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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74화 (74/221)

074화 양국의 격차

소위 혁명을 통해 새롭게 귀족이 된 무리를 백성들은 믿지 않았다.

그들의 영지에 있는 백성들은 성공의 발판도 성공의 기회도 얻지 못했으며 희망도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수준 차이가 나도 너무 나잖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 몰라? 그만해.”

“알았어.”

라스타 왕국은 상업이 발전하게 되면서 타국에 관한 정보도 백성들에게 잘 들어오게 되었다.

얼마나 타국에 관한 정보가 잘 들어오냐면 타국에 관한 것만 전해 주는 잡지의 종류만 수십 가지가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만큼 오랫동안 단교되었던 알펜 왕국과의 교류는 백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잡지사에서 쏟아져 나온 정보들은 실망스러웠다.

알펜 왕국은 라스타 왕국에 비해서 많이 떨어진다는 인식을 심어 줬다.

뭐, 그렇게 치면 카플란 왕국도 헬리오 왕국도 라스타 왕국보다 아래라고 여겼다.

페루제 루비로즈를 벤치마킹하여 더 낫기는 했어도 말이다.

그 우월감을 위해서 타국 정보가 담긴 잡지를 읽는 것인지도 몰랐다.

전반적으로 백성들의 삶에 여유가 생겨서 타국의 문화나 환경이 궁금해져서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페루제 루비로즈’가 없는 알펜 왕국의 수준은 뻔했다.

교류를 시작한 시점에서 상대를 모욕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예의를 갖추지 못할 시에 징계를 내리겠다는 결정이 내려올 정도로 알펜 왕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었다.

동료가 여인을 말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건 높은 분들이 정하는 것이고 네가 반대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 그것보다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

“이런 경우에 대한 공지가 얼마 전에 내려왔잖아.”

“아! 맞다. 얼른 꺼내 봐.”

그녀는 동료의 말에 얼마 전에 받은 공지문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 내용을 차근차근 읽었다.

그들은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이 공지문이 없었다면 선배님들에게 문의해야 했을 것이고 그 선배님들은 상사들에게 문의했을 것이고 그 상사들은 더 높으신 분들에게 문의했을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고 야근 확정이었겠지.

“야, 나는 얼른 요청서를 보내고 보고서를 쓰러갈게.”

“뭐, 내가 보고서를 쓰면 안 되냐?”

“저것들 눈깔 보이지 않아? 내가 여자라고 무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눈빛이잖아. 괜히 시비 걸려서 저것들 감방에 처넣고 그에 대한 보고서 작성하느라 야근해야 속이 시원하냐?”

“그럴 수 없지. 우리 같은 부서라서 네 야근은 내 야근이잖아. 알았어. 너는 얼른 가.”

“흠흠…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라스타 왕국과 메디치 백작령에서는 이런 일반 말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예?! 들어올 수 없다니요. 그러면 짐들을 어찌 끌고 온다는 말입니까?”

상단주가 경악을 하며 말하자 관리가 고개를 저었다.

저리도 무지한 인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동정이 담겨 있었다.

보고서를 써야 한다며 사라진 관리의 경멸보다는 나았지만 그렇다고 사내의 동정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는 가방에서 지도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따가 요청서를 써서 드릴 것이니까 그거 가지고 여기로 가시죠. 거기서 말들을 보관하고 소환된 환수들을 데리고 가면 될 것입니다. 그 환수들에 관한 대우는 거기서 설명을 들으시고요.”

“환수요?”

“저기 푸른 말들 보이죠. 저 말들이 환수라는 존재예요. 환수계라는 곳에서 사는 동물 정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령이 저리 쉽게 소환이 되는 것인가요?”

정령 소환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정령과 성향이 맞아야 하고 소환을 유지해야 할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소환진을 작동하게 할 행운도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저것들이 정령이라면 어찌 일반인들이 저리도 쉽게 정령과 함께할 수 있을까?

상단주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상단의 일행들도 같았다.

그들은 귀를 쫑긋거리며 관리의 말에 집중했다.

“그건 우리는 저 환수들과 계약을 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면?”

“그러니까…….”

그는 어떻게 상단주에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것은 정령학과 마법학을 전문적으로 알아야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는 직접 보여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더 말로 들었을 때보다 더 신뢰가 되고 이해하기가 쉬운 법이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직접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에서는 최대한 알펜 왕국의 상인들에게 친절하라고 했으니까.

상단주는 너무 궁금하여 사양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반짝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호기심에 즐거워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였다.

관리는 종이 하나를 꺼내고 작은 돌 하나를 꺼냈다.

종이를 바닥에 두고 그 종이 위에 돌을 올려놓았다.

“소환!”

그가 말을 하자 종이와 돌은 사라지고 거대한 푸른 말이 나타났다.

“소환수님, 이 지도에 표시된 곳까지 저들을 안내해 주십시오.”

“푸르르릉.”

“감사합니다.”

소환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소환이 되면 원하는 것을 요청하면 됩니다. 이 종이는 소환서이고 이 돌은 소환석이죠.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소환되지 않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소환서는 주문서이고 소환석은 돈인 거죠.”

“네.”

상단주는 믿기 어려운 모습에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다가 겨우 대답했다.

이렇게 쉽게 정령이 소환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다른 일행들도 눈을 껌뻑거리며 소환수를 바라봤다.

