 사교계에 즐거운 이야기 없나요?”

공작부인이 말하는 ‘즐거운 이야기’가 밀고임을 모르지 않았다.

알고 있음에도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작 페루제 공작부인은 어떤 감정도 없이 말해서인지 비교가 되었다.

“그러면 저번 모임에서 세타 부인이 했던 말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어요.”

“어떤 말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누군가를 밀고한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따위는 없었다.

이 부인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보를 듣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말을 전달하는 노력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사교계의 4송이 장미에요. 앞으로 북부 사교계를 저를 ‘대신’하여 관리해 주실 분들이죠.”

‘사교계의 꽃’이란 사교계의 중심이 되는 최고의 여인을 칭하는 말이다.

주로 미혼 영애들이 ‘사교계의 꽃’으로 불렸다.

이제는 과거다.

적어도 북부에서는 그 의미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이들이 내가 여는 연회를 꾸미고 관리하고 사람을 초대하고 할 거랍니다. 물론 그에 대한 약소한 선물을 드릴 예정이에요.”

그녀의 최측근이 된 4명의 부인들은 ‘약소한 선물’로 어마어마한 보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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