“소환수는 일반 말보다 빠르고 정령이라서 배설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저희의 요청에 맞는 소환석만 제공하면 우직하게 그 일을 합니다. 소환석의 납품 및 판매는 루비로즈 가문에서 맡고 있고 이를 대행하는 대리점이 있습니다.”

“…….”

“그 대리점에서 소환서와 소환석을 파니까 사시면 됩니다. 지금 끌고 오신 말들을 보관하는 곳도 바로 옆에 있으니까 금액을 지불하시고 맡기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힘도 세고 배설행위도 하지 않고 심한 감정 기복에 일을 지연시키지도 않는다.

말의 배설 문제는 모든 왕국의 공통적인 문제였다.

말의 배설물로 도시가 너무 더러워졌으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안에 들어오는 말들은 마법 변비약을 먹어야 했고 도시 밖으로 나가면 마법 설사약을 먹였다.

동물의 입장에서는 가혹했다.

소환수 대중화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저희 라스타 왕국이 가지고 있는 자랑 중 하나입니다.”

타국에서도 따라할만 했으나 이런 식으로 소환수를 이용하는 곳은 라스타 왕국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소환서는 엄청난 술식과 이론이 결합된 최첨단 물품으로 도저히 그들이 만들어낼 수 없었다.

완전히 같게는 못해도 비슷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령 소환은 마석을 사용했는데 그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라스타 왕국에서는, 아니 페루제 루비로즈는 마석보다 훨씬 싼 소환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동안 고위 마법사들을 모은 것은 이런 혁신을 이루기 위함이리라.

그 제조 방법을 알기 위해 수많은 세작이 잠입을 하지만 알아낸 이는 없었다.

“소환수는 정령이니까 저희가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예의를 갖춰서 대해 주셔야 합니다.”

“네.”

마부들도 소환수를 소환하고 역소환하기만 하면 되었으니 관리가 편해지니까 좋았다.

말을 관리할 비용이 자기 주머니로 들어오니 그 자금을 마차 꾸미는데 사용했다.

화려하고 편한 마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그 마차로 가게 만들었다.

그 결과, 마차 인테리어 산업의 부흥기가 왔다.

마차를 꾸미기 위한 장식구 산업도 활성화되었고 마차 안의 의자, 쿠션 등도 소비가 늘었다.

관련 직종의 직업이 생기니 취직자리도 그만큼 늘어났다.

참고로 말 시장은 경주용 말시장과 말고기시장으로 나누었다.

상단주는 믿을 수 없는 것을 직접 목도한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질문을 뱉어야 했다.

아니면 궁금해서 며칠 동안은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소환수가 일상적이었다면 라스타 왕국과 교류하는 상인들을 통해서 알려졌을 것 같은데 왜 알려지지 않았나요?”

“일단 이 소환서는 라스타 왕국 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타국에 가져가서 사용하려고 해도 사용이 불가하죠.”

“라스타 왕국 내에서만요?”

“네, 그러다 보니 라스타 왕국과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수환수에 관해 말해도 믿지 않죠.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경험한 것만 믿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미친놈 취급을 받느니 입을 닫은 것이로군요.”

“저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리는 계속 알펜 왕국에 편입된 메디치 백작령을 라스타 왕국의 소속인 것처럼 말했으나 상단주나 다른 사람 중 누구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세작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만약 저 소환수들이 전장에 쓰인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들이 가진 말들보다 더 강하고 빠르며 소환석의 조건만 맞으면 죽지도 않을 것이다.

전쟁의 향방이 아예 달라질 수 있는 큰 사건이었다.

이런 일을 어찌하여 카플란 왕국과 헬리오 왕국은 방관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라스타 왕국이 알펜 왕국보다 우위에 있었다.

“저기 그러면 이런 일들에 대해 어째서 양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입니까?”

세작은 정체를 의심받을 수 있는 질문임에도 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알 수 없을 때에 정공법으로 가는 것이 더 쉬운 경우도 있다.

세작의 질문에 관리자가 불편해 보임에도 친절하게 웃었다.

“글쎄요. 제가 윗분들의 사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럼 이만…….”

“아…….”

하급 관리로 여기서 알펜 왕국의 상인들에게 소환수 안내나 하고 있었다.

그가 윗선의 내밀한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그도 몰랐다.

라스타 왕국, 카플란 왕국, 헬리오 왕국.

이렇게 삼국이 비밀리에 정보 협정을 맺었다는 것을 말이다.

삼국이 합의하에 각자가 통제해야 할 정보를 제공하면 도움을 주고 있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알펜 왕국을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짝짜꿍한 것이다.

수환수와 관련해서도 뭔가 대가를 주고 불만을 잠재운 듯하지만 일개 하급 관리가 알 수 없는 사항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봤던 것들을 떠올렸다.

깨끗하고 잘 관리된 넓은 길과 소환수, 같은 평민이라고 해도 자신들보다 훨씬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평민들까지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알펜 왕국의 백성으로 가진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다.

“우리 왕국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거였군.”

“라스타 왕국이 굳이 다시 교류를 시작한 이유를 모르겠어.”

아직 메디치 백작령은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기가 죽어 버린 알펜 왕국의 사람들이었다.

자국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한 세작도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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